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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發 '영리병원 블랙홀', 동네병원 '줄초상'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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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發 '영리병원 블랙홀', 동네병원 '줄초상' 난다"

['병원주식회사'가 온다·上] "건보 당연지정제는 파탄…민간 보험사는 '떼돈'"

제주도 내 영리병원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올해 초 영리병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철회하면서부터다. 우 도지사는 조건부 영리병원 수용안을 정부에 제시했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제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도 특별법) 개정안은 국회 통과만 남겨두고 있다.

여기에 김황식 국무총리도 지난 3일 제주도를 방문해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이 정말 필요하다"며 야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미 인천 송도신도시에선 영리병원 설립이 기정 사실이다. 국회에서 송도 국제영리병원 관련 법안을 논의 중이지만, 이는 설립 자체를 뒤엎는 내용이 아니다. 송도 신도시에서 영리병원 관련 규제를 기존 법안에 명시된 것보다 더 풀어주게끔 하는 내용이다.


이에 보건의료노조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3일 성명을 통해 영리병원 관련 법안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은 책임을 묻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4월 또는 6월 임시국회에서 결국 관련 법안이 통과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프레시안>이 "'병원주식회사'가 온다"라는 기획에서 다룰 주제다. <편집자>

나환자(가명) 씨는 얼마 전 암 진단을 받았다. 불안한 마음에 지역에서 가장 큰 A병원을 찾았지만, 병원 문턱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A병원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나 씨는 몇 차례 병원을 전전한 끝에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를 받는 B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B병원 측은 암 환자를 치료할 장비가 갖춰지지 않았다며 난감해했다. 나 씨는 "지역 내 큰 병원은 죄다 영리병원이라 치료를 거부당하기 일쑤였다"며 "큰 병에 걸리면 건강보험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라고 한탄했다.

위에 소개한 내용은 '가상의 사례'다. 현실에선 병원이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를 받지 않는다면, 이는 불법 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러나 곧 달라질 수 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영리병원 관련 법안들이 통과된다면, 앞서의 '가상의 사례'는 현실이 된다.

한국은 건강보험에 가입된 모든 국민이 어떤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더라도 '당연히' 진료를 거절당하지 않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채택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가상의 사례'가 현실에선 불법인 이유다.

그러나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위태로워진다. 영리병원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상충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법리(法理) 다툼이 필연적이고, 결국 헌법재판소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는 "영리병원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위헌소송을 건다면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받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말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기존 제도와 상충하는 법안을 새로 도입했을 때, 헌재가 기존 제도의 손을 들어주기란 쉽지 않다. 국회에서 진행되는 영리병원 관련 논의에 다수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다.

지금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병원에 환자본인부담금을 제외한 진료비를 환자 대신 내주고 의료수가(의사나 약사 등 의료서비스 제공자가 받는 돈)를 통제해 왔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병원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진료비를 책정할 수 있다. 대신 환자는 진료비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영리병원 도입 이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될 가능성에 보건의료 관련 단체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의료비 폭등이 필연적이기 때문.

정부 역시 이런 여론을 잘 알고 있다. 정부는 반발 여론을 고려해 제주도와 인천에 영리병원을 시범 도입한 후, 전국적으로 확장할지의 여부를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장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제주도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고,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인천에서는 송도국제병원이 2016년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참여연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입장을 믿지 않는 눈치다. 정부가 영리병원을 '시범 도입'하는데 그치지 않고, 결국 전국으로 확대하리라는 게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이런 의도로 크게 세 가지 '꼼수'를 쓴다고 이야기한다.

첫째, 제주도와 같은 특별자치도나 송도와 같은 경제자유구역에 먼저 영리병원을 도입한다. 둘째, '영리병원'이 주는 부정적인 어감을 없애기 위해 '투자개방형 병원'이라는 용어로 순화한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환자 유치'라는 명분을 들어 영리병원을 '외국인 병원'의 형태로 허용한다.


▲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참여연대‧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시민‧사회단체가 7일 국회에서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정부 "외국인용" → 슬쩍 내국인 끼워 넣어

현재 영리병원과 관련해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법안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 의료기관 등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 영리병원 관련 법안이 개정된 역사를 보면, 정부가 법안 처리를 위해 하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지가 잘 드러난다. (☞관련 기사 : "외국인 상대로 의료관광?…인건비 싼 후진국 산업일 뿐") 정부는 늘 영리병원은 "외국인용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안이 실제로 개정돼 온 과정은 이와 다르다.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이 설립해서 외국인 환자만 받을 수 있도록 했던 영리병원 관련 법안은 처음에는 국내 법인도 설립할 수 있게 바뀌더니, 급기야는 내국인 환자도 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인천 송도 영리병원의 경우, 외국법인과 국내법인의 지분 비율이 5:5에서 3:7로 역전됐다. 병원의 명칭 또한 외국인 '전용' 병원에서 외국인 병원으로 변했다.

제주도의 경우, 애초에 내국인이 100% 지분을 투자할 수 있게 돼 있다. 내국인을 환자로 받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외국인 병원이 사실상 '국내용'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의료관광이 목적이라면, 영리병원 관련 법안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며 "영리병원 도입의 목적은 외국인 유치가 아니라 영리병원 도입 그 자체에 있다"고 잘라 말한다. 현행법상 국내 비영리 병원도 외국인 환자를 직접 유치하거나 대행기관을 통해 소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지난해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의료법으로도 (외국인) 의료관광을 활성화할 수 있다"며 영리병원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낸 바 있다.

"외국인 등이 세계적 수준의 암센터를 설립한다는 가정을 해보자. 과연 투자자가 있겠는가. 수요가 없다. 대신 평범한 수준의 병원에 소득세 등록세 등 각종 세금 감면을 해주면서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면 기존 병원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영리병원 주식회사에 민간보험, 의료기기, 제약회사 달려들 것"

병원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이미 익숙하다. 병원과 '돈'을 떼어놓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그렇다면, 조금 더 노골적으로 '돈벌이'를 내세운 '영리병원'이 뭐가 문제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기존의 병원과 영리병원은 소유 구조상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현재 의료법상 개설된 모든 병원은 비영리병원이다. 비영리병원은 의료인과 비영리법인만이 만들 수 있지만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누구나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대기업이나 투기자본이 의료기관에 투자할 길이 열린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병원이 주식회사가 되면 수백조 원대의 부동자금이 이윤을 목표로 의료시장에 유입되는 통로가 합법화된다"고 경고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민간보험사, 의료기기회사, 제약회사도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게 된다"며 "자연히 진료 또한 민간보험사, 의료기업체, 제약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들이 그동안 병원에 제공해왔던 리베이트가 영리병원 지분투자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비영리병원에서 난 이윤은 다시 병원 투자에 쓰이도록 제한된다. 하지만 영리병원 주식회사는 주주들에게 수익금을 배당한다. 영리병원을 소유한 주주들은 배당금을 올려 받기 위해서 이윤을 높이는 쪽으로 병원을 운영하도록 압박할 확률이 높다.

영리병원에 투기자본이 들어올 경우, 외환위기 이후 이미 여러 번 경험한 '먹튀' 현상이 의료 부문에서도 생길 수 있다. 지난해 인천 경제자유구역청이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미국계 제약회사, 헬스케어 분야 사모펀드 등 3~4개 자본이 송도 국제영리병원 투자에 관심을 보였다.

"위헌 소송 걸리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끝"

영리병원 도입에 대해서는 정부 안에서도 조금씩 입장이 엇갈린다. 가장 적극적인 것은 기획재정부다. 동시에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곳이기도 하다. 우석균 실장은 "기획재정부는 한꺼번에 영리병원을 허용할 수는 없으니 의료 관광이라는 명목하에 일단 국제병원 형태로 허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먼저 경제자유구역에 한해 영리병원을 들여오지만, 일단 영리병원이 들어서기만 하면 그 수를 확장하기란 얼마든지 쉽다는 주장이다.

LG경제연구소 역시 '해외사례로 본 영리법인 병원 도입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경제특구에 진출한 외국 병원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들어 국내 병원들 또한 경제특구 이외에도 영리병원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언젠가는 영리병원의 허용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영리병원이 일반화되면 의료체제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경고한다.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는 "영리병원을 일반적으로 허용하면 (가격이나 진료범위를 규제하는 데 불만을 품은) 병원 측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위헌 소송을 충분히 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우려를 고려해 보건복지부는 "영리병원을 도입해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박 교수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유지할지 여부는 행정부가 아니라 입법부 소관"이라며 "일단 영리병원 제도를 열어주는 순간, 위헌 소송이 나오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끝난다"고 반박했다.

▲ 대형 비영리병원 사이에서도 의료 경쟁은 치열하다. 사진은 2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상 5층 규모의 암센터를 신축하고 최첨단 의료장비를 도입한 한 대형병원. 전문가들은 "영리병원이 일반화되면 과잉 경쟁으로 의료비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뉴시스
"국민 의료비 1조5000억~4조3000억 증가"

전체 의료비 또한 오를 수밖에 없다. 영리병원이 전국에 생기면 기존 병원 간의 경쟁이 치열해진다. 박 교수는 "경쟁에서 이기려면 좋은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경쟁력 있는 의사를 영입해야 한다"며 "이러한 이유로 병원 산업에서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가격이 오른다"고 지적했다.

"병원 경쟁구조상 수익성이 높은 환자만 받아서는 수지가 안 맞습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무조건 환자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건강보험 밖에서 가격 경쟁을 한다면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 사이에서) 시장 분리가 일어날 텐데, 한국 실정에서는 그렇지 않죠. 동일한 시장 안에서 파이를 빼앗아 와야 합니다.

결국 투자자를 많이 끌어들여서 좋은 시설과 장비, 유능한 의사를 갖추는 병원에만 환자가 몰릴 겁니다. 만약 다른 기존 의료기관이 똑같은 요건으로 영리병원과 경쟁하려면 외부 투자자의 돈을 끌어들여서 영리병원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기존 병원이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려는 유인책이 커지는 거죠."

환자들은 어떻게 '비싼' 영리병원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답은 민간보험에 있다. 영리병원이 발전하면 민간보험 시장도 커진다. 영리병원 맞춤형 보험이 나올 수도 있다. 민간보험이 있는 한 환자는 의료비 전액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박 교수는 "전체 병원비의 70%를 민간보험이 보상해준다면 사람들은 동네병원 대신에 대형병원에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최소 1조5000억 원에서 최대 4조3000억 원까지 국민의료비가 증가하리라고 내다봤다. 정부에서도 영리병원의 '의료비 상승효과'를 알고 있다는 얘기다.

4월 국회서 '제주도 특별법 개정안' 통과되나?

영리병원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제주도에서도 높았다. 2008년 7월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영리병원 도입을 두고 주민 찬반투표를 추진했지만, 영리병원 도입은 찬성 38.2%, 반대 39.9%로 무산됐다. 하지만 이듬해 7월에는 공청회나 여론 재확인 절차도 없이 영리병원 허용안이 제주도의회를 통과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어 영리병원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지난 1월 정부에 △제주에 영리병원 5년 독점 허용△ 피부·미용·성형·치과·건강검진 등에 제한적 허용 △제주 공공의료 확충 재정 지원 등의 조건부 수용안을 제시했다. 우 도지사가 내건 조건을 지난달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정부와 제주도의 갈등은 막을 내리는 듯 했다.

그러나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참여연대·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100여 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7일 보도 자료를 내고 "제주도에 5년 동안 영리병원 독점을 허용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5년 뒤에는 전국화하겠다는 의미"라며 반발했다. 이들 단체는 "제주도 국제병원은 진료과목을 성형, 피부 미용, 치과 등으로 제한한다고 하지만, 건강검진을 포함했다"며 "건강검진은 사실상 진료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러한 제한조차 나중에 얼마든지 모든 진료과목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삼성과 종편, 영리병원 도입 압박하지만…")

내국인 영리병원 허용 방안이 포함된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상정돼 행정안전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되고 있다.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눈은 4월 국회로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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