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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 사장' MB의 한풀이, 그리고 <조선>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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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 사장' MB의 한풀이, 그리고 <조선>의 변화

[기자의 눈] '5년짜리 권력'과 '직업 공무원'

국세청이 최근 삼성그룹 일부 계열사를 상대로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삼성그룹이건, 국세청이건 똑같이 이야기한다. 통상적인 세무조사일 뿐이라는 게다.

선물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재벌

그러나 뒤로 흘러나오는 말은 다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낙제점은 아니다"라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 핵심부가 격노했다는 게다. 특히 이 회장은 지난 정부뿐 아니라 현 정부에서도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법원의 유죄 판결에 대해 대통령이 사면까지 해줬다. 다른 경제사범은 빠뜨린 채 오로지 이 회장 한 명을 위한 사면이었다. 또 삼성그룹은 현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그런데 이 회장은 선물만 챙겼을 뿐,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다.

최근 세무조사를 이런 배신감의 발현으로 보는 이들이 종종 있다. 노골적인 '재벌사랑'을 드러냈던 현 정부가 임기 후반부에는 대기업에 대해 각을 세우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수출대기업에게 유리했던 '저금리 고환율' 정책이 방향을 틀 조짐도 있다.

MB의 배신?

물론, '뒷말'은 그저 '뒷말'일 뿐이다.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는 대기업에 대해 세무당국이 조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특히 지금처럼 정부 재정이 위태로운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또 정부가 정말 삼성그룹을 '손보려고' 한다면, 그룹의 몸통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겨냥했을 게다. 삼성의 탈세 및 비자금 조성 정황은 과거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것만으로도 상당히 드러났다. 이걸 제대로 파헤치기만 해도,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런 움직임이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선일보>가 흥미로운 칼럼을 실었다. 송희영 논설주간이 쓴 "세습 권력과 5년 권력의 싸움"이라는 칼럼이다. 이 칼럼은 "배신(背信)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재벌 계열사 '월급쟁이 사장' 출신으로 임기 초에는 낯 뜨거울 만치 재벌 총수들을 챙겼던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변화에 대해 '재벌 그룹 회장님'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했다.


"역시 월급쟁이 사장밖에 안돼!"라는 쑥덕거림

대통령 전용기 일등석에서 장관들을 몰아내고 재벌 총수들에게 그 자리를 권한 일, 인천공항에 기업인 전용 출입구를 특별개설한 일 등이 송 주간이 꼽은 대통령 임기 초의 사례들이다. 송 주간은 "(재벌 총수들이) 이런 극진한 '친기업'이 왠지 몸에 맞지 않는 큰 사이즈 양복처럼 어색하다고 농담까지 했었다"라고 적었다.

그래서 재벌 총수들이 이 대통령에 대해 얼마나 고마워했을까. 그건 불분명하다. 굳이 이건희 회장의 발언은 예로 들지 않아도 그렇다. 송 주간은 "'(이명박 대통령은) 역시 월급쟁이 사장밖에 안 돼!' 재벌 총수들은 이렇게 쑥덕거렸다"라고 썼다. 총수들이 실제로 저렇게 말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아마 맞는 말일 게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이 현직 대통령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했다. 다른 총수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게다. 자자손손 권력을 누리는 그들이 보기에 기껏 5년짜리 권력에 불과한 대통령은 하찮은 존재일 수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재벌 계열사 '월급쟁이 사장' 출신이다. '현대가(家)의 가신(家臣)'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 재벌 가문의 문화에서 '월급쟁이 사장', '가신 경영자'가 어떤 위치인지는 잘 알려져 있다. 재벌 총수들이 이 대통령을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조선> "독재자 몰아낸 재스민 혁명, 재벌 총수 향해 불어닥칠 수 있다"

송 주간의 칼럼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다음부터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본다.

"5년짜리 권력과 재벌 간의 싸움은 지금부터다. 한쪽은 유통기한이 채 2년 남지 않은 유한(有限)권력이고, 다른 쪽은 대(代)를 이어 세습하는 무한(無限)권력이다. 어느 정권도 재벌 길들이기에 성공한 적은 없다. 힘의 한계를 아는 정치권력은 그래서 정권 말기가 되면 한두 군데를 선택해 손을 보곤 한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감옥살이를 했다. 김대중 정권 때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몰리던 끝에 해외로 도피해 5년8개월 동안 떠돌이로 살았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통령 임기 종료를 사흘 앞둔 날 구속됐다. 이번 정권에서는 어느 그룹이 '본때 케이스'로 지목될지 지켜볼 일이다.

(…)일본에서 수명(壽命) 500년이 넘은 회사는 39개고 200년 넘은 곳도 1191개다. 대부분의 장수기업은 특정 지역에서만 영업하는 도·산매 회사나 몇 가지 제품에 집중하는 중소제조업체들이다. 한국 재벌처럼 시장을 싹쓸이하거나 정치권·법조계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대형 기업은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고 이 칼럼은 "독재자를 몰아낸 재스민 혁명의 열풍은 언제든 재벌 총수를 향해서도 불어닥칠 수 있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공무원에게 맺힌 한(恨), 재벌가에 맺힌 한

<조선일보>는 한국 사회 주류의 정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조선일보>가 재벌의 지나친 지배력을 염려하고 나선 것은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이 신문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등 여러 국면에서 노골적으로 삼성 편을 들었다. 그런데 이런 신문조차 논조를 바꿨다. 사회 주류 집단 안에서도 재벌의 지나친 영향력에 대해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나온다는 뜻이다. 송 주간의 전망대로, 5년짜리 권력과 재벌 간의 싸움이 시작된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과연 '5년짜리 권력'은 임기 말을 앞두고 재벌에게 칼을 들이댈 수 있을까. 가능성은 있다. 이 대통령이 임기 초 노골적인 '공무원 때리기'를 했던 것을 누구나 기억한다. 그리고 여기엔 '한풀이' 성격도 조금 있었다. 과거 건설업체에서 일했던 이라면, 누구나 공무원의 횡포를 기억한다. 건설업자는 '을'이고, 공무원은 '갑'이다. 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건설업체 사장이 보기엔, 별 실력도 없으면서 쥐꼬리만한 권력을 내세워 기업가들 위에 군림하는 공무원이 '공공의 적'처럼 여겨질 수 있다. '기업에서 겪은 한(恨)을 대통령이 된 뒤에 푼다'는 말이 나왔던 배경이다. (☞관련 기사: "'MB 한풀이'에 경제는 멍든다")

그런데 '월급쟁이 사장'들이 느끼는 '한(恨)'은 또 있다. 지독한 노력을 통해 사장이 된 그들과 달리, 창업주의 자식들은 별 노력 없이도 '월급쟁이 사장' 위에 군림한다. 위험을 무릅쓰는 도전 정신으로 성공한 창업주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가질 수 있지만, 창업주의 자식들에게까지 이런 감정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이들 자식들이 별 실력도 없이 의사결정에 개입해서 기업 경영에 오히려 부담을 주는 경우를 봤다면, '월급쟁이 사장'의 가슴에는 한이 쌓인다. 이 대통령처럼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 함께해서, 회사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경우라면 더욱 그걸 게다.

'한풀이'는 결국 실패…"'5년짜리' 아닌 '직업 공무원'이 제 구실 해야"

"'월급쟁이 사장'일 뿐"이라며 무시당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말에 이런 한을 풀려고 할까. 또 그렇게 한다면, 한을 풀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사실이 있다. '한풀이'식 공무원 때리기는 성공하지 못했다. 관료에 대한 지독한 불신을 드러냈던 이 대통령도 임기 초 잠깐을 제외하면 결국 '모피아(옛 재무부 관료 출신)' 집단에게 노골적으로 의지해 왔다. '한풀이'식 재벌 때리기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다. 송 주간의 칼럼에 나온 것처럼, 역대 정부는 늘 한번쯤은 재벌을 때렸고, 결국 실패했다. '5년짜리 권력'의 명백한 한계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나. 그건 아니다. 역시 누구나 아는 방법이 있다. '5년짜리'가 아닌 '직업 공무원'들이 제 구실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삼성 비리를 공개했던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 직후 인터뷰에서 "검찰만 제 구실을 하면 된다"고 했다. (☞관련 기사: "검찰만 제 구실을 하면, 큰 문제는 없다")

맞는 말이다. '5년짜리'는 실패해도, 그 일에 '평생'을 거는 직업인은 성공할 수 있다.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과 노동부, 환경부, 금융위원회가 '5년짜리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 구실을 하면 된다. 예컨대 공정위가 이름 그대로 시장에서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게끔 노력하면, 굳이 '5년짜리 권력'이 어설프게 재벌을 때리지 않아도, 재벌의 부당한 영향력은 줄어들게 돼 있다.

- 김용철 변호사 관련 주요 기사 모음

'인터뷰 및 대담'

"검찰이 머뭇거리는 동안, 삼성은 증거를 폐기한다"
"'보수 대반격'에 삼성 비리 묻힐까 두렵다"
"'탁 치니까 억 하고 죽더라'는 말, 누가 믿었나?"
"PD수첩 수사하듯 삼성 수사했다면…"
"검찰만 제 구실을 하면, 큰 문제는 없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무섭지 않다. 진짜 두려운 건…"

'삼성 직원들에게 김용철 책 권하는 이유'

"삼성은 왜 '아이폰'을 만들지 못할까?"
삼성전자 부사장 자살이 남긴 숙제
"삼성 식 '공포 경영', 언제까지 통할까"

이기는 게 정의'?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삼성을 생각한다>가 나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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