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권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따라서 전세난은 기초적인 복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당장 몸을 누일 곳이 없다면 가족을 구성하는 것부터 어려워진다. 현 전세난이 단순히 세입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라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에서 전세문제는 시장주의적 접근으로 해결하자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부동산정보업체의 관계자들이 전세문제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이들이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천편일률적이다. 주택거래가 활성화되면 전세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주택거래 활성화는 주택가격 상승을 낳고, 주택가격 상승은 자연스럽게 전세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
<프레시안>은 전세문제를 대안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조명래 단국대 교수를 만났다. 조 교수는 영국 서섹스대학교에서 도시 및 지역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을 지낸 도시계획 전문가다. 주택을 상품의 개념으로만 보지 않고, 도시공간 차원에서, 정책과 계획의 영역에서 본다.
조 교수는 최근 전세난의 근본 원인은 전세제도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 산정에 아무런 근거가 없이 임대인(집 주인)의 시혜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 임대제도 자체가 이번 전세난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입자의 권리를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세 관련 법률을 정비해야 하고, 한발 더 나아가 대안적인 임대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정부와 세입자가 주택지분을 나눠갖는 제도, 공공임대주택을 적극 늘리는 제도 등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했다.
조 교수는 무엇보다 한국의 지나친 대도시 집중현상을 해결해야 전세난을 비롯해, 각종 도시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힘줘 말했다. 지역도시를 살찌우고, 이에 따라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와 더불어 조 교수는 도시공간 내에서는 풀뿌리 자치를 보다 활성화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조 교수의 자택이 있는 서울 광진구 뚝섬유원지 인근 커피숍에서 가진 인터뷰를 정리했다. <편집자>
▲조명래 단국대 교수 ⓒ프레시안(김봉규) |
전세난, 진정될까…
프레시안 : 전세대란이 지속되고 있다. 아파트 매매가격은 큰 변동이 없지만 전세가격 상승세는 여전하다. 하반기에는 재개발로 인해 전세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세난을 과연 잡을 수 있을까?
조명래 : 전세대란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본다. 현재 전세가가 상승하고 있고, 전셋집이 부족한 상황도 이어진다. 그렇다면 두 현상을 직접 치유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
우선, 가격의 문제는 현행 제도로 잡지 못한다. 전세가 상한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공급 문제는 전세용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해소된다. 정부가 매매를 활성화 시키면 자연스럽게 전세난도 해소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그런 방법이 안 통한다.
그렇다면 두 가지를 아우르는 통합적 전세대책은 무엇일까. 근본적으로는 전월세 시장을 빨리 법제화시켜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량이 110%에 달하는데도 주택소유율은 60%에 불과하다. 지난 20년간 주택보급률이 25%포인트 늘어났는데도 소유율은 제자리였다.
종전의 주택 대책으로 집 없는 이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하지 못한 이유는, 관련법이 임대차 관계를 제대로 규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시장의 규칙이 일방적으로 임대인, 건설업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의 시혜에 의존해서 세입자의 삶이 좌우되는 게 현실이다. '전월세 임대차 관계의 선진화'라고 부르고 싶은데, 이런 선진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세대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전월세 시장, 법 테두리에서 가격 규제해야
프레시안 : 임대차 관계의 선진화가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가? 어떤 방향으로 법제화를 하자는 건가?
조명래 :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다양한 임대차보호제도를 만드는 게 선진화다. 주택보유자는 늘 강자인 반면 세입자는 약자니까.
임대 가격을 보자. 임차인들은 전·월세 가격 협상 능력이 없다. 그렇다고 적정임대율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주인이 주먹구구식으로 올리는 게 전부다. 한마디로 임대인의 기대자본수익으로 가격이 형성된다. 당연히 임차인은 임대인의 기대수익률에 걸맞은 경제적 역량까지 가져야 한다. 그런데 전세값이 오르니 기대수익 수준도 높아진다. 점점 전세를 구하기 힘들어지는 근본 원인이 여기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가격상승폭을 정부가 적정선에서 통제해야 한다. 임대인이 임의적으로 전세가격을 못 올리도록 해야 한다. 이는 민법상 갑인 임대인에 대한 임차인(을)의 협상력을 강화시켜준다. 굉장히 중요하다.
전세금 절대액이 너무 크다는 것도 문제다. 오를 때마다 한번에 수천만 원, 수억 원이 오른다. 서구선진국보다 한국의 임차인이 겪는 고통이 훨씬 크다. 당장 최근 전세난으로 임차인들은 주거권 자체가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에 몰렸다. 오히려 우리는 유럽에서 시행된 임차인 보호 제도보다 더 강력한 장치를 마련해야할 지도 모른다.
프레시안 : 가격 통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 ⓒ프레시안(김봉규) |
또 하나 중요한 게, 계약의 기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유럽 국가들의 경우 계약의 장기존속을 계약 시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약자는 끊임없이 재계약 불안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국은 계약기간이 끝나더라도 임차인을 함부로 못 쫓아내도록 강제하고 있다. 최근 야당에서 시민단체와 학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런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게 계약갱신청구권 제도다.
뜬금없는 소리가 아니다. 이미 우리 임대차보호법도 상가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인정하고, 임대료 인상률을 규제하고 있다. 주택부문은 엄청나게 많은 계약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정부가 방치한 것뿐이다. 한나라당에서 이 안에 대해 '전세 공급이 줄어들거나, 이중계약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과도기적 문제를 갖고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시켜주는 유일한 수단을 수용하지 않으려 하면 곤란하다.
전셋값 절반은 세입자 돈…세입자 지분은 왜 인정 안하나
프레시안 : 현 전세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세는 세입자가 목돈을 만드는 좋은 제도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불안정한 시기에는 부담도 지나치게 커진다.
조명래 : 물론 지금까지 전세제도가 주택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줬지만, 장기적으로는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정상적인 임대관계 형성을 막는,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이는 제도다.
대신 새로운 전세모델을 만드는 방법은 고려해볼 만 하다. 당장 고려할 수 있는 건 공공전세주택을 더 활성화시키는 방법이다.
헐값에 이런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 당장 이명박 대통령이 전세주택 2만 호 공급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토지 등 요인의 공급가를 적절히 낮출수만 있다면 반값아파트 공약도 얼마든지 실행 가능하다. 안 할 뿐이다. 가령 서울의 장기전세주택 '시프트'를 보자. 내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니, 85㎡(25.7평) 이하는 세입자의 전세보증금만 갖고도 얼마든지 공급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한다.
좀 뜬금없는 주장으로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의 전세제도는 지분형 주택 제도로 바꿔야 한다고 본다. 대체로 전세주택의 시세가 매맷가의 절반 이상 수준에서 형성된다. 결국 집값의 절반은 임차인이 부담한다는 얘기다.
이를 지분으로 따져 보자. 도대체 이 집은 누구의 것인가. 재정적 기여도에서 보면 세입자도 임대인과 대등한 권리를 가져 마땅하다.
이른바 싱가포르식 공공자가주택은 당장 도입이 가능한 모델이다. 공급하는 집주인의 역할을 정부가 맡으면 된다. 정부와 세입자가 주택 지분을 절반씩 나눠가진다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사회주택 문제는, 궁극적으로 공공임대가 아닌 공공자가로 풀어야 한다. 원리적 측면에서 전세문제를 바라보면 이런 방법도 도입 가능하다.
결국 주택 공공화가 해답
프레시안: 실제 공공임대주택을 늘려 전세대란을 잡자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 역할을 해야 할 LH가 부실덩어리다. 당연히 공공임대주택을 지을 땅을 매입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과연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그리 쉽게 이뤄질지 의문이다.
조명래 :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통합해 LH를 만든 것부터 잘못됐다. 토공에 대해서 먼저 보면, 이제 정부가 대규모 국토개발을 할 시대는 지났다. 한다손 치더라도 정부는 정책만 가져가고 집행은 민간에 맡기면 된다. 그렇다면 토공은 할 일이 없다.
다만 주공이 할 일은 있다. 주택은 고가의 상품이기 때문에, 시장의 모든 사람이 주택을 구입할 순 없다. 그렇다면 결국 주택시장에서 탈락한 사람의 주거문제는 정부가 복지정책의 일환에서 책임져야 한다.
주택약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공급할 주택을 보유해야 한다. 주공의 역할이 이것이다. 토지 비축분을 늘려서 공급가격을 떨어뜨려야 한다. 지금의 LH가 20~30년의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주거복지를 실행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프레시안 : LH를 건실화시켜서 토지를 매입하게끔 하더라도 의구심은 남는다. 그 토지로 분양사업을 한 게 그동안 LH가 비판받은 이유였다. LH의 사업역할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조명래 : 결국 LH는 일종의 '도시재생공사' 정도로 변화시키는 게 필요하다. 대규모 재개발은 무조건 공공이 전담하도록 해, 공익을 사익보다 우선적으로 늘리도록 해야 한다. 이 때 이 역할을 지금의 LH가 맡으면 된다. 대규모 재개발에는 결국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고, 오직 그 사업에만 LH가 전념하도록 한정짓는 셈이다.
다만 도심 재개발에 공공이 항상 앞서는 것은 옳지 않다. 이제 공공은 기본적으로 장기적인 도시계획만 세우고, 이 지침을 내리고, 기본인프라를 책임지면 된다. 재개발 실질 과정에 있어서는 개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 이게 지속가능한 재개발의 기본 조건이다.
▲ ⓒ프레시안(김봉규) |
집값 대신 '삶의 질' 높이는 재개발 필요
프레시안 : '지속가능하다'는 말은 무슨 방식의 재개발을 뜻하는 건가? 나아가, 개인이 주체가 되는 재개발 방식이 대두된다면 오히려 난개발을 불러오게 되지 않을까?
조명래 : 뉴타운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싹쓸이 재개발·재건축은 지속가능성이 없다. 기존 도시와 단절을 이룬다. 무엇보다 지역민의 삶이 전면적으로 해체된다. '이음'이 있어야 지속 가능하다.
재건축·재개발은 지역민이 '어포더블(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삶의 질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어디까지나 재개발이 지역민을 도와주는 수단이 돼야 하지, 목적이 되면 안 된다.
따라서 재개발 계획 주체들은 개발이익이 아니라 '삶의 질'을 고려해야 한다. 도시에서 개인의 이익 극대화는 공리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금 과천주민들은 용적률 250%의 재개발을 요구한다. 강 건너 삼성동 아이파크처럼 되고 싶다는 이유다.
그렇다면, 과연 그 주민들의 요구를 따른다면 그들에게 이익이 제대로 돌아갈까. 만약 실제로 250%의 용적률을 적용해 도심 재개발에 들어간다면, 현재 7만 명인 인구가 14만 명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경기도도시위원회에서는 과천에 그렇게 인구가 고밀도로 집적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공익을 보는 사람은 현재 수준이 최대치라고 보는데 사익 추구자들은 두 배로 늘리는 게 필요하다고 하는, 이익의 충돌이 일어난다.
이 때 도시계획을 제대로 한다면 현 수준을 유지하는 게 맞다. 개인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얘기는, 자신이 살 집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주택 재개발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오너십이 모여 현 인구가 그대로 존속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재개발이 나아가야 한다. 싹쓸이 해서 전세난민을 낳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 단지별로, 집별로 천천히 재개발을 이뤄가야 한다.
결국 공공이 큰 틀을 잡고, 주거민은 그 틀 안에서 자신의 주거환경을 스스로 결정하게끔 하는 일대일 재건축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한 재개발 방향이다. 공공은 이 재개발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해주는 재건축 제도 전용 재정조달 프로그램 등을 마련하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이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기존 집을 개량하는데도 서구의 주택금융처럼 자금지원을 받아 필요한 수준의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멀쩡한 집을 뜯어내고 전면적인 재개발을 시도하는 과잉개발을 막을 수 있다.
공익을 고민하게 되면 재개발에 보수적 접근을 하게 된다. 사익을 추구하면 멀쩡한 집도 부수는 과잉개발이 만연한다. 경기도 21개 뉴타운 중 당초 기준인 '주택노화도 3분의 2 이상'을 충족시키는 지역이 단 두 곳 뿐이다. 이마저도 보수적으로 평가를 했다면 노후화는 3분의 2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입자들은 쫓겨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은평구의 두꺼비 하우징은 지켜볼 만하다. 환경정의, 녹색연합, 나눔과 미래 등에서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 사업은 현지 개량방식으로 재개발 방향을 틀었다. 기존 주택을 지속가능한 집(durable housing)으로 바꾸는 것이다.
탈 아파트화, 탈 도시화 가능할까
프레시안 : 그간 부동산 투기를 이끈 주요인이 아파트다. 대규모 인구가 밀집된 한국의 도심에서 아파트를 대체할 주거수단이 마땅치 않지만, 아파트는 반환경적이고 도시경관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도 있다. 아파트 중심주의를 벗어날 수 있을까.
조명래 : 아파트는 개발독재 시절 도시로의 인구 집중이 심화되면서 등장했다. 그리고 어느새 아파트가 표준적 주택 유형이 됐고, 자연스럽게 상품성이 높아졌다. 주거문화 자체가 아파트에 맞춰져간 셈이다.
이 문제는 도시정책 영역에서 풀어야 할 숙제다. 뿌리로 되파들어간다면, 결국 서울로 대표되는 대도시 인구집중 현상을 완화시키는 수밖에 없다. 지역에서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당장 선진국들만 봐도 그렇지 않나.
우리나라의 농촌 빈곤화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왜 주택전문가들, 도시전문가들이 대도시 이야기만 하고 농촌 이야기를 하지 않나. 지금도 농촌의 주택들은 60년대, 70년대와 다를 바가 없다. 엉성한 옛날 집들, 빈곤한 집들을 티브이 화면으로 비춰주면서 '고향'이라고 하는, 가공된 향수를 심어주는 건 정말 문제다. 농촌의 주택문제는 도시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만 한다.
도시 밖에서 대안적인 삶의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올바른 도시정책이다.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를 계속 치유해나간들, 또 다른 도시 문제만 야기할 뿐이다. 교통문제를 해결하려고 길을 넓히면, 결국 차가 더 늘어난다.
우리의 도시 집중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살펴보자.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도시화율(도시인구수/전체인구수)이 90.8%다. 앞으로는 92%까지 갈 것으로 관측된다. 세계적으로도 아주 독특한 현상이다.
▲10년 넘게 끌어온 개포택지지구의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안이 통과됐다. 직후 호가는 순식간에 수천만 원이 뛰었다. 재건축을 움직이는 힘은 개발이익임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뉴시스 |
'우리 동네'를 되살려야 하는 이유
프레시안 : 해외에도 이른바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 현상은 일반적인 것 아닌가? 도시화 현상은 식량의 세계적 분업화까지 일어나는 지금은 자연스러운 현상같은데?
조명래 : 유럽의 경우 도시화율은 에스(s)자 모양을 보였다. 최저가 25%, 최고는 75% 수준이다. 즉, 대체로 80년대에 이르면 도시화가 70~80%선까지 오르고, 이후에는 탈도시화가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수치가 계속 오르고 있다. 이러다보니 도시 내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야기되고, 결국 내부적으로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뉴욕을 보라. 도시화가 극단적으로 가니 사람들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시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뉴욕은 도시 외부, 나아가 해외에서 온 사람들이 거주하는 말 그대로 국제도시로 변모했다. 서울이 자연스럽게 탈도시화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정책적으로 적극 추진해야 할 단계다.
도시계획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도시공간의 정치조직화다. 쉽게 말해 분화된 도시 공간을 동네단위로 재조직해, 지금보다 훨씬 주체적인 일상관계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자는 이야기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화두가 선거공약으로 나온 적이 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한명숙 후보가 들고나온 '10분 동네' 사업이 그것이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도시생활에 필요한 필수시설을 모두 갖추자는 게다.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을 생각하면 된다. 아이를 키우고, 문화생활을 하는 등 모든 생활이 동네에서 충족된다. 단순히 물리시설을 갖추자는 게 아니다. 이런 배치를 통해 사람의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만들어가게 된다. 동네자치, 근린자치가 생겨나고, 부속적으로는 교통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가령, 지금 도시 사람들에게 '우리 동네'란 그저 내가 잠시 잠을 자는 집이 있는 공간일 뿐이다. 그러나 근린자치의 활성화는 '동네' 개념을 회복시킨다. 우리 동네의 통학 문제, 가로수를 심는 문제, 가로등을 다는 문제에 내가 주체가 돼 참여하게 된다. 서울이 주인 없는 인구 1000만 명이 사는 도시가 아니라, 인구 5000~2만 명이 사는 수백개의 동네가 이뤄진 공간으로 변화한다. 이게 지방자치제도의 핵심 정신이다. 유럽이나 일본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풀뿌리 민주주의가 이런 토양에서 성장한다.
프레시안 : 동네의 부활, 공공을 위하는 도시건설을 이루기 위해서는 재개발, 주택분양에 의존하는 토건세력을 넘어야 한다. 금융위기 과정에서 겪었던 이른바 '삽질 경제'의 근원에도 건설업자 등 토건세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까?
조명래 : 부동산 투기는 우리만 겪었던 문제가 아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세계 어느 나라나 겪은 문제다.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구가 특정 지역에 밀집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유럽의 경우 대체로 19세기를 전후해 이 문제를 극복했다. 사회적 악이 생겨나니 자연히 이를 극복하려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다만 분명히 긴 시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시행된 토지비축제도를 보자. 스톡홀름은 지자체가 중심이 된 풀뿌리 민주주의가 성장했고, 자연스럽게 정치권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의 지지를 얻으려는 제도를 만들었다. 가장 먼저 이뤄진 게 노동자들에게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자는 정책이었고,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지자체가 토지매입부터 해나갔다. 그리고 공공이 보유한 이 토지를 이용해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했다.
이후 재정이 바닥 나자, 이를 확보하기 위해 지자체가 중앙정부와 싸웠다. 이런 긴 시간을 통해 30~40년 동안 공공토지 비축과 저렴한 주택 공급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토건세력이 사익을 과도하게 추구할 공간은 줄어들었다. 주택을 복지개념으로 접근하게 되니 문제가 해결됐다.
영국의 대표적인 공공주택정책인 카운슬 하우징(council housing)도 마찬가지다. 영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복지정책 중 하나다. 공공이 주택을 대량 매입한 후, 저렴한 임대료로 수요자에게 공급하는 정책이다. 만약 정부가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다면 주택수당을 준다. 그러면 수요자는 이 돈을 갖고 민간주택에 거주하면 된다. 주택이 복지가 되니 더 이상 토건족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졌다.
우리에게도 긍정적 징조는 나타나고 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최근 들어 토건사업, 주택투기를 통해 부를 창출하는 기세가 굉장히 약화되고 있다. 전세난이 극심한 지금이 오히려 주택복지를 강화할 가장 적합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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