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재앙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밤 '방사능 오염수' 1만1500톤(Ton)을 바다에 '무단투기'했다. 이보다 앞서 후쿠시마 원전에서 유출된 고방사성 오염수로 인해 일본 해역은 이미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다.
그리고 한국은 이런 오염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다. 정부는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어 "오는 7일께 봄철 기류 변화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직접 우리나라로 유입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제 원전 사고는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쟁점이 됐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선 아직까지도 원전은 소수 전문가의 영역이다. 다수 국민은 언론에 소개된 몇몇 전문가의 입만 바라볼 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엔 정책적 쟁점을 제대로 풀어서 설명해줘야 할 사회과학자의 책임도 있다. 물론, 언론 역시 이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프레시안>이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를 만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윤 교수는 원자력의 위험을 꾸준히 경고하는 한편, 기존 에너지 체계에 대한 대안을 오랫동안 모색해 왔던, 몇 안 되는 사회과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이런 접근이 돋보이는 이유는, 환경 및 에너지 문제의 특징 때문이다. 이들 분야는 자연과학, 공학 영역인 동시에 인문학, 사회과학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길들이고 통제할지, 한정된 에너지 자원을 어떻게 써야할지, 오염 물질 처리에 대한 책임을 현 세대와 미래세대가 어떻게 나눠야할지 등을 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뒤, 4년간 고등학교 교사로 지냈다. 1990년대 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환경과 사회의 관계에 눈을 떴다.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굴업도 핵 폐기장 사태 등 환경 관련 쟁점이 잇따라 터지던 때다. 동료 교사들과 이런 문제를 공부하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환경 및 에너지 정책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이후, 그는 풀뿌리 시민단체 '에너지전환'(Centre for Energy Alternative)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에너지전환'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이 가져온 위기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해결하는, 생태적 전환을 도모하는 단체다. 이런 그가 최근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며, 더욱 분주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윤 교수는 <프레시안>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국토면적당 원전 시설용량이 세계 10대 원전 대국 가운데 1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1등'에 열광하는 나라지만, 이 경우는 좀 다르게 봐야 한다. 좁은 국토에 원전이 밀집해 있다는 것은, 사고 피해도 그만큼 더 치명적이라는 뜻이다. 설령 원전 자체가 안전해도, 부대 시설에 문제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큰 피해가 생길 수 있다. 윤 교수가 일본 후쿠시마 사태의 교훈 가운데 하나로 꼽은 내용이다. 비상전원 시스템에 생긴 문제만으로 일본은 물론 주변 국가에까지 재앙이 생겼다는 게다. 더구나 분단국가인 한국은 안보가 불안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런 위험은 더 커진다.
그는 한국의 전기요금 체계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했다. 산업용 전기가 너무 싸고, 특히 기업이 전기를 많이 쓰면 오히려 요금을 깎아주게끔 돼 있어서, 기업이 에너지를 아껴야 할 동기가 안 생긴다는 게다. 에너지 비용이 오르는 세계적 추세를 고려하면,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기술 개발이 필수적인데, 이런 기술에 투자할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론 국가 경제에도 해롭다. 그는 또 원자력 발전을 옹호하는 논리가 결국 대기업에게 전기를 싸게 공급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말도 곁들였다. 하지만 원전의 수혜자인 대기업은 원전 사고 위험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게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전기 요금을 다르게 매겨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한마디로, 서울시민은 다른 지역보다 전기 요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게다. 발전소가 있는 지역은 생태 환경에 부담을 안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부담을 짊어지지 않고, 전기를 소비하기만 하는 지역이 똑같은 전기요금을 내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다. 전력을 나르는(송전) 과정이 길어지면, 전력 손실이 커진다는 점도 한 이유다.
발전소로부터 거리가 멀수록 요금이 올라가는 방식의 효과는 또 있다. 이 경우, 자기 지역에서 쓰는 전기는 자기 지역에서 생산하자는 여론이 생길 수 있다. 일종의 지산지소(地産地消) 개념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발전소가 생태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진다. 친환경 에너지 연구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지난달 하순, 서울대 연구실에서 윤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편집자>
"한 세대 안에 세 번 터진 원전 사고, 안전성 믿을 근거 없다"
프레시안: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원전 안전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원전을 '필요악'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위험하지만 버릴 수 없다는 게다.
윤순진: 원전 산업 관계자들은 흔히 사고 확률이 100만분의 1도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계산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불과 한 세대 안에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이렇게 세 곳에서 사고가 터졌다. 그런데 사고 확률이 낮다니, 계산 근거를 믿을 수 없다.
원전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 이들은 경제성을 근거로 내세운다. 석유가 나지 않는 한국에서 그나마 경제적인 에너지라는 게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미국에선 원전을 반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가 바로 경제성이다.
물론, 나라마다 땅값도 다르고 원료를 확보하는데 드는 비용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런 차이를 고려해도 기본적인 비용은 비슷할 게다. 그런데 미국에선 비싸서 못 쓰겠다는 게 한국에선 값이 싸서 써야 한다? 설득력이 없는 논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조건 값이 싸니까 써야 한다고 할 게 아니라 비용 관련 정보를 제대로 공개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일방적인 홍보를 한다면, 누가 믿겠나.
▲ 윤순진 교수. ⓒ프레시안(김봉규) |
"고준위 폐기물, 1만 년 이상 보관하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길지는…"
프레시안: 원전 경제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폐기물 문제다. 막대한 폐기물 처분 비용을 계산에 넣어야 경제성 계산이 제대로 된다는 이야기다.
윤순진: 어떤 경제활동이건 폐기물이 생긴다. 따라서 이걸 빠뜨린 경제적 계산은 의미가 없다. 특히 원전은 폐기물 처리 문제가 아주 골치 아프다. 원전 발전은 핵연료를 채굴해서 가공하고, 발전소를 세워서 가동하는 단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 다음 단계, 즉 폐기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계 어느 나라도 수백 년 동안 중저준위 폐기물을 관리해본 경험이 없다. 핀란드가 지금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을 짓고 있는데, 그 정도가 전부다.
(편집자주: 원전 안에서 사용된 작업복, 장갑, 부품 등은 방사능 함유량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라고 불린다. 원자력 발전 후 남은 연료인 '사용 후 핵연료', 그리고 이걸 재처리했을 때 남은 부산물 등은 '고준위 폐기물'로 분류된다.)
원전 폐기물 처리 비용은 계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폐기물 처리 비용을 계산하지 못하는데, 원전이 경제성이 있다고 하는 건 터무니없다.
또 짚어볼 게 있다. 원전 관련 연구개발(R&D) 사업들의 재원 문제다. 원전이 1킬로와트(kW)의 전기를 생산해서 판매한 값에서 0.25원이 연구개발비로 빠져나간다. 또 하나의 재원은 전력산업기반기금이다. 소비자들은 전력요금을 낼 때 자기가 내야 할 요금의 3.71%를 더 낸다. 그걸로 기금을 조성해서 다양한 사업을 하는데, 여기에 원전 관련 연구개발 비용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당연히 국민의 동의도 받지 않았다. 예컨대 나는 내 돈이 원전 사업에 쓰이는 게 싫다. 하지만 이런 의견을 낼 통로는 없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돈이 쓰이는 방식도 문제다. 대부분은 원자력 발전 기술 개발에 쓰인다. 폐기물 처분 관련 기술 개발에 쓰이는 돈은 전체의 3%대에 불과하다. 폐기물 처분 관련 연구에 이토록 소홀한 것을 보면, 한국 정부는 결국 폐기물을 재처리하는 쪽으로 몰고 가려는 게 아닌가 싶다. 사용핵연료 임시 저장수조는 2016년쯤에 포화되는데, 만약 정부가 재처리를 염두에 둔 게 아니라면, 폐기물 처분을 어떻게 할지를 빨리 결정해야 한다.
폐기물 재처리 역시 우리 마음대로 못 한다.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원전 폐기물 문제는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살펴야 한다. 폐기물 처분 비용이 천문학적이라는 점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게다. 원전 폐기물, 그 자체가 거대한 문제다.
고준위 폐기물은 최소한 1만 년을 보관해야 한다. 독일에선 10만년이 필요하다고 계산한다. 그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진도 여러 번 일어날 게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당장 눈앞의 위험이 아니면 그냥 눈을 감는다. 이건 다음 세대에게 무책임한 태도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원전 폐기물 문제를 걱정할 수 밖에 없다.
▲ 윤순진 교수. ⓒ프레시안(김봉규) |
"지경부, 10억 원 쓴 연구결과 왜 발표 안 하나"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의 경우, 보통 재처리해서 쓰는데 이 과정 역시 위험하다. 일본은 재처리 과정에서 두 명이 죽는 일이 있었다. 이런 문제는 해당 기술자나 기업만 피해를 입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인근 지역 주민은 물론, 국민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당연히 국민이 관련 정보를 알 권리가 있고, 또 정책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지난해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방안 공론화에 관한 연구프로젝트 비용으로 10억 원을 썼다. 그런데 그 결과를 발표 안 한다. 국민 세금으로 생산한 연구 결과를 왜 공개하지 않는가.
"'녹색성장' 외친 MB정부, 생태효율성은 더 떨어졌다"
프레시안: "원자력 발전은 환경 친화적"이라는 게 현 정부의 입장이다. 화력 발전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다는 게다. '녹색성장'이라는 구호와 원전 건설 방침이 현 정부에서 양립할 수 있는 이유다.
윤순진: 원자력 발전 과정만 떼어놓고 보면, 이산화탄소가 화력 발전에 비해 적게 배출된다. 그러나 핵연료를 운반해서 가공하는 과정, 또 폐기물 처리 및 처분 과정까지 고려하면, 계산이 달라진다. 이처럼 전체 과정을 모두 고려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현 정부가 진정으로 녹색성장을 원한다면, 빠뜨릴 수 없는 개념이 생태효율성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에너지투입량, GDP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생태효율성이 높아진다. 같은 GDP를 만드는데 투입되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래 3년 동안, 생태효율성 지표가 더 악화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를 보면, 1990년대에는 GDP 증가율보다 에너지소비증가율이 더 높았다. 이 지표가 1997년 이후 변했다. GDP와 에너지소비가 계속 늘어났지만, 에너지소비증가율은 GDP 증가율보다 낮았다. 외환위기를 거친 뒤, 생태효율성이 개선됐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추세가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부터 다시 역전됐다. 지난 3년 간의 수치를 보면 GDP 대비 에너지투입량이 더 늘어났다. 생태효율성을 과거 정권보다 더 떨어뜨린 정부가 녹색성장을 말하다니, 답답한 일이다.
"에너지 낭비 유도하는 요금 체계…산업용 전기, 너무 싸다"
▲ 윤순진 교수. ⓒ프레시안(김봉규) |
윤순진: 우리의 전력 소비 행태는 정상이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매년 발표하는 에너지 통계가 있는데, 이 자료를 분석해보면 한국은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등 주요 선진국보다 1인당 전력소비량이 훨씬 높다.
선진국 중에서 우리보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호주 정도다. 하지만 이들 나라가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국토 면적이 넓어서 상대적으로 에너지 수요가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인구 분포가 조밀한 나라 중에선 한국이 1인당 전력소비량이 가장 높다.
그런데 가정 부문만 놓고 보면 순위가 달라진다. 가정은 주요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전기를 덜 쓰는 편이다. 결국 산업 부문이 전력을 너무 낭비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된 데는 전기요금이 낮은 탓도 있다. 특히 과거 경제개발 과정에서 산업용 전기를 싸게 공급해 왔다. 물론, 선진국도 산업용 전기요금은 싼 편이지다. 그러나 한국은 너무 싸다. 기업 입장에선 에너지 절약을 위해 자본을 투자해야 할 동기가 사라진다. 그냥 전기를 펑펑 쓰는 만드는 구조다.
이런 구조는 억지로 바꿀 수 없다. 기업은 이익이 되는 쪽으로 진화한다. 전기를 아껴야만 이익이 나도록 시장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방법은 가격이다.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환경에 끼친 부담이 전기요금에 반영되게끔 하면 된다.
또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에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가정에는 전기요금을 누진적으로 매기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전기를 많이 쓸수록 비용이 가파르게 올라간다면, 기업 스스로 대안을 찾을 게다. 공장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할 수도 있고, 열병합 발전을 할 수도 있을 게다. 가격 정책만 바꿔도 기업들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연구개발 능력을 집중할 게다. 또 재생가능 에너지 이용도 활발해질 게다.
▲ 윤순진 교수. ⓒ프레시안(김봉규) |
"서울 사람이 왜 부산 사람과 같은 전기요금 내나?"
그리고 나는 왜 서울 사람들이 부산 사람과 똑같은 전기요금을 내야하는지 모르겠다. 지역별로 전기요금이 달라야 한다고 본다. 예컨대 부산에서 만든 전기를 서울에서 쓴다고 하자. 멀리서 전기를 가져오면, 전력손실이 필연적이다. 에너지 낭비가 생긴다는 말이다.
발전소가 있는 지역의 환경에 부담을 주면서 만든 전기를 모든 곳에서 같은 가격에 이용한다면, 누가 자기 지역에 발전소를 짓자고 하겠나. 그러나 발전소로부터 거리가 멀수록 전기요금이 올라간다면, 자기 지역에서 쓰는 전기는 자기 지역에서 생산하자는 여론이 생긴다. 발전소가 자기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보다는 가까운 곳에 있을 때, 발전소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더 관심을 쏟게 되지 않겠는가. 만약 서울시민들이 쓰는 전기를 서울에서 공급하는 구조가 정착된다면, 친환경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지리라고 본다.
"당장의 편안한 삶과 미래의 위험을 맞바꾼 거래"
프레시안: 에너지 정책은 국민 전체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결국 정치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애초 정부가 원자력 발전소를 대대적으로 세운 것부터가 정치적 결정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중화학 공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하기로 하면서, 에너지 수요가 대폭 늘어난 게 한국에서 원전이 세워진 배경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정치적인 에너지 정책이 정작 정치적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는 여러 유럽 국가들과 몹시 대조적이다. 유럽에선 원전 정책이 첨예한 정치쟁점이다. 예컨대 스웨덴에선 원전 정책을 놓고 국민투표까지 했다.
윤순진: 당연히 정치적인 의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의지가 드러나게끔 하는 것은 결국 시민의 힘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땐, 우리 시민들이 위험한 거래를 하고 있다. 당장의 편안한 삶과 미래의 위험을 맞바꾸는 거래다. 이렇게 얻은 편안함은 영원할 수 없다. 설령 우리 세대는 아니더라도 우리 후손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왜 이런 분명한 사실에 눈을 감는지 모르겠다.
물론 모두가 눈을 감은 것은 아니다. 위험을 깨달은 이들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생각이 그저 개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수 시민과 함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정치적 흐름이 된다.
"독일에선 풍력이 더 이상 '비싼 에너지'가 아니다"
프레시안: 정부와 기업의 에너지 정책, 시민들이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 등이 총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조직화돼 있지 않은 반면, 이걸 거부하는 세력은 견고한 이해관계로 묶여 있다. 이른바 '원자력 마피아'가 대표적이다.
윤순진: 일단 원자력 덕분에 존재하는 정부부처가 있다.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원전을 건설하는 건설업체 등이 있다. 모두 원자력에 강한 이해관계가 걸린 집단이다. 원자력 관련 연구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분야는 너무나 전문화돼서 다른 사람들이 들여다보기도 어렵다. 관련 위원회가 있지만, 결국 이해 관계자들만 참가한 채로 열린다. 정보가 차단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력 사용자의 돈으로 운영되는 원자력문화재단은 원전 이해관계자의 '입' 노릇만 한다. 다수 시민은 이런 입만 바라볼 뿐 다른 목소리를 들을 통로가 없다.
그래서 다수 시민은 재생가능 에너지를 둘러싼 다양한 동향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귀를 열어야 한다. 일찌감치 '원전 탈출' 선언을 한 독일에선 풍력이 더 이상 비싼 에너지가 아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지난 2010년을 계기로 태양광 발전 가격이 원자력 발전 가격 보다 더 싸졌다. 이런 사실들이 국내에 널리 알려져야만 한다.
"원자력도 도입할 땐 '비싼 에너지'였다"…"원전 포기해야 대안 기술에 무게 실려"
물론 이런 변화들은 우리가 원전에서 발을 뺄 때만 가능하다. 지금까지처럼 원전에서 전력을 얻겠다고 하면, 누가 재생가능 에너지 연구에 뛰어들겠는가.
독일이 원전을 포기하는 계획을 세우고, 재생가능 에너지 연구에 힘을 쏟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였다. 이후 정부 차원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독일은 지금 태양광, 풍력 등 대부분의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에서 세계 3위 안에 드는 경쟁력을 확보했다. 일단 원전을 포기해야 대안 에너지 기술 연구에 무게가 실린다. 그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독일이 보여줬다.
얼마 전에 한나라당 대변인이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짓지 말자는 무책임한 주장을 하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원자력 발전을 계속 하겠다는 게 얼마나 무책임한 짓이냐'라고 말이다. 사회의 미래에 대해 책임감을 지닌 정치세력이라면, 사회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에너지 문제에 대해 다양한 대안을 찾는 게 정상이다. 특히 주요 에너지원이었던 원자력이 심각한 위험을 드러낸 지금이라면 더욱 그렇다.
현 정부는 에너지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할 기회는 물론이고, 연구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 어떤 기술이건 정책적 지원이 없이는 경제성을 띨 수 없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재생가능 에너지는 비싸다'라는 말만 거듭하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짓이다.
원자력은 지금이야 싸지만, 도입 당시에는 굉장히 비싼 에너지였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 덕분에 가격이 떨어진 것이다.
오히려 원자력의 경제성은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다. 안전성에 대한 걱정이 커진 만큼, 규제도 강화될 테고, 그럼 비용은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다른 에너지에 비해 더 싸다고 주장할 수 없다. 반면, 태양광이나 풍력 등은 앞으로 가격이 더 떨어질 일만 남았다.
"한국, 국토면적당 원전시설 용량 1위…사고 위험도 그만큼 크다"
현재 한국에서 작동 중인 원전은 21기다. 원전 수로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다. 시설용량 기준으로는 여섯 번째다. 또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된 전력이 전체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대 원전 대국 가운데 프랑스, 스웨덴, 우크라이나에 이어 네 번째다.
그런데 여기에 국토면적이라는 변수를 도입하면,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국토면적 대비 시설용량을 계산해보면, 한국이 세계 10대 원전 대국 가운데 1위다. 좁은 땅에 원전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는 말이다. 이는 원전 사고에 따른 위험도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와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 생겼을 때, 피해를 상쇄하기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어렵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원전 계획을 보면, 그저 한숨만 나온다.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이 7기다. 건설기본계획이 확정된 게 4기, 제5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짓기로 한 게 2기다. 오는 2024년이 되면 한국의 원전 수는 모두 34기가 된다. 이때가 되면 전체 전기의 48.5%를 원자력으로 생산하게 돼, 프랑스 다음으로 원전 의존도가 높아진다.
"테러범이 핵연료 수조만 건드려도 대형 사고…후쿠시마를 보라"
좁은 땅에 이토록 많은 원전을 짓겠다는 입장이 걱정스러운 이유는 또 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 한국은 분단국가다.
만에 하나, 테러가 발생한다고 가정해 보라. 북한이 한국을 핵무기로 공격할 필요도 없다. 원자력 발전소 자체를 건드릴 필요도 없다. 사용 후 핵연료 저장수조 등 원전 부대시설만 건드려도 엄청난 재앙이 생긴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도 지진이 원전 자체를 망가뜨린 것은 아니다. 비상전원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토록 큰 피해가 생겼다. 이걸 보고서도 원전을 더 짓는 계획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정상인가 싶다.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당연히 원전을 반대해야 한다.
▲ 윤순진 교수. ⓒ프레시안(김봉규) |
"원전 옹호론, 결국 대기업에 값싼 전기 공급하자는 것…사고 책임, 기업이 지나?"
원전을 옹호하는 논리는 결국 대기업에 전기를 싸게 공급하자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원전에서 사고가 생겼을 때, 그동안 혜택을 누린 기업들만 피해를 입나. 이들 기업들이 책임을 지나.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안다. 그런데 왜 이들 기업의 이익과 다수 국민의 위험을 맞바꿔야 하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 다수 국민, 그리고 우리 후손을 위험에 빠뜨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어떤 일의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라면, 아예 그길로 가면 안 된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은 어땠나. 원자로에 대한 안전점검을 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것은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일주일 뒤였다. 사고가 나자마자 나온 발표는 '한국 원전은 안전하다'라는 것이었다. 정말 그런가.
진도 6.5 수준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가 된 것은 신고리 원전(한국형 차세대 원자로)부터다. 그 이전에 건설된 노후 원전은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지적을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새롭게 내진설계를 하려면 돈이 엄청나게 드는데 할 수 있겠느냐'는 거였다. 결국 안전성을 희생한 대가로 비용을 줄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설령 이렇게 해서 원전이 경제성을 유지한다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최근 한 토론회에서 만난 지질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은 강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나라다. 지진해일이 최고 25미터 높이로 올 수 있다. 그런데 원전을 바닷가에 지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진 가능성을 무시한 증거다. 이번 사태는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다.'
위험 가능성을 무시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원전 수명을 연장하기로 한 방침도 재검토해야 한다. 지질학자들은 한국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신라시대까지만 해도 지진이 여러 번 일어났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진도6.5에 가까운 지진이 있었다. 이처럼 긴 주기를 갖고 대형 지진이 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수명 연장한 지 한 달 만에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이건 '인재(人災)'였다. 사고 가능성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라고 이런 일을 겪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 막아야 한다.
"프랑스와 독일의 대조적인 선택…국가적 자존심이냐, 미래 세대 안전이냐"
▲ 윤순진 교수. ⓒ프레시안(김봉규) |
윤순진: 나도 그게 참 궁금했다. 일단 문화적인 문제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 1950~60년대부터 정권이 원자력을 국력의 상징 또는 국가적 자존심으로 포장했다. 원자력 문제를 미국과의 경쟁 구도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반면, 독일은 사회운동이 생태적 흐름과 잘 결합한 경우다. 녹색당이 꽤 강력하게 정치세력화 했고, 1998년에는 사회민주당과 연정까지 수립했다. 원전의 단계적 폐지 정책이 수립된 것도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 시기였다.
따지고 보면, 프랑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원전에 회의적이다. 왜 굳이 프랑스만 예외가 됐는지는 좀 더 연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 이젠 '대세'가 됐다"
다만 프랑스에서도 요즘엔 다른 기류가 생겼다. 프랑스는 원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외국에 수출까지 하는데, 여기에 대해 국민이 반발하고 있다. 원전으로 그렇게까지 많은 전기를 생산할 필요가 있느냐는 게다. 또 지난번 폭염 사태 당시 프랑스 정부가 강가에 있는 원전의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일이 있다. 냉각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걸 보고 경각심을 느낀 프랑스인들이 많다. 따라서 프랑스 역시 원전을 더 세우긴 어렵다고 본다.
게다가 이번 후쿠시마 사태는 유럽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에서 원전 정책에 쐐기를 박는 결과를 낳았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보수연정이 집권하면서 원전 사용기한을 연장하기로 했다. 원래는 2022년까지 19기의 원전을 모두 폐기하기로 했었는데, 이걸 좀 더 쓰자는 거였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25만여 명이 참여하는 사상 최대규모의 반핵시위가 열렸다. 결국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노후원전 7개 가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발표 직후 치러진 선거에서 보수연정은 자신들의 정치적 텃밭에서도 참패했다. 보수 진영조차 원전 폐기 여론을 무시할 수 없게 되면서, 재생가능 에너지는 이제 대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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