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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 껍데기에 갇힌 '결사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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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 껍데기에 갇힌 '결사의 자유'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단체교섭 보장 없는 복수노조는 문제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자기 당의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7월 시행되는 노동법 개정안 중 복수노조 문제와 관련해서 "사실상 노조에서 줄기차게 주장한 복수노조가 시행되려고 하니 오히려 노조에서 부담을 느끼고 문제가 있다면서 들고 나온다"며 "이런 움직임은 성급하다"고 노동계와 야권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고, 문제의 핵심을 왜곡하는 주장이다.

복수노조는 허용하되, 단체교섭은 발목 잡아

노사관계의 핵심은 단체교섭이고, 그 결과는 노사가 공동으로 만드는 단체협약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1등 재벌인 삼성처럼 무노조 정책을 고수하는 기업에는 노무관리는 있어도 노사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없는 관계로 단체교섭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활동의 꽃은 단체교섭이고, 그 열매는 단체협약이다. 단체교섭을 하지 못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없다면 이는 노동조합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복수노조 문제는 단체교섭권 보장과 직결되어 있다.

그런데 오는 7월에 시행되는 개정 노동법, 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은 복수노조만 강조하고 있을 뿐 단체교섭권 보장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날림'이다. 제5조에서는 "노동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고 말해놓고선,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체결 권한을 규정한 제29조에 가서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 노동조합이 2개 이상인 경우에 노동조합은 교섭대표 노동조합을 정하여 교섭을 요구하여야 한다"고 전제조건을 달아서 사실상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단체교섭에 장애물을 설치해놓았기 때문이다.

제29조와 더불어 관련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읽어보면 이것이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증진하기보다는 침해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노조는 복수(複數)로 허용하는데, 단체교섭은 '단수(單數)'로만 허용하겠다는 데서 비롯된다. 복수노조를 허용한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법에 반영한 조치다. 그런데 단체교섭 체계는 복수노조 이전의 낡은 틀을 사용자의 입맛에 맞게 조금 손보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법률가 출신에 오랜 동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해온 관계로 누구보다도 복수노조 허용에 담겨 있는 법 개정의 정신과 취지를 잘 알고 있을 홍 의원이 개정 노동조합법의 문제(단체교섭권의 침해)는 지적하지 않고, 노동조합 탓만 늘어놓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복수노조는 이미 존재해왔다

사실 복수노조는 전국 중앙과 산업 같은 초(超)기업 수준에서는 이미 허용되어 왔다. 전국 중앙 수준에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복수로 존재하고 있고, 정규직-대기업 노조주의를 노골적으로 지향한다는 제3노총 이야기도 들려온다. 양대 노총 산하에는 금속, 화학, 보건, 금융, 교원, 공무원 등 대부분의 산업과 업종에서 복수로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기업 수준에서도 노조 가입 범위가 겹치지 않는 경우에 복수로 노동조합이 존재해왔다. 같은 기업 혹은 같은 사업장에서 생산직노조와 사무직노조가 병존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기업,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사업장 단위에서 노조원 범위가 겹치는 경우에 한해 복수노조가 유보되어 왔는데, 오는 7월 이를 풀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울산의 현대중공업노조는 정규직-생산직 중심의 노동조합인데, 이미 정규직-생산직을 조직 대상으로 하는 노조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현대중공업 안에서 별도의 정규직-생산직 노조 결성은 법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개정 노동법이 7월에 시행되면, 정규직-생산직을 대상으로 하는 제2 노조, 제3 노조의 결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복수노조는 껍데기, '결사의 자유'가 알맹이

▲ 홍준표 의원. ⓒ연합뉴스
홍준표 의원은 "노동조합이 복수노조를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고 말하지만, 이 역시 그리 정확한 주장은 아니다. 사실 노동운동이 주장해온 것은 본질적으로 복수노조가 아니라 '결사의 자유'였기 때문이다.

결사의 자유(結社의 自由)는 자유권의 일종으로 누구든지 단체(또는 결사)를 만들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주목할 것은 결사의 자유는 자유권의 하나라는 점인데, 이는 "개인이 그 자유로운 영역에 관하여 국가권력의 간섭 또는 침해를 받지 아니할 권리"를 말한다.

복수노조는 그 자체가 노동운동의 목표가 아니라 결사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적 질서의 결과물이다. 자유민주주의 기초 가운데 하나인 복수노조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래 폭넓게 허용되지 못해온 현실은 노동자의 권리와 관련하여 대한민국이 무늬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였음을 잘 보여준다.

유엔 산하 국제기관인 국제노동기구(ILO)는 모든 나라 모든 사업장에서 지켜야 하는 핵심노동기준으로 다음 네 가지를 꼽는다. (1)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의 보장, (2)강제노동의 금지, (3)아동노동의 금지, (4)고용과 직업에서 차별 금지.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은 따로 가는 별도의 기준이 아니라, 늘 붙어 다니는 쌍둥이 기준 (a twin standard)라는 점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한 묶음인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노동권에서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은 동전의 양면이다.

단체교섭권 없는 결사의 자유는 앙꼬 없는 찐빵

노동자들이 자기 인생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장과 사무실 안에 자유민주주의의 기초인 결사의 자유를 허용하려는 역사적인 시점에, 그것과 한 묶음인 단체교섭권은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편법으로 묶어두겠다는 것은 난센스다. 결사의 자유라는 맷돌은 단체교섭권이라는 어처구니가 있을 때 제대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복수노조 허용은 결사의 자유의 부산물이다. 그런데 이것을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핵심 수단인 단체교섭의 자유를 제한하는 빌미로 활용하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방송사 사장에서 정치인으로 변신을 꿈꾸고 있는 어느 분 말마따나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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