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됐습니다. 다음 분'?…"우리 병원에선 상상도 못해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됐습니다. 다음 분'?…"우리 병원에선 상상도 못해요"

[제3의 대안, 의료생협·②] '지역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병원

[제3의 대안, 의료생협]

<1>"항생제를 10%만 쓰는 병원, 비결은?"
<2>'됐습니다. 다음 분'?…"우리 병원에선 상상도 못해요"
<3>"여성 환자에게 손목쓰지 말라고? 밥해야 하는데?"

인천 지하철 부개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바로 옆에는 재래시장이, 뒤로는 아파트촌이 보이는 곳에 인천평화의료생협이 있다. 얼핏 보면 평범한 서민들이 사는 곳에 자리 잡은 평범한 동네 의원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복도에는 주민이 직접 만들어 기증했다는 꽃액자와 이런저런 소모임을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자 게시판에 주민들의 이름이 빼곡했고, 이사회, 대의원, 위원회 소식란이 있었다.

대의원 모임 기록지에 적힌 최근 안건을 둘러봤다. 마을 모임 만들기와 일본 지진 피해자 성금 모금하기가 안건으로 올라왔다. 눈길을 돌리니 병원 접수처에는 '일본 지진 피해 성금 모금함'이 마련돼 있었다. 소식란에는 "문경옥 대의원이 손녀를 봤다"는 이야기가, 건의사항에는 "평화의원이 일요일에 진료를 중단해서 불편하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김명일 인천평화의료생협 원장은 의료생협에 대한 지역 주민의 애착이 각별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기 돈이 들어가면 (태도가) 달라지거든요. 자기 병원이라고 생각하죠. 처음에는 10만 원을 출자해서 병원이 생기기까지 1년이나 기다렸으니 (지역 주민들이 병원에) 얼마나 애착이 강하겠어요."

▲ 인천평화의료생협은 최근 조합원의 증좌에 힘입어 치과를 개원했다. 사진은 병원 출자자 명단을 대기실에 공개한 모습. ⓒ인천평화의료생협

노동자를 위한 병원에서 지역 주민의 병원으로

인천평화의료생협은 안성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생긴 의료생협이다. 항구도시라는 특성상 대공장이 많았던 인천은 원래 노동운동이 강한 지역이었다. 그러다 1989년 산업재해나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를 다루는 '평화의원'이 생겼다. 인천평화의료생협의 전신이다. 평화의원은 제도권이 아닌 민간 의료기관으로서 65세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검진사업과 진료비 경감사업, 어린이집 방문 예방접종 및 진료활동, 가정방문사업 등 다양한 보건예방사업을 벌였다.

1996년에 평화의원은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해결하려는 단체가 하나 둘 생기면서, 노동자 건강 문제를 의원이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줄었기 때문이다. 평화의원은 노동자를 위한 활동에서 지역 주민 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로 했다. 의사가 가졌던 재산을 지역 사회에 내놓고 주민의 출자를 받아서 병원을 공동 소유로 만들었다. 지역 주민이 소유하고 운영하고 이용하는 병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인천평화의료생협에는 현재 조합원 2000세대가 있다. 병원의 자본금인 출자금을 낸 지역 주민들이 조합원이 되고, 그 중 열성적인 주민들은 대의원으로 참여한다. 대의원은 이사회의 결정을 승인하고 지역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병원 운영에 반영시킨다. 김명일 원장은 "지역운동, 협동조합운동, 보건의료운동이 결합된 것이 의료생협"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역의 1차 의료기관으로서 주민들의 주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주민에 의해서 운영되는 병원이기도 하죠. 보건의료와 복지가 지역사회에서 통합된 의료를 만들자는 겁니다."

▲ 중풍이나 만성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신체적, 사회 심리적 재활을 위한 모임인 '등대 모임'이 열리는 모습. 등대 모임에서는 운동, 미술요법, 음악요법, 치료 레크리에이션, 건강 체크 및 교육 및 교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인천평화의료생협

"거동 못하는 환자는 왕진 가방 들고 찾아 가죠"

인천평화의료생협에는 웬만한 진료과목은 다 있다. 우선 한의원과 의원이 같은 건물에 있다. 내과, 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안과, 피부과, 부인과, 정형외과 등은 가정의학과 의사가 맡는다. 최근에는 조합원의 증좌에 힘입어 치과도 생겼다. 그밖에 가정간호사업소, 검진센터, 재가요양기관 등을 운영한다.

의료생협이 보통 의원과 다른 점은 의사와 한의사가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직접 방문 진료를 한다는 점이다. 평화한의원의 한의사 신부용 씨는 "생협이니까 방문 진료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몸져 누워있었어요. 너무 아파서 병원도 못 올 정도였는데, 침을 놓자 많이 좋아지셨죠. 독거노인이라 주변에서 돌봐줄 사람도 없었는데 찾아가서 침을 놔드리니 무척 좋아하셨어요."

퇴원한 환자가 가정에서 지속적인 치료나 관리를 받아야 할 때는 가정방문간호를 한다. 요양보호사가 장기요양 1~3등급을 인정받은 노인들의 가정을 방문해 신체활동 및 가사활동, 목욕 등을 지원하는 재가복지 서비스도 있다. 재가복지 서비스에서는 방문 간호, 진료 보조, 요양에 관한 상담을 제공한다.

의사, 간호사, 요양보호사가 필요할 때마다 직접 환자를 찾아가자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인천평화의료생협의 조합원 이금례 씨는 "할배(남편)가 누워서 생활하는데, 며칠에 한 번씩 의사 선생님이 와서 혈압, 당뇨 수치를 재고 문제가 생기면 치료해 준다"며 "간호사와 원장 모두가 잘해주시고 병원에서 직접 와주니 좋다"고 말했다. 이 씨 부부가 인천평화의료생협을 이용한 지는 10년째. 이 씨는 평화의원을 '우리 병원'이라고 말했다.

▲ 인천평화의료생협 내부 사진. ⓒ프레시안(김윤나영)

'됐습니다. 다음 분'?…"의료생협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

또 다른 조합원 오범석(41) 씨는 과잉 진료를 지양하고 예방 중심의 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의료생협의 장점으로 꼽았다. 감기 환자가 오면 다른 병원은 항생제를 투여하기 급급하지만, 의료생협은 숙면, 따뜻한 물, 휴식이 제일 좋다고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의료생협은 항생제 오남용을 근절하는 데 앞장섭니다. 의사 위주로 치료하기보다는 환자 상담이나 예방에 중점을 두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진료 상담도 친절하게 오래오래 해줍니다. 보통 다른 병원은 '됐습니다. 다음 분'이라고 말하는데, 여기 의사는 부담되지 않고 진료상담 외에 건강상담도 일상적으로 합니다. 건강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봐도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대답해주시고요."

오범석 씨는 지역에 있는 병원을 찾다가 우연치 않게 의료생협에 가게 됐다. 오 씨는 "한방진료와 양방진료를 같이 제공하는 일반 병원이 많지 않은데, 의료생협은 양방과 한방을 같이 보는 게 독특해서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다 조합원으로 가입하면서 의료생협 운동에 관심이 생겼고, 지금은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다녔으니 인천평화의료생협을 이용한 지도 벌써 12~13년은 된 것 같다"던 오 씨는 병원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지역 사회에 나만의 주치의라는 게 있잖아요. 내 가족을 잘 관리해줄 수 있는 건 대형병원보다는 지역 사회에 작은 의원입니다. 10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다 주인이니 소속감과 애착이 강하죠. 병은 작을 때 발견해야 빨리 막을 수 있는데, 여기는 조기에 병을 발견해주는 게 참 좋습니다. 대의원 활동에 누구보다도 애착이 가죠. 저는 대의원 중에서 젊은 편이고 다른 대의원은 연세가 있는데, 모두 열정적입니다. 지역 주민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죠."

ⓒ인천평화의료생협

지역 잔치에 초대받아 환자 생일을 축하하는 의사

김명일 원장은 "마을에 행사가 있으면 주민들이 알아서 기획하고 진행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병원 실무자들이 할일이 없다"며 "우리는 들러리나 선다. 주민들에게 주인의식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병원 실무자들이 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의료생협 활동을 하다 보면 의료인들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진료 활동 외에도 대의원회의 등 회의가 많은 데다, 조합원들을 개인적으로 만날 일도 많다. 철거민, 파업 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관련 사업 등에 함께할 때도 있다.

"어떨 때 보면 병원 대기실이 장애인, 이주여성, 이주노동자로 바글바글합니다. 대기실이 한국사회의 축소판이 될 때가 있죠. 진료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많다 보니 의사들은 익숙하지 않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협동조합이 생긴 거니까요."

김명일 원장은 "여기에서 의사는 왕이 아니다"라며 "진료실 안에서 의사는 왕일지 몰라도 지역사회에서는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때문에 의사는 지역 주민에게 더 많은 지지와 신뢰를 받는다"며 "(의료생협 활동이) 의료기관에서 왕 노릇을 하는 것보다 재밌다"고 덧붙였다.

"의사로서 어디 가서 주민들한테 신뢰 받고, 주민들이 맛있는 것도 만들어 오고, 같이 술도 먹고 집안 잔치에 초대받기도 힘들죠. 여기서 의사는 누가 죽었을 때 환자에게 부조도 하고 장례식장도 찾아가고 생일도 축하합니다.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가장 큰 기쁨은 주민을 만나서 서로 변화해가고 서로 신뢰가 쌓이고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주고받고 같이 늙어가는 겁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