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주의 복지국가 논쟁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이 논쟁이 지나치게 이념적이라고 지적하면서 모든 개별 복지제도는 수혜대상의 포괄 범위가 프로그램별로 각각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타당한 비판은 아니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그 어느 누구도 모든 복지제도를 보편주의로만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은 이제 구체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로 들어가자는 제안 정도로 듣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본질적으로 '보편주의 복지국가 논쟁'은 복지 예산의 규모에 대한 논쟁도 아니고, 복지제도 수혜대상의 포괄 범위에 대한 논쟁으로 한정할 수만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복지국가 논쟁은 '복지국가의 유형'에 관한 논쟁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보편주의' 또는 '사민주의' 복지국가로 분류되고, 영어권 국가들은 '자유주의' 또는 '잔여주의' 복지국가로 불린다. 이때 "00주의"란 전반적인 복지국가의 성격을 '관통하는 주요 원리'라는 뜻이다.
▲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라또까르따노 학교 식당 위에 있는 조형물. 보편주의를 추구하는 북유럽 모델은 교육 부문뿐 아니라 사회 전 영역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프레시안 |
따라서 최근의 보편주의 논쟁은 '우리나라가 북유럽 방식의 복지국가를 지향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둘러싼 논쟁이다. 즉, 일자리(직장)를 통해서 사회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납부(기여)하였는지를 묻는 방식이나(보수주의 복지국가의 주요 특성), 자산조사를 통해서 빈곤상태를 입증해야 하는 방식(잔여주의 복지국가의 주요 특성)이 아니라, 복지수급의 권리가 시민권에 기초하기 때문에 모든 국민에게 수급권이 주어지는 원리를 복지제도 전반에 폭넓게 적용할 것인가를 묻는 것(보편주의 복지국가의 주요 특성)이다. 이때 급여란 소득보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의료 등의 각종 사회서비스를 포함하는 것으로, 국가가 여러 가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되 국민의 소득수준에 따라 이들 서비스의 이용 권한이 제한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복지국가 논쟁의 '본질'이 복지예산의 규모나 수혜대상의 포괄 범위에 대한 문제라면 점진적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나간다는 소위 '단계론적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주어진 선택은 '복지국가의 유형', 즉 조직 원리에 대한 선택이기 때문에 잔여주의가 우세한 우리나라의 현행 복지국가 방식에서 대륙유럽의 보수주의 방식으로 갔다가 최종적으로는 북유럽의 보편주의 복지국가로 가자는 주장은 아주 우스운 것이 된다.
이 글에서는 대륙유럽 방식의 보수주의 복지국가가 우리의 선택지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노동시장과 여성주의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보수주의 복지국가의 전형적인 특징으로는 가족주의에 기반하여 남성생계부양자의 소득을 보전하는데, 수급권은 주로 일자리에 연동된 사회보험제도를 통하여 충족되는 정도가 높다는 점, 그리고 돌봄 서비스의 사회화는 크게 진전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적정수준의 임금과 고용안정, 사회보험 혜택을 누리는 계층(1차 시장)과 이 모든 것을 결여한 취약계층(2차 시장)으로 이중구조화 되어 있다. 1차 시장에서 배제된 대표적인 집단은 영세사업장 종사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이므로 2차 시장에 속한 자가 수적으로 훨씬 더 많다.
한편, 우리나라는 사회보장제도에서 사회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유형에 속한다. 사회보험은 '보험'이기 때문에 가입자(기여자)들끼리 위험을 분산시켜 충격을 최소화하는 성격을 갖는데, 사회보험을 통하여 재분배와 위험분산을 시도하는 경우 '실제로' 제도가 보호하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살펴보아야 만이 이 제도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사회보험의 실질적 수혜자가 전체 국민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겠으나, 우리나라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국민건강보험의 경우는 누락된 대상이 많지 않지만, 소득보장 기능을 수행하는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은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문제를 안고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사회보험 중심의 사회보장제도는 서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합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사회보험 피보험자의 확대에 근본적인 제약을 가하고 있어서, 실제로 보호가 필요한 취약계층은 사회보험제도의 보호영역 밖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사회보험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기존의 가입자를 위해 여러 가지 혜택을 더 늘리는 데 힘을 쏟는 것은 이중구조를 강화할 뿐이다. 요컨대, 노동시장이 이중구조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사회보험방식을 중심으로 소득보장제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제 여성주의 시각으로 복지국가의 방향성을 생각해 보자. 보수주의 복지국가는 남성가장과 아내,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전제로, 남성 가장의 소득활동을 통해서 아내와 자녀를 부양하는 '구 젠더 질서'에 기초하여 출발하였다. 고용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가족형태가 다양화하는 새로운 현실은 이러한 낡은 젠더 질서와는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가족'을 단위로 복지시스템을 구축한 대륙유럽의 보수주의 복지국가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1970년대 석유파동에 따른 경제위기, 그 이후의 세계화와 노동시장 불안정성의 증가로 인하여 복지국가들이 재편의 길로 들어섰을 때, 그 이전까지 자신들이 만들어 온 조건 하에서 위기 극복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경우 공공서비스 부문의 확대를 통하여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는데, 사회서비스의 확대는 그 자체로 일자리를 창출함과 동시에 여성을 노동자화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되었고,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높았던 2000년대에도 뒤로 물러서지 않을 만큼의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였다. 자유주의 복지국가의 대표 격인 미국의 경우에는 더욱 강력한 노동유연화와 함께 복지수급자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복지와 노동을 연계해 나갔다.
이 당시, 보수주의 국가들은 높은 실업률에 대한 대응으로 여성들을 장기간의 유·무급 육아휴직으로 노동시장에서 물러나 있게 하고, 고령자들은 연금수급 연령을 낮추어 조기 퇴직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사용하였다. 이는 결국 가족의 생계부양자인 중장년층 남성노동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취한 셈이었는데, 이로 인해 일인당 고용비용은 크게 증가하였고 고용의 총량은 줄어들었으니, 결과적으로 보수주의 복지국가들이 취한 이러한 방식이 실패한 대응이었다는 점은 명백해졌다.
현금급여 중심의 사회보험제도로 생계부양자의 소득 중단에 주로 대응하는 방식의 복지국가는 유럽에서도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사회투자국가의 깃발을 들고 복지국가의 중심점을 보육과 교육, 직업훈련으로 옮긴 영국을 비롯하여, 최근 10여 년간 대륙유럽의 보수주의 복지국가들도 사회서비스를 강화하고 여성의 임금노동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세제와 제도를 개편하는 등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젠더 질서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적극적으로 젠더 질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서구 복지국가의 재편 과정에서 새겨야할 교훈은 남성생계부양자 유형의 성역할 구도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새롭고 역동적이며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길을 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구 젠더 질서에 의지하여 복지국가를 유지하던 보수주의 국가들도 과거의 틀을 벗어나려고 애써 방향 전환을 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 적정한 급여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나 어느 쪽의 복지 분야가 먼저 채워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얼마든지 함께 논의할 수 있다. 다만,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약자나 구 젠더 질서를 탈피하고자 하는 여성의 시각에서 볼 때, 보편적 소득보장과 보편적 사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유형의 복지국가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이 우리가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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