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관계자는 "남북협력기금법 상 8조6호의 '민족공동체 회복'을 포괄적으로 적용했다"며 "이와 관련해 남북협력기금법 해석을 자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예산 당국과도 협의를 거친 것"이라고 지난 18일 해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통일세 문제는 북한이 반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남북협력기금'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의 이번 '한반도브리핑'은 이에 대한 논평이다. 김 교수는 2004~05년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편집자>
통일 비용 관련 용역을 남북협력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 첫째는 통일 비용 논란의 정당성이고, 둘째는 법적인 문제다. 여기서는 통일 비용 논란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남북협력기금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무엇이냐다.
이는 통일부가 일반 예산으로 이 사업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렇게 한다면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남북협력기금의 사용은 다르다. 그 돈은 자의적으로 유권해석을 내려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용역사업은 협력기금 대상이 아니다
남북협력기금법은 노태우 정부 때 만든 법률이다. 의원 입법이 아니라, 정부 입법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민자당의 주도로 국회에서 통과됐다. 지금도 주요 항목은 그대로다.
먼저 남북협력기금법의 용도에 대해 살펴보자. 현재 정부가 근거로 삼고 있는 조항은 8조 5항이다. 8조는 기금의 용도에 대한 규정이고, 그 중 5항이 "기타 민족의 신뢰와 민족공동체 회복에 이바지 하는 남북교류 협력에 필요한 자금의 융자·지원 및 남북 교류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사업의 지원"이다.
이 조항을 근거로 기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 즉 민족의 신뢰와 민족공동체 회복에 이바지해야 한다. 통일 비용 논의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백 번 양보해서 정부측 주장대로 통일 비용 논의가 민족공동체 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하자. 8조 5항은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교류협력 사업이어야 지원할 수 있다. 이는 남북협력기금법 1조, 즉 기금의 목적에서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남북한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이 남북협력기금이다.
1990년 3월 12일 당시 홍성철 통일원 장관이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서 남북협력기금의 법안 취지를 설명할 때도 분명하게 정리한 바 있다. 홍 장관의 말에 따르면, 이 기금은 "민족공동체 회복, 발전을 위한 필수적 과정인 남북간 제반 교류와 협력을 실질적으로 지원하여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통일세 용역이든 남북공동체 기반 조성 용역이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교류협력 사업인가 아닌가가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유권 해석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통일부 스스로 잘 안다. 이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근거 역시 통일부가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남북협력기금법 시행령을 보자. 8조 5항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 조항에 해당되는 4개의 세부 항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이산가족 교류, 둘째는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목적, 셋째는 북한의 비핵화, 넷째는 그밖에 남북 교류협력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3개의 항목은 분명하고 구체적이다. 4번째 항목은 약간의 유권해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통일부는 이 세부항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규정해 놓았다. 2008년 발행한 '남북협력기금 백서'를 비롯해서 다양한 규정이나 정책 설명에 따르면, '남북 경제협력 지원 사업'이란,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으로 개성공단 조성, 남북철도·도로 연결, 농업, 경공업 등 분야별 협력사업"이라고 규정했다. 어디에 국내 용역을 집어넣을 근거가 있는가?
가장 최근에 개정된 남북협력기금 운용관리규정을 봐도 마찬가지다. 이 규정은 2010년 7월 30일 통일부 고시 제 2010-2호로 '일부 개정'되었다. 세 달도 지나지 않았다. 3장 기금의 업무, 7조 업무의 종류, 18항에 "기타 민족의 신뢰와 민족공동체 회복에 이바지 하는 남북교류협력에 필요하거나 이를 증진시키기 위한 자금의 지원 또는 융자"를 뭐라고 약칭했는가? "이하 기타 남북교류협력 지원 자금"이라고 했다. 민족공동체 회복 자금이 아니라, 남북교류협력 지원기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규정 제10장 4절 57조의 지원 대상 항목은 또 어떤가? "민족공동체 회복을 위해 북한에 물자를 제공하거나 사업을 시행하려는 자"로 규정하지 않았는가?
남북협력기금법의 8조 5항을 아무리 신축적으로 해석하더라도, 국내 용역을 사용할 근거가 없다. 물론 이 항목으로 용역 사업에 지원한 적은 있다. 금강산 관광 지구 내 소방서 부지 지반 조성 용역비(2006년), 단천 광산 현지 공동조사와 기본설계 용역(2007)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을 위한 유역조사 및 대책 수립을 위한 용역비(2004~2006) 서해공동어로, 해주 특구 해주항 현지 조사(2007),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현지조사와 개성 신의주 철도 개보수 현지조사(2007) 등이다. 이 사업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남북협력기금법 시행령에서 규정해 놓았듯이, "남한과 북한 당국간의 합의사항"이다.
통일 비용 용역이 교류협력 사업인가? 동시에 남북 합의사항인가? 통일 비용 연구를 민족공동체 회복 기반조성이라고 제목을 바꿔도 지원 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교류협력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8조 5항을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물론 이러한 용역이 이 규정에 적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통일 비용 연구 용역을 북한에 주면 된다. 그것은 교류협력 사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현실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민간에 엄격하면서, 정부는 법을 어겨도 되나?
정부가 스스로 법률을 지키지 않고, 규정을 어기면 안 된다. 그리고 지금이 어느 땐가? 9월말 현재 남북협력기금 집행률이 3.8%에 불과하다. 2009년에는 8.6%, 2008년에는 18.1%였다. 집행률이 왜 이렇게 낮은가? 기금수요는 통일부가 매년 스스로 예측한 것이 아닌가? 매년 현실보다 낙관적으로 남북관계를 예측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반대로 스스로 기금수요를 예측해 놓고, 계획대로 집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문제다.
지금까지 통일부가 남북협력기금을 어떻게 운영해 왔는가? 통일부의 발표에 따르면, '남북협력기금의 투명성 제고'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중 하나다. '퍼주기 이데올로기'의 대표적인 공격대상이 남북협력기금이었다.
민간단체에 대해 감사를 하고, 몇 건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08년 백서를 발간하고, 요건을 강화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민간의 협력기금 사용을 더 엄격하게 했다. 그런데, 민간에게 그렇게 까다롭게 하면서, 정부 스스로 법을 어겨도 되는가? 민간은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법적 처벌을 받는데, 정부는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가?
▲ 현인택 통일부장관(오른쪽)과 엄종식 차관(왼쪽)이 지난 22일 오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 답변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교역과 위탁가공 중단으로 회사의 문을 닫고, 전 재산을 날린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는 얼마 되지도 않는 자금, 그것도 지원이 아니라, 갚아야 하는 대출인데도 그렇게 까다롭게 굴면서, 이럴 수 있는가? 이것이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공정사회인가?
"남북협력기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되는 만큼 기금조성과 지원은 무엇보다도 국민적 합의에 기반을 두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통일부가 2008년 남북협력기금 백서를 발간하면서 강조한 내용이다. 통일 과정보다 통일 이후를 강조하는 정부의 접근법에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8조 5항에 해당되는 항목은 사업 집행전 국회 상임위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과연 보고 절차를 거쳤는가? 국회의 동의를 기반으로 의결했는가? 국회가 반성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남북협력기금법은 바로 노태우 정부가 제출한 법률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민자당이 주도해서 통과시킨 법률이다. 보수정당으로서의 정통성을 주장한다면, 스스로 주도한 법률의 법적 정당성은 유지할 필요가 있다. 여당이라도 정부의 불법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당도 반성해야 한다.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보고 절차를 생략한 채 법적 근거도 없이 의결까지 했겠는가? 화해협력이요, 평화요 말로만 떠들게 아니다. 이번 사건은 남북협력기금법의 근간을 흔든 사건이다. 흡수통일을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하는 데도, 제대로 문제제기를 못한다면, 어떻게 포용정책을 강조하는 당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불법적 기금 유용이 선례로 남는다면, 남북협력기금은 기초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동시에 대북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통일부에 남북협력기금 계속 맡길 수 있나?
통일부의 공무원들은 최소한 남북협력기금을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서, 과연 통일부가 남북협력기금을 운영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감사원이 실시한 감사에 따르면, 2008년 통일부는 운영관리비 일부를 간담회비(식대) 등으로 사용하여 주의를 받은 바 있다.(2010년 2월 23일 감사원 감사 결과) 동시에 방북 승인을 비롯해 정부의 승인 권한을 자의적으로 집행한 사례도 적지 않다. 모든 것이 규정이 있고, 정부는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법대로 집행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1990년 당시 남북협력기금법이 통과될 때 이 기금의 운영을 누가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통일부와 당시 상공부의 갈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경제 부처는 통일부의 전문성 부족을 이유로 협력기금을 경제 부처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동안 이런 우려 속에서도 통일부는 심의기능을 전문화하고, 규정을 구체화하고, 협력기금에 대한 전문성을 길러 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통일부의 관리 자격을 한순간에 무너트렸다. 이런 식이라면, 통일부에게 협력기금 관리를 맡길 수 있겠는가? 국회는 사후약방문이지만, 어떻게 이런 불법 행위가 이루어졌는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남북협력기금의 운영 주체를 변경하는 문제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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