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참상은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정부와 대기업들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요구에 굴복해 신자유주의 시장만능 정책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임금을 깎아 기업이윤을 늘리는 방법으로 극단적인 양극화의 노선을 추진해 온데다가, 이 정부 들어서서 부자감세 등으로 양극화를 가속화한 결과이다. 그리고 아마도 특별한 변화가 찾아오지 않는 한 작금의 이와 같은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되고 더 심화될 전망이다.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2010년 6.2지방선거를 전후로 표출된 우리 국민의 보편적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에 대한 광범위한 요구가 이후 우리 정치권에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논쟁으로 확산되었고, 최근에는 '복지국가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동안 진행된 양극화의 고통이 극에 달한 결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많은 국민들이 2009년부터 김상곤 경기 교육감이 시작한 무상급식에서 발견한 보편복지의 가능성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정치권의 논쟁에 동력을 제공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있어 하나의 특별한 변화임이 분명하다.
이제 이쯤에서 최근 복지논쟁의 쟁점들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정부여당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은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면서 격렬히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 이와 같은 급식이나 의료, 보육 서비스는 글자 그대로 '무상'인가? 그러나 외국의 무상원조와 같은 국민경제 외부로부터의 무상 전입금이 없는 이상, 국민경제 내에서 '무상'복지란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 ⓒ프레시안 |
이것은 급식서비스나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를 제공받는 시점에서 그 대가인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것일 뿐, 국민들은 능력에 따라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 등을 납부하고 정부는 그 재원으로 이러한 보편적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이미 대가를 지급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여당과 보수진영은 이러한 내용을 뻔히 알면서도 야당과 진보진영의 보편적 복지를 '공짜'복지라며 국민을 선동하고, 포퓰리즘이라며 정치적 공세를 퍼붓고 있다.
정부여당은 이와 같은 정책을 시행할 경우 재원의 부족으로 정부재정이 파탄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공적 부조가 필요한 저소득층에 국한하여 복지를 제공하고 부자들의 경우에는 자기의 부담으로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자들이 자기의 부담으로 스스로 지출하는 비용을 추가 세원으로 확보하는 등 소득에 따라 조세부담율을 누진적으로 조정하고, 국가예산 중 토건예산 등 불요불급한 예산을 감축하는 한편 부자감세 등을 철회하여 그 재원으로 부자들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 복지를 제공한다면 재정이 파탄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정부가 주체가 되어 제공하는 공공의 보편복지 서비스는 사적 영역인 시장에서의 과도한 경쟁과 이윤추구에 낭비되는 재원을 절약하여 서비스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일 수 있고 복지서비스 제공을 위한 공공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공공의 보편적 복지서비스의 확충은 국민에게 막대한 이익이 될 것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불완전하나마 사실상 유일한 보편적 복지제도인 국민건강보험에 있어서는 적립되는 보험재원의 총액 중 관리운영비용 3%만을 공제하고 나머지 97%가 모두 보험급여금으로 환급되는 반면, 민간보험회사가 판매하는 실손 민간의료보험의 환급율은 최대 70%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30~4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실손 민간의료보험에서는 천문학적 수준의 홍보비, 보험설계사 임금, 회사 조직의 유지비, 이익배당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무상복지를 무차별적으로 제공할 경우 복지수혜자는 나태에 빠져 노동생산성이 저하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는 보육, 의료, 교육, 노후보장, 고용 등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생활하는 데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기본적 요구를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므로, 국민 개개인은 질병, 빈곤, 실업, 노후생활 등 사회적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함으로써 노동생산성과 창의력이 오히려 향상된다는 사실, 그리고 보편적 보육복지는 출산율을 높이고 여성인력의 취업과 사회참여를 촉진하여 성장잠재력과 생산력을 높인다는 사실, 보편적 맞춤형 교육복지는 인적자원의 질을 향상시키고 노동자들의 기능적 유연성을 제고하여 완전고용과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 등은 국가경쟁력 최상위그룹에 속하는 북유럽 국가들에 의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보편적 복지정책에 대하여 다소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체로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이 '망국적 포퓰리즘', '사회주의적 발상' 등의 극언까지 동원하면서, 심지어는 '남유럽 여러 나라의 재정위기는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이라는 등 사실왜곡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보편적 복지정책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선별적 복지에 있어서는 복지를 제공하는 정부와 기득권 세력은 복지 결정 권력을 행사하면서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는 반면, 복지수혜자로 선별된 국민은 이와 같은 복지 권력에 복종하면서 정부의 시혜를 입는 피동적인 지위에 서게 된다. 그뿐 아니라 시혜적 복지에 있어서는 부자들로부터 거둔 세금으로 무능한 저소득층을 부양한다는 구도로 인해 부자들과 복지수혜자들은 차별화된다. 그 결과, 시혜적 복지의 수혜자들은 정부에 대하여는 굴종적이며 수동적인 태도를 강요당하고, 부자들에 대해서는 적개심과 모멸감을 갖게 된다.
반면, 보편적 복지에 있어서는 정부가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 등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납부한 국가의 조세수입을 재원으로 생존에 필요한 기초적인 복지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제공하므로, 복지를 제공받는 국민들에게 있어 복지수혜는 당연한 권리가 되고, 반대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의무가 된다. 그리고 일단 학교급식과 같은 한정된 영역에서라도 보편적 복지가 시행되어 그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면 국민들은 당연히 다른 영역, 예컨대 보육, 교육, 의료, 노후보장 등에 있어서도 정부에 대하여 보편적 복지서비스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현재 국민들 사이에 학교 의무급식 요구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과정의 시초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국가예산에서 방대한 몫을 차지해 온 토건예산과 선심성예산 등 기득권층을 위한 예산을 줄이고 보편복지를 위한 예산을 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정부 복지 권력의 상실로부터 시작하여 기득권층의 권력을 제약하고 끝으로는 그들의 이권을 큰 폭으로 빼앗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정부여당이 진실로 두려워하는 것은 재정파탄이나 노동생산성의 저하가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권력과 이권의 상실인 것이다. 정부 여당의 학교 급식에 대한 광기 어린 극단적인 반감은 보편복지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시초부터 어떻게든 차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의 표현인 것이다.
스웨덴이 보편적 복지정책을 시작했던 1930년대에 국민 1인당 소득은 현재의 우리나라 보다 낮은 1만 달러 수준이면서도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 흡사한 극한적인 양극화와 대규모 실업상태에 있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극화가 극단에 이른 우리나라도 이제 드디어 보편적 복지 요구가 서서히 분출하기 시작했다. 한겨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상'을 묻는 질문에 2004년 5월의 응답자들 중 44.8%가 북유럽식 사민주의라고 답했으나 2010년 5월에는 응답자들의 67%가 같은 답변을 한 것은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보편적 복지는 우리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며, 우리가 진정한 민주국가 시민으로서의 자각 위에서 선거를 통해 선택하기만 하면 머지않은 시기에 순차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도 있는 현실성 있는 국가정책인 것이다. 그리고 국가정책으로서의 보편적 복지는 북유럽 여러 나라에서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사회통합을 촉진하고 복지서비스 제공을 위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여 복지실현과 함께 성장의 원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 이 글은 <비정규노동> 2011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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