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라(가명·27) 씨는 3년 전까지만 해도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맘 중 하나였다. 최 씨는 "낯가림이 심해서 엄마에게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며 "할 수 없이 시간제 돌보미를 고용했지만 억지로 등에 업혀 울면서 나가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할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해서 속상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다 끝나서 기쁘다"는 소회를 밝혔다.
휴학 규정 때문에 '제적' 당하는 20대 대학생 엄마
학교를 졸업한 최 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학생맘 중에는 출산과 육아문제로 복학을 미루다 제적 위기에 처하거나 학교를 자퇴하는 사람도 많다. 갓난아기를 맡길 곳이 마땅치도 않은데다, 갓 태어난 아이만큼은 직접 돌보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친정엄마에게 손을 내밀고 싶지만 그마저 어려운 경우가 많다.
▲ 많은 학생맘이 대학에 모유를 수유할 공간이 없어 수유를 포기하는 상황이다. 사진은 모유를 보관할 수 있도록 냉장고를 갖춘 대학 내 수유 시설. ⓒ프레시안 |
구혜정(가명·23) 씨 또한 2년 휴학 끝에 제적 위기에 처한 아이 엄마다. 이공계열에 입학해 2학년 때 휴학했다가 복학통지서를 받은 구 씨는 "차라리 학교를 중퇴하고 자격증을 취득할지 고민 중"이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2년간의 학교생활이 아까워 미련이 남는다"고 아쉬워했다.
이들은 학교 측이 부모인 학생에게 '출산·육아에 따른 추가 휴학'만 허용해줬더라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 1세 미만 아이를 둔 학생맘들은 '임신 기간 동안 학교에 다니기 힘들다'고 호소하면서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갓난아기만큼은 직접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말한다. 하지만 학교 규정상 임신 기간 2학기를 제외하고 나면 엄마는 아이가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곧바로 복학해야 한다.
젊은 학생 부부, 탁아 시 '맞벌이' 규정에 못 들어 발만 동동
공부하는 아기 엄마 수는 대학원에서 더욱 늘어난다. 연세대학교의 경우 지난해 1학기 대학원 재학생 수는 일반대학원만 5947명이고, 그 중 석사의 48.5%, 박사의 38.4%가 여성이다. 학교 측이 대학원생의 혼인여부나 자녀 수에 관한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아 정확한 파악은 어렵지만, 이 대학 인사팀 관계자는 "6세 미만 자녀를 둔 대학원생이 100명 이상은 있을 것"이라고 봤다. 22개월 된 아이 엄마이자 같은 대학 경영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전경미(30) 씨는 "경영학과 안에서 내가 아는 대학원생 부모만해도 10명은 된다"고 말했다.
구립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때도 학생 부모는 맞벌이 부모보다 조건이 불리하다. 맞벌이 부부는 기초생활수급자, 한 부모 가족, 장애인과 동등하게 입소 대기 순서에서 우선권을 부여받는다. 2순위는 한 부모 조손 가족, 소득하위 60% 이하, 세 자녀 이상 가정의 영유아 등에게 주어지고 나머지는 선착순이다. 하지만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학업 중일 때는 맞벌이로 인정받기 어렵다. 보건복지부가 맞벌이를 '1일 8시간 이상, 월 20일 이상 근로를 하고 근로를 서류로 증빙할 수 있는 근로자 부와 모'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생인 전경미 씨가 여기에 속한다. 다행히도 전 씨는 올해 3월부터 22개월짜리 아기를 학내 보육 시설에 맡길 수 있었다. 전 씨는 "대기명단에 있다가 간신히 들어갔다"며 "학교가 운영하는 시설이라 믿고 맡기지, 그렇지 않았다면 고생하고 고민했을 것 같다"고 안도했다. 전 씨는 "주변의 다른 학생맘들은 보육 도우미를 고용하기도 하지만, 보육 도우미와의 트러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학교에 오면서 오전 9시에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기고 오후 7시에 집에 가면서 데리고 가요. 덕택에 감사하게 다니고 있어요. 아기가 어린이집을 보낼 수 없을 정도로 어릴 때 큰 문제거든요. 학교가 운영하니 믿고 맡길 수 있고, 저도 학교에 있으니까 아기가 아프다거나 급한 일이 생겨도 수시로 연락받고 바로 갈 수 있어서 좋아요."
▲ 연세대학교 유진 하이마트 어린이집. 정원의 절반가량이 대학원생의 자녀로 구성됐다. ⓒ프레시안 |
학생맘 위한 보육시설 갖춘 대학 턱없이 부족
그러나 전 씨는 예외적인 사례다. 대학 중에는 교직원 자녀만 다니는 보육시설조차 갖추지 않은 곳도 많다. 현행법상 '상시 여성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하지만, 서울 유명 사립대학 10군데 중 직장보육시설을 갖춘 곳은 한두 군데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학 내 설치된 보육시설에서도 '근로자'가 아닌 대학원생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대학원생 자녀가 다닐 수 있는 직장보육시설을 갖춘 대학은 서울 안에서도 서울대와 연세대 정도밖에 없다.
서울대학교는 '공부하는 부모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1998년부터 어린이집을 운영해왔다. '자녀의 보육을 통해 대학원생의 연구 활동과 학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설립 취지다. 입소 대상은 같은 학교 대학원생과 교직원의 자녀로 만 1세~초등학교 3학년인 아동이다. 이곳에 맡긴 어린이 190여 명 중 절반 가까이는 대학원생 자녀다. 학교 내 보육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 10월에 대기자 수만 430여 명, 평균 대기시간이 2년에 달하자 이 학교는 부설 어린이집 확장 신축공사에 착수했다.
연세대학교도 대학원생 보육 지원에 첫걸음을 뗐다. 교직원 자녀만 입학대상으로 삼다가 유진 그룹이 대학 내에 유진 하이마트 어린이집을 기증하면서 올해 3월부터 새로 대학원생 자녀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곳에 입소한 만 6세 미만 어린이 80명 중 40~50%가 대학원생 자녀로 구성됐다.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발걸음을 돌려야했던 학생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연세대학교 학부생은 "학교에 보육시설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대학생 자녀도 지원 가능한지 문의했으나 '대학생 자녀는 수요가 없다고 판단해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답변을 듣고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 직접 아기를 데리고 학교에 간 적도 있었다"며 "아기 보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서 우울하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양육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공부하고 싶다"
전 씨는 "회사 생활을 했을 때는 퇴근 후에 회사 일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학생이라 집에 가서도 과제하고 공부하고 논문도 읽어야 한다"며 워킹맘과는 또 다른 학생맘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도 육아와 학업이 계속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대학 내 보육시설도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전 씨는 현재 둘째를 임신한 상태다. 아이가 돌이 지날 때까지 다시 친정과 시댁에 손을 벌려야 한다. 유진 어린이집 신윤승 원장은 "대학원생들의 문의가 많이 오지만 아직 만 0세 반과 유치반이 없어서 학부모들이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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