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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국회 동의안, 번역 오류…"원본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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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국회 동의안, 번역 오류…"원본과 달라"

[MB가 보고하지 않은 FTA] 서로 다른 원산지 판정 기준

여기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있다. 한·EU(유럽연합) FTA이다. 이것은 지금 여의도 국회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 10월, 이를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 유럽연합에 비준을 하기 위해서다.

만약 국회가 동의를 하면 법적으로 어떻게 되나? 하나의 동의안이 아니라, '법률'의 지위를 획득한다. 그 안에 담긴 내용에 정부와 법원이 구속된다. 비준동의안에 담긴 하나하나의 낱말이 다 중요하다. 게다가 골목 시장, 미용실, 여행사, 삼겹살, 광우병, 자동차 범퍼, 전기 다리미 등 시민의 생활 전반을 규정한다. 이렇게 중요한 비준동의안이 영어본과 다르다.

서로 다른 원산지 판정 기준

첫째, 원산지 판정 기준에서 비준동의안은 영문본과 다르다. 원산지 기준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FTA에는 원산지 판정 기준을 정해서, 그 기준에 맞는 경우에만 상대국 수출 제품에 '원산지 지위'(originating status)를 부여한다. 이 원산지 지위를 부여받지 못하면 FTA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글본과 영문본이 다르면 원산지를 판정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한·EU FTA에는 '사용될 수 있는 비원산지 재료의 최대 가치'라는 기준이 있다.(부가가치 기준) 자동차를 예로 들어 보자. 한국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 재료와 부품을 중국에서 수입해서 한국에서 조립생산 할 경우 모든 한국산 차를 유럽이 한국산으로 판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경우 중국산 부품의 가치가 차 공장도 가격의 45%를 초과하면 한국산 자동차로 판정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수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국회 제출 비준동의안의 661면(일련 면수 기준)를 보면 완구류(세번기준 9503)의 경우 비원산지 재료의 최대 사용 가치가 '40%'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의 영문본에는 '50%'로 되어 있다.

그리고 비준동의안의 왁스류(3404) 원산지 판정 기준도 영문본과 다르다. 동일한 호(heading)의 비원산지 재료의 최대 사용 가치가 '20%'로 되어 있으나 유럽연합의 영문본에는 '50%'로 되어 있다.

이 둘 중 과연 어느 것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유럽연합 의회는 영어로 된 협정문을 통과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국회가 이명박 대통령이 제출한 한글본을 동의한다면 서로 다른 두 개의 협정문이 동시에 등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바로 잡아야 한다.

이를 방치할 경우 문제는 한국이 더 심각하다. 유럽에서는 한국과의 FTA는 반쪽자리 법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 이사회는 작년 8월, 유럽 시민들이 한국과의 FTA를 근거로 해서는 유럽의 법원에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결정을 하였다.(유럽 이사회 결정 08505/2010) FTA는 유럽에서는 법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반쪽자리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바로 법률이 되어 버린다. FTA의 원산지 판정 기준은 한국이 영국산 완구와 왁스에 관세를 어떻게 매길지를 결정하는 구속력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한글본과 영문본 중 어느 것이 맞는지를 바로 잡아야 한다.

'최혜국 대우 면제 목록'에서의 '역진방지 조항'

둘째는 더 심각하고 어렵다. 한·EU FTA에는 '최혜국 대우' 조항이 있다. 한국이 장래의 FTA에서 제 3국에 부여할 혜택을 유럽에게도 부여하도록 했다.(7.8조, 7.14조) 다만 예외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최혜국 대우 면제 목록'(Annex 7-C)이다. 이 목록에 해당할 경우, 최혜국 대우 조항에도 불구하고 제 3국을 더 우대할 수 있도록 했다.

바로 이 면제 목록에서 비준동의안은 영문본과 다르다. 대한민국의 '최혜국 대우 면제 목록'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어렵지만 중요한 내용이다. 비준동의안 388면의 해당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옮긴다.

"대한민국은 자신이 당사자인 경제통합협정에 기재된 특정 규정으로부터 도출되는 차등 대우를 국가에 부여하는 모든 조치를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권리를 유보함. 대한민국은 경제통합협정에 따라 개정이 그 협정의 시장접근 내국민대우 및 최혜국 대우에 관한 의무와의 합치를 감소시키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모든 조치를 개정할 수 있음."

여러 번 읽어도 그 의미를 알기 어렵다. 시민이 읽어서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법은 법이 아니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게다가 그 영문본은 다르다. 아래가 그것이다.

"Korea reserves the right to adopt or maintain any measure that accords differential treatment to countries deriving from a specific provision found in economic integration agreements to which Korea is a Party and according to which Korea may amend any measure only to the extent that the amendment does not decrease the conformity of the measure, as it existed immediately before the amendment, with obligations on market access, national treatment and most-favoured-nation in these economic integration agreements."

비준동의안에는 없는 것이 영문본에는 있다. "as it existed immediately before the amendment(개정 직전에 존재하였던 조치의 합치성)"가 그것이다.

이렇게 달라도 되는 것일까? 위 조항 자체가 워낙 수수께끼와 같지만, 여기서는 지면상 하나의 문제만 제기하자.

한국이 맺은 제3국과의 FTA에서 한국으로 하여금 제3국에 '100'을 주라고 규정했다고 하자. 그래서 한국은 종래 '80'으로 되어 있던 것을 '100'으로 개정했다. 그런데 한국이 그 후에 스스로 '120'을 주는 것으로 개정했다고 하자. 이 경우, 한국은 이를 다시 애초의 '100'으로 환원할 수 있을까? 비준동의안에 의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100'과의 합치상태, 곧 '협정의 의무와의 합치'를 감소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문본에 의하면 불가능하다. 영문본에는 '개정 직전에 존재하였던 조치의 합치성'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므로 환원 직전에 존재하였던 '120'의 합치성을 감소하는 개정을 할 수 없다. 이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자발적으로 더 자유화한 조치를 되돌릴 수 없게 하는 것을 '역진 방지 조항'(래칫)이라고 한다. 이는 나프타(NAFTA) 식의 대표적인 독소 조항이다.

50개 이상의 조항에서 'any'의 번역 누락

셋째, 비준동의안은 꼭 번역해야 하는 원문의 'any'를 50개가 넘는 조항에서 누락했다. 법에 '일체', '모든', '어떠한'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그 해석과 적용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공무원에게 '일체의'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것과 단순히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다를 것이다. '모든'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것과 단순히 권리와 의무를 그렇게 하는 것은 같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 1989. 12. 12. 선고 89누6327 참조) 그러므로 '중요한 법적 용어 앞에 있는 'any'만큼은 반드시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비준동의안은 50개 이상의 조항에서 그 번역을 누락했다. 예를 들면 부속서 2-C 제9조 제 1항(비준동의안 70면)를 보면, 한국은 자동차 작업반에 자동차 무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를 통보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영문 원본은 그냥 '조치'가 아니라 'any measure', 곧 '일체의 조치'이다. 또한 제 8.2조 제 1항(동의안 400면)을 보면, 투자에서 생긴 '이익'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것을 제한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영문 원본은 그냥 '이익'이 아니라, 'any profit', 곧 '일체의 이익'이다.

법 조항에 '모든', '일체의'와 같은 용어가 있는 경우, 그것이 없는 것과는 그 해석과 적용에서 다를 수 있다. 그런데도 '일체의 조치', '모든 권리', '모든 절차', '일체의 조건', '모든 의무', '모든 사안', '모든 문제', '모든 기준', '모든 차이', '어떠한 이익', '어떠한 분쟁'', '어떠한 변경'과 같은 중요한 법률 용어에조차 '일체의', '모든', '어떠한'을 누락했다.

▲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FTA 서명식에서 호세 마누엘 바로소 EU 집행위원장(오른쪽), 헤르만 판 롬파워 유럽연합 상임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FTA보다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

나는 지금 한·EU FTA 비준동의안 영문본의 모든 'any'를 다 번역하라는 것이 아니다. 외국인 토지 취득 요건에서 'or'를 '그리고'로 잘못 번역한 것이라든지, 금융서비스 부속서에서 'in any event'를 아예 번역하지 않은 곳 등은 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아예 원산지 판정 기준이 서로 다르고, 해석에 꼭 필요한 중요한 핵심 문구와 단어를 50개 조항 이상에서 누락한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이 법을 만드는 국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말하고 싶다. FTA 이전에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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