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발맞춰 정부도 이날 오전 물가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물가 불안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정부가 분명히 한 셈이다.
그러나 이미 시기를 놓친 기준금리 인상이 당장 폭등하는 물가를 안정시킬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정부의 물가대책도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준금리 왜 올렸나
▲한은의 이번 기준금리 인상은 부채 구조조정을 미룬 가계에는 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
이례적으로 연초에 기준금리를 올린 이유로 김 총재는 "금통위는 현재의 물가상승 압력과 일반 경제주체 및 전문가의 인플레 기대 심리가 높아져 어느 정도 관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세계 경제를 보더라도, 특히 신흥 경제권은 이런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상 요인은 단연 물가불안이다. 농수산물 가격이 지난해 하반기 급등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불안한 행보를 보이는데다, 전셋값 상승, 공공요금 인상 등 악재가 올 초부터 겹치는 와중이었다. 한은이 더 이상 현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석유류 및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지난달 3.5%에 이르렀다"며 "앞으로 경기상승이 이어지고 국제원자재가격이 오르면서 물가상승압력이 지속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도 "전세가격 상승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택매매가격도 지방에서는 오름세가 지속되고 수도권에서도 상승 움직임이 나타났다"며 최근 물가불안이 기준금리 인상의 주요인이었음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8월만 해도 배럴당 71.9달러에 거래되던 원유(서부텍사스중질유) 가격은 지난 12일 현재 배럴당 91.9달러까지 치솟았다. 불과 5개월 사이에 27.8%가 뛰었다. 이 때문에 국내 석유류 가격상승률도 작년 12월 한달 사이에만 전년동기대비 8.3%가 치솟는 등 물가를 크게 자극하고 있다. 같은 달 농산물 가격상승률은 무려 26.5%에 달했다.
이는 한편으로 한은의 안이한 정세판단을 증명하는 꼴이다. 김 총재는 농산물 가격 불안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꾸준히 "농산물 가격 상승은 일시적 요인"이라며 기준금리 인상을 미뤄왔다. 그러나 지난 9월 32.7% 급등했던 농산물 가격상승률은 이후 내내 20% 이상의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 미만으로 내려가지 않는 가장 주된 요인이다.
정부도 물가대책 발표
한은에 발맞춰 정부도 이날 물가안정 대책을 내놨다. 관세를 인하하고 공공요금은 동결하는 게 핵심이다.
보다 세부적으로 리터당 주유값이 크게는 일반주유소보다 70원 정도까지 낮은 셀프주유소로 업자가 전환할 경우 소요비용 융자지원을 검토키로 했다. 또 생필품 제조사에는 할인 기획상품 출시를 유도하고, 원재료에는 할당관세 추진을 확대 적용키로 했다.
지방공공요금 안정을 위해 인상시에는 원가상승요인을 공개하도록 하고 요금 안정에 대한 특별교부세를 지자체에 지급한다고 밝혔다. 대학등록금 동결 유도, 석유가격 점검반 운영, 공공임대주택 입주 조기화 등의 대책도 내놨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제원자재 가격, 부동산 시장, 유럽 재정위기, 북한리스크 등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다"며 "최근 물가 불안요인이 확대되고 있어 선제적 대응이 요구되고 있으며 올해 물가여건은 당초 전망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유가 안정 유도를 위해 정부는 셀프주유소뿐 아니라 대형 할인마트 주유소 진출도 독려한다고 밝혔다. 리터당 휘발유 가격이 정유사 브랜드 주유소 대비 셀프 주유소가 29원 싸고 자가 폴 주유소가 33원 싼데, 특히 대형마트 주유소가 76원 싸다는 이유다.
가뜩이나 대형할인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확대되는 마당에, 정부가 할인점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 가능한 상황이다.
▲13일 오전 경기도 과천정부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열린 관계부처 합동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 정책은 물가를 잡기 역부족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부의 올해 정책기조가 '5% 성장'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뉴시스 |
효과 미지수…"원화절상 용인이 최선"
무엇보다 정부 대책의 약발이 먹힐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게 문제다. 대부분 확실한 효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대책인데다, 특히 민간기업에 할인제품 생산 유도 등의 대응은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던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나 먹히던 '철 지난'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어디까지나 기존에 나왔던 정부의 민간 '팔비틀기'로 물가를 잡겠다는 격"이라며 "정책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 정도 통제정책으로 경제가 관리되는 규모는 이미 진작에 넘어섰다"며 "1980년대에도 먹히지 않던 정책을 지금와서 내놓은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역시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통화정책은 일반적으로 최소한 3~6개월 가량은 지나야 효력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기준금리를 올렸다한들 여름이 가까워져야 유동성 흡수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 부실화 문제만 더 커질 수 있다. 늦어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던 지난해 말에 기준금리를 올리고, 효과적인 정부 차원의 대응책이 지금 나오는 게 적절했다는 '실기 논란'이 여전히 불거지는 까닭이다.
전 교수는 "센터포워드 자리에 있던 골키퍼가 이제야 본업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뒤늦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에 환영의 뜻을 보이면서도 "이번 기준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잡기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당장 가장 중요한 대응책으로는 결국 원화절상이 최선이라는 평가다. 현재 물가불안의 주요인이 원당, 밀 등 수입 원재료 가격에 상당부분 기인하는만큼 원화가치를 높여 수입가격 하락을 유도하는 게 맞다는 말이다. 일단 공급부문 인상요인부터 줄여나가는 게 시급한 상황이란 인식인 셈이다.
전 교수는 "해외 원자재가격 상승은 총수요 조절(금리인상)로 통제하기 어렵다'며 "달러화 표시 해외물가 상승이 지속되는 마당이라 원화절상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수출을 우려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내수가 죽고 수출이 활황이고, 우리 기업이 현 수준 환율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며 "환율 문제를 시장에 맡겨야 하는데, 정부는 아직도 달러화 유입 통제에 정책기조를 둔 것 같아 걱정"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결국 정부와 한은의 이번 물가대책은 여전히 재정의 상반기 조기집행으로 대표되는 총수요 진작책을 펴는 와중에 오르는 물가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과 일부 정책수단으로 잡아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전 교수는 "타는 불에 장작을 더 떼는 동시에 물을 끼얹는 식"이라며 "정책의 일관성이 없는 상황이라 경제주체들의 혼란만 커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장반응은? 정부와 한은이 동시에 물가대응 방안을 내놓은 이날(13일) 시장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전한 때 장중 2100선까지 돌파했던 코스피지수는 오후 1시 15분 현재 2090선 언저리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매수기조가 강해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 채권가격은 급락 양상이다. 5년만기 국고채 호가는 전날보다 0.90%포인트 급등한 4.30%에 거래되고 있다. 움직임이 둔한 10년물도 0.06%포인트가량 오른 채 거래되고 있다. 재벌기업들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은 수출기업에 부담이 되고 서민 경제에도 짐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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