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민족주의
민족주의와 자본주의의 관련을 가장 중요하게, 또 끈질기게 주장해 온 것은 맑시스트들이다. 이것은 맑스 이래 지속되어온 전통이다. 그들은 민족주의를 자신의 상품 시장을 확보하려 하는 흥기하는 산업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로 보았다. 또 그것을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지배의 도구로 보았다.
따라서 민족도 부르주아계급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감추기 위해 발전시킨 복합적인 이데올로기적 상징물 이외의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민족주의와 민족이 모두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인 만큼 그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속류 맑시즘적 주장은 실제와 잘 맞지 않으므로 지금에 와서는 포기된 지 오래다. 실제로 민족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며 모든 계급과 관련을 맺을 수 있다. 그래서 민족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맑시즘의 거대한 역사적 실패'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민족주의 이론을 연구하는 맑스주의자들을 보면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실제로 그 중요한 인물의 한 사람인 홉스봄의 경우 민족주의가 산업혁명, 자본주의와 관계있다고 말하고는 있으나 그것들 사이의 구체적인 연관관계에 대해서는 별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민족적 문제는 정치, 기술, 사회변화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고 '민족은 특수한 종류의 민족국가, 또는 그것을 확립하려는 열망의 한 기능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기술적 경제적 발전의 특별한 단계의 맥락 속에 존재한다'는 정도의 이야기뿐이다.
그 외에 맑시즘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태도라면 민족과 민족주의를 위에서의 시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 즉 일반인들의 가정, 희망, 요구, 갈망, 이해관계로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민족과 민족주의를 지배엘리트와 국가가 추구하는 사회공학의 산물로 본다는 것이다. 18, 19세기라는 급격한 사회변화의 시기에 과거의 전통이나 제도는 사회적 응집성을 계속 유지할 만큼 유연성이 없다.
따라서 이 기능을 위해 새로운 제도나 운동, 이념이 위에서부터 만들어져야 하고 그래서 전통조차 인위적으로 발명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민족주의를 지배계급의 도구로 보는 맑시즘의 전통적인 태도 위에 서 있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 정도이지 더 진전된 이야기는 없다.
베네딕트 앤더슨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민족주의의 흥기를 종교적 세계관과 왕권의 약화와 함께 일어난 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들 대신 삶의 의미와, 사후에도 생명이 지속될 것이라는 감각을 가져다 줄 세속적 매개체가 필요해졌고 그것이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세 개의 매우 특수한 역사적 힘들이 만남으로써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인쇄기술의 발명, 자본주의의 발전, '인간 언어의 숙명적인 다양성'이 그것이다. 인쇄자본주의는 처음에는 라틴어 책의 시장을 위해 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포화되자 자국어 시장에 눈을 돌렸고 그리하여 영어나 불어와 같은 주된 인쇄언어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자국어들을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대중이 점차 형성됨으로써 민족의 상상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은 소설과 신문이다.
그의 주장에 그럴듯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약점은 실증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쇄자본주의가 어떻게 민족과 민족주의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설명이 없다. 그저 그럴 것이라는 개연성을 제기하는데 그칠 뿐이다. 이것은 민족주의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는 그의 이해할 수 없는 단정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맑스주의적 시각에서 20세기 후반에 가장 흥미 있는 주장을 편 사람은 톰 네언이다.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맑스주의 사회학자로 1977년에 <영국의 파괴>라는 책을 펴냈다. 그가 민족주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한편에서는 2차대전 이후 제3세계 많은 곳에서 나타난 반식민주의적 민족주의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1960, 70년대에 스코틀랜드를 비롯한 서유럽 여러 나라나 캐나다에서 나타난 종족적 분리주의 운동과 관련이 있다. 그것들을 맑스주의적 시각에서 설명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그는 민족주의가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현재 사이의 세계 정치경제의 어떤 특징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가 민족주의를 근대의 산물로 보고 있고, 또 세계사의 맥락에서 접근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그는 민족주의가 산업화의 단순한 동반자는 아니라고 믿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고르지 않은 발전'의 결과였다. 이 불균등발전 테제는 겔너의 생각을 받아들인 것이나 안드레 프랭크나 이매뉴얼 월러스틴 같은 종속이론가들의 영향도 함께 받은 것이다.
그는 세계 자본주의경제의 발전과정에서 자본주의의 명령에 따라 국가의 교육적 틀에 의해 진행되는 근대화는 주변부 지역으로 항상 균등하게 확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중심부로부터 주변부 지역에 대한 지배와 착취가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불균등한 확산에 의해 주변화하고 무력하게 된 주변부의 엘리트들은 싸우지 않고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주변화된 민족적(또는 민족적이 되려는) 중산계급은 대중에게 향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리하여 새로운 민족적 연대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가지고 있는 기형적으로 불균등한 성격의 강제된 부산물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세계로 급격하게 이식된 사회역사적 대가가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이 과정은 변증법적이다. 자본주의의 주변부 국가에서 나타난 민족주의가 중심부 국가들에게도 반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민족주의가 한번 압도적인 기준이 되고 세계 정치의 새로운 기상도가 되면 중심부 국가들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경제적 성취를 방어하기 위해서다. 결국 장기적으로 볼 때 중심부 지역의 민족주의는 주변부 지역의 민족주의와 마찬가지로 필연적이다.
이 점에서 그는 민족주의가 진보적인지 퇴영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각 사회들이 민족주의를 통해 산업화, 번영, 평등을 추구하려 하나 그 과정에서 민족적 영웅이나 민족신화, 민속적 자원에 의존함으로써 퇴영적 요소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민족주의는 건강하기도 하고 병적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그는 전통적인 맑시즘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간다. 맑시즘은 항상 사회계급이 민족적 차이보다 중요하다고 믿어왔는데 자본주의의 불균등한 확산은 기본적인 모순이 계급투쟁이 아니라 민족사이의 투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맑시즘은 세계의 고른 발전이라는 그 계몽사상적인 기초를 제거하고 유럽중심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진정한 세계이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것을 보면 그를 과연 맑시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 지도 잘 알 수 없다.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나 네언의 주장에도 허점은 많다. 그는 유럽 선진지역의 민족주의들을 주변부지역 민족주의에 대한 반응으로 볼 뿐 그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발전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유럽의 선진지역에서 가장 먼저 발전했으며 이때의 유럽 민족주의들을 경제적 착취나 후진성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또 민족주의를 제국주의적 착취의 결과로 보는 것은 2차대전 이후 많은 제3세계 민족주의들을 설명하는 데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유럽의 주변부 지역에도 잘 들어맞지 않는다. 강력한 민족주의를 발전시킨 스페인의 카탈로니아나 바스크 지방은 경제적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발전한 곳이었다. 19세기 후반 합스부르크왕국에서 최초로 강력한 민족주의를 발전시킨 마쟐족의 헝가리는 후진적이지도, 착취 받지도 않은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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