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연평도 서남단에 사격했다는 것이 북한의 반대 방향으로 쏘았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으나 사실은 그 반대다. 연평도 서남쪽이 바로 북한 해안이다. 즉 북한 해안 북방한계선(NLL)으로 사격한 것이고, 통상적인 훈련이라고 하지만 연평도에 자주포가 증강된 것이 최근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년에 비해 그 강도와 의미가 사뭇 다르다. 지난 11월 23일에도 북한 해안 쪽으로 4시간 20분 동안 약 3960발의 폭탄을 발사하는 대규모 사격훈련을 하다가 남북간에 교전이 발생했다. 천안함사건과 북한의 8월초 포격에서 포탄이 NLL을 월선한 데 이은 우리의 대응훈련은 명백히 무력시위를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이고 북한은 이를 거부한 것이다.
과연 통상적 방어훈련이었나
지금은 서북해역에서는 남북간 사소한 군사행동이 곧바로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정세가 전개중이다. 그만큼 이 해역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백령도에서 평양까지는 불과 90km밖에 안되지만 서울까지는 200km다. 우리나라 영토 중에 서울보다 평양이 더 가까운 곳은 서북도서(島嶼)밖에 없다. 만약 전쟁이 벌어지면 이들 섬은 꼼짝없이 독 안에 갇히는 비대칭적 대치구도다. 서북 5도는 작은 섬인 데 반해 코앞에 마주하는 북한은 광활한 육지다. 따라서 여기에 아무리 많은 야포와 미사일을 증강한다 하더라도 지형적 불리함이 극복될 수 없다. 그래서 이제껏 서북 5도는 섬 방어를 위한 필수전력을 최소한으로 구비하되, 서북해역의 방어는 현장의 군사력이 아니라 후방에서 지원하는 지·해·공 합동전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국방부와 합참이 수립한 '국지도발대비계획'을 비롯한 작전계획, 군사지침은 일관되게 현장의 군사력보다 후방 지원전력으로 섬을 방위한다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왔다. 여기에는 평택의 2함대사령부에서 지원하는 해상 함포와 오산 및 군산기지에서 지원하는 전투기 등 공중지원 전력이 주축을 이루게 된다. 현장의 전력은 단지 북한군의 섬 상륙을 차단하는 수준에 국한되었던 것이다.
이들 섬에 배치된 우리의 포병전력과 북한의 해안 포병전력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은 아무래도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명박정부 들어와서 구체적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1년간 서북해역에서 남북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 핵심 변수는 북한의 해안포 위협의 증가였다. 올해 3월 26일 오후에 천안함이 백령도 서남단 해안 쪽으로 접근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바로 백령도를 엄폐물로 삼아 북한 해안포로부터 회피기동을 하기 위해 그 항로를 선택했고 거기서 천안함은 최후를 맞은 것 아니었는가. 적어도 최근 2~3년간 북한이 이 지역에서 증강한 포만 100문이 넘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고 각종 장사정포와 방사포까지 수시로 이 지역에서 출몰하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바야흐로 서북해역의 군사정세가 근원적으로 변한 것이다.
서북해역 군사정세의 변화
북한은 이미 올해초 자신의 군사적 잇점을 최대한 활용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북한 해안 포병의 사격거리를 NLL을 기점으로 점점 더 서남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계획이다. 1월 27일에 북한의 해안포 사격은 정확히 NLL 이북에 떨어졌다. 8월 9일의 사격은 130발 중에 10발이 NLL을 넘어왔다. 그리고 문제의 11월 23일에는 170발 전부가 NLL을 넘어와 연평도와 인근 해상에 떨어졌다. 남북관계와 군사정세를 예의주시하면서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포의 사격거리를 연장해온 이 도발의 양상은 대단히 체계적이며 치밀하다. NLL을 부정하고 이 해역을 분쟁수역화하기 위한 준비된 군사기획이라고 보인다. 최근 우리 군 정보기관은 북한의 다음 포격이 더 서남쪽, 즉 강화도 방향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필자가 12월초 방문한 백령도에서도 주민들은 이렇게 악화된 안보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포 사격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듣던 주민들은 이제 천둥소리에도 놀라 벌떡 일어선다. 주민 전체가 집단적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긴장이 고조된 바다에 조업이 통제되고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섬사람들은 생계도 막막해졌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명박 대통령은 11월 25일에 서북도서에 "세계 최강의 무기를 배치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후 연평도에 155mm K-9 자주포와 227mm 다련장포(MLRS)가 증강 배치되었다. 얼마나 급했는지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한동안 민가와 해안도로에 이 포들은 노출된 채로 방치되기도 했다. 작은 섬 어디에 그 많은 무기를 놓아둘 것인지 군사적 고려도 없이 전력 증강부터 하고 난 다음이었다. 수도권 방위에 투입된 야포와 대포병레이더 등 핵심전력을 서북도서로 증강 배치하느라 이번에는 수도권 방위에 공백이 발생했다. 더욱 치명적인 공격무기가 서북도서에 배치될 것이라는 전망이 청와대로부터 연실 확산되기 시작했다.
'서북도서 요새화'라는 위험한 발상
서북도서에 자체 방어를 위한 야포 전력뿐 아니라 치명적 공격무기를 증강시킨다는 청와대의 발상은 어업기지로서 평화적으로 관리되던 서북도서의 경제적 가치를 포기하고 군사적 기능에 치중한 전략기지로 성격을 변환시킨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평양 방호(防護)의 관문인 해주에 또다시 우리 도서를 겨냥한 공격무기를 증강할 것이고, 이는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와 유사한 새로운 위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러한 군사적 긴장이 어떻게 귀결되든 간에 적어도 서북도서에서는 이제 주민이 평화롭게 조업하고 관광객이 오가는 일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이 위험한 시도에 대해 12월 3일에 신임 국방장관 내정자가 "첨단무기 배치는 군사적으로 옳지 않다"며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그 다음으로 이대통령은 12월 7일 국무회의에서 "서북도서의 군사적 요새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요새가 된다는 의미는 모든 군사장비와 시설이 지하화되며 주민들도 대피소에서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을 갖춘다는 뜻이다. 식량, 급수, 에너지, 통신이 다 갖춰진 대규모 지하시설이 필요하고 군 장비를 보호하기 위한 특수시설이 들어서야 한다. 2차대전 이후 소련의 핵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핀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대규모 요새를 건설한 바 있다. 대량 핵전쟁에 대비하다보니 그 규모나 시설은 가히 천문학적이었다. 냉전이 해체되고 나서도 없애지 못하다가 지금 핀란드에서는 지하요새를 축구장, 영화관,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청와대가 흉내내겠다고 한 대만의 금문도(金門島, 진먼타오)도 마찬가지다. 동서 20㎞, 남북 길이 5~10㎞인 섬 전체는 땅속으로 폭 1m, 높이 2m의 지하통로가 2㎞ 이어진 민간대피소가 12곳이나 건설돼 있으며 긴급 구호장구와 비상식량 등을 갖추고 있다. 각 대피소 길이를 연결하면 무려 10㎞나 되는 갱도가 거미줄처럼 도시 곳곳으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지하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다.
▲ 군의 연평도 해상사격훈련이 실시된 20일 방공호로 대피해 있던 연평도 주민들. ⓒ뉴시스 |
즉흥적 처방 남발하는 군사 아마추어리즘
이런 식으로 서북 5도를 요새화하겠다는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 혼자뿐이다. 현재 서북 5도에 낙후된 대피시설 26곳을 보수하는 예산만 536억이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냉동창고나 다름없는 이 대피소를 고쳐달라는 것이지 수천억원, 어쩌면 수조원이 들어갈지도 모르는 요새화라는 실현 불가능한 망상이 아니다. 우리가 요새가 없고 무기가 없어서 이렇게 도발을 허용하는 것이 아닐진대 청와대의 즉흥적 처방은 서북해역의 평화적 관리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쪽으로 계속 치닫는 중이다.
우리 군의 12월 20일 연평도 사격훈련이 북한의 대응 없이 끝나고 일부 언론은 "실추된 안보의 자신감을 회복했다"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제는 근원적으로 변해버린 서북해역의 군사정세를 마주하면서 우리는 이 해역의 평화적 관리를 위한 어떤 비전과 계획, 그리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는가? 군사적 아마추어리즘으로 즉흥적 대안이 남발되는 이 위험한 위기관리 속에 서북해역의 평화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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