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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大學'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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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大學'은 사라졌다"

[기고] 세종대에서 벌어지는 '소리없는 구조조정'

지금 세종대학교에서는 소리없는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2009년 7월, 신임 총장이 부임한 뒤에 대학본부는 세종대학교 생활협동조합(세종대 생협)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고 그해 12월 식당과 매점을 포함해 학교내 복지사업 전체를 공개입찰로 업체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반발했고, 외부의 지역단체와 생협전국연합회의 반대성명이 이어지며 반대여론이 형성되자 대학본부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듯했다.

그러다 지난달 19일 대학본부는 "생협과의 복지시설 관리 및 운영위임 계약을 해지하며, 교내 복지시설 운영권을 신속히 넘기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공문을 생협에 발송했다.

▲ 지난달 19일, 세종대 본부 측이 생협에 보낸 공문.
지난 9월 세종대 학생 5185명이 생협을 지지하는 서명을 했지만 대학본부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세종대는 학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1년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비영리기관인 생협을 퇴출시키려는 것일까?

지난 8월 대학본부가 생협에 보낸 공문에서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그 공문에서 대학본부는 식당을 제외한 전 매장 운영권과 그동안의 적립 잉여금을 대학으로 넘기라고 요구했다. 즉 운영권과 잉여금이 문제이고, 이는 대학의 관심이 사업이익에 있음을 뜻한다. 그동안 생협이 운영해온 복지시설을 외부의 민간기업에 맡기면, 대학본부가 더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듯하다.

외부업체가 들어와 생협과 경쟁하면 서비스가 더 나아진다는 대학본부의 말은 이런 이해관계를 감추려는 궁색한 논리이다. 대학이라면 마땅히 대학생들이 값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누리도록 해야 할텐데, 세종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제 아무리 민간기업의 운영체계가 훌륭하더라도 기업의 특성상 이익을 보려 할텐데, 그런 기업이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생협보다 학생들에게 더 이로울리 없다. 더구나 생협은 조합원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때문에 일반기업과 달리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도 갖추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불리하지만 민간기업이 비싼 가격으로 많은 수익을 본 뒤에 일정 액수를 발전기금을 내놓으면 재단과 대학본부에게는 이익이 될 것이다. 결국 학생들의 돈으로 학교만 배불리는 셈이다.


▲ 세종대 생협은 지역사회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이는 즉흥적인 선택이 아니다. 세종대학교가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한 2009년 자체평가 결과보고서를 보면, 적립금 598억 원(총 자산의 17.4%) 중 건축기금과 발전기금을 포함한 발전재원이 2008년도 말 534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런데 발전재원에서 발전기금의 비중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지속성과 성장성을 높이기 위해 모집을 활성화하고 기부금 위탁자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이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즉 발전기금의 확충을 위해서는 더 많은 학내공간과 서비스를 민간업체에 위탁하고 그 대가로 기부금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세종대학본부가 생협을 내모는 이유를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이는 사립대학의 지배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2005년 비리로 물러났던 주명건 전 세종대 이사장의 측근들이 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면서 옛 재단의 복귀를 반대하던 교직원들이 보복성 인사조치를 당했고, 학보사의 기사가 검열을 받는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관련 기사: <위클리 경향> "'상지대 사태' 솔로몬의 지혜는"). 학내비리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과 학생회의 합의로 설립된 세종대 생협이 이런 분위기에서 학교 밖으로 내몰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더구나 지난 3월 세종대 생협은 대학 생협 최초로 학생 이사장을 선출하기도 했으니, 재단과 대학본부에 더욱더 부담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세종대에서만 벌어지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대학생협이 설립되어 있는 22개 대학의 학교발전계획안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대학특성화나 글로벌화, 전문인력양성 등의 목적을 내세워 중앙의 기획단위가 강화되면서 대학내의 의사결정구조가 비민주적으로 변하고 있다. 학생과 교직원의 참여가 실질적으로 배제되고 재단이나 대학본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발전계획들이 하나같이 인프라 혁신과 첨단화를 내세운 캠퍼스의 신축과 재건축 등을 내세우고 있다(이런 공간건축을 명분으로 전국 325개 대학이 2009년 총 10조833억9346만원에 이르는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다). 또한 대학들은 발전기금 모금과 재정 확충을 내세워 산학협력 강화, 재정수입의 다양화, 수익사업의 추진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방향은 대학연구의 사유화와 독점, 시장논리에 맞춰진 학사운영이나 행정, 학내노동의 외주화와 캠퍼스의 상업화 등을 불러올 것이다. 따라서 세종대에서 벌어진 일과 비슷한 일들이 다른 대학에서도 똑같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진리의 상아탑은 무너진 지 오래이다.

그런데도 정부정책은 이런 대학의 변화를 조절하기는커녕 부추기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운영의 자율화라는 명목으로 대학에 포괄적인 권한을 이양하고 정부지원금의 용도제한도 완화시켰다. 교육용 재산을 수익용 재산으로 전환시킬 수 있게 허용하고 민자유치나 연·기금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교원인사에서도 재단이사회의 권한을 대폭 늘리고, 세종대나 상지대의 사례에서 보이듯 비리재단의 복귀도 허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대체 대학이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이 재단과 대학본부의 소유물이 아니고 교직원과 학생도 학교운영의 주체라면 마땅히 대학의 발전방향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할 텐데 지금 대학의 모습은 그와 다르다. 초·중·고등학교에 학교운영위원회의 구성이 제도로 보장된 반면, 과거 민주주의의 보루였던 대학은 비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로 뒷걸음질치고 있다. 지적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시민으로의 성장도 보장하지 않는 대학이 '大學'이라 불릴 이유가 없다.

소비자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들이 대학생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실제로 돈을 내는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학생을 둔 학부모들이 대학의 운영에 관심을 좀 가져야 한다. 그래야 똑똑한 소비를 할 수 있고 힘들게 번 돈을 엉뚱한 곳에 갖다 바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아이가 다닐 대학에 대학생협이 있는지 없는지, 대학의 발전계획은 대학의 목적과 어울리는지, 한번 따져볼 일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학교 게시판에 글을 남기거나 학교로 전화를 걸어 소비자로서 적극적인 의견을 내야 한다. 그래야 대학이 대학으로 바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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