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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에이즈 환자들이 신약 '무상공급'을 반대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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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에이즈 환자들이 신약 '무상공급'을 반대하냐고?"

[FTA허브? 환자들은 운다·下] "베일에 싸인 제약 원가"

"가계부를 쓰기에는 우리의 미래는 너무 불안정하다."

10년 전 HIV/ADIS(이하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윤가브리엘 씨는 에이즈 감염인의 의료비를 계산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윤 씨는 "언제 어디가 아플지 모른다"며 "하다못해 요새 독감이 유행하는데,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독감도 폐렴으로 번지기 쉽다"고 말했다. 감기 때문에 입원할 수도 있는 '불안정한 삶', 만성질환 환자들을 엮는 키워드다.

"거대세포바이러스라는 게 있어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인데 유독 몸이 약한 사람에게만 치명적이죠. 거대세포바이러스가 망막에 침투해서 저는 2006년에 오른쪽 눈을 실명했어요. 당시 유일한 치료제는 '사이메빈'이라는 약밖에 없었어요. 그 약은 보험 적용이 안 돼요. 매번 수입해 오는 거라 환율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사이메빈을 사느라 한 달에 200만 원씩 냈어요. 1년 6개월 동안 3600만 원을 약값으로 썼죠."

윤 씨는 "일 년에 대여섯 번씩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다"며 "입원하거나 수술할 때마다 병원비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의 한 달 생활비는 43만 원. 기초생활수급보호대상자로 매달 40만 원, 시각장애로 3만 원을 받는다. 지금 수입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빠듯하지만, 아프기라도 하면 검사·입원료·마취료 등 모든 진료에 돈이 든다. 그는 "망막에 문제가 생기면 또 수술할 수도 있다"며 "그 비용을 어떻게 부담하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뉴시스
'선택' 아닌 '선택진료비'

윤 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나 희귀난치성질환자가 받을 수 있는 의료급여 1종 수급자다. 국민건강보험 덕분에 그가 정기적으로 부담하는 약값은 한 달에 약 5만 원이다. 문제는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선택진료비와 비급여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에 다닌다. 감염인이 가야 하는 감염내과가 있는 곳이 큰 병원밖에 없어서다. 동네 병원 의사를 찾아도 큰 병원으로 보내지기 일쑤다. 하지만 의사가 교수면 '선택진료비'가 붙어 모든 진료비가 두 배씩 뛴다. 이름은 '선택'진료비인데도 실제로 환자들이 선택할 여지는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에 국민건강보험마저 없다면 약값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그는 푸제온과 프레지스타라는 신약을 포함해 매일 여섯 가지 에이즈 치료제를 쓴다. 푸제온이 한 달에 180만 원, 프레지스타 60만 원 등 여섯 가지 약값을 다 하면 400만 원이 넘는다.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었다면 이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 개인의 몫이 된다. '의료 공공성 보장'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무상공급은 비싼 약값 관철하기 위한 '꼼수'

건강보험제도에도 문제는 있다. 치료를 위해서 꼭 필요한 약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윤 씨는 "우리가 약값 문제를 얘기하면 사람들은 '건강보험에서 약값을 대주는데 너희가 부담 안 하지 않느냐'고들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일례로 한 달에 180만 원이 든다는 신약 푸제온이 한국에 들어오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2004년 윤 씨는 기존에 쓰던 치료제에 내성이 생겼다. 살기 위해서는 푸제온이 필요했지만, 푸제온을 만드는 제약회사 로슈는 "정부가 책정한 약값이 너무 싸다"며 한국에 공급을 거부했다. 윤 씨를 비롯한 에이즈 감염인 인권단체 나누리+ 회원들은 2008년 한국 로슈 앞에서 시위에 들어갔다.

"너무 절박했던 상황이었죠. 특허청에 강제실시(특허권이 없는 제삼자도 복제약을 만들 수 있도록 한 조치)를 청구하니까 그때서야 로슈는 '무상공급'이라는 꼼수를 부리더라고요. 강제실시를 무마하기 위한 조치였어요."

제약회사는 일단 무상공급을 통해 고객을 늘린 후, 정부와 협상할 때 "약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협상카드로 쓴다는 것이다. 일례로 프레지스타라는 에이즈 치료제를 만드는 제약회사 얀센은 이러한 방법으로 원하는 약값을 관철했다. 정부가 책정한 약값은 하루에 1만7000(월 51만)원, 얀센은 2만(월 60만)원을 받아냈다.

"무상공급이라는 편법이 이런 거예요. 처음에는 '그래도 환자를 생각해서 인도주의 차원에서 준다'고들 하지만, 공짜로 주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 약을 먹어야 하는데, 제약회사가 요구한 약값을 정부가 들어줄 수밖에 없게끔 하는 거죠."

다국적제약회사, '독점 판매권'만 사놓고 "연구개발비 많이 들었다"?

몇백만 원씩 드는 약값을 부담하기란 환자로서는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특허권을 보호해야만 제약회사의 연구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진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더 좋은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주머니 사정보다는 제약회사의 이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 씨도 제약회사의 이윤을 어느 정도 보호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제약회사가 신약을 파는 데 연구개발비가 들 리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푸제온은 미국 대학에서 개발한 약인데, 다국적제약회사가 '독점 판매권'을 사들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다국적제약회사가 큰돈을 들여 신약을 연구해봐야 실패할 확률이 높고, 직접 개발은 비용·투자·시간 면에서 비효율적"이라며 "제약회사는 어느 대학 연구소에서 뭘 연구하는지를 찾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 로슈는 "연구개발비가 많이 들어서 약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현재 푸제온의 특허는 푸제온을 개발한 대학 연구팀이 가지고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챙기는 격이다. 윤 씨는 "연구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약값을 올려야 한다는 논리는 (유통업체가 돼버린) 다국적제약회사의 이윤을 보전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정부, "약값은 신만이 안다"

다국적제약회사와 약값을 협상하고 건강보험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윤 씨는 "보건복지부 약가조정위원회 위원장은 '약값이 비싼 이유는 신만이 안다'고 말했다"며 "정부는 협상 기준도, 협상할 의지도 없다"고 비판했다.

"제약회사 쪽에서 1000원을 부르면 정부는 500원을 부르고 그 사이에서 절충하는 식으로 약값이 결정돼요. 제약회사가 약값을 왜 그렇게 높게 부르는지는 묻지 않죠. 흥정하듯 절충하는 애매한 협상이 아니라, 제약회사 약값 산출 근거 자료를 요구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가와 투자비에 근거한 약값을 산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요구에도 다국적제약회사는 "회사 기밀"이라며 정부에 연구개발비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버티는 상황이다. 정부 또한 영업 기밀을 보전하기 위해서 제약회사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 씨의 반박이 이어졌다.

"정부는 아파트 원가를 밝히지 않듯 약도 원가를 밝힐 수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사람 목숨이 달린 약은 다르죠. 제약회사도 나름대로 이윤을 남겨야 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수백만원 약값을 요구하는 게 정말 합당한지 우리는 알아야 할 권리가 있어요."

그는 "약에는 공공성이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제약회사와 협상해 약값을 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약값을 내준다면 애초에 정부가 약값을 협상할 필요 자체가 없다는 지적이다. 지금처럼 약값이 오르다가는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이윤 때문에 죽어나가야 하나"

윤 씨는 지난해까지 요양시설에서 지내는 동안 감염인 두 명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다. 사유는 2004년 그와 똑같았다. 기존에 쓰던 약에 내성이 생겼지만 다국적제약회사가 신약 공급을 거부해서다. 그는 "그분들이 만약 그때 지금 내가 쓰는 약을 썼으면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 어딘가에도 약이 없어 사경을 헤매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약품 시장은 계속 변한다. 획기적인 치료제가 나왔는데 제약회사가 또 다시 비싼 약값을 요구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윤 씨는 "제2, 제3 푸제온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며 "계속해서 정부에 요구하고 제약회사와 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희귀병에 걸린 환자들 앞에 놓여진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한미FTA가 통과되면 소송분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정부가 미국제약회사의 요구에 더 움츠러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이윤 때문에 죽어나가야 문제가 해결되는 건지…. 해결되기는커녕 한미FTA를 통해서 문제가 더 강화되는 것 같아요. 근본적인 문제는 특허인데, 환자들은 특허권이 더 공공해지는 세상이 답답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앞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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