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이 요구한 대출계약서 제출 마감시한인 14일, 현대그룹이 계약서 제출을 거부했다. 사실상 기싸움으로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국정조사' 카드를 내밀며 현대그룹을 압박하고 있는데다,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등이 각자 상대방을 상대로 법정 소송을 제기한 마당이라 당분간 현대건설 인수는 쉽게 결과나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 대출계약서 대신 '2차 확인서'만 제출
이날 현대그룹은 입장자료를 내 "채권단의 대출계약서 및 그 부속서류 제출요구는 법과 양해각서, 그리고 입찰규정에 위반된다"며 "대한민국 인수ㆍ합병(M&A)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고,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완전히 벗어난다"고 강조했다.
현대그룹은 이어 "채권단이 법과 양해각서 및 입찰규정을 위배하면서 부당하고 불법하게 본 건 매각을 표류시킨다면, 국민의 혈세로 투입된 공적자금 8500억 원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뿐만 아니라 550%에 달하는 매각차익(4조6000억 원)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까지 스스로 발로 차버리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또 "이와 같은 국가적 우선순위를 혼동하는 지도층인사들이 있다는 사실과 근거 없는 의혹제기와 끊임없는 이의제기로 이와 같은 국가적 우선순위의 뒤바뀜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에 대해 깊은 유감"이라고 전했다.
현대그룹은 다만 이날 "나티시스 은행을 설득해 13일 제2차 대출확인서를 받아 14일 오후 늦게 채권단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제2차 확인서에서 나티시스 은행은 '본건 대출과 관련해 제3자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보증한 사실이 없다'고 추가적으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현대상선 등이 나티시스 은행의 자회사 넥스젠캐피탈에 현대그룹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맡겨 인수자금을 대출받았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한 것이다.
현대그룹은 또 현대상선 프랑스법인 명의의 잔고증명서가 불법적인 가장납입 아니냐는 의혹과 관련해 "'제2차 확인서'를 보면 나티시스 은행은 적법한 대출로 인출된 자금이 현대상선 프랑스법인 계좌에 그대로 들어있다고 재차 확인했다"며 "그간 제기된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채권단ㆍ현대그룹 압박
한편 현대건설 인수전이 끝없는 소송전과 상호 비방으로 흘러가면서,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날 김용태 한나라당 원내부대표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현대그룹이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 예치금에 대한 대출계약서를 제출하지 않고, 법적 하자 소지가 충분한데도 채권단이 본계약을 추진한다면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정책금융공사와 외환은행, 우리은행에 대한 국정조사를 국회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현대그룹은 오늘이 시한인 대출계약서 제출에 응해 의혹을 해소해야 하며, 만일 제출하지 않으면 채권단은 양해각서(MOU)를 파기해야 한다"며 "대출계약서를 내지 않았는데도 채권단이 다시 시간을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이날 오후 4시 현재 채권단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김 의원은 또 "외환관리법상 단순차입금은 국내에 못 들어온다"며 "나티시스 은행 차입금은 경상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국내로 들여오려면 외환 당국에 신고해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현대그룹은 신고조차 안 해 외환관리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임영호 자유선진당 정책위의장도 "공적자금 투입의 책임이 있는 현대그룹이 다시 현대건설을 인수하려 한다면 그 자금원을 밝히는 게 도리"라며 "당장 할 일은 아니지만 명확한 소명없이 본계약을 체결하면 국회도 국정조사나 국정감사 등을 통해 개입할 수 있다"고 했다.
채권단이 대출계약서 외에 계약내용 확인서(텀시트) 제출도 허용한 것과 관련, 김 의원은 "대출할 때 이율과 상환방식 등을 약정한 계약서가 공개되어야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지, 텀시트 만으로는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채권단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출계약서 및 부속서류 제출 요구의 불법성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감시한인 지난 7일 자정을 불과 11시간 앞두고 텀시트(Term sheet)를 제출해도 무방하다고 통보해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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