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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삼성發 보도, 언론이 묻지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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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쏟아지는 삼성發 보도, 언론이 묻지않는 것들

[기자의 눈] "김용철 폭로 이후 3년,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나?"

삼성발(發)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3일 오전, 삼성 그룹은 신임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또 옛 전략기획실(구조조정본부, 회장 비서실)의 역할을 이어받는 기구의 명칭도 공개했다. '미래전략실'이라고 한다.

인사 내용은 대부분 예상대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큰 딸 이부진 씨의 승진 폭이 컸다는 점 정도가 조금 색다르다. 호텔신라 전무와 에버랜드 전무를 겸하던 이부진 씨는 호텔신라 사장 및 에버랜드 전략담당 사장을 맡게 됐다. 아울러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도 겸하게 됐다.

이번에 함께 승진한 이재용 씨와 이부진 씨가 묘한 경쟁 관계라는 말은 오래 전부터 나왔었다. 이부진 씨가 삼성물산 경영에 관심을 둔다는 소문도 나돌았었다. 이번 인사가 이런 소문과 맞물려 눈길을 끄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나머지 내용은 이건희 회장이 지난달 11일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참관을 위해 출국하면서 했던 발언 "(연말 사장단 인사폭을) 될 수 있는 대로 넓게 하고 싶다", 그리고 같은 달 17일 귀국하면서 기자들에게 던진 메시지 "이재용 부사장의 사장 승진에 대한 결심이 섰다", 그리고 이틀 뒤 나온 삼성 그룹 컨트롤 타워 부활 결정, 이런 세 가지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들이다.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다.

하지만 삼성 사장단 인사에 관한 이 회장의 첫 발언이 나온 지난달 11일 이후, 주요 언론은 삼성 인사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소한 내용까지 시시콜콜하게 보도했다.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 어떤 '자격'으로 삼성 계열사 사장 결정하나?

삼성 그룹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꼭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 아주 기초적인 질문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 결정은 이건희 회장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 회장은 어떤 자격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나?"

공식적으로 이 회장은 삼성그룹 회장이 아니다.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삼성전자 회장일 따름이다. 그런데 '삼성전자 회장'은 상법상 직책이 아니다. 회사 정관에 있는 직책일 뿐이다. 또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것도 아니다. 이사회의 통제를 받지도 않는다. 이 회장이 삼성SDI, 삼성카드 등 삼성 계열사 인사 결정에 참여할 권한은 없거나 모호하다.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이 회장은 불과 0.57%의 그룹지분을 갖고 있다. 이 회장 일가의 보유지분을 한데 모아도 1.07%에 불과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처럼 미미한 지분으로 황제경영을 할 수 있는 비결은, 순환출자구조에 있다. 큰 줄기는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구조다.

문제는 이런 지배구조가 금융 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법대로 라면, 삼성카드는 에버랜드 지분을 팔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순환출자구조가 무너진다. 이 회장이 미미한 지분으로 그룹을 장악할 수 있었던 근거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이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이 문제를 푸는 게 먼저다. 먼저 정당한 법적 자격을 갖춘 뒤에 계열사 인사 결정에 참가하는 게 옳다. 그러나 삼성발(發) 보도를 쏟아내는 언론은 대부분 이 문제를 덮어둔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삼성 계열사 전체 인사를 결정하는 그의 권한은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 ⓒ뉴시스

미래전략실의 결정, 실패 책임은 누가 지나?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하는 그룹 컨트롤 타워 역시 법적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과 달리 '미래전략실'은 법적으로 '회사'가 아니다. 삼성 계열사에서 파견된 임직원들로 구성된 비공식 기구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실제로 미래전략실의 전신인 전략기획실, 구조조정본부 등에서 일했던 임직원들은 공식적으로 삼성전자, 삼성새명 등 계열사 소속이었으며 월급도 계열사에서 받았다. 삼성커뮤니케이션팀 이인용 부사장은 3일 기자 브리핑에서 미래전략실 역시 같은 형식이라는 점을 확인해줬다.

그렇다면, 미래전략실은 어떤 자격으로 삼성 계열사 전체의 경영에 참가하는가. 옛 전략기획실, 구조조정본부 등은 뚜렷한 자격 없이 그룹 경영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 그래서 책임 소재가 모호했다. 미래전략실이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져야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삼성 측 역시 이런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대답은 그저 모호하기만 하다. 이 부사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래전략실의) 권한과 책임이 불일치 한다는 지적에 대한 해소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현실적으로 필요한 조직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권한과 책임이 불일치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발생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만 대답했다. '현실적 필요'라는 말로 비켜간 셈이다.

미래전략실의 자격과 권한, 책임을 굳이 따져 묻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래전략실의 전신인 전략기획실, 구조조정본부 등은 과거 삼성 비리를 주모하는 역할을 맡았다. 정·관·법조·언론계에 대한 불법로비, 비자금 조성 및 탈세, 경영권 불법 승계 등이 그것이다. 또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부터 내려온 '무노조 경영' 방침을 관철시키기 위해 삼성 계열사 전체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도 해 왔다.

2008년 삼성 특검의 수사 결과가 나온 뒤, 삼성 그룹이 전략기획실 폐지 선언을 한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삼성은 뚜렷한 설명 없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점만 내세워 옛 전략기획실 기능을 복원했다. 천문학적 규모의 삼성 비리에 분노했던 이들이 진짜 궁금해 하는 대목은, 옛 전략기획실 기능이 과연 '현실적으로 필요'한지 여부가 아니다.

전략기획실의 뒤를 잇는 미래전략실이 다시 무소불위로 전횡한다면, 그래서 현행 법 체계를 무시하는 일이 생긴다면, 혹은 삼성 계열사와 한국 경제에 손해를 끼치는 결정을 내린다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가 진짜 관심사다. 그러나 삼성은 이런 질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

'소통' 강조한 삼성, 노조 없이 직원과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을까?

삼성이 내놓은 대답은 그저 "새로운 이미지로 봐 달라. 과거와는 다르다"라는 것뿐이다. 미래전략실을 이끌게 된 김순택 부회장이 과거 비슷한 역할을 맡았던 이학수 고문과 달리 '기획통'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설명도 한편에선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22일 <중앙일보>는 새로운 삼성 그룹 사령탑에 대해 "'뉴 삼성' 변화코드는 치밀·재무→소통·창조"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그간 삼성 비리를 주모했던 이른바 '재무통'들이 전면에서 물러난 데 주목하는 보도다.

이런 보도대로, 과연 '기획통'이 전면에 나서면 삼성이 새로운 이미지로 거듭날 수 있을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다. 삼성 고위 임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아는 이들은 김 부회장에 대해 '몹시 충직한 성격'이라고 평한다. 계산에 밝은 이학수 고문과 다른 면모라는 게다. 하지만 김 부회장의 이런 성품은, 자칫 법적 근거가 없거나 몹시 희박한 이건희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더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소통을 강조한다는 보도 역시 썩 설득력이 없다. 강자와 약자, 갑과 을이 솔직한 소통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정도나마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게 소통의 전제 조건이다. 약자가 강자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조건, 그것은 단결이다. 삼성 노동자들의 경우라면, 경영진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단결된 조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바로 노동조합이다.

하지만 삼성 그룹 사령탑은 여전히 노동조합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김 부회장 체제가 출범한 첫날, 삼성전자 사내전산망에 노동조합 설립을 호소하는 글을 남겼던 박종태 대리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 김 부회장 자신도 과거 삼성SDI 사장 시절, 노조를 설립하려던 노동자들을 상대로 불법적인 휴대폰 위치 추적을 했던 전력이 있다.

노동자의 가장 기초적인 권리인 단결권을 무시하면서, 삼성 경영진이 노동자들과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반올림의 절규에 대답 없는 삼성, 우린 지난 3년 간 뭘 한 걸까?

회사 외부와의 소통 역시 쉽지 않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삼성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 사이에서 삼성에 관한 가장 뜨거운 관심사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여성 노동자들 문제다. 이 문제에 관한 기사가 실릴 때면, 독자들의 반응은 늘 뜨겁다. 하지만 삼성은 이 문제에 대해 외면으로 일관한다.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공론해 왔던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들이 납득할만한 설명을, 삼성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게 과연 소통을 강조하는 태도인가?

▲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반올림 활동가들의 퍼포먼스. ⓒ프레시안(최형락)

인터넷 검색창에서 '삼성 사장단'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비슷비슷한 보도가 쏟아진다. 하지만 이런 보도를 아무리 꼼꼼히 살펴도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지난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리를 세상에 알린 뒤, 삼성 문제에 관심을 뒀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만한 질문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삼성발(發) 보도자료에서도, 삼성 임직원의 설명에서도, 혹은 삼성발(發) 기사에서도 찾기 힘들다.

김 변호사의 양심 고백 이후 3년,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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