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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해 항공모함 보며, '야 세다' 넋놓고 있다가는…"

[우석훈 칼럼] "국방 '아웃소싱', 다국적기업만 웃는다"

지난 대선 마지막 날,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는 평화 경제에 대한 선거유세로 길고 길었던 선거 유세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솔직히 정동영표 평화경제는, 평화 그 자체의 가치보다는 그렇게 해서 만주에도 가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도 놓고, 그런 평화의 부산물에 더 많이 가 있는 팽창주의 버전이었고,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그 다음 날은 대통령 선거일이었고, 우리나라 국민은 정동영을 대통령으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나도 그에게 투표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면서 모두들 어느 정도의 남북관계 경색은 예상은 했었겠지만, 실제로 민간인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못했던 것 같다. 호사가들이 북한의 붕괴설에서 시작하는 일련의 시나리오를 가끔 얘기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포격에 의한 민간인 사망이라니! 이건 지난 대선을 둘러싸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그런 범위 내에 있었던 것은 아닌 듯 싶다.

자, 눈을 들어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의 관계에서 벌어진 일들을 좀 생각해보자. 우리는 주기적으로 무장공비가 출몰하는 나라에 살고 있었고, 80년대에는 '녹화사업'과 군 의문사 의혹이라는 게 사회적으로 논의가 되고 있었다. 2000년대에는 방법이 정당하든 아니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아니든, 연평도 해전 같은 국지전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우리는 평화에 익숙한 나라가 되었다. 전쟁? 그게 우리가 남한이라고 부르는 이 땅의 본토에서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다시 전쟁의 공포가 찾아왔다. 내가 20대 전문가라고 사람들이 얘기하기도 하지만, 나의 주된 연구 주제는 20대는 아니다. 나는 경제학자로서 국민경제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주제로 계속해서 연구를 하고 있었고, 경제인류학 연구자로서 10대들에 대한 연구가 6년 전부터 내가 정한 현장 연구분야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많은 20대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였던 업보라고 할까, 책의 출간 이후 좋든 싫든, 수많은,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20대들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 오는 20대는 따지러 오는 20대가 더 많고, '도장깨기'처럼 일전을 불사하고 오는 심각한 유형들도 아주 많다. 니가 틀렸다, 이 말을 나에게 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것 같다. 난 아직은 좀 더 지켜보려는 입장이다.

어쨌든 그렇게 내가 만나는 20대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쟁의 공포를 느꼈다고 얘기하는 장면은, 전쟁기념관에서 진행되었던 대통령의 천안함 발표이다. 여러 가지 상징적 이유로 장소를 그렇게 정했다고 하지만, 실제 그 때 처음으로 전쟁의 공포를 느꼈다고 말하는 20대들이 적지 않다. 아마 그날, 사실상 역사 속에서 현실적으로 사라진 듯한 전쟁의 공포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없는 나라', 이건 어떤 나라나 만들고 싶은 궁극의 가치일지도 모른다. 강한 나라는 강한 나라대로, 약한 나라는 약한 나라대로, 전쟁 없는 나라라는 현실적 가치를 구현하고 싶어한다. 미국은 독립전쟁 이후로 본토에서 한 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은 나라이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단 하루도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도 이라크 파병 이후,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한국의 군인들이 여러 가지 명목으로 참전을 했고, 전장의 근처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던 나라이기도 했다. '대양 해군'과 함께 한국의 해군들은 해외 작전 능력을 가지고 싶어 했고, 이에 질세라 공군은 우주로 가고 싶어 했다. 자, 이런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지난 수 년간의 일이고.

이라크 파병 이후로, 한국에는 '일전불사'의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적이 몇 번이 있었다. 고(故) 김선일 사건 때도 그러했고, 아프가니스탄의 인질 사건 때도 그랬다. 물론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사회 분위기만은 일전불사가 형성된 적이 몇 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주기는 점점 더 빨라지고, 점점 더 강렬해진다.

크게 사회적 흐름만을 놓고 보자. 한국은 분명히 90년대에 비해서 경제적으로는 강한 나라가 되었다. 경제규모로는 세계 10위권이고, 에너지 사용량으로는 5~6위의 국가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한국의 군사력도 강해졌다. 파병에 대한 요구도 국제적으로는 강해졌고, 내부적으로는 언제든 파병을 통해서 경제적 실익도 얻고, 작전 경험도 늘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하나의 경향성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진짜로 이라크전에서 우리가 그만큼의 경제적 실익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복잡한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흐름만으로는 우리는 훨씬 더 호전적이 되었고, 팽창적이 되었다.

자, 이제 경제적 흐름을 놓고 보자. 일반인이 보기에는 참여 정부와 이명박 정부 사이에 대북 정책에 대한 중대한 기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다른 국방 정책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방정책의 눈을 경제적 흐름이라는 틀 속에 넣고 보면 '대동소이', 다른 것은 조금이고 같은 게 많다고 할 수 있다.

'국방계획 2020'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사실상 한 때 우리의 지도자였던 사람으로서 남겨놓은 거의 마지막 계획이다. 현실적으로 나머지 종합대책들은 이미 뒤집어지거나 기조가 바뀌었고, 국방계획 2020도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바뀔 개연성이 높다. 예를 들면, 국 복무기간 단축이라거나 양심적 병영거부와 같은 것. 그러나 국방계획 2020의 근저를 흐르는 경제적 정신은 전혀 변화하지 않거나,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이다.

노무현과 신자유주의라는 주제는 민감한 주제인데, 본인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히고자 했다. 물론 아직은 사회적으로 그의 정책들을 본격적으로 재평가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는데, 그의 정책들을 모두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잣대만으로 환원시키기에는 그렇지 않은 정책적 성과들이 숨어있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국방은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을 쓴다면 정말 잘 분석된다. 최소한 국방에서 그는 아주 강력한 신자유주의자였던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 국방의 장기계획은 미국 국방산업의 변화와 아주 무관하지 않은데, 간단하게 표현하면 다른 모든 분야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외주화'라고 할 수 있다. 국방에서도 '아웃소싱'이라는 변화가 오면서, 국방예산들은 장기적으로는 사실상 다국적기업들이 가져가게 되어있다.

이런 질적 변화를 군이 수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국민과 군대, 모두 얻을 게 별로 없고, 장비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군의 관리영역 일부를 위임받을 회사들만 이익을 볼 것이 뻔한 이 계획을 군이 수용한 이유는?

몇 가지 논란이 있지만, 국방계획 2020은 신자유주의를 강력히 추진하던 대통령과 군 수뇌부의 어정쩡한 타협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 이후로 위관급 혹은 영관급 장교가 삼성, 현대 등 국방기업들에 스카우트 되는 길이 열렸고, 이건 장교들이나 회사나 모두 환영하는 조치가 되었다. 그러나 이 방향이 군민들이나, 혹은 군대에 대해서 어떤 도움이 되는가, 이런 질문이 노무현의 국방계획 2020이 남긴 질문이다.

어쨌든 군의 외주화 그리고 다국적 기업화가 참여정부로부터 이명박 정부가 승계한 국방정책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소한 변화 하나가 더 추가되는데, 그건 바로 정부의 토건화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면서 국방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북한에 대한 고립 정책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외교정책이지 국방정책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토건정부에 대해서 "문제 일으키지 않는다"는 정도에서 대통령은 군대에 상대적 자율성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서로 건드리지 말자", 그게 현 정부가 군부와 가졌던 불안한 균형의 실체 아닐까 싶다. 물론 롯데호텔 사건, 4대강 사업에 따른 군 예산 축소 사건, 토목 공사에 대한 군 동원 사건처럼 지나치게 군부의 심기를 건드릴 사건이 없지 않았지만, 군과 정권이 정면적으로 부딪힐 일은 거의 없었다. 정권은 국방에 대한 장기적인 정책이 없었고, 군대는 신자유주의화를 통해서 전역 장교들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 이게 경제적인 시각으로 본 이명박 정부의 군사정책의 본질인 것 같다.

불편한 얘기지만, 군인이야말로 게임이론으로 본다면 '적대적 협력관계'인 셈이다. 한 쪽이 강하게 나오면 피해보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예산이나 발언권, 그런 여러 가지들이 강화된다. 물론 튼튼한 국방을 위해서 더 많은 돈을 지불하자는 것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지금 이렇게 확장된 '일전불사'의 분위기에서 과연 누가 이득을 보는가, 그리고 그 돈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과연 그 돈은 현장에 있는 병사들에게 제대로 가는가, 그들의 장비로 가는가, 그런 걸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단기적으로, 통수권자로서 현 정권은 국민들에게 '안정된 평화'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 대결 분위기가 강화되었고, 국민들은 실제로 전쟁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고, 약간의 격차를 두고 해외자금들도 이러한 불안전성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국방력을 기계적으로 높인다고 해서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마 다국적기업들이 가장 먼저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의 국민들의 염원대로 '대결 태세'가 강화된다고 해도, 결국 이득 보는 것은 이미 다국적기업이 된 국방기업들, 그리고 언제나 서해안에 항모를 배치하고 싶었던 미국이다. 그 돈이 장병들의 쥐꼬리만한 월급을 늘려주는 데로 가지도 않고, 현장에서 장비들의 유지보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지도 않는다.

불행히도 우리의 서울은 전선에서 너무 가깝다. 철통같은 방위를 한다고 해도, 수도이며 최대의 도시가 이렇게 전선에서 가까운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나 불안한 시소 게임을 하는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무력시위가 단기적으로는 북한에게 위협이 되기 보다는 더 많은 카드만 넘겨주는 일이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결국 군대와 국민들의 정책결정권을 약화시키고 다국적기업들의 발언권만 강화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난 확전에는 반대다. 그리고 군비증강을 빌미로 일부의 다국적기업들이 국민들의 세금을 그냥 가져가는 것에도 반대다. 현대와 삼성 등 주요 건설사가 벌였던 4대강 사업에 투입된 공병대, 그게 바로 현재의 '일전결사' 국면이 우리에게 안겨줄 전면적인 국방 외주화의 미래 모습이다. 전쟁 공포의 고통은 국민이 받고, 돈과 실익은 엉뚱한 자본가들과 일부 장교들이 챙겨가는 현 상황, 이 정도면 국방 정책에서의 통치 실패 아닌가? 이 기회를 빌어, 우리의 국방과 국방산업의 장기적 길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바로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서해안의 항공모함을 보면서 "야, 정말 세다"고 넋 놓고 있다가는 우리의 국방에 대해서 정작 한국 정부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기가 곧 온다.

▲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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