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매물은 많이 나와요?"
"나오면 바로 빠져요. 안 나와서 문제지."
강남과 함께 대표적인 학군 도시로 꼽히는 서울 목동 신시가지 7단지의 O중개업소 대표 김인수(가명) 씨는 11월 들어서도 전세가격이 가라앉지 않았다고 22일 말했다. 통상 대표적 이사철인 10월이 지나면 전세가격도 서서히 가라앉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전셋값 앙등 현상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모양새다. 전세가격 상승은 물가에 큰 자극을 줘, 서민생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일부 경제신문들은 이와 같은 현상을 집중보도하며 "전세가 상승이 매매가격까지 자극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나섰다. 부동산 시장 침체기가 서서히 사그라들 것이라는 논리다.
非강남권도 크게 올라
실제 전세가격 상승세는 지난 1년간 멈추지 않는 추세다. O중개업소에 따르면 목동 7단지 89㎡의 고층 매물은 최근 호가가 3억6000만 원선에 나와 있다. 저층에 내부 공사가 잘 된 곳은 3억2000만 원이 넘는다. 이는 9월보다 3000만 원 이상 오른 가격이다. 21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목동의 전셋값 상승률은 지난달 1.47%(전달대비)였으며, 이번 달 들어서도 1.59%(19일 기준)나 올랐다.
중개업소가 호가만 부풀려 말한 게 아닐까? 서울시가 실제 거래계약매물을 집계해 발표하는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번 달 7일 목동 7단지 89㎡형은 3억3000만 원에 계약됐다. 중개업소와 큰 차이가 없다.
김 대표는 "올해 봄에 잠깐 내린 것 빼곤 작년부터 꾸준히 올랐다"며 "워낙 전세가가 오르다보니 부분월세로 전환하는 임대인이 많다"고 전했다. 부분월세란 그간 전세가격 상승분을 월세로 돌리는 계약형태다. 저금리가 이어지다보니 전세가격을 올리느니 차라리 월세분을 높여받겠다는 심산이다.
7단지 부근의 ㅍ중개업소 최선희(가명) 대표 또한 "비수기 들면서 더 이상 오름세는 이어지지 않지만 가격이 내려가지도 않는다"며 "그마저도 매물이 나오지 않아 중개업소는 허탕만 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 매물을 구하기 어렵지만 나오면 바로 계약이 체결된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호가가 의미 없어지는 수준으로 전세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목동, 강남권 전세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이른바 '학군 효과'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워낙 전세난이 심각하다보니 다음 학기 등록 이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전셋집을 장만하겠다는 수요가 선반영 돼, 비수기에도 가격이 멈추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 상당수 언론이 학군 효과에 주목하며 "전세가격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가격 상승세는 그러나 이와 같은 논리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않던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구로구 신도림동 푸르지오 2차 103㎡형의 전세가는 3억5000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매맷가(6억 원 후반대)의 50%가 넘는 수준이다. 인근 O중개업소 관계자는 "역세권이다보니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다"며 "요즘 구로 전세가격이 엄청 뛰었다"고 설명했다.
신도림 테크노마트를 끼고 있는 태영아파트 79㎡ 역시 1년 만에 1억8000만 원에서 2억 원 초반대까지 치솟았다. 인근 부동산 정보업체 관계자는 "요새는 전세 구하기가 워낙 힘들어서 신혼부부들이 아예 집을 사려고 한다"며 "이번 달에 우리는 전세 계약은 한 건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2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뱅크 발표를 보면 이번 달 들어 입주 2년차(2008년 12월~2009년 1월 입주) 수도권 단지의 3.3㎡당 전세가는 2년 전보다 31.35%(613만원에서 894만원)나 치솟았다.
▲전세난이 이어지고 있지만 매물이 부족하고 거래가가 비싼 탓에 부동산 중개업소는 여전히 한산하다. 구로구 신도림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번 달 들어 단 한 건도 못했다"고 한탄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가 없음. ⓒ연합뉴스 |
왜 오르나
전세가 상승세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하반기 입주물량이 크게 늘어나 전세가격이 급락한 반면, 최근에는 매물이 귀해졌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수도권 입주물량은 2만8348가구로 전달(2008년 11월)보다 무려 71.59%나 늘었다.
반면 재계약철이 된 지금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이뤄지는 재개발로 인해 멸실가구가 크게 늘어나 전세매물 자체가 희귀해졌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한 멸실가구는 올해 들어서만 3만 가구 이상 늘어났다. 계약시기를 고려하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는 재개발을 정부가 쉽게 허가해준 게 중요한 원인이 된 셈이다.
22일 한국신용평가는 '전세가격 상승 원인 및 매매가격 상승 가능성 분석'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작년 이후 주택멸실이 증가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뉴타운 사업과 재건축·재개발 사업 등으로 인한 멸실주택이 일시적으로 전세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경제위기를 빌미로 고수한 저금리 기조도 중요한 전세난 원인으로 꼽혔다. 한신평은 "낮은 금리는 임차계약 형태 중 전세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라며 "낮은 수신금리가 전세보증금의 기대수익률을 하락시켜 임대인으로 하여금 전세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거나 전세보증금을 인상하도록 만든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정부와 정책당국은 안일한 대응으로 인해 최근 전세난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거래가격도 올릴까
그러나 최근 전세난이 주택매매가격까지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지들의 주장과 달리 전세난은 주택가격 추가 하락 전망이 강하기 때문에 나타난다는 평가다.
한신평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소득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을 사용했다. 높을수록 주택수요자의 감당능력에 비해 집값이 비쌈을 의미한다. 금융위기 여파에도 불구, 2008년 한국의 PIR은 6.26에 달했다. 반면 같은 해 미국과 일본의 PIR은 각각 3.55, 3.72에 불과했다. 쉽게 말해 미국의 주택수요자는 금융위기 이후 연소득의 3배를 갖고 있으면 집 구입할 수 있었으나 한국 소비자는 6배 이상의 돈을 쥐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와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신평은 "주택 매입수요는 감소하고 임차수요가 증가한 것"이라며 "가격과 수급상황, 전세가격비율을 고려하면 전세가격 상승으로 인한 매매가격 상승 가능성은 낮다"고 단언했다. 다만 전세가격 상승세는 더 오래 지속되리라고 전망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역시 최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최근의 전세가격 상승은 주택 가격이 대세하락기에 접어들면서 주택 매도 후 전세전환수요 및 매입포기수요 증가로 일시적으로 전세수요가 늘어난 측면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주택가격 하락세는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관련 기사 : "전세난, 이제 근본 처방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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