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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민 여러분, 우리가 다 해줄 테니 잠자코 표만 주세요"

[우석훈 칼럼] '시민'과 '서민' 사이

경제 정책에도 묘하게 유행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한동안 노무현 시절에는 민생이라는 단어가 유행하였었다. 총리실에도 민생정책과 관련된 논의가 한참이었고, 분당 이전의 민주노동당에도 민생특위라는 게 설치될 정도였다.

좌파와 우파 사이에 경제 정책의 기조가 많이 다르다고 알고 있지만, 어쨌든 유행이라는 것은 정치 현장에서 똑같이 민감한 모양인지, 그런 유행 같은 게 생겨난다.

민생경제 다음으로 유행했던 것은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FTA였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보편적 복지'가 슬슬 유행의 조짐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김황식 총리와 같은 '순수 보수'들에게는 아직 일반 복지 혹은 보편적 복지가 낯설어 보이는 것 같다. 지난 7.2 지방선거에서 보편적 복지가 학교급식과 함께 일단 한국인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한나라당에게는 아직은 너무 좀 멀다. 그런 이유로, 요즘은 '서민경제'가 유행이다. 이 유행이 얼마나 갈까?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경제 주체에 대해서 얘기할 때 원론적으로는 소비자, 생산자 혹은 기업과 같은 미시적 주체들을 주로 거론하게 된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된다. 노동자라는 단어 하나에도 이데올로기적 대치 전선이 민감하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노동자라는 단어를 쓰는데 주저함이 없지만, 훨씬 더 극우파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노동자라는 단어를 쓸 자리에 반드시 근로자라는 말을 쓴다. 자본 대 노동자, 기업 대 근로자 혹은 고용주와 피고용자 같은, 사실상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어감에 따라서 맥락과 결론이 상이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혹은 우리는 누구인가와 같은 존재론적인 질문이 국민경제 내에서도 매우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미시의 세계가 아니라 거시의 세계로 넘어가면 이제는 정부라는 새로운 주체가 하나 더 등장하게 되고, 그와 함께 국민이라는 범주가 등장한다. 전통적으로는 노동자와 농민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민중, 어쨌든 국가주의적 향취가 조금은 강한 국민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유행했던 시민, 이런 집체 변수들의 세계가 있다.

'우리'를 민중이라고 부를 때의 의미, '국민'이라고 부를 때의 의미 그리고 '시민'이라고 부를 때, 그 논리의 진행 방향은 물론이고 결론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게 된다. 일종의 사회적 주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시 민중의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지만, 1980년대에 비하면 분명히 민중이라는 주체의 호명은 국민이나 시민에 비해서 밀리는 경향이 분명히 생겼다.

노동자·농민이 사회적 주체로서 자신의 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미 오래 전에 민주노동당이 집권도 하고 대통령도 배출했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분명히 같은 사람이지만, 한국의 민중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 보다는 고향에 대한 문화적 민감도가 더 높았던 것 같다. 수십 년 동안 지역에 의해서 정치적 주체를 분석하는 것이, 그것이 정치적으로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통계적으로는 민중이나 시민으로 분석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일관된 분석들을 제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민중, 국민, 시민, 이런 것들이 정치적 의미가 강한 집체 변수라고 한다면, 경제적인 의미가 훨씬 강한 주체들도 있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함께 내각의 수장들 혹은 실질적인 한국의 지배층을 의미하는 '강부자' 같은 개념은 경제적 의미가 강하다. 노태우 대통령의 대선 구호였던 '보통 사람들'과 함께 사회적 실체가 된 중산층 혹은 중간계급 역시 기본적으로는 경제적 성향이 강한 집체 변수이다. 한 때 유행했던 민생경제에서의 '민' 역시 대만 쑨원의 삼민주의 시절부터 경제적 성격을 강하고 있는, 보수주의의 대표적 경제 주체이다. 자, 그리고 요즘 한참 유행인 '서민경제'의 바로 그 서민, 이것 역시 경제적 의미가 강한 주체이다. 각 단어의 호명마다 나름대로 독특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민 경제의 맨 상위계층부터 본다면 한국은 경제 엘리트 집단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1970~80년대에는 '졸부'라는 단어가 이러한 경제 엘리트를 지칭하는 단어였고, 그들의 자제분들은 1990년대에 '오렌지족'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바로 그 때의 그 사람들이 요즘은 '강부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여전히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한 부정적 평가가 싫었던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지지했던 사람들을 '민주화 세력'이라고 하면서 그 스스로 '산업화 세력'이라고 부르려는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말이라는 게 억지로 부른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서, 산업화 세력은 한나라당 일각의 연설문에만 등장하지 일반인들이 즐겨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부자'라는 수식어에 자동으로 따라붙는 '노블레스 오블리제', 이건 한국의 경제 엘리트들이 도덕적으로나 절차상으로 그렇게 존경하기가 어렵다는 것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솔선수범이나 기부와 같은, 다른 나라 우파들의 덕목에 대해서 여전히 한국에서는 낯선 느낌이 있는 것 같다. 그보다는 탈세, 불법상속, 편법증여, 이런 단어들이 경제 엘리트와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왠지 외국의 우파들이 전쟁이 나면 먼저 맨 앞에 설 것 같지만, 한국의 우파들은 "우리 자식들은 미쿡 사람이예요!"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솔직히 지금 한국 우파를 대표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김황식 총리나, '쎄다'는 것은 알겠지만 존경심이 선뜻 들지는 않는 것 같다. 정치적 권력이 강하다는 것과 도덕적 권위가 있다는 것은 좀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어쨌든 진실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한국 국민들은 현 정권은 졸부에서 강부자까지 이어지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감세 정책 등 지금의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경제 엘리트 집단으로부터 한 차원 내려오면 이제 우리는 노태우와 함께 '보통 사람들의 시대'를 열었던 중산층을 만나게 된다. 한국에서 중산층만큼 논란이 되는 개념도 아마 없을 것이다. 국민의 70~80% 정도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기꺼이 대답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마음만은 중산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산층 의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지금 한국 경제에 과연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그런 폭넓은 대상이 여전히 존재하는가, 이런 것은 여전히 분석이 어려운 문제이다.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표현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중산층이라는 구호가 등장한 적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중산층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면, 아마 인간이 만들어낸 경제 중에서는 가장 후생 수준이 높은 경제일 것이다.

정책적 주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중산층과 가장 경쟁적인 개념은 민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중이라고 표현할 때와 중산층이라고 표현할 때, 그 대상은 전혀 다르고, 두 주체 사이의 정치적 지향점도 이론적으로는 정반대일 경우가 많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전의 당원들에 대한 사회경제적 분석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민주노동당에서 회비를 내는 주력 당원들의 상당수가 중산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정도의 소득과 주거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실제로 한국의 정당의 당원들에 대한 분석을 해본다면 진보신당 당원들 중에서 중산층 비중이 가장 높지 않을까 싶다. 민중들이 스스로 민중 혹은 민중경제에 대한 얘기를 하기보다는 중산층 그리고 고학력들이 일종의 대리인 운동처럼 민중을 지지하는 특이한 현상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 시민의 상당수도 중산층이라고 놓고 분석하면 상당히 일관된 결론들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한국의 중산층에게는 '욕망'이라는 코드와 함께 '저항'이라는 코드가 동시에 상존한다고 할 수 있다.

▲ 2008년 촛불시위. ⓒ프레시안

강부자, 중산층을 거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집권 중반기부터 내놓고 있는 새로운 경제운용 기조가 드디어 '서민경제'이다.

물론 경제 주체를 어떻게 호명을 하느냐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는 토건 경제와 감세 기조가 이미 정권의 근본 기조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피해서 대책을 내려다보니 영 궁색하기 짝이 없기는 하다.

사실 한국의 역대 정권 중에서 '서민'이라는 이미지로 가장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여전히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던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일 것이다. 많은 것들이 복고풍으로 돌아가고 있는 요즘, 1970년대 경제 주체가 다시 역사 속으로 호명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정권 차원에서 이제는 얄팍해질대로 얄팍해서 사회적 실체를 얘기하기도 쉽지 않은 중산층 담론에서 다시 서민 담론으로 넘어가는 것도 이해가 될 법 하기도 하다. 사실 거의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이 서민이라는 매우 특수한 문화적 존재는 푸근하면서도 동시에 무색무취에 가깝도록 정치적으로 존재이기도 하다. 애환이나 아픔, 그런 것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동시에 너무 부정적이지 않은, 진짜 한나라당의 성향에 딱 맞도록 객체화된 그런 경제적 주체인 셈이다. 서민들이 시청 광장에서 집회를 할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국회에 서명을 해서 청원을 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지도 않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 불만이 있거나, 대기업으로부터 부당한 차별을 받는다고 해도 직접 나서는 일이 없을 법한, 그래서 저녁 때 삼겹살에 소주로 그 애환을 달래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한나라당으로서는 이 이상 안성맞춤의 주체가 없을 법 하다.

중산층이라고 부르든, 민중이라고 부르든, 아니면 서민이라고 부르든, 사실 지금의 한국에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겹칠 것이다. 도저히 노는 물이 다르다는 상위 일부와 정부 지원으로 생활하는 하위 일부를 제외하면, 사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그만큼 지금 중산층 붕괴의 속도는 빠르고 거침없다. 한 때 세계적인 저축률로 국내 투자를 뒷받침하던 한국 국민들의 저축률은 이제 마이너스 상태이다. 그나마 대기업들의 현금 보유액을 감안해서 보면 현실은 더욱 끔찍하다. '빈곤의 일반화' 혹은 '신빈곤 경제'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새로운 흐름 앞에서 호명 그 자체에서 많은 차이점을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진지하게 한 번 한나라당에게 물어보고 싶다.

우리 모두가 서민이라는 단어는 탈정치적이며 동시에 수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들은 시혜의 대상처럼 간주되고, '시민적 저항'과 같은 이미지 혹은 소상인 연합 같은 지역 경제 내에서의 최소한의 사회적 연대와 같은 의미도 없다.

이렇게 국민경제의 가장 주요한 주체를 수동적이고 피동적으로 설정하고 전개하는 경제정책에서 '소통'과 '토론'과 같은 요소들이 존재할 수 있는가? 좀 심하게 말하면, 한나라당 버전의 서민경제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해줄테니 잠자코 있다가 선거 때 표나 달라는 얘기 아닌가? 서민경제의 다른 의미는 정부의 일방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보다 손쉬운 통치를 위해서 이런 일방주의를 설정한 것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과연 이렇게 국민들의 상당수를 수동형으로 놓고 한국 경제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게 정말로 궁금하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계몽주의 시대가 종료하고, 이제는 다중지성 혹은 집단지성의 시대로 왔다고 말한다. 학계에서는 물론이고 이제는 정보 독점도 이제는 사라져서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 우월적 지위에 있지 못하다. 이게 한국의 현실이기도 하고, 또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의 서민경제로의 복귀는 바로 이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아닐까? 서민 버전의 경제 계몽주의, 이게 과연 통할까? 만약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이번 정권을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더 이상 경제적 주체를 서민으로 설정하는 수동 모드에서 벗어나서 지금보다는 몇 배로 더 많이 대화하고, 그들 내부의 애로 사항들을 소통하는 과정들이 필요할 것이다. 시민의 시대를 이미 경험한 국민들이 다시 1970년대식 서민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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