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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아파트 화재, 청소원 휴게실만 있었어도…"

대학·병원 청소 노동자, 집단 교섭 3대 요구안 발표

'따뜻한 밥 한 끼'를 외치며 권리 찾기에 나섰던 청소 노동자들이 '뿔났다'.

휴게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그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반향을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 중에는 우울한 이야기가 더 많다. 동국대병원에서는 용역업체와 갈등을 빚던 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부산 해운대 고층 아파트 화재사건의 '범인'으로 청소 노동자가 지목돼 불구속 입건됐다.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기 위해 청소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원청회사인 대학과 병원 등에 처우개선을 요구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용역 업체와 1년 단위의 짧은 계약을 맺고 일하는 이들에겐 단체협약은 대학이나 병원이 용역업체를 교체하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유령'에서 범법자 취급까지 받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대학과 병원이 스스로 고용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데 있다.

청소 노동자, 대학에 집단 교섭 제안

고려대, 고려대 병원, 연세대, 이화여대 청소 노동자들이 3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개별 협상의 한계를 넘어 청소‧시설관리에 대한 보편적인 노동기준을 만들기 위해 임금‧단체 교섭을 공동으로 추진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지난달 22일부터 대학 관계자 및 계약을 맺은 9개 용역업체와 집단교섭을 통한 단체협약을 맺자고 제안한 상태다.

교섭 대표를 맡은 구권서 공공노조 사무처장은 "'밥 한 끼의 권리'를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청소 노동자들이 대학의 온정에 호소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했다"며 "용역업체와의 협상이 의미가 없는 만큼 이제는 대학 당국을 상대로 직접 싸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 3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청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적어놓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기자회견에 참석한 청소 노동자들은 대학에 3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영숙 고려대분회장은 "세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 593명에 대한 설문을 한 결과 48%가 한 달에 150~180만 원이 생활비로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현실은 휴일 근무까지 해도 95만 원이 전부"라며 "전체 임금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인 시급 5180원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급이 5180원으로 오르면 이들의 임금은 월 108만 원(주40시간)이 된다.

권태훈 공공노조 서경지부 조직국장은 "해당 설문은 주관식이었음에도 청소 노동자들이 이러한 금액을 써낸 건 150~180만 원의 임금조차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들의 처지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반증하는 설문 결과"라고 덧붙였다.

심복기 이화여대분회장은 "설문 대상의 86%가 식사를 대기실에서 취사나 도시락으로 떼우고 65%가 구내식당 식비를 부담스러워 한다고 답했다"며 "이화여대의 경우 휴게실이 전부 계단 밑 공간이고 이곳에서는 똑바로 서서 옷을 갈아입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다"고 말했다.

심 부회장은 "대학은 조합원들에게 휴게시설을 개선하고 식대를 현실화해야 한다"며 "생활 폐기물이나 의료 폐기물을 청소하는데도 제대로 씻을 수 있는 샤워실 하나 없는 점도 개선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요구한 식대 월 8만8000원은 매끼로 계산하면 2000원 수준이다.

김경순 연세대분회장은 마지막 요구안으로 대학 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주인 대학이 처우 개선을 위해 직접 나설 것을 요구했다. 김 분회장은 "용역업체가 우리를 고용하지만 업무 내용을 관장하고 임금과 근로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 것은 원청 사용자인 대학"이라며 "집단교섭 요구안에 원청의 책임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진 않지만 면담과 협상을 통해 청소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운대 고층 아파트 화재, 죄를 만든 사회를 사법처리 해야"

한편, 이들은 청소 노동자의 휴게실 전기시설에서 튄 스파크가 원인이 된 해운대 고층 아파트 화재사건에 대해 경찰이 청소 노동자에 책임을 떠넘기고 편파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명순 공공노조 서경지부 부지부장은 "(화재사건은) 처음부터 제대로 된 휴게실이 마련되었다면, 준공검사도 받고 진화장비도 갖춰진 휴게실이었다면,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휴게공간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법이 휴지조각이 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라며 "사법처리의 대상은 해운대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이 아니라 죄를 만든 이 사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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