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연예 만능 시대' 질러가는 가인과 한희정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연예 만능 시대' 질러가는 가인과 한희정

[나도원의 '대중음악을 보다'] 브아걸과 홍대걸의 새 앨범

일반인도 스타가 되는 시대처럼 보인다. 일반인으로 가장한 기획사 소속의 신인이 아니라 기획사 소속이 되지 못한 일반인 말이다. '얼짱'을 데뷔시킬 정도로 인터넷과 다양한 미디어의 발달은 대중의 개입도 활성화시켰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결정권을 쥔 손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인터넷은 정말 평등하고 권위가 파괴되는 공간일까. 그렇지 않으니 인터넷시대의 문자소통에 의한 병리현상이 겉모습과 인격의 괴리를 낳고, 피해의식을 공격성으로 표출하는 소시민들까지 생긴 게 아닐까.

권한이 작으면 책임이 부재하는 속성은 진보(Jinbo)가 자신의 블로그에 썼던 '저명성'의 원인이기도 하다. 보통사람이 스타가 되고 대중이 스타를 만드는 시대가 아니라 일반인마저 소비하는 예능산업의 시대를 살고 있을 뿐이다.

가인, 탱고 스텝으로 딛는 발판

그렇다고 시스템의 구성원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아예 없진 않다. 전혀 달라 보이지만 비슷한 면도 있는 걸음과 걸이를 보여주는 두 장의 미니앨범을 살펴보며 다면성을 대비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케이블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 '배틀 신화'에 참가했다가 탈락한 바 있는 여성이다. 일반인을 스타로 만들어준다는 방송에 거부당한 그녀는 훗날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 가인이 되어 돌아온다. '브아걸'을 걸 그룹 바람에 편승하여 인기를 얻은 댄스그룹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타이틀곡만이 아니라 앨범 전체를 들어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막내멤버 가인을 결혼놀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 정도로 아는 사람이라면 이번에 나온 솔로앨범 [step 2/4]를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
▲가인의 첫 솔로앨범 [step2/4] ⓒ내가네트워크

과거까지 질투할 정도로 사랑하고 배반이 두려워 배반할 정도로 사랑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선지 사랑이야기는 때로 독한 분위기를 품는다. 타이틀곡인 <돌이킬 수 없는>은 탱고 분위기를 버무린 독한 노래다. 돌이켜보면 '돌이킬 수 없는'이란 이름을 가진 노래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 중에서 음악적으로 권할만한 것만 해도 '레이니 선'과 '네스티요나', 그리고 오소영의 동명이곡들이 있다. 영화 쪽도 마찬가지여서 하나같이 강렬한 체념과 비극을 담고 있다. 아울러 또 다른 관심을 끌만한 부분이 있으니 <돌이킬 수 없는>에 그간 브아걸의 오늘을 만들기까지 큰 기여를 해온 이민수와 함께 윤상이 작곡가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윤상은 1980년대 후반부터 김민우와 강수지, 조정현과 변진섭에게 곡을 써주며 데뷔한 작곡가이자 본인 역시 다양하고 실험적인 음악을 발표해온 뮤지션이다. 적지 않은 댄스가수들의 노래는 물론이고 일렉트로니카, 그리고 편하지만 좀 부당한 명칭인 '월드뮤직'으로 칭해지는 중남미 음악을 아우를 정도로 진동의 폭이 크다. 그러므로 말 그대로 윤상표 곡인 <진실>까지 얹어주며 가인의 앨범에 참여한 것이 의외는 아니다. 더구나 '브아걸'과 가인의 소속사는 연예기획사라기보다는 음악인들의 네트워크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번에도 세인트바이너리, 하임, 라디 등이 '탱고 느낌'이란 테마를 중심에 둔 곡들로 함께 했다.

물론 누군가 대단히 훌륭하다거나 모범적인 사례라고 말했다면 그건 호들갑이다. 반복되는 반도네온 연주와 <Esperando>에 드러나듯이 탱고에 대한 클리셰를 모아놓은 듯 하며, 안무처럼 절도 있는 노래와 일렉트로닉의 딱딱한 소리들이 본연의 탱고와 어우러졌다고 보긴 힘들다. 그러나 가창력 과시에 매달린 채 다양한 색깔의 곡들을 골고루 섞어 넣은 휘황찬란한 누더기가 메인스트림 음반의 전형이 된 상황이다. 이런저런 스타일을 다 소화하는 것은 더 이상 미덕도, 귀감도 아닌데도 라면 끓여먹을 때 냄비 받침으로 쓰기에 좋을 음반들이 관성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이 안에서 일관성 있는 [step 2/4]는 흔치 않은 가요앨범이다.

초기의 '브아걸'과 현재의 '브아걸' 사이에는 예전의 팬들과 일부 비평가에 의한 정체성 논란이 놓여 있다. 하지만 스타일이나 성공여부를 떠나 곡의 완성도로 보면 오히려 변화 이후가 음악적으로도 나아 보인다. 게다가 다른 것이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나온 가인의 솔로앨범은 가창이 특기였던 가수, TV대중에겐 뭔가 달라 보이면서도 친숙한 탱고의 어떤 강점, 본래 작곡과 자질을 중시했던 기획사인 내가네트워크의 지향이라는 세 가지 요인과 상황이 만나 대중적인 선에서 잘 버무려진 결과물이다. 가인은 빗발치는 걸 그룹 출신 솔로들의 고만고만한 동선 밖으로 나가는('나아가는'과 다른) 발판을 마련했다. 다리까지 놓을 수 있을지는 나중에 다시 돌이켜봐야겠지만.
▲가인은 손꼽히는 작곡가 시스템의 세례로 다른 아이돌과 차별화된 길을 걷고 있다. ⓒ뉴시스

한희정, 스스로 만든 무대에 오르다

또 다른 스타가 있다. 홍대여신이니 홍대미녀니 하는 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다. '원조 홍대여신'이 한희정이다(나이가 가장 많다는 뜻은 아니다). 박혜경을 배출한 밴드 '더더'의 보컬로 2001년부터 두 장의 앨범에 참여하고, 듀오 '푸른새벽'으로 [bluedawn](2003)을 포함하여 석 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솔로가 되어 [너의 다큐먼트](2008)를 낸 후, [끈](2009)에 이어 이번에 또 한 장의 미니앨범인 [잔혹한 여행]을 발표했다. 2000년대는 젊은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인디음악동네에 대거 등장한 시기이고, 주기적 신체를 가진 여성의 주기적 세계관과 감수성이 대중음악의 공간을 풍성하게 채웠다. 이 때 푸른새벽 시절을 지나오며 한희정은 현재의 음악계에서 가장 짙은 색의 목소리를 지닌 여성 음악인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동안 인디는 많이 변했다. 역사가 깊어졌고 '집단의 크기 변화에 따른 응축도의 변화'의 공식이 적용되었다. 모던한 음악 위주의 그랜드민트페스티벌(GMF)과 같은 시기에 'We Are Not Modern'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초대받지 못한(?) 실험적이거나 시끄러운 밴드들의 공연이 열릴 정도로 지형이 단순하지 않다. 이를 스타일 차별로 오해한 해프닝도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장르가 아니라 기준과 기능, 즉 음악에 대한 안목과 인지도에 개입하는 결단으로 발굴과 재생산이라는 페스티벌 고유의 역할까지 기대해보는 선이어야 한다. 왜냐면 GMF에 참여하는 뮤지션 대부분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방방 뛰는 분위기 중심의 여타 록 페스티벌로부터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모아 성공한 GMF를 보기엔 초점이 어긋난 시선이다.

5년 전, 어느 페스티벌의 담당자로 푸른새벽을 섭외할 때에도 분위기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노래의 힘은 강했다. 사실 한희정은 10년 동안 제 발로 무대와 무대를 오간 뮤지션이다. 오버그라운드 기획사의 생리에 실망하여 인디로 넘어와 작은 클럽 '빵'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푸른새벽으로 인정받았으며, 다시 그 동네에선 큰 편인 레이블로 옮겨가면서 보다 많은 팬들을 만나게 된다. 감성적인 무드와 과하지 않게 풍성한 밴드 편성, 그리고 피아노가 도드라지는 [잔혹한 여행]은 그의 음악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우습지만 믿어야 할>과 달뜬 분위기의 <입맞춤, 입술의 춤> 모두 준수한 팝 센스를 지녔다. 다른 곡들처럼 리듬의 운용에 관심을 보이며 이국의 무드까지 더한 <잔혹한 여행>도 마찬가지다.
▲한희정의 새 EP [잔혹한 여행] ⓒ파스텔뮤직

한희정은 세공되었고, 그래서 조금은 평범해졌다. 형식과 스타일을 중시하며 음악이 마모되는 건 거의 공식에 가깝다. 자신의 초창기를 부끄러워하는 음악인이 있으나 반대로 애정을 갖는 음악인도 있다. 스스로는 서툴렀다며 겸연쩍은 손사래로 부끄러워하지만 정작 역사가 사랑하는 데뷔앨범들이 많은 이유는 무얼까. 장필순은 "음악은 실력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더 중요하고, 그 사람의 감성이 더해져야 완성된다"고 말했다. 한희정 역시 지금보다 서툰 시절에 이슬처럼 빛나는 노래들을 불러냈다. 빈 공간에서 울릴 때 더 매력 있었다. 허나 대중은 그 여백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역시 쓸쓸한 어쿠스틱에 목소리가 어울린다고 말해주는 곡이 여기에 자리했다. 2003년에 <스무 살>과 <시념>을 들으며 했을지도 모를 어렴풋한 기대에 <반추>로 답했으니, 그걸로 된 것이다.

사람들은 우주에서 외계생명체를 드디어 발견했다는 확증보다 지구 말고는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정될 때 더 큰 충격을 받을 것 같다. 광활한 우주에서 오로지 고립된 행성인 지구에만 우리 같은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보다 더 쓸쓸한 이야기가 있을까. 오래 전에 인터뷰를 위해 만나 한희정에게 소통에 대한 질문을 던진 맥락은 이런 것이었다. 대답을 들으며 그 때에도 이해해주지 않는 이들에게 상처받았고 어느 정도는 포기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놀랍게도 지금의 한희정에 대한 반응도 비슷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혹은 타자가 규정한 이미지에 의거하여 불만을 표하는 이들까지 있다. 물론 가능성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되었겠지만, 그는 이미 다른 무대에 섰고 그 무대는 그도 함께 만들었다.

영화에 피부가 검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주연으로 등장하게 된 시간은 길지 않다. 그 빈도는 그들의 처지와 지위상승을 의미했다. 어린 여성들이 브라운관을 장악하고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인디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러나 순진한 얼굴의 탐욕이 지배하는 사회는 현대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전단지에 담아 뿌려대며 끊임없이 소비를 강요한다. 그 틈에서 오디션 탈락자였던 가인은 기획사의 인도를 받아 꿈을 이루었고, 생각보다 괜찮은 앨범을 들고 나왔다. 작은 무대로 내려왔다가 다시 계단을 오르고 있는 한희정은 자신이 주도하여 길을 냈으며, 조금 아쉬워도 이젠 받아들여야 할 앨범을 내놓았다. 이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거리를 좀 더 찾아본다면 누군가에게 받은 명함에 급히 메모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매번 특별한 건 없었어도 기다려지는 소풍날 보물찾기와 비슷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