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통해서 자원 문제에 대해서 생각한 사람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 사건만큼 실시간으로 세계인의 눈을 끌었던 것으로는 얼마 전 멕시코만에서 생겨난 원유 유출 사건이다.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사건은 한 가지는 인명 구조 사건, 또 다른 하나는 생태계 재앙에 관한 사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사건이다.
지금까지 자원에 관해서 얘기할 때에는 주로 고갈과 고갈 시기에 관한 얘기들이 많았다. 결론적으로 1970년대 이후로 고갈시점에 대한 예측 중에서 정확하게 맞은 것은 한 가지도 없었다. 왜냐하면 기술이 발달하면서 당시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자원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기술적인 문제로 채굴하지 못하던 것들을 채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도 태평양의 심해유전은 있는 건 알아도 너무 깊어서 채산성이 맞지 않아서 없던 걸로 쳤다. 그러나 채취 기술이 발달하는 동시에 자원 가격이 상승하면서 이제는 질이 낮아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웠던 북해산 유전마저도 전부 채취하게 되었다.
이렇게 바다 깊숙이 들어가게 되면서 지표에서 손쉽게 채취하던 중동산 유전과 달리, 바다 속 깊은 수압과의 싸움이 새로운 문제가 되었다. 멕시코만의 원유 유출은 결국 누출 파이프를 밀봉하면서 사건이 종료되었지만, 이 사건은 앞으로도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점점 더 심해 깊숙이 들어가면서 재발의 위험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최근에 이렇게 좋지 않은 조건에 있는 석유를 채취하면서 투입 배럴 대 채취 배럴이라는 새로운 통계를 사용하게 되었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1배럴의 석유를 채취하기 위해서 몇 배럴의 석유가 들어갔는가를 말해주는 수치이다.
조건이 좋지 않은 심해유전의 경우는 고압으로 채취하면서 0.5 배럴까지 채취 단계에서 사용하는 모양이다. 만약 1배럴의 원유를 채취하기 위해서 1배럴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면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이건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힘들여서 채취를 해봐야 헛수고인 셈 아닌가?
석유보다 매장량이 많아서 최소한 100년 이상은 쓸 수 있다고 우리가 생각했던 석탄도 점점 더 조건이 안 좋은 광산 채굴이 시작된 것은 꽤 오래된다.
그렇게 깊숙이 들어가다 보니 갱도 관리도 어려워지고, 칠레의 광부들을 구조할 때 보았던 것처럼 나사 등이 개발한 우주기술이 동원되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석탄에는 여기에 또 다른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석유를 중심으로 구성된 에너지 구성원에서 석유 가격이 계속해서 올라간다면 자연스럽게 석탄 대체가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석탄도 예상보다 조기에 고갈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천연가스와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사용량으로 천연가스는 석유보다는 수 십년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석유 수요가 천연가스 수요로 대체되면 조기에 고갈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 중 최근 정부가 국운을 걸다시피 매달리는 원자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라늄은 고갈성 자원이고, 예상 채굴기간은 석유보다는 길게 보고 있지만, 최근에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이 원자력을 중심으로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고갈 시점이 생각보다 일찍 올 수 있다.
요즘 기술적인 논쟁 중의 하나가 한국에서 1990년대 후반 이후 채굴을 중단한 석탄 채굴을 다시 시작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호주의 노천광, 지하로 들어가지 않고 불도저로 지표에서 작업하는 그런 광산에서 석탄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국의 석탄은 경제성을 잃었고, 폐광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결국 그 폐광촌 대책으로 한국은 내국민도 들어갈 수 있는 카지노를 열었다. 많은 지역주민들은 도박에 빠져서 몰락하게 되었다.
그렇게 폐광대책까지 다 끝난 상황이지만 조만간 한국의 석탄들도 다시 경제성을 찾게 될 시점이 수 년내에 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시 폐광을 열어서 채굴을 시작하는 게 나을 것인지, 아니면 자국 내의 석유는 가능하면 보존하고 나중에 사용하겠다는 미국처럼 국내 석탄은 그냥 두는 게 나을지, 그런 복잡한 정책적 결정을 한 번 내려야 할 시점이 올 것이다. 나는 그냥 두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민간 회사에서는 그것보다는 더욱 복잡한 사업 검토를 하게 될 것이다.
▲ 칠레 광산에서 구조된 광부 가운데 한 명인 클라우디오 아쿠나(가운데)가 지난 15일(현지시간) 고향에 도착해 이웃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AP/뉴시스 |
자,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한 번쯤은 돌아볼 시점이 온 것같다. 졸저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노무현 정부가 중반을 거치면서 제국주의와 유사한 흐름을 강력하게 보여준다는 것을 지적한 적이 있다. 이 책은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3권이었는데, 외교와 관련된 얘기들은 8권에 자리잡게 되어 있으므로 이 책에서는 자원외교에 대한 분석은 뺐었다. 어쨌든 시기적으로 자원외교라는 용어 자체를 도입한 것은 노무현 정부 중반기의 일이다. 나중에 이 개념은 일종의 외교 기조로 자리를 잡게 되어서, 한국의 경제외교는 자원외교와 FTA를 중심으로 하는 통상외교, 두 가지의 줄기를 가지게 된다.
자원외교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었고, 정권의 첫 번째 총리였던 한승수 총리는 정말 존재감이 없었는데, 그 스스로도 자원외교에 집중하겠다고 수차례 얘기하였다.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 것이 원자력 외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무적으로는 조금 복잡한 사연들이 붙는데, 외교부에서 자원외교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한 흔적은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의 청와대에서는 모든 관료가 자원외교를 찬성했던 것은 아니고, 실무적으로 반대했던 목소리들이 조금은 있었다.
외부로 얘기가 흘러나오지 않아서 모두가 찬성한 것처럼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 사이에 자원외교를 놓고 약간의 차이점은 있다. 반대가 있음에도 강행한 것이 노무현 정권이라면, 아무런 반대없이 강행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경제의 제국주의적 성향이 노무현 때 갈래를 잡았다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젠 좀 노골적으로 제국주의 외교로 방향을 잡았고, 그 첨두에 있는 것이 자원외교이다. 19세기에 제국주의 흐름을 이끌던 두 가지 경제적 요소가 시장과 자원이었다면, 한국 외교는 이미 자원외교와 함께 제국주의 흐름 위에 서 있는 셈이다.
FTA 외교와 자원외교의 차이점이라면, FTA는 우리 보다 강한 나라와 체결하는 게 주요한 이슈였기 때문에 좀 덜했지만, 자원의 경우는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제국주의 성향이 더 강하다.
외교의 효과가 외국에서만 한정되고 국내에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부 특히 청와대에서 정책 기조가 한 번 결정되면 국내 다른 부처의 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예산을 쥐고 있는 예산당국의 결정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 <촌놈들의 제국주의> 표지. |
여기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은 '자주개발율'이라는 지표이다. '자주개발'이라는 용어는 김대중 정권 때 등장하였는데, 선물시장과 같은 자원시장에서 거래되는 것보다는 여전히 국가 대 국가 협약의 형태로 진행되는 우즈베키스탄 등 천연가스 시장에 진출하면서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요즘은 유전 개발에 한국 업체가 직접 참여하면서 지분참여를 하거나 아니면 직접 개발을 하는 것들을 포괄적으로 자주개발율 계산에 포함시킨다. 우리가 사용하는 총 에너지에서 한국 업체가 참여해서 개발된 에너지를 나누면 이 수치가 된다.
그리고 정책 목표로 자주개발율이라는 게 잡히면서 각 부처나 민간기업이 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기는 한데, 너무 기계적으로 이 수치를 정책 목표로 관리하는데 집중이 되다보니 현장에서는 왜곡이 생겨나기도 한다. 결국 정부 예산의 '한계생산성'에 관한 문제가 된다.
물론 극소량이 사용되는 희귀 광물을 포함해서 해외에서 자원을 확보하는 일을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걸 '자원외교'라는 이름을 붙여가면서까지 호들갑을 떨고, 국가의 국정지표로까지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자원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지금과 같이 석유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시대는 우리 시대가 마지막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계적으로 자주개발율을 높이는 데 예산을 수조 원씩 들이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 돈으로 국내에서 대체에너지에 대한 기술개발과 보조금으로 사용하면서 보급을 높이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큰 프레임만으로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도 대체에너지는 믿지 않았고 원자력을 믿었던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인데, 4대강의 신화만큼이나 원자력 신화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고, 대체에너지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불신이 많은 것 같다. 최소한 그가 통치하는 시기에 대체에너지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이 반도체 산업이 강하니까 같은 기술을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개발되었던 태양광에 대한 보조금이 이명박 정부와 함께 사라지게 된다. 풍력과 지열 등 석유가 없는 나라에서 당연히 중점을 두어야 할 에너지원에 대한 획기적 전환 같은 것들도 정책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리는 셈이다.
국제적 자원에는 고갈이라는 기본 요소 외에도 달러와의 대체 관계에 의한 상대적 가격변동이라는 경제적 요소와 자원외교의 강화에 의한 보유국의 인위적 통제라는 정치적 요소가 개입된다. 10년 이상이라는 장기적 눈으로 본다면, '자주개발'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자원의 거래가 국제적으로 자유로웠던 시기에 잠깐 가능한 허깨비 숫자 놀음 같은 것이다.
게다가 국제적인 외교라는 측면에서, 자원외교를 간판으로 내세우는 것은 다음 시기에 점점 강해질 환경외교 혹은 생태외교를 '말 뿐인 것'으로 만드는 부정적 요소가 된다. '살벌한 외교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외교의 현장은 여전히 명분이 중요한 곳이다.
자원외교는 실익과 대비라는 차원에서 드러내지 않고 살짝 혹은 몰래몰래 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대놓고 드러내서 하는 게 아니다. 외국의 시선으로 본다면, 한국은 자원외교를 내세우는 팽창주의 외교가 강한 나라로 보이게 된다. 이런 것은 좋은 게 아니다.
게다가 '대통령 관심 사업'으로 정권에서 밀어주는 사업이 해외 유전개발 사업이 되다보니, 실제로 민간업체는 채산성이나 경제성 보다는 '눈먼 돈 따먹기'처럼, 정부에서 관리하는 정책 수치에 맞추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도 종종 벌어지게 된다. 과연 명분과 실익 그리고 효율성이 자원외교에 존재하는가, 그런 질문들이 필요하다. 석유를 사오는 것은 무조건 옳다, 그렇게 환상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
녹색성장이라고 하면서 실제로 외교는 자원외교로 가는 상황, 그 기술적·경제적 효과는 회사 주가를 보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정부에서 최근 대대적으로 코엑스에서 대체에너지에 관한 전시를 하였지만, 그 시간에 풍력이나 태양광과 관련된 회사들 주식은 죽죽죽 떨어지고 있었다. 정부가 하는 말들, 국민들은 믿을지 몰라도 시장은 잘 믿지 않는 것 같다.
칠레의 광부 구조 사건이나 멕시코만 원유 유출사건을 보면서, 그러니까 우리는 더욱 더 자원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는 시각과, 그러므로 국내에서의 대체에너지 성장이 더욱 중요하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미묘한 정책적 판단의 문제이지만, 나는 후자가 맞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의 청와대에는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비록 소수지이만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명박의 청와대에는 자원외교가 꼭 옳은 것이냐, 이렇게 질문하는 수석이나 비서관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원외교, 말은 화려하지만 생각만큼 실익이 많지 않고, 무엇보다도 국제적으로 내세우기에는 좀 촌스럽고 적절치 않은 개념이다. 이걸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나라는 일본 정도인데, 이것까지 일본 따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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