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표적인 예가 자신의 딸을 별별 기이한 수단을 동원해 특채했다가 꼬리가 밟혀 엄청난 파장을 가져온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 파문이다. 유 전 장관은 결국 공정사회라는 이명박 정부의 구호를 희화화시키고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제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기 시작한 유 전 장관의 딸 특채 소동이 다시 떠오른 것은 북한이 김정일 당중앙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을 대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하고 3대 세습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듣고서였다.
구체적으로, 그 뉴스를 듣자 엉뚱하게도 우리와 한 핏줄인 북한은 국가의 최고 우두머리 자리를 3대째 세습까지 하는데 외교의 수장이 자신의 딸 하나 특채해 그리 높지도 않은 외무부 자리 하나 세습한 것을 가지고 그 난리를 치고 장관 옷까지 벗게 만드는 대한민국이 참으로 쪼잔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명환 전 장관이 참으로 안 됐다는 동정심이 생겼다. 부끄러운 대한민국이여! 불쌍한 유명환이여!
나아가 김정일 위원장이 세간의 비난을 감수하며 3대 세습을 강행한 것은 자신의 딸에게 그리 높지도 않은 외무부자리 하나 세습한 것 가지고 장관 옷까지 벗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불쌍한 유 전 장관을 구해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하는 정말 엉뚱한 상상까지 하게 된다. '김정일의 유명환 일병 구출작전'이라고나 할까?
사실, 유 전 장관은 딸 특채사건이 터지기 전에 기자들과 만나 (6·2 지방선거 때) 젊은이들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한나라당을 찍으면 전쟁이 난다며 민주당을 찍었다며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라는 독설을 퍼부어 문제가 된 바 있다. 이와 관련, 유 전 장관에게 "그렇게 세습이 좋으면 (외무부자리 하나 딸에게 세습한 것을 가지고 장관 옷까지 벗게 만드는 쪼잔한 대한민국에 살지 마시고 마음대로 세습할 수 있는)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사시라"고 충고해주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 지난 28일 44년 만에 열린 북한 조선노동당 대표자회 참가자들이 개회에 앞서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중앙은 김정일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AP=뉴시스 |
어두운 군사독재 시절 김지하 시인은 김수영의 시구 ("누이야, 풍자가 아니라면 자살이다!")에 기대어 "풍자냐 자살이냐"라는 시론을 쓴 적 있다. 이 시론은 개인의 실존을 압도하는 정치와 시대의 무게와 야만 앞에서 문학이 택할 수 있는 선택이 자살과 풍자이외에는 없었던 암울한 시대를 고발한 것이었다. 물론 그 같은 야만의 시대는 어느 정도 지나갔지만, 북한의 3대 세습 뉴스를 접하면서 이 같은 현실이 우리에게 던지는 어둠의 무게가 너무도 엄청나기에 개인적으로 "김정일에 비하면 유명환은 정말 새 발의 피"라는 풍자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 심각성을 생각할 때 단순히 풍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후계자가 됨으로써 한국의 김정은 또래의 청년들 사이에 북한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 자조가 만연할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남한의 진보적인 대북관을 형성할 수 있는 이들 사이에조차 반북 정서가 굳어질 수 있고, 이는 대북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우려했다.(관련기사 보기)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으로 평가를 해온 강정구 교수 역시 이 같은 우려 때문에 얼마 전 "북은 권력이 너무 개인에게 집중돼 있고 세습되는 상황에서 벗어나 자기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 미국의 압박 등 나쁜 조건 아래 있다 할지라도 3대 세습까지 가는 등 인류 보편적인 흐름에서 어긋날 경우 남과의 화해협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3대 세습은 엎질러진 물이 되어 가고 있고 이 같은 북한의 시대착오적 선택에 대해 진보진영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 답답한 일이다. 그렇다고 진보진영이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 낯부끄러운 3대 세습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적 시선이 진보진영에까지 확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명환에 대해 거품을 품으며 비판을 하면서도 그보다 백배는 더한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한반도 정세를 고려할 때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옹호하는 이중 잣대를 벗어나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확실하게 비판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야 한다.
물론 3대 세습을 이유로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 노선을 포기하고 이명박 정부 식의 냉전적 노선을 택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탈냉전의 햇볕정책을 계속 주장하고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 그러나 햇볕정책 노선과는 별개로 반역사적인 왕정식의 세습정치는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같은 비판은 냉전노선에 기초한 뉴라이트 류의 반북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사실, 권력세습과 같은 북한 지도부의 반역사적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반김정일'일지는 모르지만 '반북'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북한 지도부의 반역사적 행태에 의해 억압받는 다수 북한 민중을 사랑하는 진정한 '친북'이다. 권력세습 비판을 반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유신체제 비판을 반독재, 반정부가 아니라 '반한'으로 몰고 갔던 군사독재의 공안논리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냉전시기의 세계적인 진보적 지성이었던 프랑스의 실천주의 철학자 샤르트르는 1950년대 그가 프랑스 등 자본주의 진영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왜 소련에 대해서는 침묵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나의 실천 현장은 소련이 아니라 '지금, 여기'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진영 비판에 주력할 수밖에 없으며 소련에 대한 비판이 넘치는 상황에서 자신까지 소련비판에 나서는 경우 그 비판이 그래도 프랑스는 괜찮은 것으로 비쳐져 자본주의의 문제를 은폐하는데 이용되는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
나 역시 이 같은 입장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왔으나 몇 년 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듯이 북한의 문제는 더 이상 사르트르의 논리에 기초해 침묵하고 있기에는 이미 용인의 수위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북한의 반역사적인 왕정식의 세습정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야 한다.
나아가 뉴라이트류의 북한민주화운동과는 별개로 '진보적인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북한 민주화는 기본적으로 북한 민중의 주체적 실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정작 우리의 삶의 현장인 한국사회에서는 '반민주화운동'에 앞장을 서면서 엉뚱하게도 북한의 민주화를 돕겠다고 나서고 있는 뉴라이트와 같은 외부세력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진보적인 북한 민주화운동은 일차적으로 이의 진정한 주체인 북한 민중 스스로가 민주적 역량을 육성하고 힘을 가질 수(empowerment)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중심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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