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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FTA?…무역의 '매독'"

[기고] "한-EU FTA는 한-미 FTA보다 낫다는 환상을 깨자"

한-EU FTA가 타결되었다. 한-EU FTA의 성격과 본질에 관련해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 즉 '좀 덜 독(毒)한' 혹은 '착한' FTA는 실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2006년 발표된 이른바 <GLOBAL EUROPE: COMPETING IN THE WORLD. A Contribution to the EU's Growth and Jobs Strategy>라는 보고서를 통해 EU집행위가 표방한 통상정책의 전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이 보고서를 전후로 미국에 대한 경쟁력 강화가 최우선 목표가 되는 것이다. '글로벌 유럽' 이후 EU는 한국, 인도, 아세안등과 '신(新)모델' FTA를 추진하는데 그 중 최우선 추진국이 한국이었다.

EU FTA의 신, 구 모델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미국형 FTA의 경우, 협상의 목표와 원칙이 통상법(2002년)에 명시되어 있는 '표준안'방식이기 때문에 미국이 체결한 FTA는 나라별로 큰 차이가 없고, 한-미 FTA 역시 큰 틀에서 보면 마찬가지다.

하지만 EU가 체결한 구(舊)모델 FTA는 상대 국가에 따라 통일된 형식을 찾기가 어려운, 유연하고 서로 차이가 크다.

심지어 EU가 몇몇 개도국과 체결한 구FTA 모델은 서로간에 경제력 차이를 인정한다. 그래서 상품무역에 있어서 개방폭이 비대칭(Asymmetry)일 수 있다.

반면 신모델은 일률적으로 90%이상에 대한 관세철폐를 목표로 하고, 관세철폐 기간도 대개 10년을 목표로 한다. 신모델은 그래서 미국형 FTA와 마찬가지로 매우 높은 수준의, '포괄적(comprehensive)' FTA이다. 그래서 서비스, 투자, 지재권, 정부조달 등이 다 포함되고, 특히 이 분야에 있어 EU의 경쟁력이 높은 만큼, 아예 작정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덤벼들었다.

이를 위해 이 분야에서 한국의 비관세장벽(NTB)의 해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고, 특히 자동차, 전자, 의약품등이 그것이다. 일단 이 글에서는 한-EU FTA의 산업별 영향에 대한 분석보다 우선 협정문상의 독소, 문제조항에 집중하겠다.

▲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렐 드 휴흐트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6일 EU의장국인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이사회 본부에서 한-EU FTA 협정문에 공식 서명했다.ⓒ연합뉴스

첫째, 정부측의 설명과 달리 한-EU FTA 역시 래칫조항(역진 방지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관련 정부측은 마치 한-EU FTA 서비스, 투자챕터가 '포지티브리스트'방식-곧 개방할 부문만 적시하는-이기 때문에 래칫조항이 필요없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나, 이는 래칫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래칫조항은 양허방식이 포지티브(열거주의)건 네거티브(포괄주의)건 해당 부문의 개방이 역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1) 서비스, 투자 양허리스트와 관련, 시장접근, 내국민대우, 최혜국대우의 변경시 래칫(역진 방지조항)조항이 명시되어 있고,
(2) 투자챕터에는 "투자의 계속적 자유화(progressive liberalisation)" 의 목적으로만 투자협정의 이행과 투자환경등에 대한 재심(review)을 허용하고 있는 '빌트인(built-in)'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즉 금융위기와 같은 변화된 환경에서도 투자관련 조치들을 후퇴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는 말이다.

둘째, EU집행위는 회원국들로부터 투자자-정부 소송제(ISD)에 대한 협상권한을 위임받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마치 제외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잘못이다.

EU FTA에 포함된 투자 ('설립', establishment)조항은 개별회원국이 상대국과 체결하는 양자간 투자협정(BIT)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다시 말해 EU FTA 조약문에 ISD나 간접수용조항이 없다 해서, 이것이 배제된 것이 아니다는 말이다. 이미 한국이 EU 회원국과 체결한 BIT등에는 이 조항들이 다 포함되어 있고, 향후에도 마찬가지 일것으로 예상된다. EU 역시 투자조항과 관련해서는 ISD를 포함하는 미국형 곧 NAFTA형으로 이행 중이다.

셋째, 지적재산권 역시 구모델의 경우 WTO TRIPS(무역관련 지재권협정)수준이었지만, 신모델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TRIPS 플러스' 방식이다. 그래서 저작권 보호기간을 70년으로 연장하고, 지재권 보호과 관련된 집행을 대폭 강화했다. 협상과정에서 예컨대 일반서민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제약하는 치명적인 독소조항인 '허가-특허연계' 조항 혹은 이 조항의 우회적 수용에 관련된 어떤 조치나 부속문서가 한EU FTA에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었다.

초안과는 달리 최종합의에는 이 조항이 삭제되었으나, 이미 국회에 한미FTA협상결과를 반영하기 위해 <약사법>개정안이 제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EU측은 미국과 동일하게 '허가-특허연계'조항에 따른 실익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EU내에서는 위법한 허가-특허연계를 처음부터 요구한 데 따른 EU의 도덕성 논란과 EU역내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이익을 한국에서는 누리게 되는 비대칭성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EU는 '공짜점심'을 챙긴 셈이다. 그리고 지재권분야에서 지리적 표시(GI)와 관련 역시 비대칭적으로 EU에게 훨씬 많은 혜택이 돌아갔다.

넷째, 한-EU FTA는 한국이 체결하게 될 미래의 국제협약 곧 FTA과 관련 최혜국대우(MFN)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한-미 FTA에도 포함되어 있는 '미래의MFN' 또는 '자동업그레이드' 조항에 따라 우리측이 향후 제3국과의 FTA 혹은 통상조약을 통해 새로운 양허를 허용할 시 자동적으로 EU에도 적용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향후 한국의 정책공간(policy space)를 심각하게 제약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 EU의 신 FTA모델이 노리는 것은 관세장벽보다는 비관세장벽(NTB) 곧 각종 규범이다. 그래서 위생검역(SPS), 무역관련 기술장벽(TBT), 규제투명성, 보조금등과 관련 'WTO 플러스'가 한EU FTA에 적용되었다. 예컨대 위생검역과 관련 한-EU FTA SPS '지역화', '동등성' 조항에 따른 유럽산 쇠고기의 수입이 한국민의 건강에 미칠 영향이 어떠할 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여섯째,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품분야에 있어 우리측의 실익이 클 것이라고 흔히 주장되는 자동차 및 가전 협상은 한-미 FTA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실패한 협상일 따름이다. 한미FTA가 자동차 관세 '즉시철폐'로 타결되었음에도, 한-EU FTA는 3/5년철폐, TV등 일부 가전 곧 EU의 민감품목은 5년뒤 철폐로 타결되었다. 미국과 마찬가지 한국차의 유럽현지생산 비율이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할 때, 이는 상품분야에서조차 한EU FTA의 실익여부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반면 한국측의 자동차 안전기준, 환경기준 관련 표준 곧 비관세장벽이 한-미 FTA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해체됨. 특히 유럽측에 허용한 한국산자동차에 대한 양자간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와 2년 무보상 최혜국대우 관세율의 복귀, 곧 현행 유럽의 자동차관세 8%를 재부과할 수 있게 허용한 것은 면밀한 검토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일곱째, 그나마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한-미 FTA 개성공단 관련 조항과 비교해서도, 한EU FTA의 경우 매우 미흡하게도 작업반설치 정도 수준에서 타결되었다.

여덟째, 2009년 세계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하였던 각종 금융파생상품, 신금융 서비스등이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다 포함되었다. 금융세이프가드 곧 금융위기시 긴급외환거래 중단 조치기간 역시 한-미 FTA가 1년인데 비해, 한-EU FTA는 6개월에 불과하다. 특히 2008년의 금융위기를 감안할 때 한-EU FTA의 금융조항은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홉째, 특히 서비스 분야에서 다수의 "한-미 FTA 플러스(KorUs Plus)"가 적용됨. EU는 처음부터 "한-미 FTA 동등대우(Parity)"를 목표로 협상하였고 여기에 서비스부문에서 알파를 챙긴 협상결과라 볼 수 있다. 한국정부측은 국제위성전용회선 서비스와 생활하수처리 서비스등 2가지 분야에서만 코러스 플러스를 허용했다고 하나 EU측은 아래 총 7개 분야에서 코러스플러스를 확보했다고 말하고 있다.

(1) 정보통신분야에서 한-미 FTA에서 허용하지 않았던 위성방송(전화, TV) 개방
(2) 금융서비스분야에서 한-미 FTA에서는 단지 금융기관(institutions)에 제한되었던 시장접근이 '모든 금융서비스 공급자(supplier)'로 확대
(3) 환경서비스부문에서 하수(sewage)처리 서비스 개방
(4) 국경간 해운서비스, 해운회사의 상업적 주재등 광범위한 해상운송 양허와 항공기 리스, 지상 수하물 처리등 보조적 항공운송 서비스 시장 양허
(5) 단계적 법률시장 개방, EU변호사의 한국내 자국 명칭(home title)사용 허용
(6) EU기업에 대한 국제특송서비스 허용
(7) 하청의무 없는 건설시장 접근

한-미 FTA는 실패한 협정으로 꼽히는 NAFTA보다도 한 발 더나간 'NAFTA +'방식이었다. 바로 이 한-미 FTA에 EU는 동등대우을 주장해 대부분 관철시켰고, 여기에 추가적인 양보를 확보했다.

그리 보면 한-EU FTA는 '한-미 FTA +'라고도 말할 수 있다. EU의 신모델 FTA는 'EU는 좀 덜하겠지'라는 우리의 생각을 여지없이 착각으로 만들어 버린 FTA이다. 그 경제효과도 미지수다.

우선 한국의 대(對) EU의 서비스 무역 적자 폭은 현재 60억 달러보다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FTA체결로 인해 관세인하의 경제효과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그 효과가 덜하거나 미미한 수준이다.

국제통상연구소가 작년 9월 CGE (연산가능 일반균형) 모형의 최신버전인 미국 퍼듀대학 국제무역분석 데이터베이스 GTAP v.7 을 적용한 한EU FTA 경제효과 분석결과, 서비스무역 50% 인하시 GDP 증가율은 0.54% ~ 0.63 %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 0.05%정도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시 다발' FTA는 오히려 서로의 효과를 상쇄하는 결과를 보인다는 점이다. 전세계적으로 FTA 갯수가 늘어 날수록 효과는 더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바그와티같은 열혈 자유무역찬성론자조차 FTA를 일러 자유무역의 '매독'이라 했다.

별 효과도 없는 FTA중심의 통상정책의 결과, 한국경제는 자칫 양대 거대경제권의 각축전에 완전히 노출되는 새로운 리스크를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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