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가격은 재개발 아파트와 주상복합을 축으로 급격히 하락하는 중이고, 4대강 등 정부 토건사업으로 풀린 보상금으로 한동안 힘겨루기를 하던 땅값이 드디어 미세하지만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주택 시장이 서브 프라임-프라임-오피스의 3가지 범주로 분석이 된다면, 한국은 아파트-땅값-단독주택, 이렇게 3가지 범주로 분석되는 경향이 있다. 아파트에서 시작된 하락세가 땅값을 내리기 시작한 셈이다. 이렇게 국민들의 평균 자산 80%가 묶여있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본다면 지금은 디플레이션 국면이다.
그러나 전기료 등 공공 요금과 생필품 중 하나를 형성하는 식료품을 중심으로 보면 지금은 분명히 인플레이션 국면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고유가 국면에서 우리는 공공요금을 제대로 인상하지 못했고, 이것들은 다시 공기업 및 산업 부문에 버티기 어려운 경영적자로 나타난다. 원래는 지방선거 이후로 상승을 억제하고 있었는데, 언제까지 인위적으로 억제하기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양극화는, G20을 즈음해서 점점 강화되고 있는 달러의 약세이고, 이에 따라 금값은 물론이고 달러와 대체관계에 있는 석유와 곡물 등 국제자원들 심지어는 유사한 대체관계에 있는 엔화까지 초고가를 유지하고 있다. 생필품의 가격 안정은 한국은행 등 발권당국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항목이지만, 실제로 재정지출 확대 국면에서 이런 걸 잘 관리하기가 쉽지는 않다. 생필품에 해당하는 품목들은 일단 수요와 공급의 탄력적 조절에 실패하는 순간, 상한이 없을 정도로 가격 탄력성이 높다. 한 번 오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오른다는 말이다.
이렇게 가격 양극화가 일종의 트렌드처럼 자리를 잡는 국면에서, 한국 농업에서는 기이한 또 다른 양극화가 올 여름 벌어졌다. 쌀과 쌀이 아닌 것으로 구분을 하면 간단하다.
▲ 지난해 11월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한 한 농민. 당시 농민들은 "개 사료만도 못한 쌀값에 항의한다", "대북 쌀 지원 재개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프레시안(최형락) |
어쨌든 올해 우리가 본 쌀 가격과 채소 가격 사이의 양극화 현상은 지금 한국 농업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단기 과제 중의 하나인 셈이다. 연간 계획을 세워서 농사가 진행되는 농업은 다른 공산품과 달리, 공급 조절이 쉽지가 않고 또한 수요를 대체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 기본 특징이다. 정부에서는 올해의 이 현상이 폭우 등 기상이변으로 인한 특이 상항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쌀은 이상하게 풍작이고, 채소는 이상하게 흉작이었다는, 그런 설명이 지금 정부가 제시하는 설명의 유형인 것 같다.
관련 통계들이 워낙 상황이 종료한 후에 나오는 것이 농업 통계의 특징이라서 지금의 단기적인 이상 가격에 대해서 구조적 설명을 하기는 쉽지 않다. 쌀농사의 경우는 수입 할당제에 의해서 국내 시장에서 소화해야 하는 수입 쌀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일정 부분은 북한 식량난 지원으로 소화되는 분량이 줄어든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부처의 관료들은 어차피 국민들이 쌀 소비량을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까 쌀농사를 점차적으로 줄여나가고 그렇게 줄어든 논 면적으로 개발지로 전환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기본 방향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신림 농림부 장관이 된 유정복 장관이 취임하자 마자 TV 뉴스에 출현해서 첫 번째로 쌀 대책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쌀 경작면적의 축소이다.
한국 농업정책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것이 쌀 정책이다. 쌀 직불제 등 지원대책과 시설대책 여기에 WTO에 의한 개방과 관세화까지, 누구도 쌀 정책을 한 번에 해결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인 방향으로 본다면, 친환경 전환을 촉진하면 쌀의 안정성과 동시에 수요 조절이 어느 정도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그리고 생산비와 일반 소비자 가격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부의 보조금과 시민지원농업(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 등 사회가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농업의 소위 '다원적 기능'을 높이면서 동시에 생산 안정성과 식품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대체적으로 선진국 농업 정책이 가는 방향이다.
한국의 쌀정책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핸드폰 팔아 쌀 사면 된다"는 구호가 말해주듯이, 농림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상 농업 정책을 경제정책으로 총괄하는 경제관료들은 수 년째 쌀농사 짓는 농민들과 힘 겨루기를 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적극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으면 농업의 특징상 장기적으로는 가격이 폭락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안 그래도 고령화가 진행 중인 농민들이 제 풀에 지치면 그 농지를 개발지로 전환시키거나, 기업들에게 농지를 불하해서 지금까지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기업농을 도입하는 그런 게 경제관료들의 장기적인 쌀농사에 대한 관점이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가설이 아니라면, 올해의 벼농사에 대한 완전한 방기는 잘 설명하기 어렵다.
쌀의 경우는 결국 토건과 신자유주의가 한국의 논을 중심으로 결탁해서 농민들이 제풀에 지쳐 쌀농사를 포기할 때까지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라는, 일종의 음모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현 상황을 더 잘 설명해준다. 농업이 점점 식량무기로 전환되는 21세기의 새로운 국제경제의 국면에서 그렇게 설명하지 않으면 지금 정부가 보여주는 '무대책이 상대책'이라는 이런 배짱 정책은 선뜻 설명이 되지 않는다.
▲ 지난해 11월 전국농민대회 장면. ⓒ프레시안(최형락) |
채소의 경우는 훨씬 애매하면서도 역시 극적이다. 한참 중국산 농산물 수입이 한참이던 수 년 전부터 근교농업이라는 말이 유행해었는데, 쌈채소를 비롯한 채소류는 그 특성상 원거리 유통이 불리하기 때문에 근교농업의 형태로 경작 전환을 했었다. 양수리의 유기농업 단지가 대표적으로 이런 근교농업 붐을 타면서 유기농업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안착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근교농업이 천변 지역에서 주로 이루어졌었는데, 올 초부터 착공이 시작된 4대강 유역에서 준설된 매립토의 복토지역이나 제방 축대지역으로 사용된 곳 중에 그런 채소 경작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기상 이변에 의한 채솟값 상승 기여도와 4대강 사업에 따른 상승 기여도가 정확하게 계산이 되기 위해서는 관련된 통계가 모두 제시되는 내년 상반기나 되어야 할 것이라서, 아직은 지금의 채솟값 상승과 4대강 사업에 따른 기여도를 각각 수치로 제시하기에는 좀 이른 시점이다. 어쨌든 원래 공사에 따른 농업 피해지역보다 실제 공사과정에서 피해지역의 범위가 수십 배 확대되었고, 사업비 전용이라는 무리수를 두면서 '농지 리노베이션'이라는 이름의 기상천외한 보상방식을 택한 피해지역 역시 수 년 간 농사를 다시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쌀농사에 비하면 농지 면적이나 공급량 자체가 미미한 수준이라서 개별적으로 잘 관리하지 않는 채소류 하나 하나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가격 폭등의 원인 중에 하나라면 사태는 조금 심각하다. 약간의 공급능력 변화만으로도 단기적으로는 높은 가격 탄력성을 보여주는 농업 그 중에서도 채소류의 탄력성은 더 높다. 지금의 가격 변화가 정부가 설명하는 기상 이변이 전부가 아니라 채소 경작면적의 감소에 의한 것이라면, 높은 채소 가격은 적어도 수 년간 구조화될 가능성이 높고, 이명박 정부가 임기를 마칠 때까지도 국내산 채소 가격은 지금의 수준에서 다시 내려오지 않을 위험도 있다.
ⓒ뉴시스 |
그러나 현재의 쌀 가격과 채소 가격의 변화는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화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 내년에도 이렇고, 후년에도 이럴 것이라면 처음 문제가 보였을 때, 그리고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져있을 때 진단을 하고 대책을 시행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의 진단은, 지금의 이상 가격은 구조화되어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만약 한반도의 기후 변화와 기상 변화가 연간 이상 사태가 아니라 추세적인 변화라면?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추가적으로 할 것인가?
토건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간 한국 경제의 수장들, 그리고 농민들의 삶을 책임지고 국민들의 농산물 공급을 책임져야 할 농림부, 답변을 좀 해주시기 바란다. 나의 질문은 두 가지이다.
첫째, 쌀농사의 일부를 포기하고 결국은 농지투기로 갈 토건적 계산으로 지금의 농민들의 원성을 그냥 방치하고 있는 것인가?
둘째,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농지 훼손과 지금의 채소값 폭등은 상관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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