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장면이 겹쳐 보인다.
연초에 호주 시드니에 간 적이 있었는데, 대형 슈퍼에서 술을 살 수가 없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시드니에서 술은 소형 술 전문점에서만 살 수가 있단다. 꼭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유사한 경험이 스위스의 쮜리히에서도 있었다. 쮜리히에는 시 외곽에 몇 개의 대형할인매장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주류를 팔 수가 없다. 그대신 '쿱(Coop)'이라는 상호를 단,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자영업연합에 쮜리히시가 건물을 제공하여 백화점처럼 집단적으로 모인 그런 상가에서만 술을 판다. 술 같은 것은 그냥 팔아도 될 것 같은데, 많은 도시들은 자체적인 제도를 가지고 대형할인매장에서 못 팔게 한다.
밀라노와 파리는 자영업자들이 무너지지 않고, 그것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해서 제품 경쟁력을 갖추는 도시로 분석할 때 빠지지 않는 도시들이다. 파리 시내 즉 1존에는 대형 할인매장이 들어올 수가 없고, 보통은 지하철 종점이 위치한 2존과 3존 정도에 위치하게 된다. 대형할인매장이 시내로 들어오면, 프랑스가 자랑하는 그런 문화와 럭셔리 업종들도 위험하게 될 뿐더러, 지역경제가 붕괴하게 되니까 너무 시내 안 쪽으로는 들어오지 않게 하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 셈이다. 시간 제약도 있다. 너무 늦게까지 슈퍼들이 영업을 하면,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구멍가게 즉 소매점들이 무너지니까 시간제약을 둔다.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영국 유통점 '버진'이 샹젤리제에 들어올 때, 이걸 허가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프랑스 전체가 논쟁을 한 적이 있다.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이런 대형할인매장 논쟁은 보통 '월마트 논쟁'이라고 한다. 월마트가 저가 제품 그리고 저가 임금으로 파고들어올 때, 과연 이게 미국 경제 혹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살아있는 뜨거운 논쟁이다. 소상인과 자영업자들이 모두 무너진 국민경제가 건전한 경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이게 월마트 논쟁이다. 프랑스에서는 한국에서 철수한 '꺄르푸르'가 이런 전략을 썼기 때문에 캬르푸르 논쟁이라고 한다. 지역의 자영업자와 소상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게 유통자본이 생산자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강화되기 시작한 90년대 이후의 국민경제에 대한 논쟁 중에 가장 뜨거운 논쟁이다. 우리도 몇 년 전의 할인카드와 연계한 프랜차이징 빵집으로 인한 자영업자 빵집 논쟁이 한 번 있었고, 최근 SSM이 동네 슈퍼까지 전부 잠식하는 것으로 인한 또 다른 논쟁이 요즘 뜨겁다. '이마트 피자 사건'의 한 단면은, 소상인들과 지역경제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여기에 닿아있다.
또 다른 장면이 하나 더 있다.
낙동강 페놀 사건 이후, 90년대 중후반 삼성과 현대, LG와 같은 재벌회사들이 환경경영 선언을 한 적이 있다. IMF 경제 위기 이전, 많은 사람들이 재벌해체를 요구할 때, 기업이 자발적으로 환경에 관한 노력을 최대한 하겠다고 사회에 약속했던 적이 있다. 대규모 공장을 운용하다보면, 크고 작은 오염 사고가 생겨나게 된다. 그런 환경선언 이전에는, 경제성장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환경 사고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대기업들이 발뺌을 하던 게 흐름이었다. 그러나 낙동강 페놀 사건은 이 흐름을 바꾸었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기업들이 어쨌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환경경영을 하겠다고 사회에 약속하는 선언을 한 적이 있다.
품질경영, 환경경영, 윤리경영 그리고 지난 정부에서 했던 상생경영까지, 시대마다 키워드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업들도 최대한 자신들이 윤리적 책임과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물론 많은 경우, 생색내기에 불과한 때도 있고, 책임은 약간만 지고 이미지 광고의 대상으로 써먹기도 해서, 이런 것들이 기업의 '윤리화'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최근 유행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지원 같은 것이다. 미국의 MBA 과정에도 사회적 기업이나 책임경영 같은 것들이 대표 과목으로 등장하는 것을, 어쨌든 기업 패러다임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소비자 쪽에서도 미세하지만 패러다임의 변화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제3세계 생산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득을 주고 싶다는 '공정 무역', 대기업의 횡포를 견제하겠다는 '윤리적 소비', 심지어는 관광지의 주민들과 생태계에 되도록이면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책임 관광' 등, 소위 '현명한 소비자' 아니면 '착한 소비자' 등 "싼 것이 최고다"라는 소비자에서 점점 사회적 주체로 소비자가 자신의 위상을 전환시키는 것이 21세기의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관찰한 것이다.
이런 몇 가지 흐름들을 염두에 두면서 보면, '이마트 피자 사건'은, 신세계라는 회사가 너무 옛날 방식으로 '박리다매' 그리고 '문어발식 독점'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한국의 국민들도 이미 1970~80년대의 저개발 국가 시절의 그 국민들이 아니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시작되었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식의 소비를 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소비자들도 이미 등장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업이 갑자기 착해진다거나 근본적으로 천사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례를 들어보자. 국제적으로는 악명 높은 대형곡물상에 불과한 스위스의 네슬레라는 회사가 있다. CIA와 결탁해서 아얀데 정권을 전복시켰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으며, 돈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다국적기업이다. 그러나 스위스 안에서 스위스 국민들에게는 천사의 얼굴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런 네슬레가 한국에 진출하자마자 "노조부터 만드세요"라고 말해서, 많은 기업가들과 분석가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때 네슬레가 한 대답이 "노조가 없다면 누구랑 임금협상을 하는가?"였다. 그게 일종의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이다. 좋게 얘기하면 대기업이 되면, 이 정도 기준은 지키자는 것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선진국에서는 천사처럼, 후진국에서는 악마처럼, 이중 기준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강한 소비자가 있는 나라에서는 대기업들도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하고, 소비자들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 나라에서 대기업은 순식간에 지역경제를 쓰러뜨리고 독점구조를 만드는 흉폭한 존재로 돌변한다.
'이마트 피자 사건'은, 대기업 특히 최근 문제를 일으키는 유통 자본들이 한국의 국민들과 어떠한 관계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너희들은 싸고 맛있는 피자만 주면 되는 소비자들 아니냐?"
신세계가 이렇게 사회에 답을 한다면, 피자 매출은 약간 늘지도 모르지만, 신세계라는 기업은 '반 사회적 집단'이라고 근본적으로 등을 돌리는 국민들이 더 많아지게 된다. 어차피 마시는 커피라면 얼마를 더 지불하더라도 공정무역을 통한 커피를 마시겠다는 국민들이 이미 10%는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동네 피자가게가 망하든 말든, 나만 살겠다고 하는 집단을 좋게 이해할 리가 없지 않은가?
피자 팔아도 된다. 그러나 최소한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고 말을 하고, 지역경제에 이윤의 일부를 환원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 신세계의 이미지는 좀 다르게 형성될 것이다. 귀찮기는 하지만, 유통자본의 횡포 그대로 내버려두면 국민경제가 버틸 수 없기 때문에, 현명한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소비 행위를 가지고 귀찮게 만드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데, 어쩔 것인가?
▲ <완벽한 가격> 표지. ⓒ프레시안 |
그래도 원료를 대량구입하면서 생산자에게 '꺾기'를 통해서 후려치고, 더 많은 비정규직의 임금을 쥐어짜서 싸게 만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민경제 내에서 소비자들은 돌아서면 노동자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임금을 깎아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더 저렴한 상품을 소비하게 될 때, 지역경제는 어떻게 되고, 서민들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게 월마트 논쟁의 핵심이었다.
피자 한 판을 놓고도 그 상품의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임금관계 그리고 지역 상인들의 삶을 고민하는 존재가, 이미 한국에서도 하나의 유행처럼 등장하기 시작하는 현명한 소비자 개념이다.
"한 번 먹어보고 말하시라…."
이런 대답은 지금 현명한 소비자들이 신세계에게 기대하고 있는 답변은 아니다.
"문제는 이제 알았으니, 같이 고민해봅시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2010년의 한국 대기업이 소비자들 앞에서, 그리고 지역경제 앞에서 내놓는 정답이 아닐까? 환경경영과 관련해서, 삼성, 현대, LG 같은 대기업들도 이미 10여년 전에 이렇게 사회에 답을 하였다. 신세계 경영층, 너무 옛날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런 마음으로 21세기에 기업과 국민의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세계 경영진들은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 엘렌 러펠 셀의 <완벽한 가격>이라는 책을 한 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괜찮게 판매되고 있는 책이다. 피자 만들면서 이게 '혁신하는 대형할인매장'이라는 주장이, 미국 기준에서도 얼마나 '올드 보이'의 발상인지 알게 될 것이다. 엘렌 러펄 셀에게 '이념'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현명한 소비를 주도하는 미국의 중산층들에게 '이념적'이라는 무지막지한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건 그냥 유행이고, 흐름이지만,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발전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관련 기사: 정용진, '이마트 피자' 비판에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나?")
▲ 류승완 감독의 영화 <짝패>의 한 장면. |
두꺼워서 이 책을 읽기가 어렵다면, 류승완 감독의 영화 <짝패>를 권해드리고 싶다. 거기에 동네 호프집 사장이 된 왕년의 동네깡패 두목 안길강이 서울 '본사'와 결탁한 조폭 두목 이범수에게 이런 대사를 날린다.
"니가 거머리냐, 이놈 저놈 닥치는 대로 피 빨아먹게…."
이마트 피자 사건은, 신세계에게 '거머리'라는 이미지를 뒤집어씌울 위험이 있는 사건이다. 잘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국민과의 '지속가능한 관계'를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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