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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아이들, 그래도 행복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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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아이들, 그래도 행복한 아이들

[전태일통신 34] '작은 소망들'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 2위라고 했던가. 또 교통사고를 비롯한 안전사고는 몇 위라고 했던가. 이런 사회 현상으로 해체되는 가정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 홀어머니나 홀아버지와 사는 아이들, 부모 없이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그런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서 계속 늘어나고 있다. 가난한 집일수록 이런 가정 해체에 대한 대책이 없어 도시빈민 지역이나 농어촌 지역으로 가면 초등학교 한 반에 삼분의 일, 또는 이미 반을 넘어서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어른들도 고달픈 삶이지만 어린이들한테는 참으로 어려운 생활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어렵기도 하지만 정이 그립고, 같이 이야기 나눌 사람이 그립다. 무엇보다 엄마가 그리운 것이 어려울 것이다. 엄마가 없는 아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엄마와 함께 사는 아이들도 엄마 품이 그립기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 사회가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 대한 지원이나 배려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엄마 혼자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아이들이 바로 우리 사회, 우리 나라, 우리 겨레의 미래인데도.
  
  엄마가 쉴 때 나는 너무 좋아요
  
  이예지(초등학교 1학년)
  
  우리 가족은 외삼촌, 미선이, 나, 오빠, 엄마이다. 우리 엄마는 매일 핸드폰 공장에 다니시는데 엄마가 바쁘시다. 학교 갔다가 집에 가면 엄마가 없으시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가방 정리하고 공부방에 간다. 엄마가 없으실 때 안 좋다. 엄마랑 같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쉴 때는 예뻐해 주고 안아주고 머리도 빗겨주고 과자도 사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쉴 때 하늘만큼 땅만큼 좋다. 우리 엄마는 밤 9시나 10시에 집에 들어오신다. 일요일에도 일을 하신다. 엄마가 집에 빨리 오면 좋겠고, 일요일 때면 쉬면 좋겠다. 나는 엄마가 집에서 쉴 때 하늘만큼 땅만큼 좋다.
  
   우리 나라 경제에 큰 힘이 된다는 수출 품종에 핸드폰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 핸드폰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홀어머니는 아침에 나가 밤 9시나 10시에 들어온다. 그리고 일요일에도 일하는 날이 태반이다. 그래서 그 공장이 수출은 잘 하고, 돈은 많이 벌어들이고 있겠지만 그 집 딸은 안아주고 머리 빗겨줄 엄마를 그리워 한다. 엄마가 집에 빨리 오면 좋겠고, 일요일에 쉬면 '하늘만큼 땅만큼' 좋아서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다 싶을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아이가 바라는 이 작은 행복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는 길, 그 길을 만들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
  
  김동희(초등학교 2학년)
  
  우리 집을 소개하겠습니다. 우리 집에는 세 식구가 삽니다. 엄마, 동생, 그리고 나. 우리 집은 아빠가 없으니까 엄마가 일을 하십니다. 며칠 전 일이었습니다. 동생 대성이가 수두를 앓았습니다. 대성이는 열이 나면서 얼굴과 온 몸에 붉은 반점이 나고 가려워 하면서 긁고 싶어 했습니다. 대성이가 아프니까 할머니와 이모가 오셨습니다. 엄마가 일을 가셔야 하니까 대성이를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해서 할머니와 이모가 오신 거예요. 저희 집이 갑자기 사람들로 꽉 차고 사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는 내가 학교를 갈 때 함께 나와서 일을 가시고 대성이는 어린이집을 갑니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아무도 없으니깐 TV를 보다가 공부방에 갑니다. TV를 보다 잠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공부방에 늦게 가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동희 오늘도 TV 보다가 늦었구나" 하시며 간식을 주십니다.
  
  혼자 있는 것이 심심해요. TV는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심심하니깐 보는 거예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집은 들어가기 싫어요. 동생은 어린이집에서 엄마와 함께 오니까요. 그런데 대성이가 아프니까 할머니도 오시고 이모도 오시고 엄마도 일하고 빨리 오셔서 우리 집에 갑자기 사람이 꽉 찼어요. 대성이 아픈 것은 싫은데 사람이 많으니깐 너무 좋아요. 저는 속으로 '대성아 많이 아프지 말고 빨리 나앗으면 좋겠다. 그런데 조금만 더 아프면 안 될까? 미안해.' 그리고 할머니, 이모, 엄마 얼굴을 보며 살짝 웃었습니다. 이렇게 매일매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어린이도 홀어머니와 산다. 아침에 학교 갈 때 어머니는 함께 나와서 일터로 가고, 학교에서 돌아온 집은 언제나 텅 비어 있다. 어른도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을 때가 있는데 어린이야 너무 싫은 것이 당연하다. 오죽하면 동생이 아픈 것은 싫지만 '조금만 더 아프면 안 될까?' 하고는 '미안해' 할까. 빈 집에 들어가야 하는 아이들, 이렇게 집에 아무도 없어 열쇠 목걸이를 걸고 다녀야 하는 아이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이미 당연한 사회 풍토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홀어미나 홀아비 가정뿐 아니라 맞벌이 부부가 급격히 늘어나는데, 이에 대한 국가와 사회 차원의 대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소망
  
  황정우(초등학교 4학년)
  
  우리 집은 돈은 없지만 참 행복하다. 엄마와 동생과 세 식구가 함께 살기 때문이다. 엄마는 홈플러스에서 열심히 일하시고 동생과 나는 학교에 열심히 다니고, 학교 끝나면 셀라신나는집에서 지낸다. 셀라신나는집에서는 공부도 하고 한자 공부도하고 주말 텃밭도 가꾸고 여러 가지 행사에도 참여한다.
  
  그 중에 나는 주말 텃밭 가꾸는 날이 제일 신난다. 씨도 뿌리고, 물도 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보면 싹이 쑥쑥 자라 있어서 기쁘다. 생명의 소중함도 배우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텃밭가꾸기가 좋다. 나중에는 세 식구와 같이 가볼 생각이다. 그 날은 언제 오나 정말 궁금하다. 그 날에 가면 우리 세 식구만의 농장을 만들 것이다. 이름은 우리농장으로 지을 것이다.
  
  엄마 홈플러스 쉬는 날은 언제일까? 그날이 빨리 오고 우리농장을 만들고 싶다. 이런 날이 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내가 느끼는 나의 작은 행복이다. 머지않아 이 작은 행복도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난 이 꿈이 정말 이루어지면 좋겠다. 오늘은 엄마가 쉬는 날인데 어디 갔다. 그래서 주말농장에 못 간다. 정말 슬프다. 하지만 운이 좋으면 갈 수 있다. 오늘 엄마가 일찍 오면 좋겠다. 이게 나의 작은 소망이다.
  
   엄마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집안을 꾸려가느라 함께 할 시간이 없어도, 가난해서 힘들어도, 그래도 아이들은 행복을 가꾼다. 작은 소망을 잃지 않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엄마가 쉬는 날 세 식구가 함께 손잡고 셀라신나는집에서 마련해 준 텃밭 가꾸기 행사에 참여해서 '우리농장'을 만들기를.
  
  위 세 어린이 글에 나오는 '공부방'이나 '셀라신나는집'은 부스러기사랑나눔에서 지원하는 도시빈민지역 어린이를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작은 공간들이다. 열악한 조건에서 대부분 봉사자와 후원자들 힘으로 꾸려가는 가난한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공부방에서 작은 소망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아이들. 그런데 이런 공부방에도 오지 못하는 더 많은 아이들은 또 어떤 소망을 꿈꾸면서 살아갈까? 아니 그런 작은 소망이 얼마나 더 짓밟히고 꺾이면서 학교와 텅빈 집, 그리고 갖가지 유혹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길거리를 오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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