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나치게 쇼비니즘적인 민족주의로 기업 문제에 접근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스위스의 네슬레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인데, 생각보다 무서운 기업이다. 칠레 아옌데 정권의 비극에도 관여했다는 소문이 있고, 요즘은 곡물상으로 국제 농업 거래의 한 가운데 작동하기도 한다. 화장품 기업들도 인수를 하면서 추문이 끊기지 않는 기업이다. 그러나 모국인 스위스에만 가면 천사 같은 기업으로 변한다. 강한 국가에는 약하게, 약한 국가에는 한없이 강해지는 것이 다국적기업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들어온 네슬레가 "노조부터 만드세요"라고 말해서 많은 한국 기업을 당황시킨 적이 없다. 노조가 없다면 누구와 협상할 것이냐, 그게 한국 네슬레의 질문이었다. 스위스 국민들이 네슬레에게 얼마나 박하게 굴었으면 같은 OECD 국가인 한국에서도 그렇게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민족주의를 위해서도, 자국의 기업들에게 그냥 친절하게만 대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우리가 할 필요가 있다.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운다", 이것이 예전 정주영 명예회장이 걸었던 구호인데, 요즘 같이 환차익으로 돈을 버는 상황에서 한국 대기업들은 "밖에서 밑진 걸 내수에서 채운다"로 하는 것 같다. 진짜 국내 소비자는 대기업한테 내내 봉이기만 한 것인가? 자동차 시장의 수치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나는 첫 차가 기아의 프라이드 웬건이었다. 모델을 바꿔가며 프라이드만 몰다가 요즘은 현대차를 타고 있다. 물론 나도 판타지처럼 가지고 있는 외국차에 대한 환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학 시절 뿌조 205를 너무 좋아했고, 폭스바겐의 골프의 환상적 느낌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진짜 타고 싶은 차는 르노의 에스파스이다. 그래도 늘 국산차만 탔다. 돈이 없어서는 아니고, 한 때는 현대 자동차의 환경설비를 현대 그룹 차원에서 총괄했던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있었기에 그냥 약간의 양심으로 국산차를 탄다.
최근에 새 차를 바꾸면 쌍용차로 할까, 고민을 잠시 했다. 쌍용자동차의 해직 노동자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혹시 차라도 좀 사주면 도움이 될까? 그러나 아직 바꾸지는 못했다. 애프터 서비스가 어떻게 될까, 그런 현실적 고민이 있어서 그렇다. 쌍용차가 영영 이상한 기업이 되어서 몇 년 후 부품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소비자로서 그런 생각을 아예 안 하기는 좀 어렵다.
▲ 쌍용차 파업 현장. ⓒ프레시안(손문상) |
이 정도가 내가 쌍용차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기본 입장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쌍용차의 매각을 지켜보았다. 채권단이 쌍용차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채권이 대략 7000억 원이 좀 넘는다는 것 같고, 인도의 마힌드라사가 제시한 게 5000억 원 부근인 것 같다. 국제적으로는 4WD에 대해서는 조금 강점을 가지고 있고, 어쨌든 자체 자동차 모델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 한국에서 생산 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장점인 그런 정도? GM이 사모펀드에 팔리는 것을 보면서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주인 없는 쌍용 역시 허무하기는 하다.
5000억 원 부근에서 줄다리기가 오고 가는 걸 보면서 문득 내가 가진 생각은, 그 정도 돈이면 우리나라 국민들도 만들 수 있는 돈이 아닌가? 1조 원이 넘어가면 국민들이 어떻게 해보기에는 너무 큰 돈이지만, 5000억 원이면 사실 쌍용이라는 브랜드를 위해서 국민들이 갹출을 통해서 국민주 혹은 국민조합 방식으로 조달해볼 수 있는 수준의 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가 국민주 방식으로 한 적이 있고, 경향신문이 자사주 방식으로 한 적이 있다. 캐나다에서는 지역기업 혹은 국민기업으로, 기업들을 국민들이 인수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고 들었다.
물론 만 원씩 내는 방식으로 5000억 원을 모으기는 어렵다. 그러나 출자라고 생각한다면, 천 만원씩 출자하는 사람 5만 명만 있으면 5000억이 되는 것 아닌가? 머리 속으로 얼핏 드는 생각이, 금속노조 조합원. 울산의 현대차 직원만 2만 명이 넘는 걸로 알고 있고, 이래저래 자동차에 대해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금속노조의 영향권 아래에서 1000만 원 정도는 출자할 수 있는 사람이 금방 5만 명은 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평택의 지역 경제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 더도 말고 평택을 기반으로 정치하는 사람들, 고위 공무원들, 그리고 지역 경제인들, 그렇게 하면 수 천명은 나올 것 같다.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평택에 쌍용차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도 국민조합 같은 것을 만든다고 하면 숫자가 적지 않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나 같은 순수 소비자도 있을 수 있다. 만원에서 수 십만원까지, 돈의 크기가 아니라 쌍용차가 한국차 브랜드로 살아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
여기에 쌍용차 직원들과 해직된 노동자들이 우리 사주 같은 방식으로 참여한다면, 5000억 원이 작지 않은 돈이라도, 한국에서 이 정도 돈을 만들지 못할 것은 없을 것 같다. 아파트 단지 하나 만들 때 들어가는 돈도 벌써 수 조원 규모이다. 뉴타운 하나 할 때 들어가는 돈의 규모를 한 번 생각해보자. 제철소 만든다고 하면 가장 작게 잡아도 5조 원부터 시작한다. 새로운 자동차 회사 하나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의 규모를 생각하면, 사실 5000억 원은 시드 머니 규모도 안 되는 돈이다.
정부가 움직이면 가장 편하지만, 아마 정부가 움직이면 '국유화'라는 아주 이데올로기적이며 복잡한 논란이 벌어질 것이라서 꿈쩍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지방 정부는 좀 사정이 다르다. 자신의 지역에 있는 기업에 지방정부가 일정한 지분을 갖는 것, 그 정도는 우리도 해볼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계산을 해보면, 결국 문제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국민주' 같은 방식을 채권단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가 된다. 국민들 중에도, 예를 들면 한 때 현대자동차 CEO를 했던 이계안 전의원처럼, 충분히 쌍용차를 운용하거나 경영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쌍용차가 외국기업에 인수되면, 현재의 직원 중 1/3 정도는 수 년 내에 해직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미 상처 입은 이 기업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보존할 길이 없다. 그리고 결국 수 년후 이 덩치가 다시 국민경제에 부담으로 고스란히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국민주' 혹은 '국민조합'과 같은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인수 의사를 채권단이 한 번 물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이유로든, 쌍용차가 외국으로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지불의사'가 5000억 원보다는 크다고 생각한다.
맨날 "국민을 위해서" 혹은 "서민을 위해서"라고 입만 열면 말하는 그런 정치인들이 이런 흐름의 앞에 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손학규가 할 거냐, 정동영이 할 거냐, 정세균이 할 거냐? 누가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5000억 원의 잠재력은 한국 국민들이 가지고 있지만, 그걸 모아줄 대리인이 부재한 것이 현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쌍용차의 국민기업화,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오바마 정부가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포드에게 했던 일을 생각해보자. 2010년, 국민기업이라는 개념이 반기업인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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