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 비정규직, 그들의 이야기도 천일이 됐다. 그들은 어떤 비극을 멈추게 할 것인가. 내가 하는 이야기는 그들의 천일 중 불과 며칠에 관한 이야기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제대로 걸어 온 거야
지엠대우 부평공장을 찾았다. 정문에 도착하자 피켓을 든 대여섯 명의 조합원이 눈에 들어온다. 맞은편엔 단식농성 중인 지회장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50여 명 가까이 되던 조합원들이 하나둘 떠나고 지금은 아홉 명만이 천막을 지키고 있다.
2007년 9월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만들어지자 지엠대우는 계약해지, 업체폐업 등의 방법을 동원해 조합원들을 해고했다. 해고된 조합원들은 복직을 요구하며 지엠대우 공장 앞에 천막을 세우고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장이라고는 하지만, 길 위에 세운 텐트 하나뿐이니 길거리 생활과 다를 바 없다. 직장도, 돈도 없이 3년을 싸워 왔다.
사람들이 모이고 문화제가 시작된다. 민중가수 지민주 씨가 자신의 노래 '길 그 끝에 서서'의 가사를 읊는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제대로 걸어 온 거야. 언제나 길의 끝에 섰던 사람들이 우리가 온 길을 만들어 온 것처럼……."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앞선 사람들이 만든 길의 끝까지 왔다는 말이다. 고개를 돌려, 검게 그을린 조합원들의 얼굴을 본다. 길의 끝에 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흰색 '하이바', 노란색 하이바
'전에 다니던 공장에서는 하이바의 색깔이 달랐다. 정규직은 흰색 하이바, 비정규직은 노란색 하이바였다. 한두 달쯤 다니니 정규직 형이 흰색 하이바를 하나 구해서 내게 주었다. 하이바의 색깔 차이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 쓰고 싶었다.'
노동조합 소식지 중 '노동자의 눈'이라는 코너에 실린 글이다. 젊은 하청노동자인 그는 흰색 하이바가 부럽다고 했다. 정규직 그들은 낡은 작업복을 물려 입고 반말부림 당하는 비정규직, 자신과 달랐다. 그는 생각했다.
"노란색 하이바는 노란색끼리 싸워야지, 절대 흰색 하이바하고 싸워서는 안 된다. 왜 그런지 모른다. 들어갈 때부터 그랬다. 어쩌면 그건 상놈이 양반에게 대들면 안 되었던 것과 같지 않을까?"
그가 두 번째로 입사한 지엠대우에서는 명찰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랐다. 비정규직의 명찰은 검은색이다.
'상놈'들의 반란
2007년 지엠대우 공장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1차 하청인 스피드파워월드(스피드) 노동자가 갑작스런 전환배치에 항의를 하던 도중 관리자에게 폭행을 당해 구급차에 실려 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가 새로 배치된 곳은 허리를 많이 써야 하는 작업장이었다. 평소 요통으로 고생하던 그는 관리자에게 사정을 말했다. 돌아온 건 관리자의 비아냥거림이었다.
"아픈 건 네 사정이야. 몸 아프면 알아서 회사를 그만둬야지"
2차 하청인 DYT업체는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이었고, 임금이 제때 나온 적이 없을 정도로 영세한 사업장이다. 업체사장이 바뀐 뒤로 사정은 더 열악해져 분 단위로 지각을 계산해 월급에서 제하고, 하루 월차를 쓰면 3일치 임금을 감했다. 월급명세서를 본 노동자들이 항의하자 관리자들은 '법이 그렇다'고 대응했다. 생전 법이 뭔지 모르고 살아온 노동자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었다. 9월 2일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총회가 열렸다. 누가 올 수 있을까? 노동조합 준비모임인 '현장투쟁위원회' 사람들은 마음을 졸였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업체가 날라간다는 협박과 얌전히 일만 하면 특별채용으로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달콤한 말이 노동자들을 흔들었다. 그러나 특별채용에 뽑힐 수 있는 건 연줄 있고 돈 있는 소수뿐이었다. 총회에 비정규직 노동자 40여명이 모였다. '상놈'들의 반란이었다.
ⓒ지엠대우 비정규직지회 |
차라리 비정규직이 끝이었으면
회사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노동조합이 세워진 지 열흘 만에 집행부 대부분이 해고됐다. 그 뒤 한 달도 못 돼 해고된 조합원 수가 35명이었다. 조합원이 가장 많았던 스피드를 비롯해 여러 하청업체가 폐업을 했다. 노동자들은 한가위 명절에 '계약해지' 통지서를 받았다. 폐업을 한 업체들은 이름을 바꿔 지엠대우와 새로운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조합원들에 대한 고용승계를 거부했다.
물리적인 탄압도 비일비재했다. 선전전을 하던 조합원들이 노무팀 직원들에 의해 팔다리가 들려나갔다. 이 과정에서 멍이 들고, 이빨이 부러지고, 코뼈가 주저앉았다. 선전전에 참여한 정규직 조합원마저도 고막이 터지고 안구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해 12월 27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공농성을 결심한다. 원직복직과 하청외주화 중단을 요구하며 박현상 조합원이 6층 건물 높이인 20미터 부평구청역 관제탑에 올랐다. 뒤이어 마포대교 하상 시위, 한강대교 고공시위 등이 시도되고 언론조차 이 힘없는 비정규직들을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지엠대우는 '고용승계는 해당업체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이대우 지회장까지 가세한 고공농성이 5월을 넘기고서야 회사는 스피드 직원 7명 복직을 협상안으로 내놓았다. 복직 대상자는 회사에서 선별했다. 자신들 입맛대로 뽑은 복직자들조차 회사는 가만두지 않았다. 책상 하나만 주고 대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생소한 공정에 배치됐고, 시시콜콜 감시와 트집이 따라다녔다.
당시 복직자였던 이영호(가명)씨는 수개월동안 동료들과 말 한번 나누지 못했다. 한마디로 왕따였다. 견딜 수 없어 퇴사를 했다. 퇴직하고 나오는 그에게 동료가 던진 "미안하다" 한마디가 복직 후 처음으로 들은 말이었다. 결국 복직한 이들은 대부분 퇴사하거나 노동조합 탈퇴서를 썼다.
노동조합을 떠난 이들은 어찌 지내고 있을까? 이준삼 조합원이 함께 일했던 형 이야기를 한다.
"별로 안 좋아요. 다들 일용직 나가기도 하고 자주 회사도 옮기고. 아는 형은 연안부두에 갔는데, 더러워서 못하겠다고 매번 죽는 소리를 해요."
연안부두는 그가 일했던 KD공장이 옮겨간 곳이다. 이전 후 공장은 노동자의 절반이 퇴사를 할 정도로 작업환경이 열악해졌다. 그들은 또 다른 직장을 찾아 떠돌거나, 더 힘겨워진 노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의 삶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파견 노동, 도급 노동, 일용직 노동으로 흘러간다. 차라리 비정규직이 끝이었으면 좋으련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나락이다.
일상과 망각
네모난 셀로판지가 농성장 천막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빨강, 파랑, 노랑, 셀로판지 색들이 화려하다. 인천지역 문화예술가들이 지엠대우 앞에 쓸쓸히 선 농성장을 꾸며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눈과 비를 맞은 셀로판지는 이제 군데군데 찢어지고 너덜너덜하다. 1000일이라는 시간은 알록달록한 색지로도 감출 수가 없다.
ⓒ지엠대우 비정규직지회 |
천막으로 들어간다. 습한 더위가 훅 끼친다. 어둑한 것이 동굴 같다. 낮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 같은 날씨에 선풍기도 사용할 수 없다. 테이블 위에 부채 몇 개가 널브러져 있다. 앉아있는데 땀이 주르륵 흐른다. 참다못해 밖으로 나왔다. 햇볕 내리쬐는 바깥이 오히려 시원하다.
안 덥냐고 물어봐도 조합원들은 "덥죠" 이러고는 그만이다. 천 일을 어떻게 견딘 거냐고 물어도 딱히 시원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에겐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인가.
천막농성이 일상이 된 건 조합원들만이 아니다. 출퇴근 시간, 이 길을 지나는 지엠대우 노동자들에게도 천막은 일상이다. 눈에 익어 항상 거기에 있던 것 같고, 익숙하다보니 망각해버렸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천막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간다.
누가 이득을 가져가는가
1차 하청 업체 노동자에게 물었다.
"업체 사람들이 모두 몇 명이에요?"
"다들 흩어져서 일해서……"
그는 자신이 소속된 업체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른다. 같은 업체라고 하나 2, 3명씩 각 공정마다 따로 배치되기 때문에 업체 사람이 몇 명인지, 누군지도 모른다.
"그럼 같은 라인에 있는 사람은요?"라고 묻자, 이번에는 금방 대답을 한다. 다른 업체 소속 노동자도, 정규직 노동자도 포함된 수다.
그는 자신의 업체 직원들보다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를 더 잘 알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엠대우 공장에서, 지엠대우 차를 만든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엠대우 소속이 아니다. 지엠대우는 이들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
ⓒ희정 |
"다 아는 건데 그걸 왜 들고 있어?"
피켓에는 "비정규직 실제사용자는 GM대우"라고 쓰여 있었다. 비정규직을 부리고, 사용하는 자가 지엠대우라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법과 자본은 상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동차공장의 특성상 하청노동자들과 원청 노동자들은 작업시간이 동일하고, 원청의 도구와 자재를 함께 사용하며, 원청 관리반장의 지휘 속에서 한 데 섞여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법은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을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다.
오히려 지엠대우는 불법파견 문제가 이슈화되자 법망을 피하기 위한 작업들을 해왔다고 신현창 지회장은 주장한다.
"불법파견 문제가 불거지니까, 노동부에서 조사관이 와 단속을 해요. 적발하는 건 거의 없고 관리 지침을 만들어주고 간 셈이죠. 이렇게 하면 불법이니까 이렇게 해라. 예를 들면 예전에는 정규직 관리자들이 대놓고 하청 사람들에게 지적하고 관리를 했으면, 그 뒤로는 공문으로 하거나 하청 관리자만 따로 불러 이야길 하죠.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조심하는 거예요."
그는 불법파견 판결이 가장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은 계약관계와 원청이 실제 지배력이 있느냐로 불법파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거든요. 거기에 플러스알파를 해야 해요. 누가 실제 이익을 가져가느냐. 인력소개소 거간꾼 역할 밖에 하지 못하는 하청 사장은 정규직 관리자만큼 밖에 이득을 가져가지 못 해요. 나머지 차액을 누가 가져갈까요? 요즘 추세로 보면 100명을 가진 하청 업체도 없어요. 보통 50명도 안 되게 영세한데. 그런 하청 사장이 50명, 100명의 사람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요? 기껏해야 자기가 좀 덜 가져가고 한 두 사람정도 늘리는 거? 이것밖에 없어요. 하청 바지사장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러니 문제는 비정규직을 사용해 얻는 이득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원청 지엠대우가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오늘도 지엠대우는 이들에게 문을 닫아걸고 있다.
당장은 안전한 사람들
아침 7시, 조합원들의 출근 선전전을 따라나섰다. 공장 정문에 도착하기도 전에 민중가요 소리가 요란하다. 공장 안에서 들리는 소리다. 조합원 한 명이 임단투 시기라고 알려준다. 임금단체협상을 앞두고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출근 선전전을 하고 있다.
ⓒ지엠대우 비정규직지회 |
비정규직 노동조합도 휴대용 앰프를 켠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선전전이 문 하나를 두고 이뤄진다. 각기 다른 음악이 들린다. 공장 안 앰프를 타고 정규직 노동자의 말이 들려온다.
"우리는 복지도 무엇도 다 양보했습니다. 그러나 소용없었습니다. 이번만큼은 다를 겁니다."
양보는 작년 경제위기 때 이뤄졌다. 2008년 지엠 본사의 파산 여파가 2009년 지엠대우로 이어졌다. 지엠대우가 선택한 방법은 인력축소였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전환배치에 합의했다. 비정규직이 해고된 자리에 정규직이 들어간다는 합의였다. 이것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는 막을 수 있었다. 다만 1000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공장에서 내몰렸다.
2004년 공장정상화를 계기로 대거 확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엠대우의 인력축소, 하청외주화 요구 속에 지금은 500명도 남아 있지 않다. 곽동표 조합원에게 물었다.
"출근하는 정규직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한번 대우가 크게 망한 경험이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다들 불안을 가지고 있어요. 지엠이 3~4년 안에 한국을 뜰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공장 안에 파다해요. 그러니까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보자, 이런 분위기인 거죠."
정규직들도 고용의 위험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비정규직과 차이가 있다면 '당장은' 안전하다는 것. 각기 울리는 두 음악이 귀를 아프게 한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조합 앰프가 꺼진다.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 싸움이 끝나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언제 끝날지 예상도 할 수 없으면서 조합원들을 붙잡고 묻는다.
"결혼하고 싶어요."
"애인도 없으면서."
홍동수 조합원에게 묻는다.
"지엠대우 지긋지긋하실 텐데, 복직되면 들어가실 거예요?"
"들어가야지. 들어가려고 싸우는 건데. 우리가 들어가야지, 보여줄 수 있는 거고.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 지금 싸우고 있는 기륭 같은 곳에도, 그리고 저 안에 있는 노동자들한테도 우리가 이겼다는 걸 들어가야 보여줄 수 있는 거고. 그게 희망이 되는 거고."
"만약에 복직 안 되면요?"
"그럼 나는 나이도 있고 해서 다른 데 취직도 못하는데……."
오십을 앞둔 그를 바라보며 싸움이 끝난 후의 삶을 더듬는다.
이번엔 신현창 지회장에게 묻는다.
"투쟁이 끝나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음이 복잡해진다. "곰도 100일 밖에 안 걸렸는데." 괜한 농담으로 받아친다.
그러고 보니 세헤라자드가 왕의 마음을 바꾸는 데 걸린 시간이 1000일이다. 그래, 사람 하나를 변화시키는데 천 일이 걸렸는데. 사람이 사람답게 일하며 살 수 있는 곳으로 세상을 바꾸는 싸움이 천 일이 됐다고 해서 길다고 할까.
1000일이 지났다. 지엠대우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다시 기운을 끌어올려 싸움을 시작할 계획이다. 신현창 지회장은 말한다.
"우리 싸움을 보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끝이 보이는 싸움만 했습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1000일, 그들은 길의 끝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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