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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달려온 1000일, 공중에서 강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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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달려온 1000일, 공중에서 강물까지

[GM대우 비정규직 농성 1000일①] 비정규직 없는 '꿈의 공장'?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 지회가 7월 25일로 천막농성 1000일을 맞는다. 정규직 노동자와의 차별을 시정하려 노동조합을 결성했던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숱한 역경 속에서도 복직을 위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한국 경제 역시 휘청거렸고 그 타격을 직접 받은 이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원청업체의 공장에서 일하지만 사내 하청이라는 이유로 사용자성을 거부하는 구조 속에서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벌이는 싸움은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

<프레시안>은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의 천막농성 1000일을 맞아 이들의 싸움을 담은 기고를 연속 게재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부터 그동안 이들을 도와 온 시민단체와 지역사회 활동가들의 글, 르포 등을 통해 이들에게 1000일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을 조망한다. 편집자

다가오는 7월 25일이면 GM대우 서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지 1000일이 되는 날이다. 언제부터인가 '비정규직 투쟁은 장기투쟁'이라는 말이 불문율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지난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렵게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더더욱 미안해질 뿐이다. 하지만 이 글이 다 쓰고 나면 조금은 후련해질 거라는 바람과 1000일 투쟁을 계기로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고 한 걸음 나아갈 우리 지회 동지들을 생각하며 몇 자 써 본다.

마침내 인간선언, 그러나 가혹한 대가

GM대우는 2003년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정리해고 이후 저조했던 가동률이 신차투입과 주야 맞교대로 바뀌면서 늘어났고 정규직의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도 잠시일 뿐, 컨베이어에 몸을 싣고 4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사람들은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명찰 색깔이야 다르다마는 똑같은 작업복 입고 마주보고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수상쩍은 몇 가지 차이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손에 쥐는 월급봉투야 그렇다 치더라도 병원을 가기 위해 연월차를 쓰거나, 아니 하다 못해 밥 먹고 화장실 갈 때는 똑같은 사람인데 왜 눈치를 봐야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비정규직의 푸념은 술자리에서 시작됐다. 듣도 보도 못한 '생인화'를 한다는데 결국 사람을 자르는 일이란다. 심지어 현장에는 업체를 통째로 날린다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푸념은 불만으로 발전했고 불만은 더욱 사람을 한 곳으로 모았다. 그 사이 하청업체별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은 작업거부로, 유인물 배포로, 정규직노조 사무실 점거농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하청업체 차원의 투쟁은 관리자들에게 '깨지기' 일쑤였고 그 경험과 반성은 마침내 2007년 9월 2일 비정규직지회 건설로 쉼표를 찍게 된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지회를 만들었다는 기쁨도 잠시, 원하청 자본의 공세는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지회 설립을 알리려는 조합원들과 정규직 활동가들을 사람들 눈앞에서 보기 좋게 두들겨 팼고, 지회 간부들은 열흘 만에 모두 공장 밖으로 쫓겨났다. 그 달 30일에는 원하청 업체 간 도급 계약 갱신을 빌미로 주력 업체 두 곳을 폐업시키면서 지회 탄압의 종지부를 찍는다. 돌이켜보면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기도 하다.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하늘로, 강물로, 사람들 가슴속으로

그렇게 공장 밖으로 쫓겨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한 달간을 꼬박 출입문 앞에 죽치고 서서 지회 설립의 정당성과 더 많은 사람을 자르지 말 것을 목 놓아 외쳤다. 예상은 했지만 GM대우는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 냥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들 이런 싸움은 생소했던 터라 모여서 회의하고 또 회의를 했다. 그렇게 회의를 거듭한 끝에 결정한 것이 바로 천막농성이었다. 사실 천막농성은 길어야 일주일이라고 했다. 공장안에서 폭력을 맛 본 우리들로선 겁부터 나는 일이었지만, 차라리 부수어 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1000일을 버틴 지금에 와서는 말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고 조합원들은 점점 지쳐만 갔다. 열악한 상황은 판단을 쉽게 만든다. 천막으로 안 풀리면 더 '빡센' 걸 해보자!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새해를 나흘 앞둔 12월 27일 박현상 조합원이 기약 없는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누군가의 시구처럼 땅위에 설 곳 없는 비정규직이 하늘로 오른 셈이다. 역시 우리의 오판이었나? 해를 넘겨 구정이 다가와도 GM자본은 미동도 없었다. 그 사이 3번의 추가 고공농성과 단식 그리고 기억조차 희미한 갖가지 투쟁이 있었다. 배설물과 끼니를 한통으로 해결했던 고공농성자의 서러움, 단식농성 중에 딸아이 돌잔치를 치룬 연사부장의 한스러움, 겨울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진 이준삼 동지의 두려움을 어찌 이루 헤아릴 수 있을까?

반복되는 위기, 모든 책임은 비정규직에게

정신없이 달려온 투쟁은 이듬해 5월 조합원 선별복직으로 일단락되었다. 선발기준도 합의주체 명시에서도 지회의 존재는 철저히 묵살 당한 채 말이다. 그래도 다만 몇 명이라도 우리의 힘으로 현장을 복귀한다는 그 단 한가지로 위안을 삼으며 135일간의 고공농성을 정리하고 철탑을 내려왔다.

그렇게 몇 달간은 모처럼 만의 휴식을 만끽하며 흘러갔다. 하지만 2008년 말 세계경제의 위기는 GM을 그리고 GM대우를 빗겨가지 않았다. 공장은 또 다시 휴업을 반복하였고 현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부평공장 비정규직은 또 다시 혼돈의 한가운데 서게 되었다. 해를 넘기면서 자발적 퇴사종용을 시작으로 업체 폐업까지 운운하니 비정규직의 대다수가 썰물 빠져 나가듯 공장을 등졌다. 지회 조합원들은 또 다시 조립사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반응은 냉랭했고 결국 비정규직 순환무급휴직과 하청업체 폐업으로 현장은 비정규직 없는 공장, 소위 '꿈의 공장'으로 탈바꿈 되었다.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길, 그 끝에서 희망을 말한다

많은 비정규직들이 공장을 떠났다. 지회도 다수의 조합원이 생계투쟁으로 돌아서고, 소중했던 1000일 전의 결의는 누렇게 변해버린 천막처럼 조금은 그 빛이 바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을 한결같이 살아 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사람들 사이의 감정에 치이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어렵고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어쩌면 정 맞는 모는 돌보다 쉽게 깨지지 않는 둥근 조약돌로 변해온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천막농성 1000일을 맞이하면서 조합원들이 또 다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당장 죽을 만큼 곡기를 거르거나 극단적인 투쟁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커다란 투쟁은 아닐지언정 지역과 현장을 아우르는 실천을 통해서 다시금 한 발짝 나아가려고 한다.

지민주 동지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아니 노랫말처럼 내일을 살아야겠다.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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