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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정책'은 마이너 리그에서 나온다"

[우석훈 칼럼] 88만원 세대와 기본소득

평생 한나라당에만 찍으셨던 아버님이 "왜 너는 맨날 택도 없는 곳에만 서 있느냐?"는 말씀을 지난 지방선거 때 하신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투표한 사람 중에서 당선된 사람은 노무현 후보가 유일한 것 같다. 당선권 비슷한 곳도 아닌, 10퍼센트도 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로 투표하고, 그들과 함께했다. 정치로 보면, 정말 마이너 리그, 그곳이 내가 자라고 성장한 곳이다.

녹색당을 만들자고 전국을 누비고 다니던 시절, 결국 5000명의 당원을 모으지 못해서 창당에 실패했다. 서울, 경기, 이런 데는 가능하지만, 대구에서 한나라당이 아닌 당을 만들자, 광주에서 민주당이 아닌 당을 만들자, 그리고 울산에서 민주노동당이 아닌 당을 만들자, 그러면서 미친 놈 취급도 많이 당하고, 배신자 취급도 많이 당했다. 페이퍼 당원이라도 채워서 창당하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녹색당에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당시에는 민주노동당은 완전히 큰 형이었고, 창당에 성공한 사회당만 해도 엄청나 보였다. 시민운동은 사실상 민주당 뒷배 같은 시절, 민주노총은 감히 쳐다보기도 어려운 괴물처럼 느껴지던 시절, 그 뒷공간에서 녹색당의 꿈을 안고 전국으로 당원을 모으기 위해서 뛰어다니던 시절, 그게 나의 30대였다. 건강을 잃었고, 모아놓은 돈도 다 썼던 그 시절, 그러나 내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보람찬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제 녹색당의 꿈마저 잠정적으로 정지된 한국, 그 마이너의 마이너의 뒷공간을 사회당 혼자서 지키고 있다. 은평을에 찾아가면서, 나는 금민 후보와 함께 한 사람들 속에서 마이너 리그에서 등판하던 내 30대 시절을 다시 만나는 것 같았다. 한국 정치에는, 민주노동당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커 보이는 그런 마이너리그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마이너리그가 한국 정치를 뒤흔들었던 정책들이 나오는 그런 아방가르드의 공간이기도 하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총선을 기억한다. 그 때 나는 환경과 에너지 분야 공약을 정리하는 걸 도와주다가 나중에는 농업 그리고 다시 '완전고용제'와 같은 경제 공약까지, 현장에 있던 거의 유일한 경제학자로 꽤 많은 공약에 관여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하게 된 선거이다. 그 때 '부유세' 공약이라는 게 처음으로 세상에 얼굴을 보이게 되었다. 당시 '무상'이라는 이름을 단 무상 의료 등 일련의 무상 시리즈가 있었지만, 부유세가 워낙 강력해서 세상에 제대로 얼굴을 보이지는 못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선거를 뒤흔들었던 무상급식 논의가 한국에서 시작된 것 역시 그런 마이너 리그를 통해서였다. 내 기억으로는 2003년, 2004년 경, 학교급식과 군대급식 그리고 현대 중공업 같은 작업장 급식에 대한 논의가 시민단체와 생협단체 일각에서 시작되면서, 한편으로는 무상급식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친환경급식이라는 형태로 정리되어 나갔다. 그리고 2004년경, 농업의 대안이라는 논의로 전개되어 나간 셈이다. 그리고 2010년, 드디어 정국의 태풍이 되었다.

은평을의 금민 후보가 이번에 제1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기본 소득'이라는 개념이다. 이 논의는 분당 전의 민주노동당 일부에서 한동안 2007년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논의가 일부 전개되었었는데, 이명박 후보의 초반 질주 과정에서 논의가 흐지부지하게 되었다. 아마 이 공약이 2012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이 제시할 공약 중에서는, 현재로는 가장 앞 쪽에 있을 공약인 것 같은데, 이번은 사회당 이름으로 먼저 그 포로토콜이 제시된 점이다.

아직은 아방가르드 수준이고, 어떤 재원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 규모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더 많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20대 알바, 60대 이후의 은퇴자, 산업 논리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소규모 문화생산자, 그리고 혼자 사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어느 순간엔가 이 논의가 폭발적으로 커져나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 기본소득(Basic income)이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투표권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 개념이다. ⓒ대학생사람연대

모든 정책은 처음 제시되는 아방가르드의 순간이 있고, 그렇게 시대의 전위가 형성된다. 내가 지난 15년 동안 현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처음에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나 집단이 영광을 본 경우는 거의 없다. 기존 정당에서 그 공약을 가져가는 순간 혹은 큰 운동단체에서 슬로건으로 내거는 순간, 아방가르드는 또 다른 정책을 찾아 다시 전위의 입장이 된다.

부작용으로, 아주 이상하게 변해버리는 정책도 적지 않다. 청계천 복원의 원래 아이디어는 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 간담회에서 나왔다. 지금은 상류를 팍 잘라 버려서 결국 '인공 하천'으로 이상해져버렸지만 말이다. 뉴타운은 용인 등 경기 남부 지역의 난개발 과정에서 나온 정책이다. 원래는 정부에서 교육과 의료 등 기본 인프라를 확보하고 민영개발의 폐해를 막는 공영개발이라는 의미에서 시작된 논의이고, 여기에 기본 계획을 하는 '조닝(zoning)' 개념을 결합해서 지구단위계획으로 가는 것들도 시민단체의 어느 한 구석에서 아방가르드처럼 나온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게 이명박 서울시장의 손에 들어가면서 '뉴타운'으로 탈바꿈했다.

어디 그것만 그런가? 버스 전용차선제도 무조건 지하철과 미래형 교통으로만 집중되어 결국 개발만 늘어나고, 대중교통이 비싸지는 것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버스 전용차선과 버스공영제를 결합시켜서 매우 저렴한 버스 요금 혹은 '공짜 버스'를 시도하자는 논의 과정에서 나왔다. 그게 '공짜'라는 원래 취지는 사라지고, 한국에서는 버스 전용차선을 도입하면서 오히려 대중교통비가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새로 생기는 도시마다 지하철 혹은 경전철을 도입하고, 버스 비용에 대한 논의는 사라져버렸다.

선거 때에 마이너 리그가 벌어지는 것은, 새로운 정책 아방가르드들이 많은 경우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한국 사회에 첫 선을 보이게 되었고, 그래서 선거비용을 조금도 돌려받지 못할 정도로 당선권과 거리가 멀어도 한국의 아방가르드들은 선거에 참여한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제도들을 도입하고, 조금씩 복지 사회로 나아간 셈이다.

한나라당은 정책 개발 능력이 사실상 없다. 그들의 원형이 미국의 네오콘이었는데, 네오콘이 클린턴으로부터 정권을 찾아올 때 같은 이론적 뜨거움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정책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집단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새롭게 제시한 것들이나 정형화시킨 것을 그냥 가져가는 데 익숙해져버렸다.

은평을 선거에서는 모든 것들이 단순 재반복되고 있다. 이재오는 "지난 선거에서 나를 찍어주지 않았으므로 은평이 재개발되지 않았다"라는 얘기 외에는 추가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반대 진영에서는? 어떤 정책도 새로운 것이나 혹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해보는 것이 없다. 유일하게 지금의 재보궐 선거에서, 비록 원형의 형태로나마 새로운 정책이 제시된 것은 은평을의 기본임금 정책 외에는 없다.

많은 국민들은 한나라당 아니면 민주당, 그리고 메이저 리그급 게임을 즐기고, 언론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 구석에서는 그런 무시와 탄압 속에서 마이너 리그 게임이 열리고 있는데, 한국에서 히트친 정책들은 대부분 그런 마이너 리그에서 출시된 것들이다. 은평을의 알바 88명이 금민 후보를 지지하면서 선언문을 하나 만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작지만, 언젠가는 이 선언문이 한국의 정치와 미래를 뒤흔들, 그래서 결국 창궐한 미래가 되는 날이 있다고 생각한다. 알바, 그들이야말로 한국 경제에서 마이너 중의 마이너 아닌가? 그 마이너들이 금민을 선택했다.

그 마이너 리그에서 함께 나의 작은 지지를 더할 수 있어, 나는 그 어느 순간보다도 자랑스러웠다. 힘 없는 사람, 배 고픈 사람, 고단한 사람, 우리는 모두 마이너 리그에 속한 사람들이다. TV에 나오는 사람, 공중파가 밀어주는 정치인, 그들이 아니라 마이너 리그에서 아방가르드가 시작되고, 역사가 시작되는 것, 이것은 해방 이후로 변하지 않은 한국의 진실이다.

나는 아직 내가 마이너 리그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할 수 있다는 것, 그 삶이 자랑스럽고, 그렇게 지지할 수 있는 마이너 리그의 선발투수, 금민이 있다는 게 정말로 고마웠다. 구속은 초특급이 아니고, 구위가 다양하지 않지만,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천하무적 야구단에 속한 사람들 아닌가!

88만 원 세대에게 기본소득을!
- 은평구 '아르바이트' 청년 88인 금민 후보 지지 선언

오늘날 20대들의 또 다른 이름은 '88만 원 세대'다. 그것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이다. 오늘날 20대의 대부분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취업을 하려고 해도 말 그대로 바늘구멍이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들이 저임금 중노동의 비정규직이거나, 아르바이트의 연장일 뿐이다.

'88만 원 세대'가 곧 우리의 비극적인 삶이지만, 이를 극복할 해결책은 마땅치 않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다시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더라도 노동자, 서민 그리고 88만 원 세대의 삶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10여 년의 양극화를 통해서 체험했다.

이명박 정부도, 민주화 10년도 우리의 처지를 개선할 뾰족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해 미국발 경제위기로 한국경제가 추락할 때도 이명박 정부는 국민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고 임금을 삭감하면 일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고통분담만 있고 고통을 분담한 대가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차피 모든 20대들의 고용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88만 원 세대를 더 양산하는 것에 그치는 이명박 정부의 20대 수탈정책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장하는 대안은 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기호 9번 금민 후보가 강조하는 전국민 기본소득제 도입이다. 국가가 모든 국민들에게 노동여부와 상관없이, 또 소득이나 자산에 대한 심사 없이 무조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것만이 우리 20대 88만 원 세대들의 미래를 희망차게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국민이 투표권뿐만 아니라, 당당한 국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보장할 것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다.

심각한 양극화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이라는 우리의 요구는 과도하지 않다. 당장 실현할 수 있다. 지금까지 비생산적 방식의 투기불로소득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왔고, 오늘날의 경제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으면서도 실제로 책임은 지지 않은 고소득 불로소득 생활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동안 이행하지 않았던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며, 국가는 여기서 마련된 재원으로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우리 20대들은 먹고살기 위한 취업이 아닌, 꿈을 실현하는 직업을 찾을 수 있다. 보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공부를 더 할 수도 있고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직업을 창출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이상 88만 원 세대가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 희망 세대로 거듭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88만 원 세대로서의 삶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기 위해 7.28 은평을 재선거에서 기본소득을, 기호 9번 금민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평생 고난을 감당해야만 하는 우울한 미래가 아니라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장밋빛 미래를 오는 7월 28일에 선택할 것이다.

2010년 7월 22일
기본소득과 금민 후보를 지지하는 88만 원 세대 은평구 '아르바이트' 청년 88명

<편의점>
고보경 권오현 김강석 김동훈 김명순 김문수 김미진 김병수 김수자 김시진 김일수 김창현 류은영 민용기 박보은 박소연 박충은 박효경 배기백 석광섭 송창훈 안민영 여현지 오경식 오세원 오은주 왕지정 유성진 윤강의 윤덕희 이강희 이기명 이미애 이병학 이성희 이아름 이정훈 이중선 장강희 장우성 전재훈 천정우 최윤호 홍예나 황영진 (이상 45명)

<PC방>
강현수 김소연 김연정 김준우 김지권 박혜원 송지선 신종철 심영환 오인영 유아린 이은주 이주희 이준이 장솔이 전민주 조아해 주지인 최 솔 한상우 (이상 20명)

<기타 아르바이트>
강영환 김시원 김태규 김현철 민하늘 박수영 박지영 박진영 사가영 송형택 안용수 안창규 엄민지 유진아 윤주호 이덕선 임상철 장영휘 전정현 정대윤 천현우 최고영 한태경 (이상 2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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