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살펴보아야 할 주장은 빅 텐트론보다는 다소 작은 텐트를 짓자는, 일종의 미디엄 텐트론인 '(반한나라), 비민주 진보대통합당론'(이하 '반한나라'는 생략할 것이다)이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비민주 진보-개혁연합당론이다. 한 마디로, 진보정당이 자유주의세력 중 거대 기득권정당인 민주당은 빼고 국민참여당(그리고 창조한국당)과 같은 군소 개혁정당과 연합하여 '(비민주) 군소 진보-개혁연합당'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단일정당은 아니더라도 민주당을 포함한 반MB연합과는 별개로 민주당은 빼고 국민참여당은 포함시키는 '비민주 진보대연합'(정확히 표현하자면 '비민주 진보-개혁대연합')을 만들자는 주장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의 효시는 지난 지방선거의 반MB연합을 위한 5+4 회의에서 제기됐다. 5+4의 논의과정에서 민주당이 고압적이고 패권적인 태도를 보이자 민주당을 제외하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이 따로 모여 의견을 모아 민주당과 협상을 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민주당과 직거래를 통해 많은 양보를 얻어내는 것을 선호했던 민주노동당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 한 것으로 참가자들은 전하고 있다.
미디엄 텐트론이 다시 살아난 것은 심상정 진보신당 경기도지사 후보에 의해서였다. 심 후보는 개인적으로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사퇴했다. 물론 이는 반MB연합을 위한 사퇴였다는 점에서 빅 텐트론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진영의 경기도지사 후보가 유시민이 아니라 김진표 민주당후보였어도 심 후보가 사퇴했겠느냐는 점에서 비민주 진보-개혁대연합론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겨놓았다.
심상정의 입장이 비민주 진보-개혁대연합론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은 선거가 끝난 뒤 <프레시안>과 갖은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다음과 같은 인용이 보여주듯이 그는 자신의 유시민 지지 결정을 '비민주 진보대연합'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해명했다. 즉 민주당은 비판하면서도 '촛불시민'과 '친노세력'이라는 표현을 통해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비민주 진보대연합(정확히 표현해 비민주 진보-개혁대연합)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진보신당은 정치적으로 안티노무현, 조직적으로 안티민주노동당으로 출발했는데, 거기에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중략...)반MB는 민주당이라는 구세력에게 맡겨진 구시대적인 투쟁이 아니라 촛불시민으로 대표되는 현재 한국사회의 진보적 시민들의 구체적인 요구이기 때문에 진보신당이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이 만들어낸 민주와 진보의 경쟁과 연대의 공간을 주목하고 활용하여 광장으로 나가 그 광장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민주노동당, 친노세력,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진보대연합을 만들어 나갔어야 했다"(강조는 인용자).
이 같은 화두는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비민주 (반한나라당) 진보대통합 정당'을 건설하려는 목적으로 최근 출범한 일련의 시민운동진영의 모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나아가 민주노총까지도 이 같은 움직임에 합류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차이가 있지만 민주노총의 신임정치위원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진보대통합을 위해 "11월 경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민주노총, 진보대통합시민회의, 국민참여당, 사회당, 창조한국당 등이 원탁회의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히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같은 미디엄 텐트론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선 이 주장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 진보세력들만 모이는 것에 비해 지지기반과 지지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2010년 지방선거를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순수하게 진보세력들만 모였을 경우 그 지지율은 민노당 7.35%, 진보신당 3.13%, 사회당 0.39%을 합쳐 10.87%에 머무르지만 여기에 국민참여당을 포함시킬 경우 국민참여당의 지지율 6.65%이 더해져 17.52%의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이 주장은 빅텐트론이 하나로 묶어야 한다고 주장한 한국민주주의의 세 개의 자원인 호남, 친노, 진보세력 중 진보세력과 친노를 하나로 묶자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진보의 지지기반을 친노세력으로까지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정당이나 정치연합의 외연은 강령, 노선과 반비례 관계에 있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반자본주의와 같은 최대강령을 고수하면 외연이 좁아져 서클수준의 최소연합으로 끝나고 말 지만(최대강령적 최소연합) 반대로 외연을 넓히기 위해 반MB연합처럼 최대연합을 고수하면 강령수준은 낮아져 최소강령으로 흐르고 만다(최소강령적 최대연합).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문제의 핵심은 국민참여당이 민주당과 무엇이 다르기에 민주당은 안 되고 국민참여당은 되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당은 아니지만 국민참여당은 진보대통합당을 같이 할 수 있는 진보세력인가 하는 의문이다(명확히 할 것은 여기에서 진보란 liberal이 아니라 progressive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liberal을 자유주의라고 번역하지 않고 진보라고 번역한다면 민주당도 당연히 진보이다).
▲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지사에 도전한 국민참여당 유시민,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가 공동 기도회에 나란히 침석했다. ⓒ뉴시스 |
이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국민참여당이 얼마 되지 않은 신생정당이고 정책적 노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국민참여당이 공식적으로 노무현정신 계승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무현정부의 정책 2)국민참여당의 정강, 정책 3)5+4 과정에서 보여준 국민참여당의 입장이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것이다.
이 같은 기준을 가지고 판단해 본다면 국민참여당 역시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진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개혁적 자유주의정당이라고 보아야 한다. 국민참여당이 노무현정신을 계승하고 친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노무현정신보다는) 김대중정신을 더 계승하고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비민주 진보대통합당론은 한마디로 김대중은 보수내지 자유주의라 안 되고 노무현은 진보라 된다는, 기이한 주장이다.
물론 김대중과 노무현,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차이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과거 김대중대통령의 민주당이 반민주적인 사당이었고 민주당이 이제는 민주화되었지만 그 유산을 이어받고 있다면 국민참여당은 그 이름처럼 당원참여를 강조하는 정당이다. 둘째, 지역주의이다. 민주당이 호남지역주의에 크게 의존한다면 국민참여당은 '전국정당'을 지향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해, 노무현, 유시민, 김두관으로 상징되는 비호남 자유주의세력이 중심이 된 정당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 시대(신자유주의 시대)의 진보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국민참여당의 태도이다. 우선 국민참여당이 계승하고자하는 노무현정부는 한미FTA 추진 등이 보여주듯이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정권(이명박정부의 '우파 신자유주의'에 대비되는 '좌파 신자유주의정권')이었다.
사실 노무현정부는 IMF경제위기라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있었던 김대중정부에 비해 경제위기가 극복되고 상대적으로 많은 정책적 자율성을 가진 상황에서 집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미FTA 등 강한 신자유주의정책을 추진했다. 따라서 어느 면에서는 김대중정부 보다 더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정권, 다시 말해 김대중정부 보다 더 '능동적인 신자유주의정권'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어느 면에서는 국민참여당이 민주당보다도 더 신자유주의인 면이 강하다면 강하다. 국민참여당의 간판인 유시민 전 의원은 강한 신자유주의자이다(개인적으로 유시민은 자유주의진영의 유력정치인 중 가장 강한 신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국민참여당이 '사람 중심의 사회투자'를 이야기하고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세계를 강타한 월 스트리트발 경제위기를 보고도 국민참여당이 "적극적인 대외개방으로 선진통상국가"를 추구하는 것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국민참여당은 노무현대통령의 한미FTA 유업을 이어받아 적극적인 대외개방의 'FTA국가'를 추구하는 'FTA정당'이다.
따라서 국민참여당을 반신자유주의를 중심으로 한 진보통합당을 함께 할 수 있는 진보세력이라고 볼 수 없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간의 차이에 비해 국민참여당과 진보세력간의 차이는 근본적이라는 점에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사이에는 실개천이 흐른다면 국민참여당과 진보세력(진보정당들) 사이에는 한강이 흐른다.
이처럼 진보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놔두고 민주당은 안 되고 국민참여당은 된다는 비민주 진보대통합론을 펴는 것은 김대중식 신자유주의는 아니지만 노무현식 신자유주의는, 호남 자유주의자들의 신자유주의는 아니지만 비호남(특히 영남) 자유주의자들의 신자유주의는, 거대 자유주의정당의 신자유주의는 아니지만 군소신생 자유주의정당의 신자유주의는, 저조한 당원참여에 기초한 신자유주의는 아니지만 적극적인 당원참여로 만들어내는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진보라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만 유시민과 같은 국민참여당의 상층부 정치인들과 그 지지기반인 친노세력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국민참여당의 신자유주의적인 상층부 정치인들과는 별개로 친노세력, 특히 단순한 '노빠'를 넘어선 진보적 촛불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진보정당의 지지세력으로 견인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진보정당의 발전을 위해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로서 심상정의 화두의 합리적 핵심역시 바로 이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국민참여당의 상층부지도자들 역시 유시민과 같은 '친노 우파'와 이정우교수와 같은 '친노 좌파'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정우교수의 경우 최근 한 인터뷰에서 월 스트리트 발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미국의 첨단시스템들이 신기루였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결국 우리는 한미FTA를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 당시에는 금융, 컨설팅, 보험, 회계 등에서 일자리 창출의 희망을 찾았는데 지나고 보니 신기루였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지난 글("빅 텐트는 틀렸다")에서 소개했듯이 개인적으로 그동안 민주당도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민주당 좌파의 경우 진보세력과 함께 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해온 바 있다. 마찬가지로 국민참여당의 상층부지도자들도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좌파의 경우 진보세력과 함께 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견인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들이 친노 우파와 결별하고 진보세력과 함께 하려고 할지는 의문이다.
나아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국민참여당 우파도 노무현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에 대해 발본적인 자아비판을 하고 반신자유주의노선을 진정성을 가지고(단순한 선거 전략이 아니라) 명확히 하고 나선다면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진보의 기준으로서 반신자유주의를 명확히 한다면,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의 제안처럼 진보대통합 원탁회의에 국민참여당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즉 원탁회의를 국민참여당의 '개과천선'의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명확히 할 것은 국민참여당이 진보통합정당이나 진보대연합을 함께 할 수 있는 진보세력이 아니라는 주장이 국민참여당과 연합조차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먼저 반신자유주의 노선을 명확히 하는 진보세력들이 모여 진보통합정당을 만들거나 진보대연합을 이룬 뒤 필요하다면 이에 기초해 국민참여당과 연합을 하면 된다. 이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진보세력이 민주당과의 관계처럼 국민참여당과 함께 반MB연합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진보대연합과 반MB연합의 중간수준에서 비민주 진보-개혁대연합을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앞에서 소개한 지난 지방선거의 반MB연합을 위한 5+4 회의에서 제기됐던 제안처럼 민주당의 고압적이고 패권적인 태도를 견제하기 위해 민주당을 제외하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이 따로 모여 의견을 모아 민주당과 협상을 하는 것이다.
비민주 진보대통합당론자들은 답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국가가 'FTA국가'이고 우리가 지향해야할 진보정당이 국민참여당과 같은 'FTA정당'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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