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이후 우리나라 복지예산이 연평균 16.5퍼센트 늘었는데, 앞으로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이 6년 후 20퍼센트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는 재정위기에 몰린 그리스의 복지 지출 비중(20.2퍼센트)과 유사한 수준이다.
경제관료들도 어이없어 할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
수치들이 너무 황당해서 기사의 재료가 된 국회 예산정책처의 보고서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곳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이 보고서에 담긴 주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공사회복지지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1990년 2.9%에서 2008년 8.3%로 연평균 16.5% 증가했다. 이처럼 공공사회복지지출이 연평균 16.5%로 단순증가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나라 복지지출규모는 6년 후 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GDP 대비 20% 수준에 이른다."(국회예산정책처, '남유럽 재정위기와 정책 시사점', 2010년 7월 7일 발표)
결론부터 말하면 예산정책처의 이런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복지보다 성장에 우선가치를 두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관료들도 이런 주장에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것이다. 미래예측이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대충대충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다.
공공사회복지지출에 대해 이명박 정부 경제관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들이 매년 내놓는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이것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 ⓒ홍헌호 |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하반기 내놓은 '국가재정운용계획 2009~2013'에 따르면 이들은 향후 4~5년간 공공사회복지지출이 연평균 6.8퍼센트 늘어나는데 그치고, GDP 대비 비중도 7퍼센트 내외에 머무를 것이라 예측했다.
물론 이런 예측치가 정확하다거나 신뢰도가 높다고 볼 수는 없다. 공공사회복지지출이 연평균 6.8퍼센트 늘어나는데 그칠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지출 확대를 우려하는 이명박 정부가 국회 예산정책처와 매우 상반된 예측치들을 내놓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참여정부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들이 내놓은 '국가재정운용계획 2007~2011'에 따르면 이들은 매년 공공사회복지지출이 9.7퍼센트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들의 예측대로라면 향후 6년간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은 7.2퍼센트에서 8.1퍼센트로 0.9퍼센트 포인트 높아지게 된다.
▲ ⓒ홍헌호 |
복지 연평균 16.5% 증가해도 GDP 대비 비중은 11.5%에 불과
물론 이런 수치들은 국회예산정책처의 예측치들과 큰 차이가 난다. 양자 간에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국회예산정책처가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가정들을 전제로 미래예측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국회예산정책처는 공공사회복지지출이 1990년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16.5퍼센트 증가했으므로 미래에도 연평균 16.5퍼센트 증가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많다.
첫째, 1990년대와 2010년대의 실질GDP증가율, 물가상승률, 명목GDP증가율은 매우 다르다. 따라서 과거 십수 년간 공공사회복지지출이 연평균 16.5퍼센트 증가했다 하여 미래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 가정할 수는 없다.
둘째, 이 보고서의 토대가 되는 수치들을 추적해 보면, 이들이 2009년(혹은 2010년)과 2016년 명목GDP가 같다고 가정하고 무리한 예측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아래 도표는 필자가 국회예산정책처의 미래예측 추정과정을 되짚어보기 위하여 작성한 것이다. 이 도표에 따르면 미래에 공공사회복지지출이 연평균 16.5퍼센트 단순증가한다는 이들의 가정에 따른다 하더라도 GDP 대비 비중은 2010년 7.1퍼센트에서 2016년 11.5퍼센트로 4.4퍼센트 포인트 증가하는데 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홍헌호 |
복지는 연평균 16.5% 증가하고 GDP는 6년간 제자리?
백만보를 양보하여 공공사회복지지출이 연평균 16.5퍼센트 증가한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의 GDP 대비 비중이 2016년 11.5퍼센트에 그치는데 이들은 무슨 근거로 20퍼센트 운운하며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것일까. 의문의 열쇠는 이들의 '명목GDP(=실질GDP + 물가상승율) 가정'에 숨겨져 있다.
이들의 미래예측과정을 추적해 보면, 2016년 1759조 원에 달하게 될 명목GDP를 2009년 수준인 1063조 원으로 묶어두고 이런 어이없는 추정을 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주장처럼 복지예산이 연평균 16.5퍼센트 늘고, 명목GDP가 6년간 1063조 원에 묶여 있다면 그 비율은 20퍼센트에 근접한다.
그러나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향후 6년간 복지예산이 연평균 16.5퍼센트 늘어난다는 가정도, 같은 기간 명목GDP가 1063조 원에 묶여 있다는 가정도 현실성이 전혀 없는 허무맹랑한 것이다.
▲복지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
국회예산정책처, 국민들의 신뢰 저버리지 말아야
국민들로부터 적지 않은 신뢰를 쌓아 온 국회예산정책처가 왜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범했을까.
과거 18년간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이 2.9퍼센트에서 8.3퍼센트로 2.9배 늘었다는 것을 근거로, 향후 6년간 그것이 8.3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2.4배나 증가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예측. 납득하기 어렵다.
또 공공사회복지지출액이 2010년 81조 원에서 2016년 200조 원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GDP는 6년 이상 2009년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가정. 이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미숙한 보고서가 간부급 연구자들에 의해 검토되지 않고 그대로 발표되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금까지 쌓아온 국민들의 신뢰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미숙한 보고서는 하루속히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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