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천 참사'도 노무현 정부 탓이라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천 참사'도 노무현 정부 탓이라고?"

홍성태의 '세상 읽기' <22> 이천 참사와 본드 갈비

2005년 10월 6일, 삼성물산이 건설하던 경기도 이천의 GS물류창고 공사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서 9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2007년 1월 7일, 이번에는 경기도 이천의 '코리아2000'이라는 회사의 냉동 창고 공사장에서 끔찍한 화재 사고가 발생해서 무려 40명의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동안 재난 방지 체계를 정비한다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건만, 어떻게 해서 이렇듯 무서운 사고가 또 다시 발생했는가?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 탓'이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인 1월 8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천의 '코리아2000 냉동 창고 화재 사고'를 "노무현 정권의 잘못에 기인한 인재(人災)"로 규정했다. 노무현 정권이 명실상부한 재난 방지 체계를 확립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안상수 원내대표의 설명은 과연 옳은 것인가? '노무현 정권'이 사라지면, 이러한 '인재'도 사라지는 것인가? 이명박 당선인의 취임과 함께 우리는 '사고 공화국'이 아니라 '안전 공화국'에서 살게 되는 것인가?

나는 안상수 원내대표의 설명에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오히려 '사고 공화국'의 문제가 더욱 더 악화될 것을 우려한다. 1995년 6월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1970년 4월 8일의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를 고스란히 재연한 것이라면, 이번의 화재사고는 1971년 12월 25일에 발생한 서울의 대연각 호텔 화재 사고를 그대로 재연한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필수적 투자마저 줄이고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천민자본주의가 문제의 핵심이다. 역사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한나라당은 자신의 문제부터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안상수 원내대표의 설명에 조금도 동의할 수 없는 더욱 직접적인 근거도 있다. 우리는 지금 지방자치의 시대를 살고 있다. 본격적인 지방자치의 시대도 어느덧 15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서울·수도권, 강원, 충청, 영남의 지방자치는 사실상 '한나라당 자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인터넷에는 경기도지사 김문수, 이천시장 조병돈, 지역구의원 이규택, 시의장 김태일 등 한나라당 정치인의 책임을 묻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이천의 사고에 대해 대통령과 자치단체장 중에서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

'코리아2000 냉동 창고 화재 사고'는 이전에 발생한 많은 사고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은 '대단히 황당한 사고'이다. 법에 규정된 조치들만 제대로 취했더라도 이렇듯 끔찍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도, 이천시도, 소방서도 규정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 대형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수십 개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개의 더욱 경미한 사고가 일어난다. 이번의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이미 여러 차례 작은 화재가 발생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소방 점검과 준공 검사를 모두 손쉽게 통과했던 것이다.
▲ 9일 오전 경기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2000코리아 냉동창고 화재 현장을 찾은 희생자 유가족이 불에 탄 창고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뉴시스

안상수 원내대표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분명히 한국 사람들은 안전에 대해 민감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까라면 깐다'는 폭력적인 군사주의의 영향도 있고, 사람들을 생존경쟁의 아수라장 속으로 내모는 천민자본주의의 영향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위험을 지적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겁쟁이'로 여겨지거나 '돈을 낭비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안전 불감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전을 추구하는 제도를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

2004년 6월 1일에 개청한 소방방재청은 대대적인 '안전 문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소방방재청은 '안전 사회'의 구현을 위해서는 '안전 문화'의 확립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성과는 전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 일어난 '삼성중공업 예인선의 현대오일뱅크 유조선 충돌 사고'와 이번의 '코리아2000 냉동 창고 화재 사고'는 그 단적인 예이다. 잘못된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도 올바른 제도를 갖추고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올바른 제도가 없는 상태로 안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저 사람들의 선의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잘 알다시피 '위험 사회'를 넘어선 '사고 공화국'으로 나타났다. 또한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다. 삼풍백화점은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붕괴했다.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제도는 부패의 덫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은 서구보다 '더 위험한 위험 사회'인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는 일상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멀쩡하게 길을 가다가 전봇대에 감전되어 죽기도 하고, 보도를 차지하고 앉은 배전함이 폭발해서 죽기도 한다. 대기오염으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아토피에 시달리고 조기 사망한다. 교통사고는 아예 말도 하지 말자. 현대 사회를 편리하게 만드는 그 기술이 바로 거대한 위험의 원천이다. 위험이 사고로 폭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애초에 줄이고 철저히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은 여전히 너무나 허술하다.

여기서 나는 '본드 갈비'에 관한 기사에 눈길이 쏠렸다. '본드 갈비'는 '본드로 붙인 갈비'를 뜻한다. 갈비란 사실 단지 갈비뼈를 뜻하지 않고 '갈비뼈에 갈비살이 붙어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본드'라는 접착제를 써서 갈비뼈에 아무 살코기나 붙여 놓아도 갈비로 인정된다. 놀랍게도 법원에서 이런 황당한 판결을 내렸다. 유명한 연예인의 사진을 크게 내걸고 있는 태릉 쪽의 한 식당에 간 적이 있다. 돼지갈비를 시켰더니 여기서는 아예 돼지갈비 양념에 버무린 목살을 내왔다. 사기와 부패가 우리의 일상이요 상식이 된 것이다.

'본드 갈비'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이 나라에는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명실상부'가 아니라 '명실상이(名實相異)'가 이 나라에서는 오히려 정상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비정상성의 정상화'가 안보를 위하거나 경제를 위한다는 구실로 확립되었다. 이렇게 만연한 비정상성의 틈바구니에서 부패의 독버섯들이 번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 사회'의 문제가 좀처럼 완화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의 이름으로 무조건 규제를 완화하고 개발을 강행하는 나라는 언제까지나 암담한 '사고 공화국'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