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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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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반란

[한윤수의 '오랑캐꽃']<275>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듯이,
돈 안 주는 사장님도 할 말이 있다.

사장님들이 임금을 줄 수 없는 이유로 드는 것은 대개 3가지다.
1. (그놈이) 회사 물건을 훔쳐갔다.
2. 불량을 냈다.
3. 폭행이나 마약을 해서 수배 중인 놈이다.

일부 사실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돈을 안 주기 위해서하는 거짓말이다.
4년 여 전 처음 상담을 배울 때만 해도 나는 이런 거짓말에도 잘 속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 속는다.

"그놈한테는 돈 못 줘요. 마약을 해서 수배 중인 놈이라니까. 못 믿겠으면 00경찰서 누구누구 형사에게 전화해 봐요. 그놈이 나쁜 짓 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회사 컴퓨터도 훔쳐갔다니까."
사장님은 속사포처럼 퍼붓더니 탈카닥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어이가 없다.
마약을 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지만, 설사 마약을 했더라도 임금은 줘야 한다.
마약은 마약이고 임금은 임금이다.
둘을 짬뽕하면 안 된다.

나는 문제의 태국인과 마주앉았다.
"마약했어?"
"아뇨."
술 냄새가 폴폴 난다.
"이런 데 올 때는 술 좀 마시지 마. 넌 항상 입에서 술 냄새 나니까 마약했다고 트집 잡히는 거야. 알았어?"
"예."
"회사 컴퓨터 가져갔어?"
"아뇨. 그걸 내가 왜 가져가요?"

알아보니 실제 사정은 이렇게 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장님이 불법체류자인 태국 노동자 네 명을 불러 말했다. "야, 너희들 도망쳐!"
"왜요?"
"조금 있으면 경찰이 올 거야."
"왜요?"
"내가 고발했어."
"왜 고발해요?"
"너희들 불법이잖아. 난 불법인 줄 모르고 고용했거든."
네 사람은 당장이라도 경찰이 들이닥칠까봐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물건도 변변히 못 챙기고 그저 몸만 빠져나왔다.
그러나 도망치면서도 억울했다.
월급 못 받은 게 많으니까.

그들은 하루 후에 자기 물건을 찾으러 공장으로 다시 갔다.
회사 컴퓨터는 물론 그들의 소지품까지도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하지만 변변히 항의도 못하고, 돈도 받지 못하고, 똥줄이 빠지게 다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이 경찰에 다시 신고한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이 사장님은 불법체류자에게만 돈을 안 준 게 아니었다.
합법체류자로 5년 18일이나 근무하고 퇴직한 베트남 노동자한테도 마지막 18일치를 안 주어 말썽이 났다.
자투리 18일치를 안 주다니 너무 치사하지 않은가?
5년이나 근무했으면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기막힌 것은 한 식구 같은 이 베트남인을 위해서 사모님이 대신 진정서를 써주었다는 점이다.
자기 남편을 고발하는 진정서를!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아내가 남편을 고발할까?
이보다 더한 반란이 있을까?

또 있다!
사장님은 한국인 이사에게도 임금을 주지 않아 말썽이 난 상태다.

할 말이 없다.

*돈을 안 주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 : 이 거짓말은 논리적 근거가 없다. 참말이라 해도 돈을 안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임금은 그 어떤 것과도 상계(相計)할 수 없다. 법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가령 노동자가 불량을 냈더라도 임금은 임금대로 주고, 불량 낸 부분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해서 받아야 한다. 임금을 상계할 수 없게 한 것은 옛날에 이런 수법으로 임금을 주지 않는 사장님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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