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을 맞아 <프레시안>은 기존 매체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재를 마련했다. 여론조사의 통계 수치로만 존재했던 20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독자에게 들려주기로 한 것. 그간 정치 평론을 독점해 온 40대 이상과는 다른 위치에서 정치 현상을 바라보는 이들의 '새로운' 시각이 오는 대선을 둘러싼 얘깃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리라고 본다. 고심 끝에 권영길 후보가 아닌 민주노동당에 한 표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는 한윤형 씨는 민주노동당의 주요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코리아 연방제'를 호되게 비판한다. 이 글은 민주노동당의 '코리아 연방제' 공약에 대한 논평뿐만 아니라 학계의 뜨거운 쟁점인 민족, 통일 문제에 대한 20대의 개입으로도 볼 수 있다. <프레시안>은 이 글을 계기로 논쟁이 더욱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한편,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와 관련해서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도 23일 대화문화아카데미 학술 행사에서 권 후보를 향해 "(민주노동당이라는) 정당명과 달리 ('코리아 연방제' 공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노동자, 저소득 소외계층을 대표하기보다는 중산층적 관심사인 민족통일 문제를 대표하는 후보"라고 꼬집었다. <편집자> |
'미워도 권영길'이냐 '적극적 기권'이냐의 기로에서 고민한 끝에, 나는 민주노동당에 표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내 표는 권영길에게 주는 표가 아니다. 2007년 현재 대선 정국에 임하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던지는 표도 아니다. 어쨌든 좌파 정당이 필요하다는 내 의사를 한국 사회에 표현하고자 던지는 표다. 그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나는 이 글에서 민주노동당의 주요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코리아 연방제'를 호되게 비판할 생각이다.
헌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은 알고 있나?
코리아 연방제에 대한 비판의 논거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그저 통일 정책 중 하나에 불과한 그것이 어떻게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바라보는 민주노동당의 시각을 총괄하는 구호가 될 수 있느냐는 것. 그리고 둘은 그것이 결정되는 과정이 민주주의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합당한 말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 말을 하려고 글을 쓰고 있지는 않다. 나는 코리아 연방제가 통일 정책으로도 엉터리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일단 코리아 연방제는 헌법에 어긋난다. 이 점은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에서 박세일이 명백하게 지적했다.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천명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1국가 2체제를 지향한단 말인가? 박세일의 말을 인용했으니 네 주장은 무효라는 외침이 벌써 내 귀에 들려오는데, 한나라당원이 말했다 해도 진리는 진리다. 박세일 정도에게 발릴 정책을 정책이랍시고 들고 나와서 설치는 민주노동당 꼴이 한심할 따름이다.
민주노동당은 이게 헌법적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만일 인지라도 했다면 "우리의 정책은 헌법의 개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지해 주십시오."라고 유권자에게 호소해야 정상이다. 알고 있었는데도 그렇게 안 했다면 개념이 없는 것일 테고. 그들은 그냥 두루뭉수리하게 사람들이 이걸 좋은 거라고 생각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나이브하게 정치할 거면 정치 때려치워라. 진보정치연구소장 조승수의 말처럼 코리아 연방제는 "우린 꼴통 운동권이요"라고 전 민중 앞에 선언하는 꼴이다.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개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좀 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하는 헌법 조항을 개정해야 성립할 수 있는 정치적 주장을 하게 될 텐데, 이 조항과 그 조항은 위상 자체가 다르다. 민주주의 국가가 자신이 민주공화국임을 부인하고서도 존속할 수 있는가? 그게 법리적으로 가능한가?
그것이 가능한 논변을 굳이 찾아내라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법실증주의적 논변밖에 없을 텐데, 그것은 바이마르가 공화정을 통째로 히틀러에게 갖다 바친 이후엔 법철학계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논변이다. 민주주의 체제에 동의하는 한, 코리아 연방제를 구원할 지적인 논변은 이 세계는 물론 가능세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통일이 아니라 평화 체제 구축이 답이다
그럼 어쩌라는 말이냐, 통일하지 말자는 말이냐는 외침이 벌써 내 귀에 들려온다. 바로 그거다. 내 얘기는 통일하지 말자는 거다. 극우파들이 꿈꾸듯 민주공화국의 정체를 북한에 강요하는 식의 제국주의적 흡수 통일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지 못한다. 그렇게 싸가지 없는 짓을 하다간 북한을 송두리째 중국 공산당에 넘겨줄 우려조차 있다. 이렇게 한국 극우파들은 심지어 공산주의자들을 이롭게 할 만큼 멍청하다. 한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부인하는 과도기적인 통일 방안을 실천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통일을 안 하면 된다.
지금 돈 많이 들고 나 가난해지니까 통일하면 안 된다고 '징징'대는 멍청한 냉소주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분단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과도한 군비 경쟁, 이산가족 문제, 북한 주민의 굶주림 등)은 실은 '적대 체제 비용'이다. 대한민국이 헌법을 개정하고, 북한을 별개의 외국으로 인정하며, 중국식의 개방화 노선을 채택하는 공산주의 국가 북한을 같은 언어를 쓰는 이웃으로 지원하고, 점진적으로 양국의 주민이 교류할 수 있게 만들면 끝나는 문제이다.
이것이 논리적으로 유일하게 가능한, 언어유희를 좀 부려보자면 '통일을 욕망하지 않는 통일 방안'이다. 극소수의 주사파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이 북한 공산당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통일을 향한 욕망은 대한민국에 북한을 편입시키겠다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욕망일 뿐이다. 그건 윤리적으로도 그릇되었을 뿐더러, 그 욕망을 실현시킬 수도 없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동반자로서, 북한의 경제 발전에 투자하는 최대의 주주가 됨으로써, 북한 인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소수 민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북한 땅을 넘볼지도 모르는 중국의 야욕을 분쇄해야 한다. 만약 이런 식의 평화체제가 구축되어 먼 훗날 남북한 국민의 사고방식이 비슷비슷해지고, 북한에서도 사실상의 민주화가 진행된다면, 그때 가서 굳이 두 집 살림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합치도록 하자, 는 식의 통일 논의가 가능할 수 있다. 그런 것이 통일이다. 우리 머릿속의 통일 강박증을 없애버려야 올 수 있는 바람직한 통일이다. 지금 '통일', '통일'거리는 것은 싸우자는 얘기다. 누구랑? 북한이나, 혹은 중국이랑.
그러므로 통일이 아니라 평화체제 구축이 정답이다. 백낙청과 최장집이 논쟁을 하고 있으면 최장집 편을 들면 된다.
왜곡된 민족 정체성 그만 좀 주입시켜라
지금까지 한국의 민족주의에서 '민족'이란 아직 오지 않은 노스탤지어였다. 친일파 척결 실패, 대미관계 종속,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가지 사안과 어느 방향으로든 인과관계를 지니고 있는) 민족분단으로 인해 우리의 '민족'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 민족주의는 그 오지 않은 민족의 형성을 위해 '우리'가 복무해야 한다는 그런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가장 과격한 판본의 민족주의는 민족모순이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이며, 하나인 우리가 갈라져 있는 한 우리는 반쪽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 위에 '통일'에 대한 그들의 강박도 생긴다. 지금 민주노동당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이들의 정신세계가 그렇다.
헛소리하지 마라. 반쪽인 건 민족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꼭 대한민국을 꼬박꼬박 남한이라 부르며 국가가 반쪽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 든다. 어떤 이들은 대한민국을 남한이라고 부르는 것이 올바른 지식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별 꼴이 반쪽이다.
혈통이 같은 집단이 두 국가로 갈라져 살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비정상적인 질문이다. 나는 상식적으로 답하겠다. 아무 일도 안 생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보라. 아무 문제없지 않은가. 심지에 벨기에 인은 과거에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통일'된 국가였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네덜란드가 벨기에를 부당하게 통치'했다고 생각한다. 혈통이 같아도 국가는 다를 수 있다. 어떻게 그 사건이 그 자체로 사회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걸까.
'근대적 민족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런데 우리에겐 '민족'이 없으니 일단 통일부터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가. 그는 '민족이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하나의 민족을 제시하며 일단 이것부터 만들어내라고 생떼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그들보다는 차라리 붉은 악마가 '근대적 민족국가'를 만드는 여정에 가까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남한'이라고 외치지 않고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니까.
붉은악마가 민족을 호출하고 있다면, 여기서의 민족은 그 형성되지 않은 민족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대ㆍ한ㆍ민ㆍ국'이라는 구호로 집약되듯이 국가의 구성원, 혹은 국가의 '형상'이라는 의미에서의 민족을 불러낸다. 그것은 하나의 국가와 그 정체를 온전히 드러내는 하나의 단위를 말한다. 전후세대는 드디어 7000만 명의 오지 않은 민족 대신 실존하는 5000만 명의 민족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선택이 차라리 서구 담론에 나오는 '근대적 민족국가'의 개념에 부합한다. 국가가 있고 그 형상으로써의 민족이 있는 거지 여기 민족이 있으니 이것에 입각해서 국가를 만들자는 그런 논변은 세상에 없다.
'통일'에 대한 자신의 '페티시'가 무슨 학술적 토대 위에 있는 것처럼 '근대적 민족국가' 운운하는 이들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차라리 '전근대적 민족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의무라고 솔직하게 주장하라. 그들이 비유적으로 하는 말처럼 인간은 반으로 절단 나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니까, 무조건 통일을 추구하자!" 그게 정답이 아니다. 정답은 정체성을 그따위로 주입하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반쪽이 아니다. 그냥 대한민국이다.
물론 당연히 하나의 국가를 열망하였을 해방 직후에는 분단이 사람들의 심리에 실질적인 좌절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과 남한의 대립과 전쟁은 분명히 역사의 아픔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른다. 사람들은 변한다. 사람들은 익숙해졌다. 익숙해졌어도 우리는 반쪽이고 장애인이라고? 그래서 지금껏 우리가 만들어낸 것,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어떻게 그런 논변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자칭 '민족주의자'에게 정말로 물어보고 싶다.
'근본 적대'는 없다… 헛소리하지 말라
민족문제를 '근본 적대'로 보는 데에 민주노동당 내 자칭 '민족주의자'의 세계관의 정수가 있고 대선정국에서 무식하게 '코리아 연방제!'를 외칠 수 있는 강단도 거기서 나온다. 일단은 근본 적대라는 개념 자체가 낡아빠졌다. 그것이 다른 모든 사회문제를 낳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근본 적대는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민족주의자의 논변은 근본적대에 관한 이론 중에서도 가장 한심하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근본 적대야 헤겔 철학에서 왔으니 적어도 지적으로는 완결된 틀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코리아 연방제의 지지자들이 말하는 근본 적대는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다. 운동원에게 물어보면 "우리 전위가 대답해줄 거예요"라고 하고, 그 전위라는 분에게 물어보면 헛소리만 해댄다.
이들이 그 자신의 알량한 이데올로기로 한국의 좌파 정당을 오염시켰다. 다른 이들에게 민주노동당 찍어달라고 말할 수도 없게끔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 한 표를 민주노동당에게 주면서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언어로 그들을 규탄한다. 내가 아는 한 역사상 남을 씹는데 가장 유능했던 사람은 니체니까, 그의 <안티크리스트>의 몇 구절을 변형하겠다.
"나는 코리아 연방제의 지지자들을 한국 정치의 한복판에 떨어진 단 하나의 엄청난 저주라고 부른다. 단 하나의 엄청난, 가장 내면적인 타락이라고 부른다. 단 하나의 엄청난 복수 본능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악독하게 지하에 숨어 은밀하게 권력을 추구하는 비소한 무리들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을 한국 정치의 단 하나의 영원한 오점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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