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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줄에 걸려 쓰러지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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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줄에 걸려 쓰러지는 대한민국"

홍성태의 '세상 읽기' <10> 경부운하보다 더 급한 일

바야흐로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다. 날씨는 갈수록 쌀쌀해지고 있지만 정치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잡탕 선거 정당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최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끝났으니 정치는 더욱 더 뜨거워질 것이다. 이 때문에 지구 온난화 문제가 더욱 악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가장 유력한 후보인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경부운하 공약의 문제가 이미 낱낱이 드러난 상황에서 오히려 '한반도 대운하'를 주장하는 강력한 오기 정치를 펼치고 있다. 이런 오기 정치는 국가적 차원에서 의혹과 우려를 키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내에서, 심지어 이명박계 의원 사이에서도, 격렬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왜 이렇게 잘못된 공약에 매달려서 자신의 문제와 한계를 갈수록 적나라하게 드러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할 일이 없어서인가?

사실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간 문화의 개선만 해도 그렇다. 잘 알다시피 한국의 공간 문화는 대단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공간 문화는 너무나 천박하고 시끄럽고 더러워서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삶의 질을 높일 수 없다. 시커먼 밤하늘의 시뻘건 십자가도 그렇다. 이 나라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한반도 대운하'와 같은 단군 이래 최대의 공간 파괴 사업이 아니라 '박정희 개발 독재' 이래 지금까지 줄곧 파괴된 국토를 되살리는 공간 보존 사업이다. 그것만이 공간 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모두 공간적 존재이다. 따라서 공간이 망가진 곳에서는 우리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 '중금속 아파트'에서 살면 우리 몸은 중금속에 오염되어 아토피는 물론이고 암에도 걸리기 쉽다. 자동차 매연이 심한 곳에서 살면 우리 몸은 매연에 쪄들어 호흡기질환이나 폐질환, 아토피, 암에 걸리기 쉽다. 시끄러운 곳에서 우리는 쉽게 지치고 신경질적으로 된다. 초고층 아파트는 조망권과 일조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깨끗하고 조용하고 아름답게 보살펴야 한다.
▲ 전봇대와 전깃줄이 가득한 평창동에서 찍은 서울 하늘. ⓒ홍성태

우리는 전봇대와 전깃줄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러한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송전선을 통해 소비 지역으로 옮겨져서 변전소를 거쳐 가정으로 배전된다. 배전 방식은 전봇대 방식과 지중화 방식으로 크게 나뉜다. 전자는 돈이 적게 들지만 확실히 후진적 방식이고, 후자는 돈이 많이 들지만 분명히 선진적 방식이다. 선진국이 되고자 한다면, 그저 돈을 버는 데만 몰두해서는 안 되고, 번 돈을 잘 써야 한다. 전봇대를 없애고 지중화를 하는 것은 그 중요한 예이다.

나는 5년쯤 전부터 이 문제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해왔다. 한 신문에 이에 관해 '전봇대 공화국, 전깃줄 공해'라는 칼럼을 썼더니 한국전력 경영진 쪽과 노동조합 쪽에서 모두 반론의 글을 이 신문에 보내왔다. 경영진 쪽의 주장은, 전국적으로 730만 개 정도의 전봇대가 설치되어 있고, 거기에 걸려 있는 전깃줄은 지구를 25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분량이므로, 그냥 참고 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전봇대의 수는 계속 늘어나서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2006년 현재 전국적으로 780만 개 정도가 설치된 것 같다. 통신선을 포함해서 설치된 전깃줄은 이제 지구를 50바퀴 정도 돌 수 있는 정도로 늘지 않았을까?

노동조합 쪽의 주장은 나름대로 전봇대 문제에 대처하고자 하지만 신자유주의 때문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신자유주의를 저지하는 것이 전봇대 문제에 대처하는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한국전력 노조의 홈페이지에 바로 접속해서 관련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하나도 없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신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고, 전봇대는 전봇대다. 강도범이 무섭다고 폭력범은 내버려둬야 할까? 전쟁이 날 판이니 살인은 무시해야 할까? 사실 신자유주의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전봇대 문제와 같은 공공적 사안에 적극 대처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전깃줄에 걸려 쓰러지고 있는 실정이다. 애써서 멋진 건물을 지어도 전깃줄이 걸리지 않은 깨끗한 사진을 찍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마도 99.9%의 확률로 반드시 포토샵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전깃줄을 관리하기 위해 가로수는 거의 1년 내내 흉한 몰골로 가지치기를 당해야 한다. 그 모습은 흉한 차원을 넘어서 끔찍할 정도이다. 결국 거리와 도시 전체가 삭막해지고 만다. 여기서 나아가 전봇대는 자주 감전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생명마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이 되고자 한다면, 선진국처럼 되도록 애써야 한다. 유럽의 도시와 한국의 도시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멋진 거리와 건물에 앞서서 전봇대와 전깃줄에서 찾아야 한다. 유럽의 도시에서는 전봇대와 전깃줄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럽의 도시는 선진적 하부구조를 갖췄기 때문에 그처럼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나무는 위로 솟은 부분보다 훨씬 더 넓게 땅 속으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큰 나무일수록 큰 뿌리를 숨기고 있다. 도시는 나무와 비슷하다. 아름다운 도시에서 살고자 한다면, 전봇대와 전깃줄을 전면적으로 지중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 나라는 도시와 농‧어‧산촌을 가릴 것 없이 어디서나 수많은 전봇대와 전깃줄을 볼 수 있다. 더욱이 그것들은 너무나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기도 하다. 전봇대들이 제대로 줄을 맞춰 늘어서 있지도 않으며, 심지어 기울어진 전봇대도 있다. 전깃줄은 골목과 거리 곳곳에 늘어져 있고, 뱀이나 넝쿨처럼 온갖 것을 휘감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일부 간선도로에서는 지중화가 이루어져 있으나, 바로 옆의 골목이나 안쪽 도로는 전봇대와 전깃줄이 완전히 점령하고 있다. 전통을 내세운 서울의 인사동이나 북촌을 보라.

내 블로그(☞ 바로 가기)에서 내가 찍은 전봇대와 전깃줄에 관한 사진들을 일부 볼 수 있다. 한번 찾아와 보시라. 언제 봐도 너무 한심하고 끔찍하다. 이에 대해 한국전력은 항상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계속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극히 부분적으로 지중화 사업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전시성'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한전의 엄청난 순이익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한국전력은 이 나라를 대표하는 '초우량기업'이다. 아니, 땅 짚고 헤엄치기 경영을 하는 '완전 독점 기업'이다. 한전의 순이익은 2003년에 3조 원을 훨씬 넘었으며, 크게 줄어들었다는 지금도 2조 원을 훨씬 넘는다. 그렇게 순이익이 크게 주는 와중에도 임직원의 성과금은 오히려 크게 늘어서 국정감사의 추궁 대상이 되는 터에 지중화는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한다. 한국전력은 할 일을 안 하고 성과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신의 직장'이 된 것인가?

아무쪼록 뜨거운 '정치의 계절'이 천박한 '정치의 계절'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 정치인들이 무엇보다 삶의 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엉터리 공약으로 헛된 바람을 일으키려는 짓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다. 부디 전봇대가 없는 나라, 가로수가 마음 놓고 자랄 수 있는 나라, 그렇게 해서 좀 더 아름답고 깨끗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진정한 선진화'의 공약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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