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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괴물은 바로 당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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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괴물은 바로 당신들이다"

홍성태의 '세상 읽기' <8> 남북정상회담, 평화체제를 향해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2박 3일 동안 역사적인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린다. 2000년 6월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으로부터 7년만이다. 제1차 회담 이후 정기적으로 열리기를 바랐으나, 여러 이유들로 제2차 회담조차 지금까지 미뤄지고 말았다. 아무쪼록 남북한 모두 정략에 휘말려 갈팡질팡하지 말고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열릴 수 있기를 바란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남한에는 북한이라고 하면 '뿔 달린 붉은 괴물'들이 사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참 불쌍한 사람들이다. 아니,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괴물인지 모른다.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한사코 괴물로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괴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남한과 북한에는 같은 핏줄과 역사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서로 다른 사회를 이루고 산 것도 어느덧 60년이 다 되어가지만 남한과 북한은 결코 남이 될 수 없는 사이이다.

여기서 잠시 남북한의 국토와 인구 현황에 대해 살펴보자. 남한의 국토면적은 992만6000㏊로서 세계 109위이고, 북한은 남한보다 넓은 1205만4000㏊이며, 남북한을 합치면 그 면적은 세계 84위가 된다. 남한의 인구는 4870만 명(0.7%)으로서 세계 25위이고, 북한의 인구는 2300만 명(0.4%)이며, 남북한을 합치면 세계 18위(1.1%)가 된다. 100년 전에 삼천리강산에는 약 1100만 명 정도의 한민족이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720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이 정도면 민족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단과 전쟁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분단과 전쟁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이다. 한국전쟁은 분단의 성격을 규정하는 역사적 사건이 되고 말았다. 분단이 되었다고 해서 공존을 못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전쟁은 다르다.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낸 지옥이다.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상을 받는 것이 전쟁이다. 한국전쟁은 유독 참혹했던 전쟁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일제 말기에 불렸던 한 독립군가는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이라고 노래했다. 그 중에서 무려 500만 명이 한국전쟁에서 죽거나 다쳤다.

이 땅은 줄곧 외침에 시달렸고, 조선말에는 특히 커다란 전쟁이 잇달아 일어났다. 동학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모두 이 땅에서 일어나서 많은 조상들이 큰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 전쟁들은 한국전쟁에 비하면 작은 에피소드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약탈당하고 실종되었다. 한국전쟁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커다란 고통을 안겨 주었다. 산하도, 사람도, 모두 큰 고통을 겪고 다른 산하,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더욱 큰 문제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그저 중단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전쟁 상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000년 6월에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같은 해 10월에 성공회대에서 제3회 비판사회학대회가 열렸다. 나는 여기서 '50년 전쟁체제의 사회적 결과 - 비정상성의 정상화'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무려 50년 동안이나 전쟁 상태로 지내면서 비정상적인 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 한국 사회의 기형적 현실을 성찰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비정상성의 정상화'가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독재 세력의 책략이 큰 영향을 미쳤다. 요컨대 이승만의 깡패 독재와 박정희의 군사 독재는 끔찍한 전쟁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이용한 전쟁 독재이기도 했다.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이적 행위로 내몰려서 가혹하게 처단되었다. 사실 이승만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48년 12월에 국가보안법을 불법적으로 제정해서 독재 체제의 기틀을 세웠다. 한국전쟁은 그렇지 않아도 형성되고 있던 독재 체제에게 초강력 알리바이를 제공했던 것이다.

휴전선 155마일 주변은 100만 명이 넘는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 세계 최고의 병력 밀집 지역이다. '비무장지대' 주변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중무장지대'이다. 대포, 전차, 탱크, 미사일 등 온갖 무서운 무기들이 총집결되어 있다. 한때는 이곳에 핵무기도 배치되어 있었다. 모든 청년 남성들이 군대에 가야하고, 이 때문에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한 온갖 부패가 창궐하며, '군 가산점'이라는 잘못된 제도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마저 야기되고, 매년 수십조 원의 혈세가 군비에 충당되고, 이로부터 어마어마한 비리와 부패가 끊이지 않고, 사회 전체적으로 군사주의와 남성주의가 만연해 있다.

우리는 분단이 아니라 전쟁 때문에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분단이 되었더라도 진즉에 교류와 공존이 전면화되었을 것이다. 전쟁체제의 종식과 평화체제의 구축은 그야말로 '민족의 요청'이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막대한 자원의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길이며,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심화하기 위한 핵심적 과제이다. 한국의 독재세력은 사실상 전쟁세력이었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전쟁체제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남북한은 물론이고 동북아의 발전을 위해서도 전쟁체제의 종식과 평화체제의 구축은 시급하다.

전쟁 세력이라고 해서 평화를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들은 사실 평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들은 초록색 월계수 잎을 입에 문 하얀색 비둘기가 자신들의 상징이라고 선전한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대체 어떤 것일까? 그들은 M16이나 탱크는 물론 핵무기를 써서라도 그들을 위협하는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이 평화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평화와 평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평정은 평화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것은 폭력을 통한 제압의 귀결이다. 평정은 반평화이다. 우리는 평정이 아닌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최대 의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평화체제의 구축을 향한 논의를 제시했다. 나는 이것이 참으로 올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남북한을 통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지, 독재세력에 뿌리를 둔 보수 세력의 반발, 그리고 체제의 불안전성에 시달리는 북한의 동요라는 커다란 장애물들이 있다. 평화체제의 구축은 이미 우리의 현안이 되었지만, 그 실현은 여전히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거목의 풍모와 햇빛의 슬기가 모두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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