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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총 "盧 정부, 노조 탄압 기록 계속 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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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총 "盧 정부, 노조 탄압 기록 계속 이어가"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24>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세계 노동자

각국 노총의 국제 연합체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이하 국제노총)이 <2007 노동권 침해 조사 보고서>를 내놨다. 국제노총은 매년 노동조합의 권리를 위반하는 사례를 조사해 발표해 왔는데, 이번 보고서에는 2006년에 일어난 위반 사례를 2007년 상반기에 수집해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다.

콜롬비아ㆍ필리핀, 최악의 노동권 침해 국가

보고서를 보면, 노동조합 활동으로 살해된 노동운동가 수가 2005년 115명에서 2006년 144명으로 늘어났다. 가장 악명 높은 나라는 남아메리카의 콜롬비아로 2005년에 70명이었던 피살자 수가 2006년에는 78명으로 늘었다. 물론 이는 피랍, 실종자 수를 뺀 수치다. 국제노총은 콜롬비아를 노동권 침해에서 최악의 국가로 규정하고 국제 캠페인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콜롬비아 정부는 자본가들이 노동운동가를 테러 하는 것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로 눈을 돌려보면, 노동운동가 살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나라는 필리핀이다. 2006년에만 노동운동가 33명이 살해당했다. 국제노총은 필리핀에서 노동운동가들에 대한 테러가 자본가는 물론 경찰과 군부에 의해서도 저질러졌다는 심증이 있다고 지적했다. 필리핀에서는 노동운동을 활발히 지원했던 알베르토 라멘토 가톨릭교회 주교가 괴한에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의 필리핀 부분은 폭행, 납치, 살해, 암살, 고문, 실종의 소식들로 가득한데, 한국기업 '청원패션'과 '필스전(주식회사 일경이 필리핀에 설립한 현지 법인)'의 노동조합 탄압 사례도 소개돼 눈길을 끈다. 이 내용은 "파업하면 해고하고, 납치하고…제 버릇 어디가나"라는 <프레시안>기사에도 소개된 바 있다. 이 사례를 조사했던 필리핀의 노동자권리협회는 자신이 접한 사건들 가운데 "가장 악질적이고 집요하다"고 평가했다.

비정규직 확대로 고용 불안과 노동조합 약화

보고서를 보면,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것이 기존 노동조합 운동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인력법(근로기준법) 59조에서 업무의 성격상 임시적인 일에만 비정규직을 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다수의 사용자들이 비용을 줄이고 노동조합을 없애기 위해 정규직이 일해야 할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다. 물론 이런 사태의 배경에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암묵적인 용인과 협조가 자리 잡고 있다.

타이에서는 하청ㆍ외주화가 섬유와 봉제 등 경공업을 넘어 자동차부품, 금속, 화학 등 중공업 부문으로까지 급속히 확대되면서 노동조합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아시아 제일의 선진국인 일본도 예외는 아니어서 단기 계약직 노동자의 증가가 정규직 고용과 노동조합 조직화 사업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거나 비정규직 평등 대우를 규정한 법률이 없어 비정규직의 노동 조건이 열악하다.

유럽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스페인으로 2004년 임시계약직 비율이 32.5%에 달했다. 비정규직의 63%를 이주 노동자들이 차지함으로써 사용자들이 국내 사정에 어두운 외국인 비정규직을 악용해 정규직의 노동 조건을 떨어뜨리고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약화시키는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비정규직이 사용자와 고용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그 결과 단체교섭이나 단체행동은 물론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도 없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정규직에 비해 열악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이들 대부분이 노동조합에 참가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단체를 결성할 법적 권리를 부정당함으로 인해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제도로부터 소외당하는 현실에 있다.

선진국에서 일어난 노동권 침해 사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노동권 침해에는 서구의 선진국들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의 경우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의 파업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물론 결사의 자유, 즉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는 완벽하게 인정한다). 이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는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을 보장한 ILO협약 제98호 위반이라고 반복해서 지적해왔다. 재미있는 것은 공무원단체들이 독일 정부가 '철밥통'을 보장하는 '국가의 의무'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파업권 도입에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공무원의 평생고용 특권이 사라진 나라에서는 공무원의 파업권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스위스의 경우, 시나 군 같은 지방 정부가 지방공무원의 파업을 금지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스위스의 중앙정부는 2006년 6월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스위스 헌법과 법률을 내세우면서 ILO협약 제98호가 스위스 영토 안에서 적용될 수 없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스위스법이 농업부문 종사자를 노동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음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2006년 2월 미국의 대형유통회사인 월마트가 소유한 슈퍼마켓에서 단체교섭권을 포기한 종업원들에 대해서만 임금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 노동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체서피커'라는 포장회사에서는 단체협약 대신 개인계약을 강요하는 회사의 요구를 거절한 노동조합원 10명을 해고해 해당 노동조합이 파업투표를 하기도 했다. 지방분권화가 강한 캐나다의 경우, 몇몇 주정부가 농업, 원예, 의료, 교육 부문에서 파업권과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ㆍ호주, 반노동조합 법제도 폭넓게 허용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노동권 침해국은 미국이다. 연방 차원에서 공공부문 노동자의 40%가 기본적인 단체교섭권을 박탈당한 상태다. 연방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는 연방정부 소속 공무원 2백만 명은 파업권이 없을 뿐 아니라, 노동시간, 임금, 경제적 혜택에 관해 단체교섭조차 하지 못한다.

또한 민간부문에서 사용자는 파업 노동자를 대신할 대체인력을 영구적으로 채용할 수 있으며, 이들 대체인력이 노동조합 대표에 대해 자격 박탈 투표를 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들은 종업원들을 모아서 노동조합을 비판하고 노동조합 가입에 반대하는 모임을 합법적으로 가질 수 있으며, 사용자가 개최한 반노동조합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노동자를 징계하거나 해고할 법적 권리도 가진다. 미국 노동법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찬성표를 던질 경우 사용자가 공장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예보할(predict)" 권리를 허용하고 있다.

보수주의 정부가 장기집권하고 있는 호주 역시 선진국 가운데 노동권 침해가 심각한 나라에 속한다. 1996년 노사관계법은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과 비(非)노동조합 협약을 동등하게 간주하고 있으며, 사용자에게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또한 종업원과의 개인계약을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보다 우위에 놓고 있으며, 벌금형 등으로 단체행동권을 제약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는 1996년 노사관계법이 국제노동기준에 어긋난다며 개정을 요구하지만, 호주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개인계약의 확산은 단체교섭의 통합성과 단체협약의 효력을 무너뜨리면서 호주 노동운동에 치명적인 도전이 되고 있다. 사업장에 구속력을 갖는 단체협약이 존재하더라도 사용자는 자신의 종업원에게 개인계약을 자유롭게 제안하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계약에는 최저임금, 연차휴가, 병가, 무급양육휴가, 주간 최대 노동시간만 규정하면 된다.

단체교섭 역시 상당한 법적 제약을 받고 있다. 노동조합 회의나 교육에 참가하기 위한 휴가, 산별노동조합 간부의 공장 출입, 하청업체 제한, 조합원 모집 확대, 개인계약에 대한 제한,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행위 따위를 단체교섭 의제로 넣으려는 단체나 개인은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이상의 단체교섭에서 "금지된 의제"를 갖고서 행해지는 파업도 처벌된다.

노무현 정권, "노동조합 탄압의 기록을 이어가"

보고서의 한국 관련 내용도 다채롭다. 개별 침해 사례로는 2006년 8월 포항제철의 사용자성 여부를 다투다 일어난 포항건설노동조합원의 사망사건, 공무원노동조합ㆍ철도노동조합ㆍ건설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탄압, 외자기업인 라파즈한라시멘트에 의해 자행된 비정규직노동자 노동조합결성 방해, 세종병원의 보건의료노동조합 조합원에 대한 폭력, 기륭전자 노동자들에 대한 반노동조합 탄압, 외국인노동자로 구성된 이주노동자노동조합과 경찰청용역직노동조합에 대한 불인정 사건 등이 소개되어 있다.

노사관계와 관련된 법제도상의 문제로는 공무원 노동권 문제, 비정규직 관련 노동법의 부실함, 직권중재로 대표되는 병원ㆍ철도ㆍ항공 등 이른바 '필수공익사업장'의 단체행동권 제한, 노사 자율로 결정되어야 할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 지급 문제에 대한 법적 금지, 형법 314조에 규정된 '업무방해' 조항을 활용한 노동조합활동 제한, 외국인노동자의 노동권 침해, 과도한 경찰 폭력 등이 언급되어 있다. 보고서의 한국 관련 장에는 "노무현 정권은 경찰에 공무원노동조합에 대한 총공격을 명령함으로써 노동조합 탄압의 기록을 계속 이어갔다"고 적혀 있다.

노동권은 인권의 척도이자 민주주의의 시험지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결성과 활동, 단체협약을 체결할 단체교섭권과 파업을 할 수 있는 단체행동권, 안전한 작업환경과 인간다운 생활을 향한 노동자 투쟁의 역사는 18세기 산업혁명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본적인 노동권은 19세기 노동계급이 투쟁으로 귀족과 자본가의 격렬한 저항을 극복하면서 민주주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게 되며, 20세기에 들어와 보편적인 국가 원리로 인정받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헌법과 법률에 그 내용을 규정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사문화되었던 노동권이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제자리를 잡게 되었다.

국제노총의 노동권침해 보고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대표되는 자본의 거대한 공세 앞에서 날로 약화되고 있는 노동기본권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역사는 노동운동의 약화가 노동기본권의 약화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세계인권사상사>란 책에서 미국의 인권학자 미셀린 이샤이는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한 노동운동의 성장이 노동기본권은 물론, 보통선거권 같은 정치적 권리와 아동교육권, 남녀평등, 복지제도 같은 사회적 권리의 향상에 기여했음을 밝히고 있다. 사실 노동권은 인권의 척도이자, 민주주의의 시험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권이 침해되는 나라일수록 다수를 위한 민주주의가 아닌 소수를 위한 민주주의로 치닫는 경향이 크다.

이런 점에서 날로 악화되고 있는 세계 각국의 노동권 상태를 정리한 국제노총의 보고서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속에서 속 빈 강정이 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암울한 장래를 예보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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