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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신정아'를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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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신정아'를 말하지 말자"

홍성태의 '세상 읽기' <6> '신정아 사건'과 '데마고그' 정치

한 30대 중반 여성의 행각이 엄청난 물의를 빚어내고 있다. 사실상 별 자격도 가지지 않았으면서 상당한 '문화권력'으로 행세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자아낸 것이다. 그런데 이 이면에는 '권력형 부패'를 들먹이며 계속 의혹을 키우고 있는 보수언론의 노력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을 보며 드는 느낌은 거의 '안습'이다. 이 정권이 정말 깨끗하기는 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보수언론이 이 사건을 '권력형 부패'로 지목하며 대대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공격을 하다가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문화일보>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요란을 떨며 신정아의 '누드 사진'을 보도했던 것이다. 아마도 한국 언론사에서 최악의 보도로 기록될 이 사진은 문화일보의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훌륭한 결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과연 문화일보는 자기의 '실수'를 몰랐을까? 혹시 다른 정치적 계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문화적 '홀딱쇼'를 해서라도 국민의 이목을 돌려놓자는 무서운 정치적 전술은 아니었을까?

'권력형 부패'라고 하기엔…

신정아와 변양균이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었으니 조만간 사건의 내용이 잘 밝혀질 것이다. '신정아 사기극'인가, 아니면 '권력형 부패'인가? 이 판단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 보자면, '권력형 부패'라고 하기에는 사건이 우습다. 린다 김과의 비교에 대해 린다 김이 몹시 불쾌해 했다고 하던데, 내가 생각하기에 신정아는 더 그랬을 것 같다. 린다 김은 국방 예산과 방위 체제를 주무른 무시무시한 사람이다. 이에 비해 신정아는 '고작' 학력위조, 교수임용, 광주 비엔날레, 미술품 거래 등과 관련되었을 뿐이다.
▲ 2007년 9월 16일 두 달 만에 귀국한 신정아 씨. ⓒ연합뉴스

신정아와 린다 김의 비교에서 나는 '막걸리 보안법'을 떠올리기도 했다. 막걸리에 취한 한 시민이 정권을 비판하는 말을 한마디 했다가 바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죽도록 고생을 해야 했던 무서운 시절이 있었다. 신정아는 분명히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애꿎은 '막걸리 보안법' 피해자와 비교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죄목을 씌워서 사람을 고생시키고 시민들의 눈을 속이는 것은 별로 다르지 않다. 한국의 반인권적 보수 세력이 너무나 좋아하는 '데마고그의 정치'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데마고그: 자파(自派)의 이익을 위하여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가.)

그렇다면 '신정아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아무래도 '신정아 사기극'이라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신정아 게이트'를 운운하며 '권력형 부패'를 주장하는 것은 실체와 너무나 맞지 않는 것 같다. 이 사건에 대해 '권력형 부패'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 그 정치적 의도와도 들어맞지 않는다. 만일 이 사건이 '권력형 부패'라고 한다면, 노무현 정권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인 데, 이 정도의 정권에 대해 그렇게 독을 품고 악을 품을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그 자체로 너무나 한심스런 정치적 작태가 아닐까?

진짜 '권력형 부패'는 따로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정몽구 회장과 김승연 회장에 대한 최근의 고등법원 판결이야말로 '권력형 부패'의 혐의를 받아야 옳을 것 같다. 1조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정몽구 회장과 '보복 폭행'으로 이름을 날린 김승연 회장이 모두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 이것이야말로 '권력형 부패'의 진수가 아닐까? 행정부와 사법부가 모두 연루된 엄청난 부패의 연결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수 세력이 정말로 국민을 위한다면 하찮은 신정아 따위가 아니라 이런 중대한 문제에 매진해야 옳지 않을까?

물론 신정아 사건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신정아 사건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신정아 사건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보수 세력의 위험한 정치적 데마고그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정말로 중요한 정치적 사안은 결코 다루지 않으면서, 아니 정말로 중요한 정치적 사안을 적극적으로 은폐하기 위해서, 별 것도 아닌 신정아 사건을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보수 세력의 홀리기 작전에 속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보수 세력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정치적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신정아의 '성공'이 드러내 보여준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무엇보다 신정아 사건은 학벌사회의 문제를 잘 보여주었다. 어느 사회이고 실제 능력보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에 의해 인생이 결정될 수 있다. 한국은 그런 문제가 극심한 학벌사회에 해당한다. 보수 세력은 학벌사회를 더욱 강화하고자 한다. 또한 여기서 주의할 것은 1990년대를 지나며 서울대 위에 미국 '명문대'가 자리 잡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신정아는 이 사실을 아주 잘 이용했다. '예일대 박사'라는 말 한마디에 한국의 미술계는 녹아내리고 말았다.

신정아 사건은 단순히 학벌주의가 아니라 미국주의의 문제에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 실제로 한국의 학계는 미국 유학생 출신이 지배하고 있다. 공학이나 과학 쪽뿐만 아니라 인문이나 사회 쪽도 그렇다. 이 점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저열하고 부실하다. 신정아는 이 사회의 병적 미국주의가 빚어낸 신데렐라이다. 물론 그 대안으로 제시되곤 하는 유럽주의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더욱이 예술계는 여전히 프랑스를 필두로 한 유럽 팔아먹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 제국주의 똘레랑스의 나라.

신정아의 성공은 포지티브 피드백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일단 어떤 방향으로 큰 변화가 시작되면, 계속 같은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기 쉽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주체가 나름대로 기회를 잡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요컨대 우연히 맡은 기획에서 수완을 보였더니 사람들이 큰 신뢰를 보이고, 그 결과 또 다른 일들을 많이 맡게 되고, 신뢰를 보인 사람들이 적극 돕겠다고 나서고, 결국 정말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겨져서 막강한 연줄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정아의 성공은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드러낸 역사적 사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포지피브 피드백에 속아서 스스로 그 한 요소로 전락해 버린 대학의 문제는 재삼재사 지적해도 모자랄 것이다. 강의 능력 자체를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을 교수로 채용한 것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삼풍백화점은 평가 제도가 없어서 붕괴한 것이 아니라 부패와 비리의 먹이사슬 때문에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붕괴했다. 더욱이 잘못을 저지른 공무원들 중에서 합당한 처벌을 받은 자는 한 명도 없다.

호들갑 떨 일 아니다

신정아 사건의 전말은 머지않아 밝혀질 것이다. 그것은 '신정아 사기극'일 수도 있고, '신정아 게이트'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에나 권력을 쥔 자들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건 나라가 뒤집힐 것처럼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닌 것 같다. 신정아에게 들일 시간과 노력을 아껴서 노무현 정권의 역사적 실패와 이명박 후보의 문제적 경부운하 공약에 대해 토론하자.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열렬히 관심을 쏟아야 할 핵심적 사안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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