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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 그저 꿈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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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 그저 꿈일 뿐인가?

박명준의 '유럽에서의 사색'〈25> 기든스의 교육 정책 제언

세계적인 석학인 영국의 사회학자 안토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1990년대 후반 '제3의 길'을 제창해,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의 개혁 노선을 정초한 사회이론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올 들어 월 1회씩 독일의 보수 일간지 <디 벨트(Die Welt)>에 기명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세계화와 관련된 자신의 깊은 문제의식을 시의성 있게 잘 가공해 소개하는 그의 글은 우리의 상황에도 적지 않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지난 5월 기든스는 '사회적 신분상승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세계화 시대 사회이동(social mobility)을 촉진하는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글을 이 신문에 게재했다. (☞원문 읽기 : "Der Traum vom gosellschaftlichen Aufstieg")
  
  대선을 맞이해 향후 채택될 교육정책과 노동정책의 향배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차대한 상황에서, 그의 글은 마치 한국의 정책 당국자와 대선주자 나아가 유권자에게 전하는 제언처럼 들린다. 우선 그의 글을 간략히 요약 소개하겠다.
  
  사회이동, 정책이 중요하다
  
  "이른바 '사회이동(social mobility)'이라는 개념은 한 마디로 가난한 가정 출신자가 어느 정도로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즉 노동자의 자녀가 의사, 변호사, 은행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 말이다. 만일 자녀가 부모보다 나은 직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회는 사회적으로 이동성이 높은 사회다. 사회정책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사회이동성을 높이는 것일진대, 세계화 시대 산업국가에서 사회이동의 가능성은 점차 위협을 받고 있다.
  
  런던 정경대(LSE)에서 지난 1년 전 대형연구프로젝트 '유럽과 북미의 사회이동: 세대 간 비교'를 수행했다. 연구 결과, 영국과 미국의 사회이동은 유사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나 캐나다에 비해 훨씬 뒤지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영국에서의 사회이동의 기회는 계속해서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1970년도에 태어난 사람들의 사회이동 가능성은 1958년에 태어난 사람들에 비해 낮았고, 1980년대 초에 태어난 이들의 기회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교육수준에 더욱 의존하는 양태를 보였다.
  
  올해 초 영국에서는 '노동당 정부 하에서 사회이동의 가능성 저하'에 대한 영국 보수당 측의 비판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염두에 둘 점은 사회정책의 영향이라는 것이 곧장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밝혀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노동당의 집권기에 사회이동이 저하되는 모습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이전 보수당 집권기에 편 정책의 결과다.
  
  더불어 사회이동의 문제는 한 정권의 정책으로만 환원할 수는 없다. 기술발전 같은 것도 사회이동과 관련하여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1950년대 출생자들은 그들의 성장기에 공장에서의 생산직 노동이 쇠하고 사무직 일자리들이 붐을 이루어, 이후 그들이 취직을 할 때에 좋은 일자리들이 크게 증가했으며, 그 결과 사회이동도 활발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정책이 사회이동에 끼치는 역할은 중차대하다. 특히 사회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일수록 국가가 어린이에게 돈을 많이 지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스칸디나비아의 국가들이 그 모범적인 사례다. 그들 정부는 가정의 자녀양육에 깊게 개입하며, 높은 수준의 지원을 하고 있다. 그 결과 대다수의 젊은 엄마는 직장을 갖고 있고, 대다수의 청소년은 낙오자 없이 학교를 졸업하고 있다. 반면,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하게 도입해 온 영국에서는 경제활동 인구의 약 15%가 극심한 빈곤의 상황에 처해 있고, 이들 가정의 자녀들은 학교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나마 블레어 정부 시절, 정부는 대학 등록금 제도를 개혁하여 빈곤층의 자녀들이 더 나은 교육기회를 얻도록 하는데 필요한 지원 프로그램을 가능하도록 노력하였다. 그러한 정책의 도입으로 최근 10년 이내에 출생한 '블레어 시대의 아이들'은 이전의 '대처 시대의 아이들'보다 더 큰 사회이동의 기회를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에도 아직 모자라다. 이러한 방향의 정책은 현재보다 두 배 이상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스칸디나비아에 빈곤층 어린이들의 수가 매우 적은 모습이 그 나라들에서 사회적 이동성이 높은 중요한 배경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영국의 길'보다는 '스칸디나비아의 길'로
  
  그의 주장의 핵심은 결국 정부가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사회이동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힘이며, 이는 세계화 시대에 지향해야 할 중요한 정책적 방향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날로 사회이동의 가능성이 축소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향해서도 참으로 적실한 조언으로 들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이른바 '좌파 정부' 하에서 사회 각 부문에 시장논리가 더욱 거세게 침투하였다. 평준화 교육을 유지했던 '박정희-전두환 시대 아이들'에 비해, 사교육 시장을 팽창시킨 '김대중-노무현 시대 아이들'이 누리는 사회이동의 기회는 더욱 낮아졌다.
  
  교육이 점차 시장에 지배를 당하고 국가의 개입이 약화되면서, 빈곤층의 자녀들은 일찌감치 시장논리의 패배자로 전락하게 되고, 그들에게 사회적 신분상승의 길은 더욱 요원해 지고 있다.
  
  기회균등의 기초적인 사회원리가 파괴된 상태다. 한국에서 자녀교육을 시키는 이들에게 돈의 양은 더욱 더 결정적으로 그들의 자녀가 받는 교육의 질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없는 집 부모들의 가슴은 더욱 미어지고, 못 가르쳐 가난을 대물림시켜야 하는 속내는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이미 학교는 학원에게 무릎을 꿇었다. 교육의 장의 주객은 전도된 지 오래다. 심지어 한국의 학원시장은 세계금융자본마저 군침을 삼키는 대박투자의 장으로 인식되고 있는 지경이다.
  
  사회이동의 가능성이 저하되면, 사회적 활력은 떨어지고, 사회갈등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신자유주의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위기(social risk)를 향한 길을 배태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교육의 장에 시장기제를 확대할 것을 주창하는 이들이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번 대선의 일부 유력한 후보들은 그들이 지향하는 길을 닦아 주겠노라 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계화 이론가 기든스의 제언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 사회에에서 지금 필요한 정책은 점점 높아만 가는 '사회이동 차단 장벽'을 과감히 낮추고 허물 수 있는 정책이다. 유ㆍ초ㆍ중등 교육에 국가의 개입과 지원은 더욱 늘어나고 시장 논리는 제어되어야 한다. '대처의 길' 보다는 '블레어의 길'을, 나아가 '영국의 길'보다는 '스칸디나비아의 길'을 지향해야 한다.
  
  진정 자녀의 미래를 염려하는가. 그렇다면 올 12월 투표장으로 향하기 전에 반드시 대선후보들의 교육정책 공약을 점검하고 '누가 사회이동을 높이는 교육정책을 펼지'를 꼼꼼히 점검하자. 자녀에게 들일 사교육비를 만들어 낼 길을 찾기보다 질 좋은 공교육을 강화할 인물을 뽑는 것이 훨씬 쉽고 효과적으로 자녀를 위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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