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지막 회에서는 국제중재 판례를 중심으로 간접수용의 의미를 밝히겠습니다. 특히, <비전 2030>에서 강조하는 조세 문제를 한미 FTA 협정문의 맥락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알고 계시다시피, '간접수용'은 외관상으로는 '수용'이 아니지만, 그 실제효과 면에서 수용과 같다는 판정을 받는 국가 규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간접수용' 개념은, 아래의 여러 국제중재 판례에서 알 수 있듯이, 환경규제 등과 같은 좁은 범위의 규제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간접수용, '규제'의 모습을 한 '수용'…체코의 사례
2001년 '씨엠이 사건'에서는, 체코 방송위원회가 민영 방송국을 감독한 행위가 간접수용이라는 판정이 내려졌습니다(2001. 9. 13. 선고 일부 쟁점 판정문 607항).
이 사건은 동구권에서 공산주의가 붕괴한 후 체코가 방송을 민영화하기로 하면서, 1993년 체코 기업인 '씨이티 21'에 체코 최초의 전국 민영 텔레비전 방송허가권을 부여한 데에서 비롯합니다. 씨이티 21은 이 최초의 민영 텔레비전 사업을 미국 회사인 '씨엠이'와의 합작 투자로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체코 정부는 체코의 첫 민영 텔레비전을 외국인이 장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체코 방송위원회는 방송국의 설립과 운영에 미국 기업 씨엠이의 자본이 투입되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방송 허가권은 체코 기업에만 부여했습니다(판정문 10항).
다시 말해, 미국 기업인 씨엠이는 자본을 제공하고, 체코 기업인 씨이티 21은 방송 허가권을 제공하는 형태의 합작투자였던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 두 회사는 별도의 텔레비전 방송사인 '씨엔티에스'를 설립했습니다.
이런 합작투자 방식에 따라 탄생한 신생 방송사 씨엔티에스는 자신의 명의로 된 방송허가권은 없지만, 합작투자 계약에 따라 씨이티 21의 방송 허가권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상 '변칙'이지만, 이런 변칙적 방송에 대해 방송위원회는 여러 가지 전제 조건을 붙여 허가권을 부여했습니다. 이 텔레비전은 체코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1996년 방송 허가권에 어떤 전제 조건을 붙이는 것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체코 방송법이 개정됐습니다. 이에 따라 체코 방송위원회는 시엔티에스의 방송 허가 시 붙인 전제 조건에 대한 감독권을 잃게 됐습니다.
방송위원회는 방송허가권을 보유하지 않은 방송국인 시엔티에스가 다른 회사의 방송 허가권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하는 것은 더 이상 적법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이 방송국에 불법 방송을 시정하라는 경고문을 보냈습니다. 이와 동시에 방송위원회는 이 방송국에 벌금을 부과하기 위한 행정 절차에 착수했습니다(484항, 485항).
방송위원회는 또 합작투자 계약서의 방송 허가권 독점 조항을 사실상 제거하는 방향으로 계약서의 내용을 변경할 것을 요구했고, 계약서가 재작성하는 과정에도 관여했습니다.
이것이 발단이 돼, 방송 허가권을 소유한 체코 기업 씨이티 21은 1999년 합작투자 계약을 파기하고 별도의 방송사를 설립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만의 고유한 방송 허가권이 없는 미국 기업 씨엠이와 이 기업이 지배하는 기존 방송사는 더 이상 방송 사업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자 씨엠이는 체코 방송위원회가 애초 방송 허가권을 부여한 과정에서부터 합작투자의 파국에 이르기까지 보여 준 일련의 감독 혹은 감독 소홀 행위는 자신의 투자 재산을 '간접수용'한 것이라면서 체코를 국제중재에 회부했습니다.
국제중재 판정부는 '체코 방송위원회가 투자자의 재산을 직접 취득한 일은 없지만, 일련의 감독 혹은 감독 소홀 행위가 간접수용에 해당하므로, 체코가 3억5000만 달러를 투자자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판정했습니다.
국제중재 판정부는 이 사건의 판정문에 '방송위원회가 애초 방송 허가를 내줄 때 자신의 고유한 방송 허가권 없이 합작투자 계약에 따른 독점적 방송 허가권 사용 방식으로 방송을 하는 구조를 적법하다고 승인했기 때문에 투자자가 투자를 한 것'이라고 적시했습니다(457항).
판정부는 1996년 합작투자 계약서 내용이 변경된 것은 투자자가 원해서가 아니라 투자자가 방송위원회의 불법방송 시정 위협을 받자 마지못해 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투자자가 투자 계약서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였던 방송 허가권의 독점적 사용 조항을 변경하겠다고 동의한 것은 방송위원회의 강요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505항).
또 판정부는 방송위원회의 태도가 씨이티 21의 계약 파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봤습니다. 씨이티 21이 방송위원회의 이름을 팔아 씨엠이에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위협할 때, 방송위원회는 자신의 개입으로 조성된 이같은 상황을 법적으로 명료하게 정리해 주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판정부는 판정문에 방송위원회가 씨엠이의 거듭된 개입 요청과 유권해석 요구를 거부했다고 적시했습니다(564항, 567항).
결론적으로, 국제중재 판정부는 체코 방송위원회의 이같은 '개입과 방치'가 합작투자 계약이 파기된 원인이라고 판정했습니다. 그리고 방송위원회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가 방송 허가권의 독점적 사용권을 상실했으므로, 방송위원회가 비록 투자자의 재산권을 직접 취득한 것은 아니지만, 재산권을 취득한 것과 동등한 간접수용을 한 것이라고 판정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규제의 모습을 한 수용, 즉 간접수용의 개념입니다.
(이 사건은 판정문에 근거해 분석했으며, 판정문 검토 과정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홍기빈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2006)를 참고했습니다. 사건의 실체관계가 단순하지 않아, 이 판례에 대한 해설이 다소 길어졌던 점 양해 바랍니다.)
국가의 면허 취소나 갱신 거부도 제소당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간접수용의 개념은 결코 환경규제와 같은 일부 영역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간접수용은 국가의 모든 영역을 대상으로 합니다.
국가가 투자자에게 허용한 면허를 취소하거나, 면허 갱신을 거부하는 것도 간접수용에 해당합니다.
2002년 '미들이스트 선박회사 사건'에서, 국제중재 판정부는 이집트가 이 선박회사에 부여했던 생 시멘트(벌크 시멘트)의 수입과 저장, 포장, 국내 배송 허가권을 취소한 것은 수용과 동등한 효과를 갖는 간접수용이라고 봤습니다(2002년 4월 12일 판정문 107항). 이집트는 4개월 간 면허를 취소한 대가로 210만 달러를 보상해야 했습니다.
2003년 '텍메드 사건'에서는 멕시코가 스페인 국적의 회사에 유해폐기물 매립장 가동 허가 갱신을 거부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1988년 건설된 이 매립장은 원래 멕시코 주 정부가 운영하던 것이었지만, 1996년부터는 스페인 회사가 매립장 가동 허가를 받아 이 매립장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이 회사가 받은 가동 허가 기간은 1년이었지만, 허가 기간 종료 30일 전 회사의 요청에 따라 계속 연장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갔습니다. 1998년까지는 매년 허가가 연장되었습니다.
하지만 1998년 겨울 멕시코는 이 스페인 회사가 이 매립장에 생물학적 전염병 폐기물을 반입했고, 폐기물을 매립장 구역 바깥에까지 매립했으며, 다른 매립장에서 처리할 유해물질까지 임시로 보관하는 등 애초의 허가 조건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허가 갱신을 거부했습니다(2003년 5월 29일 판정문 99항).
그러자 스페인 회사는 멕시코를 국제중재에 회부했습니다. 멕시코가 허가 갱신을 거부해서 매립장에 투자한 재산이 전혀 쓸모가 없게 됐으므로, 이는 간접수용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멕시코 정부는 허가 갱신 신청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멕시코가 환경 보호와 공중 건강에 따라 판단할 고유의 권한이며, 회사의 재산에 대해서는 어떤 직접적 취득 행위가 없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국제중재 판정부는 멕시코가 허가를 갱신하지 않은 효과는 영구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멕시코는 매립장과 관련된 회사 재산권의 사용과 경제적 가치를 파괴했기 때문에 이는 간접수용에 해당한다고 판정했습니다. 회사가 매립장 시설의 소유권은 계속 보유하지만, 허가 갱신 거부로 인해 영구적으로 이 시설을 가동할 수 없게 됐으므로 재산권의 효용이 파괴됐다는 것입니다(2003. 5. 29. 선고 판정문 116항, 117항).
판정부는 회사가 매립장 허가 조건을 위반한 것은 맞지만 매립장 이전 등 다른 방법 대신 허가권 자체를 소멸시킨 것은 지나친 것으로 '비례성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판정부는 멕시코 정부가 허가 갱신을 거부한 것은 지역민의 사회적·정치적 압력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했습니다(132항). 이 사건에서 멕시코가 지불해야 할 보상금은 550만 달러였습니다.
조세도 간접수용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한미 FTA 협정문과 조세 문제에 대해 해설하고 이 연재를 마치려고 합니다. 협정문에는 <표 26>처럼 '조세에도 간접수용의 법리가 적용되며, 조세도 국제중재 회부의 대상이 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표 26> 투자자는 조세에 대해 수용을 이유로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 국가는 조세가 수용에 해당하는 경우 투자자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 조세는 일반적으로 수용을 구성하지 아니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조세정책·원칙 및 관행에 합치하는 조세는 수용을 구성해서는 안 된다. 특히 탈세를 막기 위한 조세는 일반적으로 수용을 구성하지 아니한다. 특정 국적의 투자자 또는 특정 납세자를 겨냥한 조세는 수용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와 반대로 비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조세는 그 가능성이 낮다. (23.3조 6항, 부속서 11-바) |
우리는 이 연재의 끝까지 난해한 조항들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인 투자자는 한국 정부가 부과한 조세에 대해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국제중재 판정부가 이를 수용이라고 판정하면, 국가는 미국인 투자자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부인하는 해석론은 불가능합니다.
<표 26>은 바로 론스타와 같은 투기성 자본이 자신의 투자수익에 대해 한국이 과세하는 것에 맞서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인 것입니다.
비록 론스타가 벨기에 국적 회사를 통해 한국에 투자했지만, 협정문은 '자신이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회사'도 투자로 보기 때문에, 론스타는 협정문에 따라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한국이 론스타에 과세를 한다면, 이는 3인의 중재인으로 구성된 국제중재 판정부, 보다 정확히는 의장 중재인 한 명의 손에 놓이게 됩니다. 이 때 이 사람의 판정기준을 제시한 것이 바로 <표 26>입니다.
만일 그가 한국의 과세가 국제적으로 인정된 조세정책·원칙 및 관행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거나 특정 국적의 투자자 또는 특정 납세자를 겨냥한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한국은 론스타에게 보상을 해야 합니다. 반면 그가 한국의 과세 처분이 론스타의 탈세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한국은 론스타에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론스타가 보유한 외환은행 주식을 누구에게 얼마에 팔게 될지, 그 차익에 대해 국세청이 과세할지, 론스타가 이에 대해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지, 국제중재 판정부가 어떠한 판정을 할지 등 모든 상황의 전개를 예상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한미 FTA 협정문으로 인해 새로운 법적·제도적 수단이 창설된다는 것입니다. 협정문은 IMF 사태 이후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형성된 기득권인 국제금융자본에 법적 보호 장치를 제공합니다. 게다가 그 보호 수준은 국제금융자본이 국제법적으로 국가 조세권으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높습니다.
'설마…'일까요?
설마 국제중재 판정부가 국가 조세권을 수용으로 보고 국가에 보상을 명령하겠느냐고요?
1998년 '고에츠 사건'을 보겠습니다. 벨기에 회사인 고에츠는 1993년 아프리카 브룬디 정부에 자신이 투자한 광산을 조세 및 관세 면제 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한 후, 이를 지정받아 이 나라의 광업에 진출했습니다. 이 지정 행위는 일반적이고 정형화된 것으로서 특정 투자자에게 장차 어떠한 과세 변경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995년 브룬디 정부는 광업 전반에 대해 이런 특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고에츠는 브룬디에 이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라고 요구하며, 벨기에·룩셈부르크와 브룬디가 체결한 투자협정에 따라 브룬디를 국제중재에 회부했습니다.
1998년 국제중재 판정부는 브룬디의 조세정책 변경이 회사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이는 투자협정 상 간접수용에 해당한다고 판정했습니다. 결국 브룬디는 고에츠에 300만 달러를 지급하고 새로운 면세 지역을 제공하기로 합의해야만 했습니다.
(이 사건의 판정문은 불어로 기록돼 있어, 판정문 원문 대신 N. Horn (ed) Arbitration Foreign Investment Disputes: Procedural and Substantive Legal Aspects, Kluwer Law International 2004 pp. 155-156에 있는 J. Paulsson & Z. Douglas, 'Indirect Expropriation in Investment Treaty Arbitration'의 논문 및 ICSID의 E. Obadia, Introductory Note를 참고했습니다.)
문제는 '돈'…그래도 국제금융자본엔 과세하지 마십시오
정부는 스스로 <비전 2030>에서, '조세가 문제'라고 자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누가 세금을 낼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표 26>은 국제금융자본을 세금으로 건드리지 말라는 조항입니다. 한국인에게는 한국법대로 세금을 거두고, 국제금융자본에게는 국제법에 맞게 세금을 거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국가의 조세권에 대한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는 국제규범이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1954년에 발효된 유럽인권선언은 개인의 재산을 수용하는 것에 관한 여러 규칙이 조세를 징수하는 법률을 집행하는 국가의 권한에 어떤 형태로든 손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습니다(1조).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투자협정은 국가의 과세에 대해서는 협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완전한 예외조항을 두고 있습니다(5조).
물론 한국은 이중과세방지협정 등 여러 개의 조세 관련 국제협정에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이 협정들은 한국이 스스로 계약을 함으로써 구속력이 생긴 것입니다. 한국의 의사와 상관 없이 한국이 그 구속력을 의무적으로 인정해야 할 조세 관련 국제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중과세방지를 위한 OECD 모델이나 UN 모델은 서로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이들 모델도 하나의 참고사항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미 FTA 협정문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조세정책·원칙 및 관행'에 맞춰 세금을 거두라고 합니다.
저는 이 조항을 <비전 2030>과 같이 일독 하시기를 권합니다. <비전 2030>은 국가를 경제 규제에서 철수시키고, 대신 국가가 '비전 제공자' 역할을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비전 2030>의 선진적인 사회복지에 공감하더라도, 함부로 거기에 들어갈 세금을 국제금융자본에게 요구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이 연재의 마지막 조언입니다.
비전2030-한미FTA 공모…"국가여, 물러나라"
한국의 쓰디쓴 중얼거림 "저들이 돈을 낼까?"
"땅의 욕망 앞에 고개 숙이십시오"
"한미FTA는 대한한국 헌법의 개정"
"한미FTA는 우리의 탐욕이 만들어냈습니다"
"미국인은 '선제적으로' 배려하세요"
재벌총수 여러분, '멋진 신세계'에 주목하세요
"공무원 여러분,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프랑켄슈타인과의 동거 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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