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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총수 여러분, '멋진 신세계'에 주목하세요

[공무원을 위한 FTA 해설·3] 국민기업의 경영권

한국의 대기업 오너들이 꼭 직접 챙겨 읽어야 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이하 '협정문') 조항이 하나 있습니다. '한미 FTA 협정문의 투자자 대우 기준이 기업 오너들의 회사 소유권과 경영권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가 이번 글의 주제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거의 논의하지 못했습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부키 펴냄, 2005년)의 공동저자인 정승일 교수가 지난 17일자 <머니투데이>에 기고한 글에서 한미 FTA 협정문이 기업의 지배구조를 와해시킬 위험이 있다고 제기한 것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보기 드문 사례인 것 같습니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도 내부적으로는 이 문제를 검토했을지 모르지만, 그들 연구소의 공개 보고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제대로 다뤄져 있지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부득이 협정문의 영문 조항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국제중재에서 판정을 좌우할 의장 중재인은 사실상 한국인이 될 수 없도록 돼 있어, 이 의장이 알아들을 수 없을 한국어로 국제중재에서 변론을 한다는 것을, 정상적인 변호사라면 상상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 중재에서는 영문 조항이 우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 오너들이 읽어 봐야 할 조항은 다음에 나올 <표 5>의 조항입니다. 이 조항은 앞의 글에서 본 투자자의 국제중재 회부권 및 여러 대우 기준과 결합해 미국계 사모투자 전문회사(이하 '사모펀드')가 국내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권에 위협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표 5>
Forms that an investment may take include shares, stock, and other forms of equity participation in an enterprise.(투자는 주주권, 주식 및 그 밖의 회사 지분참여 형태를 포함한다.) (11.28조)

이 조항에서 사용된 영문 단어들인 'shares', 'stock'. 'equity'는 공통적으로 회사의 소유권(ownership)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 단어에 대해 정부가 공식 번역으로 '증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증권거래법의 유가증권에는 회사 소유권과 관계없는 채권 등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오너들이 기억할 만한 것은 <표 5>의 조항의 적용을 받는 것은 한국회사 지분의 100% 혹은 과반수 이상 보유하고 있는 미국인 대주주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소수 주식을 보유한 미국인 투자자나 미국계 사모펀드도 이 협정문상의 대우 기준들을 향유할 수 있는 어엿한 투자자입니다.

이러한 해석론은 국제중재의 판례들(1991년 '에이에이피엘 사건', 1998년 '랑코 사건', 2003년 '씨엠에스 사건')이나 2005년 국제연합(UN) 보고서(<UNCTAD 시리즈, 발전을 위한 국제투자 정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소수 주주가 다수 지분을 확보해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욕구는, 그 소수 지주의 필수적 이익의 한 요소로 보호 받습니다.

사실 <표 5>의 영어 단어들 자체가 이미 회사에 대한 소유권과 지배권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미국계 사모펀드들이 단지 주주 배당금을 받으려고 한국기업의 주식을 매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미 회사의 경영권 장악에 참여한 미국인 대주주의 이익도 보호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한국이 주요 기업의 외국인 지분이 너무 과도해 생기는 국민경제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지분율이 낮추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이 협정문 구조 아래서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측면도 매우 중요하지만, 지면 관계상 이번 회에서는 외국인 소수 주주 문제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이처럼 <표 5>의 조항은 오너들의 기업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미국계 사모펀드를 보호합니다. 미국계 사모펀드는, 이 조항을 근거로, 한국정부의 유·무형 혹은 직·간접적 행동에 따라 회사 소유권과 경영권과 관련된 이해관계가 좌절되거나 영향을 받을 때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습니다.
▲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가를 응시하고 있는 한 트레이더. ⓒ연합뉴스

예를 들어, 한국의 증권거래법은 음성적인 주식 매집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회사의 경영권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회사의 주식을 5% 이상 대량 보유하는 경우에는, 주식 취득자가 이를 금융감독위원회에 보고한 때로부터 5일 안에 주식을 추가로 취득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것입니다.(200조의 3) 또한 이 주식 취득자가 이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경우, 그가 취득한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제한 당합니다.

한국이 이런 규제를 실제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미국계 사모펀드에 협정문의 갖가지 대우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한국은 국제중재에 회부될 것입니다. 협정문상의 대우 기준이란 한국의 법령과는 무관하게 '국제법적으로' 판단됩니다.

국제중재 절차에는 한국의 헌법과 국내법령이 적용되지 않음은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표 5> 조항의 효과입니다.

'외국인 소수 주주의 천국'으로

우리는 외국인 소수 주주가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한 사례를 '세멕스 사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멕시코의 시멘트 회사인 세멕스는 1998년 인도네시아 제일의 국영 시멘트 회사인 '시멘그레시크'의 주식 25%를 매입했습니다. 세멕스는 주식 매입 계약서에서 2001년까지 51%의 지분을 매입해 경영권을 차지할 수 있는 선택권까지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세멕스가 이 선택권을 행사해 시멘그레시크의 경영권을 장악하려고 하자, 인도네시아에서는 시멘트 자원의 통제권이 외국회사에 넘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여론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난처한 입장에 처했고, 세멕스는 인도네시아 정부에 계약서의 약속을 지키든지, 아니면 주식을 비싼 값에 되사라고 요구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만족할 만한 방안을 내놓지 않자, 세멕스는 싱가포르 자회사를 앞세워 인도네시아를 국제중재에 회부했습니다. 중재 회부의 명분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투자계약 불이행이 세멕스의 투자를 간접 수용해, 1987년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연합) 투자자 보호 협정상의 투자자 보호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국제중재에서 세멕스가 인도네시아에 요구한 보상액은 3억 달러였습니다. 인도네시아는 결국 2007년 2월 국제중재 절차에서 세멕스에게 합의를 해줘야 했습니다. 아직 화해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세멕스가 다른 인도네시아 시멘트 회사의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고, 그 대가로 세멕스는 중재 회부를 취하한다는 내용이 보도된 바 있습니다. (2005년 1월 10일자 '지속가능발전국제연구소'의 <투자법과 정책> 주간 소식지와 그밖의 외국 신문 기사를 정리한 것입니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처리센터는 화해 결정문을 작성하고 있다고만 공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멕스 사건'에 미국계 사모펀드가 개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보여 주는 것은 소수 주주의 경영권 장악 요구는 당당히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표 5>의 조항이 없었다면, 국가가 외국인 소수 주주의 경영권 장악 요구까지 '국제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국제법적 의무를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독자들도 알다시피, 오늘날 외국인 소수 주주에게 국제중재 회부 결정권을 부여하고 있는 국제조약이나 국제관습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표 5>의 조항은 한국의 현실에서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2007년 5월 12일자 <서울파이낸스> 신문은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대기업 계열사와 은행을 포함해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들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이 4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 13개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현실과 연계해 <표 5>의 조항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계 사모펀드가 이런 주요 기업들의 경영권을 장악하려고 할 경우, 한국은 한국의 법령과 무관하게 그들의 이해관계에 대해 국제법적인 보호를 제공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표 5>의 조항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에 동의하기 어렵습니까? <청와대 브리핑>이나 <국정브리핑>이 애용하는 단어인 '괴담', '왜곡', '선동', '오해', '과장'인가요?

미국정부도 자국 투자자 위해 한국정부 제소할 수 있어

<표 5> 조항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미국정부가 한국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미국인 소수 주주들을 보호할 법적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오너들이 기억해둬야 할 것은 미국계 사모펀드만이 한국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표 5>의 조항에 따라 미국정부도 미국인 소수 주주를 위해 한국을 '국가 대 국가' 차원으로 제소할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처럼 단지 주주의 국적이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미국정부가 한국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것이 국제법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례에 의하면 이런 제소는 불가능합니다. 1970년 '바르셀로나 트렉션 사건'에서, 국제사법재판소는 벨기에인 주주 보호를 위해 벨기에가 스페인을 제소한 것에 대해 아예 제소 자격조차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벨기에인 주주는 당시 캐나다법을 근거로 회사를 설립하고, 스페인에서 회사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당국이 회사 사업을 규제하자 벨기에 정부가 벨기에인 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스페인을 제소한 것입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회사는 회사 설립의 근거가 된 국내법 체계의 밖에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회사 설립 근거법의 국가만이 회사를 위해 제소 등의 보호조치를 할 수 있다고 판정했습니다. 결국 스페인은 제소 자격 자체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현재의 국제법 판례에 따르면, 회사의 국적은 그 주주들의 국적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회사의 국적은 회사 설립 근거법의 국가가 됩니다.

사실 이는 굳이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례까지 들춰보지 않더라도 너무나 당연한 상식입니다. 삼성의 주식을 보유한 외국인 가운데는 미국인도, 일본인도, 영국인도, 중국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대한한국 법을 근거로 설립된 한국 국적의 기업입니다. 삼성과 외국인 소수 주주는 법적으로 동일한 주체가 아닙니다.

단지 어떤 외국 국민이 삼성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 외국 정부가 삼성에 대한 한국정부의 정책에 대해 한국을 제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무리 미국계 사모펀드가 삼성의 주식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미국정부가 나서서 미국인 주주의 이해관계를 보호할 수는 없는 것이 국제사법재판소 판례의 원칙입니다.

<표 5>의 조항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 국제법의 장벽을 미국이 뛰어 넘도록 해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오직 <표 5>의 조항만이 미국에 한국기업에 투자한 미국인 소수 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초국제법적 수단을 제공합니다.

이 <표 5>의 조항들은 지난 회에서 본 <표 1>과 <표 2>의 조항들과 협정문의 여러 대우기준 조항들과 결합해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물론 미국법에 따라 설립된 미국회사의 한국 국적 소수 주주를 한국정부가 보호하는 것도 논리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호주의적 접근은 국제관계에서의 '힘의 불균형'이라는 객관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기업 오너들은 이제라도 경영권 방어라는 관점에서 한미 FTA 협정문을 자세히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협정문이 자신의 회사 앞에 미국시장을 열어 줄 새로운 기회라고만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다면 한국국민 모두가 다 기업 오너가 돼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기업 오너들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만일 미국시장과 기업 경영권 중 어느 하나만을 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기업 경영권은 내던지고 미국시장을 택하겠습니까?

한국의 기업 오너들이 읽어 보면 좋을 규정 하나만 간단히 더 살피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바로 '내국민 대우(National Treatment)' 규정입니다.

내국민 대우 조항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 회에서 살펴보겠지만, 이 규정에 따라 미국계 사모펀드들은 어떤 경우에도 한국의 대주주보다 더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의 기업 오너들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미국계 사모펀드보다 더 유리한 대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서로 평등하고 대등하게 겨루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국민 대우는 '기회의 평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내국민 대우는 '결과의 평등'을 지향합니다.

2002년 '펠드만 사건'의 중재부는 외국인 투자자와 자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가 외국인의 국적으로 인한 것임을 투자자에게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투자자가 '감내할 수 없으므로(insurmountable)' 이를 외국인 투자자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판정문 183항)

외국인 투자자와 자국민 사이에 어떤 차이가 '결과적으로' 발생했다면, 그 국가는 내국민 대우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 것입니다. 기업 오너 여러분과 미국계 사모펀드 사이에 어떤 차이가 발생하면 한국정부가 곤란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경영권 유지에 성공하는 반면 미국계 사모펀드의 경영권 장악 시도에 실패하는 '치명적' 차이가 발생했다면, 정부나 금융감독당국 혹은 정부 산하 공단 등 기관투자가들은 자신들이 결코 외국인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그 어떠한 유·무형의, 직· 간접적 행동 또는 제도 혹은 감독 방기 등을 하지 않았음을 '국제법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누구에게? 한 사람의 의장 중재인에게.

멋진 신세계입니다. 한미 FTA 협정문의 나라에서는 국가가 주요 기업의 외국인 지분이 너무 과도해 생기는 국민경제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지분율을 낮추는 조절장치를 마련하는, 그런 공포로부터 해방돼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곳은 외국인 대주주의 기득권과 외국인 소수 주주의 도전권을 '국제법적으로' 보호하는 능력 있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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