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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 낙태" 외친 이명박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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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불구 낙태" 외친 이명박을 위한 변명

[기자의 눈] 누가 낙태를 부추기는가?

이명박 전 시장은 지난 12일 소개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낙태는) 기본적으로 반대이지만 가령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생명의 존엄함을 부정한 이 말은 곧바로 거센 반발로 이어졌다. 이 전 시장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 적절한 언행은 아니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런 이 전 시장의 발언은 그냥 해프닝으로 넘길 일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낙태를 둘러싼 논쟁, 더 나아가 생명 가치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의 장으로 들어올 가능성을 예고한 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낙태가 선거 때마다 중요한 쟁점이 되는 미국 대선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한국의 낙태 문제는 이미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기 때문에 치열한 논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낙태 금지 나라의 낙태 현실
  
  현재 한국은 형법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아는 일반인은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연간 35만 건의 낙태 시술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태어나는 아이가 44만 명 정도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낙태의 규모에 입이 딱 벌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제로 병원에서 시술되는 낙태의 대부분은 불법이다. 보건복지부는 연간 35만 건 중 95%가 불법 시술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또 이 중 상당수는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이명박 전 시장의 "불구 낙태" 발언이 불법을 조장할 개연성이 있는 발언이라고 비판 받아도 딱히 반박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사정 탓이다.
  
  물론 모자보건법(제24조)은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낙태 시술을 할 수 있는 범위를 다섯 가지로 정해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래에서 열거한 다섯 가지 범위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설사 산전 검사를 통해 태아가 가장 흔히 발견되는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하더라도 낙태 시술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①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②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④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⑤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낙태는 ①의 경우에서처럼 부모에게서 기인한 유전성 질환으로 확인되거나, ⑤의 경우에서처럼 모체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경우에 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우증후군은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9년 대법원 판례(사건번호 98다22857)는 이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법원은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은 부모가 병원 등을 상대로 '낙태권'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결국 병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법원은 "아이의 다운증후군은 모자보건법의 낙태 대상이 되지 않아 부모의 소송 청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법원은 "인간 생명의 가치와 그 존엄성의 무한함을 강조한 헌법에 비춰볼 때도 그렇다"고 덧붙였다.
  
  무엇이 낙태를 부추기는가
  
  이런 사정은 이명박 전 시장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생소할 수 있다. 산전 검사를 통해 아이가 조금이라도 장애를 안고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곧바로 낙태 시술을 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이자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전 시장의 "불구 낙태" 발언도 이런 한국 사회의 일반적 상식을 반영한다.
  
  실제로 이 때문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모자보건법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일부 유전성 질환에 다운증후군과 같은 정신지체를 유발하는 질환도 추가할 것을 주장해 왔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보건복지부도 낙태 허용 범위를 놓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모자보건법 개정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해결하기 쉽지 않은 논쟁이 발생한다. 현대 의학은 다양한 산전 검사를 통해 태아의 이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산전 검사의 정확도는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최대치를 잡아도 70% 정도에 불과하다. 산전 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3분의 1 정도는 별 문제 없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의학적 검사에 의존해 낙태 규제를 완화할 경우 건강한 아이를 죽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건강에도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 여성계가 한 편에서는 여성의 '낙태권'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산전 검사를 통한 낙태의 법적 허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앞으로 산전 검사의 정확도는 더욱더 높아지겠지만 그 한계는 명백하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대다수 일반인의 편견과 달리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의 상당수는 적절한 '사회적 돌봄'만 뒷받침된다면 비장애인과 충분히 잘 어울려 살 수 있다. 더구나 설사 지능지수가 70 이하인 정신지체장애인이라고 해서 살 가치가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의견을 경청하다보면 오히려 문제는 바로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돌봄'에 있다. 한국 사회의 평범한 일반인이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아이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사랑하는 아이가 앞으로 이 사회에서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갈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시장이 얻어야 할 교훈
  
  이명박 전 시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입조심'을 다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일로 그가 얻어야 할 더 큰 깨달음은 연간 태어나는 아이 숫자의 80%에 해당하는 숫자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일이다. 특히 '불구'나 '낙태'와 같은 개념을 떠올리거나 언급할 때에는 그와 동시에 한국 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마음껏 어울리는 사회, 비혼모의 자녀라고 편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그려볼 일이다.
  
  만약 이명박 전 시장이 이런 성찰을 통해 앞으로의 한국 사회에 대한 자신의 달라진 인식을 보여준다면 그를 못 미더워하는 이들까지 지지자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이 전 시장은 그와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각종 덫에 걸릴 것이다. 이번 사태는 바로 그럴 가능성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이 전 시장에게 책 한 권을 권한다. 마사 베크의 <아담을 기다리며>(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이 책은 이 전 시장과 생각이 결코 다르지 않았던 하버드대 학생 부부가 다운증후군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고 겪는 갈등의 극복 과정이 감동적으로 묘사돼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의사 미셸 오당의 <농부와 산과의사>(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도 같이 읽어본다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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