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에너지?…화석연료랑 뭐가 달라!
광주 조선대학교 안에는 언뜻 보면 컨테이너처럼 보이는 상자(3.2m×3.2m×8.6m)가 하나 있다. 이 상자의 정체는 바로 250㎾ 연료전지 발전기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설치된 이 연료전지 발전기는 2005년 11월부터 인근 조선대병원에 전기와 온수를 공급하고 있다. 이렇게 전기, 온수를 공급한 대가로 연간 5000만 원을 벌어들인다(초기 투자비용은 25억 원).
연료전지 발전기는 수소, 산소의 화학 반응을 통해 전기(50%)를 얻는다. 이 화학 반응 과정에서 열(30%)이 발생하는데, 이 열을 온수, 난방에 사용한다. 전기와 열을 한꺼번에 활용하면 효율은 80%나 된다. 이렇게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의 발생도 거의 없다. 노 대통령이 감전될 만하다.
그러나 연료전지 발전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연료전지의 원료로 쓰이는 수소는 어디서 온 것일까? 조선대학교의 연료전지 발전기는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얻는다. 따져 보면 천연가스(100%)의 에너지를 이용해 전기(50%), 열(30%)을 생산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연료전지의 원료로 사용되는 수소의 대부분(96%)은 천연가스(48%), 석유(30%), 석탄(18%)에서 얻어진다.
앞으로 기술이 발전해 자연계에 충분히 존재하는 물을 분해해서 수소를 얻는다고 해도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물을 분해할 때도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수소를 생산할 때 필요한 전기를 원자력 발전을 통해 얻고자 계획 중이다. 광주환경운동연합 김광훈 사업국장은 "수소 에너지가 이렇게 기존의 화석연료, 원자력에 의존하는 한 그것을 미래 에너지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재생 가능 에너지는 바람 또는 햇빛 에너지에서 바로 전기로 전환된다. 그러나 물에서 수소를 거쳐 궁극적으로 전기를 얻기 위해서는 (1) 일단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한 뒤 (2) 이 전기를 이용해 물에서 수소를 추출하고 (3) 그렇게 생산한 수소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해야 한다. 이렇게 최소한 두 단계가 더 필요한 생산 프로세스는 경제성을 갖기 힘들다.
이런 사정 탓에 수소 에너지를 찬성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석탄에서 수소를 얻거나(미국), 국내에서처럼 원자력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국내의 원자력계가 2025년 이후 상용화 예정인 제4세대 원자로를 활용해 수소를 대량 생산하자며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한 보기다. 김광훈 국장의 지적에 수긍이 간다.
부안에 수소 에너지 단지?…바이오매스 생각은 왜 못하나
지난 4월 20일 재정경제부는 전라북도 부안을 '신·재생에너지산업 특구'로 지정했다. 앞으로 1000억 원(국비 800억 원, 지방비 200억 원)을 들여 수소 에너지 단지 등이 들어선다. 재정경제부는 부안을 신·재생에너지산업 특구로 지정한 이유를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 수소 에너지 개발 산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안에서 지열, 태양광 등 재생 가능 에너지 보급 운동에 앞장서 온 이현민 부안시민발전소 소장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이현민 소장은 당국의 조치와 관련 "한국의 공무원들이 일 하는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전국에서 유기 농업이 가장 활발한 지역 특성에 맞는 '바이오매스(biomass)'를 활성화하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느냐"며 답답해 했다.
이현민 소장은 "독일의 윤데처럼 가축의 똥오줌에서 생산한 메탄을 이용해 소규모 열병합 발전소를 가동해 전기를 얻고, 난방을 할 수 있다"며 "메탄이 제거된 똥오줌은 유채유를 짜고 남은 깻묵 등과 섞어서 비료로 만들어 부안의 유기 농업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제안은 최근 부안에서 큰 반향을 얻고 있는 유채 재배와도 어울린다.
실제로 정부는 2006년 8월 30일부터 이렇게 생산된 전기를 높은 가격에 사주기로 하기까지 했다. 메탄 등을 통해 생산된 전기는 15년간 1㎾h당 72.73원(150㎾ 이상), 85.71원(150㎾ 미만)으로 판매될 수 있다.
처리에만 1500억 원 드는 쓰레기의 '대변신'
가축의 똥오줌, 건초, 나무 등을 지칭하는 바이오매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 받는 에너지 자원이다. 여기에는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의 역할이 컸다.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는 이들을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온실가스를 추가로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 자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건초, 나무를 태울 때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그것은 자연계에 이미 존재하는 이산화탄소가 순환하는 과정일 뿐이다. 화석연료처럼 땅 속에 갇혀 있던 이산화탄소를 추가적으로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축의 똥오줌에서 배출되는 메탄(CH₄)도 그대로 두면 또 다른 온실가스이지만, 포집해서 태울 경우 유용한 자원으로 변할 수 있다.
이현민 소장의 제안은 이미 국내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다. 파주시는 100억 원을 들여 가축의 똥오줌, 음식물 쓰레기에서 생성되는 메탄을 이용한 500㎾ 발전기를 2005년 6월 1일부터 가동하고 있다. 하루 8시간 가동하는 이 발전기에서는 메탄을 태워 매일 200~250㎾h의 전력을 생산한다. 또 이렇게 메탄을 얻는 과정에서 남은 찌꺼기는 훌륭한 퇴비로 농가에 공급되고 있다(하루 5t).
이런 시도는 큰 골칫거리로 떠오른 가축의 똥오줌,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환경부, 농림부는 2005년 가축의 똥오줌,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만 총 1578억 원(국고 811억 원, 지방비 767억 원)을 들였다. 환경부, 농림부는 2005년부터 가축의 똥오줌,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시설을 지원하는 데 각각 4896억 원, 2429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똑같은 돈으로 골칫거리도 해결하면서 에너지 전환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개별 농가가 아예 가축의 똥오줌에서 나오는 메탄을 이용하는 데 적극적이기도 하다. 가축의 똥오줌으로 비료를 만들면서 생산한 전기를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부안의 김인택(46) 씨는 "이젠 국내에도 이런 식으로 생산된 전기를 비싸게 사주는 제도가 마련돼 있기 때문에 정부가 홍보만 잘 한다면 또 다른 농가 소득원으로 농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농림부는 이런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기후변화협약의 대안'…덤으로 '수소'도 얻어
당장 한국이 2013년부터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 대상국이 되면 바이오매스의 활용은 더욱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부각될 것이다. 산업자원부의 전망을 살펴보면, 국내 가축의 똥오줌에서 얻은 메탄을 에너지로 전환하면 연간 석유 36만t(약 1750억 원)에 해당하는 양을 얻을 수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박순철 박사의 분석을 보면, 바이오매스 가용자원을 100% 활용할 경우 이산화탄소 국내 총배출량의 4%에 해당하는 690만t을 감축할 수 있다. 만약 농가에서 바이오매스를 잘만 활용한다면 탄소 거래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이 농가에 돈을 지불하고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산한 메탄에서 수소도 얻을 수 있다. 서울시는 2006년 3월 탄천물재생센터의 하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바이오가스에서 수소를 얻어 250㎾ 연료전지 발전기의 연료로 사용하고 이다. 이 연료전지 발전기는 매일 전기(180만㎾h)와 온수를 생산하고 있다. 바이오매스의 이용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잘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바이오매스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턱없이 부족하다. 2005년 기준 전체 에너지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13%. 이 재생 가능 에너지 중에서 바이오매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불과하다. 2011년까지 정부는 목표로 세운 전체 에너지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5%. 여기서도 바이오매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7,87%다.
지역에 맞는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해야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들은 바이오매스 도입의 시급성을 계속 강조해 왔다. 그 처리에 연간 1000억 원 이상이 드는 가축의 똥오줌, 음식물 쓰레기를 에너지 자원으로 재활용해 오히려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데에다, 나아가 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에 대비하는 가장 손쉬운 대안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 에너지 담당 장주영 연구원은 "정부가 수소 에너지를 강조하다보니 정작 부안처럼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한 주민의 욕구가 존재하는 곳에서도 엉뚱하게 돈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 당장 산업자원부, 농림부, 환경부가 머리를 맞대고 바이오매스를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연구원은 "유럽에서도 1980년대 후반 가축의 똥오줌을 처리하는 방법을 찾던 중에 바이오가스에 주목하게 됐다"며 "농림부, 환경부가 향후 수천억 원의 예산을 가축의 똥오줌 등을 처리하는 데 할당하고 있는 만큼 그 예산을 최대한 활용해 바이오매스 에너지 이용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바이오매스…이제 '걸음마' 유럽에서는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가축의 똥오줌에서 생성되는 메탄과 같은 바이오 가스를 활용해 왔다. 가장 활발한 독일의 경우에는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농가가 단독으로 이같은 설비를 갖춘 곳만 1900곳 이상이며, 마을 공동으로 설비를 마련해 운영하는 곳도 11곳이나 된다. 독일에서는 전체 전력의 0.8%를 이런 방법을 통해 생산하고 있다. 유럽은 2010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12%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대체하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그 중 바이오매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75%나 된다. 즉 전체 에너지의 9%를 바이오매스에서 얻은 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것. 기술 전환 없이 즉각 이용이 가능한 바이오매스를 활용해 '석유 제로 시대'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뒤늦게 움직이고 있다. 산업자원부의 지원을 받은 대우건설(주)은 13억 원을 들여 경기도 이천 모전영농조합단지의 100가구에 가축의 똥오줌에서 얻는 메탄으로 30㎾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를 설치했다. 유니슨(주)도 14억 원을 들여 충청남도 청양 여양농장에 돼지의 똥오줌을 활용해 연간 87만6000㎾h의 전기를 생산하는 60㎾ 발전기를 설치하고 있다. 그간 이런 바이오매스의 활용에 소극적이던 농림부도 최근 나서기 시작했다. 농림부는 2007년 국내 여건에 맞는 가축의 똥오줌에서 에너지를 얻기 위한 연구에 달려든 것. 현재 1억5000만 원 범위 내에서 소 1500두 정도를 키우는 5~6개 농가를 선정해 일단 시범사업을 해볼 계획이다. 기업 차원의 접근도 있다. 울트라텍(주)은 음식물쓰레기, 하수처리장 등에서 메탄을 추출해 이를 천연가스 버스의 연료로 사용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울트라텍(주)은 엔진을 약간 개조하는 것(200만~300만 원)만으로 메탄을 천연가스 버스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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