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놓고, 정부와 재계 그리고 주류 경제학계는 '자유무역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불가피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반면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은 '자유무역'의 '자유'라는 달콤한 꼬임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뉴욕 신사회과학원(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경제학 박사 과정에서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과 전개 과정 및 그 결과'라는 주제로 연구 중인 신희영 씨가 케빈 갈리거 보스턴 대학 교수(국제관계학)가 쓴 자유무역 관련 최신 논문을 번역해 보내왔다.
이 논문의 원제는 'WTO(국제무역기구) 하에서 상실된 정책 공간의 비용을 계산해보니(Measuring the Cost of Lost Policy Space at the WTO)'이다. 이 글은 자유무역이 경제발전을 위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정책을 무력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 케빈 갈라거 교수는 미국 터프스 대학 '국제 발전과 환경 연구소'와 미국 비영리 정책연구기관인 '아이알씨 아메리카스 프로그램(IRC Americas Program)'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세계경제에 관한 글을 활발하게 기고하고 있다.
번역자 신희영 씨는 "이 글이 한국에서 한미 FTA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을 생산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 씨는 4월초부터 영미권 유학생들과 함께 '한미 FTA 비준 반대' 온라인 서명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글의 원문은 지난달 20일 'IRC Americas Program'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편집자>
1. 들어가며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의 경제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독자적인 정책 공간(policy space)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은 단순히 이론적인 주장일 뿐만 아니라 경험적인 연구 성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선, 국제경제에서,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제 속에 항상 나타나는 시장실패(market failures)의 문제는 정부가 자국의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견해를 정당화해 주는 근거로 사용돼 왔다. 또한 경험적인 측면에서도, 대만과 한국, 그리고 최근의 중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정부의 국가 지원적(state-facilitated) 경제발전 정책이 성공적일 수 있다는 주장의 주된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대다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시장실패를 교정한다는 미명 하에 정부가 특정한 정책을 취하는 나라가 국제무역에 관여하면,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타나게 될 각종 지표들을 국제 무역에 관여하는 모든 나라들에서 왜곡시킬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오늘날 국제 경제 체제에서 개발도상국들이 직면한 공통의 시장실패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정보의 외부성(Information externalities)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민간 경제주체가 생산적인 투자기회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지 못하는 경우에 생겨난다. 둘째로, 조정의 외부성(Coordination externalities)은 [설사 충분한 투자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민간기업이 투자를 통해 실제적인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적 조건들이 충분하게 형성돼 있지 않을 경우에 생겨나는 문제이다. 셋째로, 불완전 경쟁(Imperfect competition)은 고도로 집중된 산업에서 새로운 기업의 진입과 기술 발전이 지체되는 경우에 생겨나는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환경의 외부성(Environmental externalities)은 특정한 재화의 생산과 소비에 수반되는 환경 비용이 가격체계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에 생겨나는 것으로서, 이는 특정한 재화와 서비스가 적절하게 생산·소비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아래의 표 1은 개발도상국들이 이같은 시장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 수단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이 표는 이런 정책 수단들이 어느 정도까지 현행 국제무역기구 체제 하에서 허용되고 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몇 가지 규정들은 도하라운드 하에서 조만간 폐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항목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국제투자와 무역(Journal of World Investment and Trade)>에 발표된 '국제무역기구 체제 하에서 축소된 정책 공간(The Shrinking of Development Space)'라는 글에서 이런 조항들과 관련된 국제무역기구 내의 분쟁 사례들을 분석한 바 있다. 그 글의 목적은 국제무역기구(WTO) 체제의 조항들이 얼마만큼 개발도상국들이 취할 독자적 발전 전략들을 제한하는가를 이론적인 차원에서 조망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해당 분쟁 사례들이 어느 정도까지 '분쟁 해결 (dispute settlement)'의 이름으로 구속력을 지니면서 개발도상국들의 정책 공간을 위축시켜 왔는가를 분석하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우리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국제무역기구를 통해 제소된 분쟁 사례들을 분석했고, 위 도표에서 예시된 몇 가지 조항들이 문제가 된 사례들을 선별한 후 실제로 어떻게 해당 분쟁이 조정됐는가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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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의 주목할 만한 결과가 나타났다. 첫 번째는 WTO 규정들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제소된 여러 가지 분쟁 사례들을 분석해 본 결과 개발도상국들은 물론 선진국들도 국내 산업보호를 위해 해당 정책들을 암암리에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분쟁 해결 메커니즘(DSM, Dispute Settlement Mechanism)의 핵심은 개발도상국들이 취하고 있는 산업정책의 내용이 WTO 규정을 위반하는지를 판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한 나라가 다른 국제무역기구 체제 하에서 금지된 산업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를 제소한 후 분쟁 조정 메커니즘을 통해 다루어진 사례의 25% 이상이 바로 이 산업 정책들에 놓여져 있었다. 이는 전체 90개의 사례 가운데 25% 이상이 개발도상국들이 국내 산업 증진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정책들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의 도표는 이러한 분쟁 사례들이 각 항목별로 어떻게 개발도상국들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2. 국제무역기구 체제는 개발도상국들에 무엇인가 - 사소한 이익을 대가로 한 장기적인 손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같은 연구 결과는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왜냐면 WTO 체제의 게임 규칙은 지금까지 [특히 인권이나 국제 형사법과 관련된 국제적 규범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연구가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있는 점은 일단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활용해왔던 다양한 정책 수단들을 국제무역기구 체제 하의 협상 과정에서 상실할 경우, 나중에라도 다시 그와 같은 정책 수단들을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이같은 국제무역기구 체제 하의 협상이 야기한 장기적인 '비용'은 개발도상국들이 국제무역기구에 가입하는 즉시 잃게 될, 관세 부과에 따른 조세 수입 손실분과 다양한 무역 및 투자 자유화 조치가 가져다 줄 것이라고 선전되는 잠재적인 이익에 대한 계산을 통해 분석돼야 한다.
아래의 표3은 도하라운드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이 얻게 될 잠재적인 이익과 관세 수입 손실분을 예측·비교한 것이다. 세계은행(World Bank)과 다른 국제무역 기구들의 '무역 자유화 모델들'은 개발도상국들의 재정수지가 항상 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는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관세 부과에 따른 조세 수입 손실분이 개발도상국들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부과하게 될 일괄 소비세(lump-sum taxes)를 통해 정확히 충당돼, 무역 자유화 이후에도 정부 재정이 균형 상태로 유지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많은 개발도상국들에서 그와 같은 조세 부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강력한 조세 저항에 직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도하라운드 하에서 실제로 논의되고 있는 현실적인 협상 내용에 근거해 개발도상국들이 향후 상실하게 될 관세 수입분을 예측한 바 있다. 아래의 표 3은 각 지역과 나라별로 나타나게 될 UNCTAD의 관세수입 손실 예측분과 세계은행이 계산한 무역 자유화에 따른 이익 예측분을 비교한 것이다.
이 표의 첫 번째 칼럼은 세계은행이 도하라운드가 개발도상국들에 가져다 줄 것이라고 예측한 기대이익을 보여주고 있다. 도하라운드 체제 하에서 2015년까지 계산된 기대 이익 예측분은 총 960억 달러이다. 그러나 세계은행의 계산에서조차 이 총 이익 예측분 가운데 고작 160억 달러만이 전체 개발도상국들에게 돌아간다. 개발도상국들은 기껏해야 0.16%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증가라는 기대 이익치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을 개인 소득으로 환산할 경우 우리는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기껏해야 연간 3.13 달러나 하루 1~2원 정도의 이익을 얻는다 (또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비록 국제무역기구 체제 하의 협상 과정에서 대부분의 논의가 농업 부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의 농업 부문을 '개혁'함으로써 얻게 될 잠재적인 이익이란 고작 국내총생산(GDP)의 0.1%에 불과한 90억 달러에 불과할 뿐이다. 설사 북반구의 나라들이 농업 보조금을 실제로 철폐한다고 하더라도, 개발도상국들 전체가 이러한 조치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기대이익은 겨우 10억 달러에 불과하다. 개발도상국들이 자국 내의 서비스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얻게 될 기대이익이란 것도 고착 69억 달러에 불과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 표에서 예시된 것처럼, 개발도상국들이 관세를 철폐할 경우 잃게 될 조세 수입은 잠재적인 기대 이익분과 비교할 때 대단히 크다. 개발도상국들이 '비(非)농업 시장접근', 즉 제조업 상품 분야의 자유무역에 관한 협상 때문에 잃게 될 전체 관세 수입 손실분은 자그마치 634억 달러이다. 이는 세계은행이 제시한 기대 이익분의 네 배에 달하는 수치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관세를 철폐하는 것은 각국이 세계경제에 전략적으로 통합하는 데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산업 영역 개척 능력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의 진흥과 빈곤층 지원을 위한 사회정책적 프로그램들을 수행하는 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사회적 재원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전체 조세 수입의 4분의 1 이상을 관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경제구조가 다변화돼 있지 않은 소규모 개방 국가들의 경우 관세 수입은 정부 예산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남반구 연구센터(South Center)'의 실증 조사에 따르면, 도미니카 공화국, 기니, 마다가스카르, 시에라 레온, 스와질랜드 그리고 우간다의 경우 관세 수입이 전체 조세 수입의 40% 이상에 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뉴욕 소재 콜롬비아 대학의 바그와티(Jagdish Bhagwati) 교수는 <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 최근호에 실은 글에서 "만약 사회 지출을 위한 정부 수입의 대부분을 관세를 통해 충당하는 가난한 나라들이 관세를 철폐함으로써 해당 정부 수입분을 잃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 기관들은 이 나라들이 관세 수입 손실분을 다른 조세 항목을 통해 충당할 수 있도록 국내 조세 체계를 고칠 때까지 그 부족분을 채워 줘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비록 경제학자들이 소비세를 통한 조세 수입이 국내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있어서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책이라고 주장해 온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관세 수입이, 효과적으로 조세를 부과할 수 없는 비공식 부문의 경제 활동이 압도적으로 커다란 위치를 점하고 있는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선호할만한 수입원이라는 것을 인정해 왔다.
위의 표에서 설사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얻게 될 순이익에 대한 기대치가 긍정적으로 나왔다고 하더라도(이 수치는 실제적인 관세 수입 손실분을 고려하지 않고 계산된 것이다), 그와 같은 기대 익은 지식 기반 자원의 발전을 통해 얻어지는 이익이 아니라 기초 농산품과 낮은 기술 수준으로 생산된 제조업 부문의 상품 생산을 통해서 얻어지는 기대이익에 불과하다. 이는 개발도상국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제조업 산업 부문의 다변화와 혁신 과정에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원자재의 국제가격이 일시적으로나마 오르고 있는 추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국제가격의 추세는 결코 개발도상국들에 이롭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유엔(UN) 산하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에너지를 제외한 원자재의 가격은 지난 1980~2005년 사이 30% 가량이나 하락했다. 게다가 교역조건(개발도상국들이 판매한 농업 생산물의 평균가격과 선진 산업 국가들이 구입한 제조업 상품들의 평균가격의 비율)은 지난 1961~2001년 사이 거의 70% 가량 하락했다.
만약 원자재 가격이 다시 하락한다면, 개발도상국들에는 교역조건의 악화 때문에 발생할 경제적 어려움을 만회할 만한 그 어떠한 산업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예컨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은 교역조건이 악화될 경우 대부분의 모든 고용기회가 농업 부문이나 섬유 및 의류 산업으로 국한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자유 무역화에 의해 야기될 국내 경제의 구조적 변화는 이 나라들에서 기계류, 비철금속 제련, 전자 그리고 자동차 부품 관련 업종과 같은 제조업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다. 이는 다시 도시 거주 인구의 대대적인 실업을 야기하고, 이와 동시에 농촌 지역에 고용 규모가 적은 비생산적인 부문을 기형적으로 팽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아시아 지역의 경우, 교역조건의 악화에 따른 이같은 구조조정은 상대적으로 선진적인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던 제조업 분야에 있는 노동 인구가 의류 산업 영역으로 대거 빠져 나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예측은 구조조정이 국내 임금 수준과 기술 수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이같은 자유 무역화의 촉진이 국내 경제 구조의 조정을 불가피하게 할뿐 아니라 이것이 실제로 임금과 기술의 발전 수준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고려한다면, 더 나아가 이같은 구조조정 과정이 수반하는 '이행 비용'을 함께 고려한다면, 그 결과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다.
3.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한해 동안에는, 미국 의회가 대통령에게 부여한 무역촉진권(TTPA)의 시한이 마감되는 2006년 6월 30일 이전까지 도하라운드 협상을 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지배적이었다. 미국 헌법은 국제무역과 관련된 정책 결정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역촉진권은 대통령에게 무역 협상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그 결과를 의회에 제출하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부여된 이같은 강력한 권한에 따라 미국 의회는 단지 대통령이 제출한 무역 협정 내용을 승인하거나 반대할 수 있을 뿐이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이 무역촉진권과 무역 협정 내용은 의회 내에서 강력한 반대와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 이에 따라 설사 무역 협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때조차도 그것은 한두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지난해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의 경우, 간신히 1표 차이로- 통과되기도 했다.
지난 2006년 의회 선거 결과에 따라 현재 민주당이 상하 양원에서 다수 의석을 점하게 됐다. 이에 따라 대통령에게 부여된 무역촉진권은, 무역협정의 발효에 따라 미국 내에서 실업을 당하게 될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그리고 개발도상국들 안에서 노동과 환경에 관한 조항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실상 다시 연장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난한 나라들에 공정한 발전의 기회를 제공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도, 비록 빈 말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의회 내에서 논의될 것이다.
필자는 미국의 유권자들이 비단 이라크 전쟁에 대한 우려뿐만 아니라 최근에 진행된 일련의 무역 협정이 야기한 미국의 노동자들과 환경에 대한 위협 때문에 민주당을 여당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무역촉진권이 2007년에 다시 연장되지 못한다면,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시행될2008년에는 이 권한이 연장될 가능성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향후 2년 간 대통령에게 무역촉진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모두에게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선진 산업 국가들은 현재까지 진행돼 왔던 협상안이 자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무역 자유화의 이익이 소수의 산업 부문에 집중되어 온 반면, 그 비용은 나라 전체에 부과되어 왔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개발도상국들도 현재의 무역협상 구조를 진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자국의 경제 성장을 모든 무역협정에 우선하는 핵심적인 과제로 부각시킬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아래의 5가지 개혁 방안들은 발전지향적 무역체제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들이다.
(1) 선진 산업 국가들은 현존하는 협정들을 준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과 유럽은 국제무역기구의 판결 내용–섬유 산업과 설탕 산업에 대한 자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현존하는 국제 무역 규범을 위반하는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동종 상품들을 수출하는 개발도상국들의 생산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판결–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서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생산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며, 선진 산업 국가들도 기꺼이 국제무역기구의 규칙을 준수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개발도상국들에 전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 산업 국가들은 아직까지 국제무역기구의 판결 내용을 준수하지 않고 있고, 이에 따라 브라질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보조금 지급에 따른 피해에 상응하는 보상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다른 소송 사례들도 현재 가시화되고 있다. 예컨대, 캐나다와 브라질 그리고 다른 몇몇 나라들은 미국의 자국 섬유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관행에 항의하는 소송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다음으로, 서구 국가들은 농장 경영에 이용되는 자원에 대해서는 불공정한 가격에 구입할 것을 요구하고, 최종 생산물을 판매하는 데 있어서는 막대한 이윤을 올리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활동을 규제하자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들은 이같은 제안을 국제무역기구의 각종 협상 테이블에 제출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해오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각국들은 자국이 생산하는 원자재 가격을 올리고 거대 외국 기업체들의 독점적 행위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국제 공급관리체계(supply-management system)를 개선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모든 제안들은 지금까지 선진 산업 국가들에 의해서 철저히 무시돼 왔다.
(3) 선진 산업 국가들의 협상 당사자들은 국제무역기구 하에서도 가난한 나라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오랫동안 '특별 최혜국 대우의 원리(principle of special and differentiated treatment)'가 존속돼 왔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선진 산업 국가들은 가난한 나라들의 시민들이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이 나라들이 생산하는 의약품에 국제적 특허 관련 규정들 부과하는 것을 철회해야 한다. 더불어 선진 산업 국가들은 가난한 나라들이 지역경제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옥수수와 쌀 그리고 밀 등에 대해서는 자유무역협정(FTA)의 대상으로 설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4) 이와 더불어,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orld Bank)과 같은 국제 기관들은 이미 타결된 협정 내용이 개발도상국들에 부과할 구조조정 비용, 예컨대 관세 수입 충당, 직업 훈련 등에 따른 비용을 새로운 정책이 뿌리내릴 때까지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의 '무역 통합 메커니즘 (Trade Integration Mechanism)'과 관련된 조항들은 애초 바로 이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도록 고안됐다. 그러나 이 조항들은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충분히 시행된 적이 없다. 또한 이 역할의 수행과 더불어 국제통화기금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추가적인 지원 조건(conditionality)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편돼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국제통화기금의 계획안에는 구조조정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에 대한 그 어떠한 고려도 없으며, 심지어는 개발도상국들을 더욱 가혹한 구조 조정으로 내모는 조건으로 기금을 지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5) 마지막으로, 선진 산업 국가들이 주도하는 지역간 또는 양자간 무역 협정은 근본적으로 중단되어야 한다. 지역간, 양자간 협정은 선진 산업 국가들과 발전도상국들 사이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비대칭적 협상력(asymmetric bargaining power)을 악용하는 협정이다. 이 과정에서 이 지역간, 양자간 협정들은 진정한 비교 우위(comparative advantage)를 지닌 나라들을 협상 대상에서 의도적으로 제외시키고,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의 발전을 위해 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 집행 능력을 근본적으로 박탈하고 있다.
4. 글을 맺으며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 기구들은 물론 선진 산업 국가들도 무역 자유화에 따라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보상해야 할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제 기관과는 별도로 선진 산업 국가들 사이에서 국제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것은 단순한 자선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상호 이익을 증진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005년 현재 미국 상품의 50% 이상이 캐나다와 일본 그리고 유럽 이외의 다른 지역 나라들로 수출되고 있다. 따라서 만약 개발도상국들이 더 성장한다면, 그것은 선진 산업 국가들이 자국 상품의 수출을 위한 더 많은 세계시장을 점유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만약 개발도상국들이 지금보다도 더 낮은 성장률을 보인다면, 그만큼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도 덜 성장하게 된다는 것, 따라서 가난한 나라들의 성장이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성장에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국제사회는 하루라도 빨리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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