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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볼 수 없는 '한미 공동자산'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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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볼 수 없는 '한미 공동자산'이라니?

[한미FTA 뜯어보기 508 : 기고] 한미FTA 협정문 공개, 한국 vs 미국

드디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이 공개됐다. 허나 매우 괴이한 형태다. 김종훈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협상을 타결할 때 협정문의 외부 공개 시점은 5월 20일쯤 하자고 미국과 약속했다. 협정문은 한미 공동 자산인 만큼 미국의 양해가 없이 외부로 새나가는 것은 결례를 범하는 것이다. (…)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외교부 직원 4명을 국회에 일정 기간 상주시켜 협정문 열람 도중 필사 행위를 막을 방침이다." (<한겨레> 4월 20일자)

정부의 공개 퍼포먼스…"살짝 구경만 시켜줄게"

보여주더라도 협정문 전부가 아니다. 해당 업종이나 업계가 사실상 가장 궁금해 하는 관세양허안(관세철폐 계획표)은 안 보여 준단다.

한미 FTA에서는 미국식 FTA의 특징 중 하나인 '포괄주의(negative list) 방식', 즉 유보안에 일일이 명시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개방되는 방식이 채택됐다. 특정 서비스·투자는 현행유보(Annex I)나 미래유보(Annex II) 중 어딘가에 등재돼 있지 않으면, 현재나 미래에 자동으로 개방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비스·투자 유보안의 내용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유보안은 안 보여 준다고 한다.

또한 '품목별 원산지 기준(PSR)'도 아직 보여주지 않겠다고 한다. 예컨대 '원사(yarn) 기준 원산지 기준(얀 포워드)'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 받는 섬유 제품이나 자동차 우회수입 방지 기준 등과 관련된 구체적 협상 타결 내용은 알 수가 없다. 부속서한(side letter) 역시 어느 수준에서 공개될지 모른다.

요컨대, 오직 컴퓨터 모니터 화면상으로만, 오직 제한한 일부 국회의원들에게만, 오직 제한된 공간에서만, 오직 '눈'으로만, 오직 외교통상부의 감시 하에서만 한미 FTA 협정문의 제한된 내용을 '공개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살짝 구경만 시켜준다'는 것이 정부의 이번 공개 '퍼포먼스'의 골자이다.

미국의 '협정문 검증' 데드라인은 4월 25일

그렇다면,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의 말에 따르면 '한미 공동 자산'인 한미 FTA 협정문을 미국은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협정문 공개에 있어서도 한미 양국의 '이익의 균형'이 맞춰지고 있을까?

미국의 경우, 통상협정문의 공개 및 검증과 관련된 모든 사항은 철저히 관련 법률인 무역촉진권한법(TPAA)에 따라 진행된다. 현시점에서 이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법 규정은 '자문위원회'와 관련된 '무역촉진권한법' 2104조 (e)다.

"자문위원회 보고서: 본 법률(TPAA) 2103조 (a) 또는 (b)에 따라 체결되는 모든 통상협정과 관련하여, 통상법(1974) 135조 (e) (1)에 규정된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대통령이 본 법률 2103조 (a)(1) 또는 2103조 (a)(1)(A)에 따라 체결 의향을 통보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대통령, 의회, 무역대표부에 제출되어야 한다."(TPAA 2104(e))

즉, 자문위원회는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시점으로부터 30일 이내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미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그 마감 시한이 오는 4월 25일이다.

미국의 통상법을 들여다보니…

1974년 제정된 '미 통상법 1974'는 그 이전의 미국 통상 규범과 제도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법률이었다.

바로 이 법에 따라 대통령 직속기구인 미 무역대표부(USTR)가 설치됐다. (USTR은 1962년 통상확대법에 의해 1963년 만들어진 특별무역대표부(STR)가 승격·개편된 것이다.) 또 이 법에 따라 비당파적·준사법적 성격의 독립기관인 미 국제무역위원회(USITC)가 만들어졌다.

이와 더불어 이 법에 따라 민간 부문(private-sector)에는 '통상정책 및 협상 자문위원회(ACTPN, Advisory Committee for Trade Policy and Negotiations)가 설치됐다('미 통상법 1974' 135조 (e)(1)). 바로 이 위원회가 무역촉진권(TPA)에서 언급되는 '자문위원회'다.

'미 통상법 1974'에 따르면 이 위원회는 통상협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핵심 부문들을 포함해 미국 경제 모든 부문의 대표자들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주(州)정부, 노동계, 산업계, 농업계, 중소기업, 서비스업, 소매업, 비정부 환경 단체, 소비자 단체의 대표들이 포함된다. 위원회 위원은 대통령이 미 무역대표부의 추천을 받은 사람들 중 45인 이내의 범위에서 2년 임기로 임명한다.

미국의 '민간' 자문위원회 체계는 ACTPN을 정점으로 3개의 층위로 나뉜다. 그 아래에 농무부, 환경청, 노동부가 지명하고 무역대표부가 공동으로 구성하는 정책 협의채널인 4개의 통상정책자문위원회가 있다.

이밖에 통관, 표준, 지적재산권, 전자상거래 등과 관련된 기술 자문위원회(IFAC)가 있고, 모든 산업 부문을 망라한 업종별 자문위가 있다.

총괄하자면, 총 26개 자문위에서 700여 명의 자문위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미 무역촉진권한법(TPAA)에 규정된 90일 간의 '협의(consultation)'를 하고 있다.

바로 이 협의를 위해 26개에 달하는 '민간' 자문위와 700명에 달하는 자문위원들이 각각 자신의 담당 분야에서 4월 25일까지 대통령, 의회, 무역대표부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작성된 보고서는 미 무역대표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전면 공개된다.

협정문 공개 논란, 미국에도 있다?

협정문 공개 논란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논란은 있다. 미국의 통상 전문지로 명성이 높은 <유에스 트레이드 인사이드(U.S. Trade Inside)>가 4월 13일 보도한 내용을 보자.

- 4월 13일 현재 미 무역대표부(USTR)가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협정문 전문과 관세양허안을 자문위원들에게 제공하지 않고 있다.

- 자동차 분야에서는 자동차 관련 원산지 규정이 빠져 있고, 분쟁해결, 내국민대우(NT) 및 시장접근(Market Access), 기술장벽(TBT)에 대한 내용만 들어 있다.


- 섬유 분야에서는 원산지에 대한 내용과 관세 즉시철폐 품목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 노동 분야에서도 부시 행정부와 하원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FTA에 적용할 새로운 노동기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최종 협정문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 웬디 커틀러 미국 측 협상 수석대표도 협정문 전문과 관세양허안이 의회에 제공되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그렇지만 웬디 커틀러는 "대부분의 협정문(most of the text)"은 의회에 송부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의회가 협정문을 상세히 검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협정문의 모든 부분을 완성해 가고 있다. 나는 (의원들) 자신 앞에 실제로 협정문이 놓이게 되고, 그들이 우리가 달성한 것을 보게 되기만 하면, (한미 FTA에 대한) 의회 내 지지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 정책위원장인 테아 리(Thea Lee)는 미 무역대표부가 협정문 전문을 제공하지 않은 상태로 30일 이내에 평가·보고를 하도록 한 것은 자문위원회의 권한을 박탈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를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 그는 자동차와 개성공단 문제로 한미 FTA에 대한 반대를 공식화했다.

- 자동차 노조는 물론 포드와 다임러-크라이슬러 역시 한미 FTA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환경단체들 역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Investor-State Disputes)'를 이유로 한미 FTA에 대한 반대를 표명했다.

'- 쇠고기 업계는 여전히 한미 FTA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는 반면 돼지고기, 닭고기 업계는 지지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쌀 수출업계는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오렌지 계절관세와 관련해 썬키스트는 환영 의사를 밝혔다.


FTA 협정문, 미국에선 이미 "광범위하게 유출"됐다

그렇다면 이제 소중한 '한미공동의 자산이라는 한미 FTA 협정문이 한미 양국에서 각각 어떻게 처리·가공되고 있는지를 정리해 보자.

첫째, 한국 내 협정문 공개 시점(4월 20일 오후 5시)을 기준으로, 여전히 협정문 전문이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정한 '자구 수정' 등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해야 하겠다. 하지만 이 자구 수정이 협상의 본질적 내용을 건드린다든지, 미국 의회의 재협상 요구 내용을 반영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한미 FTA 협정문 공개 '퍼포먼스'가 펼쳐질 국회 소회의실. ⓒ프레시안

둘째, 협정문의 공개 범위다. 그 어떤 경우에도 700여 명에 달하는 미국 '민간' 자문위원들이 한미 FTA 협정문을 컴퓨터 모니터 상으로만 보고 필사도 못하는 조건에서 검토 보고서를 작성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의 자문위원회 위원들은 업계 및 이해당사자들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자' 본인만이 아니라 업계의 '누구나' 원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이해가 걸린 한미 FTA 내용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또 웬디 커틀러 미국 측 협상 수석대표가 말했듯, 아직 '협정문 전부'는 아니지만 '협정문 대부분'은 이미 미 의회에 송부됐다. 미 의원들이 오직 보좌관 1명만을 대동하고 모니터 속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협정문이 자국어인 영어로 작성된 까닭에, 이들 누구라도 적어도 협정문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결국, 미국의 의회, 업계, 이해당사자, 전문가들은 원하기만 한다면 한미 FTA 협정문의 내용에 '비밀취급인가' 없이도 접근할 수 있고, 또 원한다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통로가 확보돼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협정문을 일반대중에게 공개하는 '결례'를 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협정문 내용은 광범위하게 '유출(?)'됐다.

한미 공동자산?…'극소수' 통상관료와 '모든' 미국인의 공동자산!

셋째, 한국의 경우는 '한미공동의 공동자산'을 너무나 소중히 여긴 탓에 오직 극소수 관료들만이 공동자산을 볼 수가 있다.

그렇게 보면 '한미공동의 자산'이란 '미국 국민과 한국 극소수 관료들만의 공동자산'이란 의미와 다를 바 없다. 여기에 한국 국민은 없다. 당연히 한국 국회도 없다.

한국의 통상 관료들은 "협상을 너무 잘 했다"고들 말한다. 혼자 보기 아깝다는 말일 게다. 그런데 무엇이 무서워서 저리도 가리고 숨길까. 어차피 미국법에 따라 진행된 협상이라면, 미국법이 정한 공개 범위와 수준을 따라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입법 불비'의 현실…통상절차법부터 제정해야

넷째,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미국의 '통상정책 및 협상 자문위원회'의 검토보고서는 법정 절차에 따른 것이다. 자문위의 검토보고서가 의회 협의 기간 중 1차 사전검증 절차라면, 협정문 정식 조인 뒤 90일 이내에 제출하도록 돼 있는 미 국제무역위(USITC)의 보고서는 2차 사전검증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미국에서는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인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나의 통상협정이 완료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잘해봐야 통상관료들의 사실상 '자의'에 불과한 '선심'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대한민국 헌법 73조는 대통령이 '조약의 체결·비준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미 FTA 협상 과정은, 말하자면, 대통령의 조약 '체결 권한'이 행사된 과정이었다. 이에 상응해 헌법 60조는 국회가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지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 권한은 오직 '비준 동의권' 행사 여부로만 왜곡·축소돼 있고, '체결 동의권' 행사 여부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국회는 자신들이 체결 동의권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체결 과정에 해당되는 협상 개시에서 협상 타결까지 국회는 사실상 '소, 닭 보듯' 구경하는 것 외에 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국회 한미 FTA 특위가 만들어져 있지만, 들러리 노릇만 할 뿐 유명무실하다.

이미 한미 FTA 협상 개시 1년 전 우리 시민사회는 이런 '입법 불비'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통상절차법'을 만들고자 했다. 이 법안은 작년 2월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에 대표 발의했다. 이밖에도 물타기용 법안까지 포함해 총 4개의 통상절차법이 국회에 제안돼 있다.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통상절차법을 제정하는 것이 국회의 '무기력'과 행정부의 '통상독재'를 저지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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