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한중 양국은 1992년 수교 이래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즉, 양국은 선린우호관계(-97), 협력동반자관계(-2002),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2007)를 거쳐, 현재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에도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이후의 현 한중관계는 동북공정 등 역사왜곡 문제로 마찰을 겪었던 2004년보다 더 큰 갈등을 노정하고 있다.
물론 양국이 '전략적' 관계를 천명하자마자 바로 전략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략적 협력이 필요한 사안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천안함 사건은 한중관계 진전의 역설이 성립한다. 그런 점에서 천안함 사건은 한중관계의 냉정한 복기와 향후 한중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금번 천안함 사건은 한중관계에 어떠한 함의와 과제를 주는가?
우선, 천안함 사건의 대응과정에서 보여준 우리의 대중외교는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중간 '전략적' 혹은 '동반자' 관계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설득력 없는 '대중 설득론'이 희망적 예단 속에서 진행되다가, 김정일 방중 이후부터는 무리한 '대중 압박론'이 언론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심지어 국제조사 결과 발표에 대한 중국의 신중한 태도에 실망한 나머지 '중국 통과론'마저 일부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대중접근은 중국에 대한 이해 부족 및 한중관계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배경으로 한다. 사실 한중관계를 냉정하게 검토하자면, 경제 분야를 제외하고 아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구체적으로 상호 공동이익을 바탕으로 한 경제교류·협력관계는 어느 정도 성숙되어 있으며, 이를 토대로 정치·외교적 협력이 활발히 모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군사안보적 관계는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에서 우리의 국익에 유리하도록 중국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의 대중외교가 실패만이 아니라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천안함에 집착한 대중외교의 후유증이 한중관계의 중장기적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금번 천안함 사건에서 확인했듯이, 중국의 영향력과 비중이 급증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는 중국과의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관계 형성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상호신뢰 구축을 통한 전략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중장기적이고 다차원적인 노력이 모색되어야 한다.
둘째, 천안함 사건은 한중관계에서 북한 요인이 중요함을 보여준 극단적인 사례이다.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중국과 남북한 관계의 동시 발전을 가져왔고 향후에도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한중 및 북중 양자 관계의 문제는 양자 간 채널을 통해 해결을 모색할 수 있겠으나, 남북한과 중국의 공통문제는 3자 모두에게 많은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북핵문제, 탈북자문제, 통일문제 등을 들 수 있는데, 천안함 사건 역시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통일의 대상인 북한에 대한 한국의 정책목표·이익과 중국의 대북정책 목표·이익이 상호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중 양국은 상호 공동 목표를 찾아 협력을 확대함으로써 이견을 좁혀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서는 양국의 목표가 일치하고 있다.
반면 양국이 상호 이견을 보이는 부분은 대북정책에 대한 중국의 포용기조와 한국의 압박기조이다. 그러나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안에 찬성한 예에서 보듯이, 중국의 대북 포용정책은 무조건적인 포용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핵 포기와 개방의 길로 나선다면 북한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것을 공언한 한국의 대북 압박정책 역시 무조건적인 압박은 아니다. 즉, 조건이 있는 포용과 압박정책이다. 따라서 한중 양국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셋째, 천안함 사건을 통해 볼 때, 한중관계는 중미관계의 협력·경쟁 구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특히 북한이 연루된 문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지속적 경제부상으로 인해 중국은 글로벌 차원에서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차원에서는 G2로서의 위상을 갖추고자 한다. 미국은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동북아 지역에서의 자신의 위상 및 영향력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 두 강대국의 의지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표출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중미관계가 갈등, 대립 등의 냉전적 구도로 회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국과 미국은 전략·경제대화의 채널을 가지고 있으며, 경제적 상호의존도도 크다. 다만, 중미갈등이 증대할 경우 우리의 입지는 제한적이며, 한중협력도 그만큼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반대로 한반도 현안을 둘러싼 중미 간 논의가 증대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미관계가 아무리 긴밀하게 전개되더라도 세계적 차원의 중·미 협력구도의 하위에서 운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중 협력이 긴밀해질수록 한·미 협력이 손상되거나 견고한 한·미관계 하에서 한·중 협력은 커다란 효용성이 없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물론 한·미관계는 우리의 국익 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동맹관계이지만, 중국의 위상과 중·미 협력·경쟁 관계 등 동북아 국제 관계의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미관계를 공고히 하면서도 한·중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한·중관계, 한·미관계, 중·미관계가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이고 상호 촉진적인 관계로 설정되고 작동되어야 할 것이며, 최소한 한반도 및 북한문제에 관한한 한·미·중 3자협의체를 구성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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